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Episode. 20 기원 (3)
전투가 끝난 다음 날.
신도들은 리오 성의 공터에서 찬송가를 불렀다.
성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기사들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끄는 이가 있었다.
“왜 사령관님께서……?”
신도 틈바구니에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는 레오였다.
연합의 사령관이 함께 찬송가를 불러, 포교 활동의 기반을 다진다.
그가 생각해 낸 묘안은 굉장히 그럴듯했다.
신도들도 제 목소리를 아끼지 않을 정도.
그때 아론이 끼어들었다.
“레오 단장님. 기사 중에서 첫 번째 신도는 제가 될 겁니다.”
한차례 노래가 끝난 후, 아론이 했던 말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그다음 발언이었다.
“성자이신 리하르트 도련님의 직속 기사가 바로 저, 아론 마이어니까요.”
마치 자신이 리하르트에게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거들먹거리는 듯한 말투.
레오의 귓가엔 그렇게 들렸다.
물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리하르트가 누구를 더 중요히 여기든 알게 뭐란 말인가.
머릿속으론 그렇게 생각했는데, 입으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 나갔다.
“미안하지만, 연합의 사령관으로서 첫 번째는 내가 되어야겠네. 도련님께서도 분명 그리 생각하실 걸세.”
“전혀 아닙니다. 도련님께선 저를 몇 번이나 설득하셨죠. 신도가 되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첫 번째가 되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그 수차례의 기회를 날린 건 자