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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65화 (65/216)

65화. Episode. 22 신의 시련 (3)

거멓게 썩어 비틀어진 나무는 새벽의 허수아비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니, 모리츠의 얄팍한 담력이 한계를 맞이했다.

“호르시여, 호르시여, 호르시여, 호르시여, 살려 주십시오, 호르시여, 호르시여……!”

나르의 등에 철푸덕 엎드린 그가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숲은 자그마한 풀벌레의 울음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아, 정말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더불어 마기까지 기승을 부리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밖이다!”

그런 모리츠의 눈에 숲 너머가 들어왔다.

장장 두 시간 만에 숲을 가로지른 것이다.

“하아…… 하아……!”

나무의 시체 더미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좀 살 만해졌다.

죄 새까맣긴 매한가지였으나, 죽은 숲보다는 탁 트인 밖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숲 다음엔 강이 나타났다.

검게 죽은 강에선 지독한 악취가 났다.

“미친.”

한참 만에 입을 연 모리츠의 안색은 창백했다.

리오 성과 그 밖이 별세계처럼 느껴지듯, 숲의 안쪽과 바깥쪽도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공기는 찐득하고, 바람엔 시체 냄새가 풍겼다.

마기가 하늘과 땅을 뒤덮으니 여기가 곧 마계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 빌어먹을 곳을 정찰해야 하고.”

그는 코를 감싸 쥐었다.

이 역겨운 공기를 마시면 오염이라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의 정신은 어딘가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떨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운다.

나르의 윤기 나는 털을 잡아 뽑듯 쥐어 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갈 수는 없다.

정찰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모리츠는 눈물을 머금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텅텅 빈 작은 마을 몇 군데를 돌아다닌 그는 마침내 대도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성을 습격해 왔던 포이르 백작가의 영지.

대대로 폴린 성을 지키던 바렌 왕국의 자랑거리.

“…….”

익숙한 깃발이 내걸린 대도시를 바라보며, 모리츠는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정찰을 나선 지 며칠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경계선을 건너고 하루가 지났단 것은 확실하다. 지금 나는 포이르 백작가의 영지에 들어서고자 한다. 아, 일단 그전의 얘기부터 할까. 경계선 밖의 상황은 최악이다. 그래. 정말 최악이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두서없이 적어 내려가는 그것은 일기였다.

애처롭게 떨리는 펜 끝을 따라오는 글자는 엉망진창이었다.

[리하르트가 한 아름 안겨 준 식량은 육포와 물이 전부다. 그런데 조금 전에 먹어 보니 맛이 전부 이상했다. 육포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어제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일단 배는 채워야 하니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먹다 보니 먹을 만했다. 어라, 가만 보니 색도 까맣게 변색 되어 있었다.]

[……잡설이 길었다.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정찰 일지와 겸하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허물어지려는 의지와 사명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한참이나 끼적이던 모리츠가 수첩을 품에 넣었다.

다 쓰고 나서야 깨달은 건데, 백작가의 영지를 정찰하고 나서 적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뭘 그렇게 봐?”

크릉-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나르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깊게 가라앉은 맹수의 눈동자엔 자그마한 염려가 언뜻 보였다.

“싱겁긴. 넌 리하르트를 닮아서 재미가 없구나. 출발하기나 하자.”

맹수와 인간 하나가 백작가의 영지에 발을 디뎠다.

그간 지나쳐 온 마을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진동하는 악취와 금이 간 건물들.

땅엔 딱딱하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낭자했다.

혹시 모를 습격에 몸을 긴장시켰던 모리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가는 말 그대로 유령 도시가 되었다.

지겹게 보았던 시체 하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언데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전부 이쪽에서 쳐들어온 거겠지.

실제로 쳐들어왔었고.

그럼 혹시 다른 곳도 전부 이렇지 않을까.

지금껏 리오 성을 습격한 언데드만 해도 산을 두세 번은 쌓을 터이니.

행복회로를 돌린 모리츠의 얼굴에 희망이 맴돌았다.

“빈집털이는 쉽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정찰에 탄력이 붙었다.

나르 위에 올라타 재빠르게 영지 한 바퀴를 돌아본 모리츠가 고개를 쳐들었다.

영주성 꼭대기에, 웬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알 수 없는 재질의 탑 끄트머리엔 웬 구슬이 음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저건 분명…….

“역시 있었네. 빌어먹을!”

리하르트가 보이면 꼭 깨부수라 했던 그것이 틀림없었다.

저걸 부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한참을 갈등하던 모리츠는 검을 뽑아 들었다.

까라면 까야지.

젠장.

고오오-

고급진 검을 타고 모리츠의 오러가 내달렸다.

그가 최근에 보인 나름의 성과였다.

콰장창-

힘껏 휘두른 검을 따라 쏘아진 참격이 구슬을 깨부쉈다.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

◈          ◈          ◈

[정찰 2일 차. 여기서 2일 차라 함은 경계선을 넘었을 때부터를 뜻한다. 나는 어제 포이르 백작가의 도시를 정찰했다. 한때 웅장하고 활력 넘쳤을 그곳은 이제는 공허만이 남은 유령 도시가 되었다.]

[……리하르트가 말한 조형물이란 것을 결국 발견하고야 말았다. 놀랍도록 성장해 버린 내가 오러를 엮어 내니, 조형물에 달린 구슬 따윈 드래곤 앞의 휴거였다. 이 나이에 오러를 다룰 줄 안다는 건 나 또한 바텐베르크의 피를 이었음을 증명하는 성취였다.]

[……구슬을 깨면 분명 무슨 변화가 일 줄 알았건만, 변화는커녕 참새 한 마리도 울지 않았다.]

[정찰 5일 차. 사흘 만에 일기를 작성한다. 아닌가, 어제 썼던가. 확인해 보니 쓰지 않았다. 지금 나는 라덴 가문의 영지를 앞에 두고 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또 크고 작은 마을을 거쳐 왔다. 전부 폐허뿐이고 시체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더는 언데드가 남아 있지 않은 건 아닐까. 우선 라덴의 영지를 정찰해 보겠다.]

[정찰 6일 차. 헛소리를 취소하고자 한다. 나는 지금 지옥에 있다. 온통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정신이 혼미하다. 다행히 내 은신 능력이 뛰어난 탓에 들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데스나이트는 위험하다. 금방이라도 내 존재를 알아차릴 것 같다.]

[……마찬가지로 영주 성에 새까만 구슬이 있길래 어떻게든 깨부쉈다. 그러자 이번엔 변화가 일었다. 눈을 까뒤집은 시체들이 영지를 벗어나 활개를 쳤다. 문제는 그 방향이 리오 성을 향한 것 같다. 아무래도 리하르트는 이것을 노린 모양이다. 미친 자식.]

[정찰 7일 차. 영지를 빠져나왔다. 그 데스나이트, 라덴의 가주만큼은 구슬이 깨지든 말든 제자리를 지켰다. 작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자의 검에 베였다.]

[……상처가 깊다. 벌어진 살점 사이로 마기가 흘러 들어온다. 배가 고파 육포를 한 주먹 집어삼켰다. 미치도록 맛있었다. 육포가 이 정도라면 싱싱한 살덩이는 어느 정도일까.]

[정찰 8일 차. 정찰을 한다. 정찰. 정찰. 정찰. 정찰. 시체. 시체. 시체.]

[정찰 14일 차. 리하르트가 원망스럽다. 내가 이상하다. 호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          ◈          ◈

“호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모리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곧,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이 며칠간 기도를 한 적이 없잖아.”

맙소사.

대체 어떻게 그걸 잊는단 말인가.

안색이 창백해진 그가 허겁지겁 일기를 훑어보았다.

1일차부터 14 일차의 지금까지.

등골이 섬뜩해지는 광기가 글자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모리츠는 이번엔 육포를 꺼내 들었다.

언데드의 살덩이로 만든 것처럼 썩어 문드러진 말린 고기.

그런데 이게 미치도록 맛있다고 한 주먹이나 처먹었다.

“우, 우웩……!”

당장에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미친 게 틀림없다.

정찰 중 이따금 씩 해 오던 이상 행동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한참 토악질을 해대고 있는데, 라덴 가주에게 당한 상처가 왈칵 터졌다.

후드득, 검은 피가 쏟아졌다.

“어……?”

옷을 들춰 환부를 확인했다.

상처 주위가 새까맣게 썩어 악취를 풍겼다.

그 외의 크고 작은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언데드 같았다.

“나는 살아 있는데…….”

모리츠의 얼굴이 공포에 짓눌렸다.

“호르시여! 이 어린양을 보듬어 주소서! 부디 악몽에서 깨워 주소서!”

간곡한 기도의 대답은 자그마한 활력뿐이었다.

지고하고 전지전능한 신이라더니.

지금 필요한 건 활력이 아니란 것을 모르는 걸까.

“으으……!”

모리츠가 떨리는 손으로 품을 더듬었다.

곧 꺼내든 것은 자그마한 씨앗.

정찰을 떠나기 전, 식량과 함께 건네받았던 것이었다.

- 정말 죽겠다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씹어 삼켜. 그리고 바로 돌아와. 이게 네 구명줄이다.

맞다.

리하르트가 분명 그리 말했었다.

씨앗을 바라보는 모리츠의 눈빛이 일렁였다.

이것만 먹으면 언데드가 되지 않는 건가.

미쳐 돌아가는 내 정신이 멀쩡해지는 건가.

“그럼 당장……!”

멈칫, 입에 씨앗을 털어 넣으려던 손이 정지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머릿속에 나돌아다녔다.

이걸 먹으면 돌아가야 한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채, 패잔병처럼.

드디어 적의 본진 앞까지 왔는데.

씨앗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으득, 악다문 잇새에선 신음이 흘러나왔다.

“킥…… 킥킥!”

신음이 웃음으로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낄낄거리더니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신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턴 변한 줄 알았다.

이른바 광명이라고 하던가.

그래, 그런 걸 신으로부터 찾은 줄로만 알았다.

정말 간절히 원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아직도 나약하구나.”

신도가 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바텐베르크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내가 되겠다더니, 뭐만 하면 신을 찾는 머저리가 되어 버렸다.

신은 옆에서 거들어 주실 뿐, 대신 행하시는 분이 아닌데.

진짜 바텐베르크는 올곧고 단단하다.

아버지 루드비히처럼.

또,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다.

리하르트가 그러한 것처럼.

그 둘과 자신의 위상은 얼만큼의 차이가 있는가.

머리를 땅에 처박은 모리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변하기 위해선, 변한 것처럼 행동해야 해. 가만히 빌기만 하면 될 리가 없잖아.”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렸다.

자신이 원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러자 씨앗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떨다 죽을 바엔, 신념을 따르다 죽는 게 나아. 내가 짊어진 사명을 잊지 말자. 연합에게 적들의 모든 정황을 상세히 알려야만 한다.”

모리츠는 성미 고약하다 여긴 리하르트가 더는 야속하지 않았다.

이 임무를 받아들인 건 자기 스스로의 의지였고, 자신이 보기에도 이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호르를 위하여.”

씨앗을 품 안에 도로 집어넣었다.

지금 당장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느새 정신이 맑아졌고, 심장은 웅혼히 뛰고 있었으니까.

남은 수색지는 폴린 성 하나.

최악, 최흉의 마기를 울컥울컥 뱉어내는 악의 요새.

모리츠는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걸음걸음에, 옹졸하고 치졸했던, 나약한 과거를 내버렸다.

◈          ◈          ◈

[신도 모리츠 바텐베르크 - 호르교 최하급 성기사 자격 충족.]

[특기 - 신성력 변환(E) 습득.]

[최하급 성기사 1/3]

리하르트는 물끄러미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면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하아…….”

한참 만에 터져 나온 한숨엔 숨길 수 없는 안도가 담겨 있었다.

기도가 끊긴 지 6일째.

그동안 리하르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게 대체 죽은 건지, 마기에 범벅이 되어 마인으로 변모한 건지 알 턱이 없었다.

아니, 오늘에서야 들어온 염원을 살펴보면 마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갑자기 성기사가 되었다더라.

“씨앗을 삼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낌새는 없다.

즉 모리츠는 혼자 힘으로 오염을 벗어났고, 그걸 넘어 이러한 쾌거를 이뤘다는 뜻이었다.

“설마 첫 성기사를 이렇게 얻을 줄이야.”

큰 시련을 이겨 낸 자에겐 그에 걸맞은 보상이 따라오는 법.

아무래도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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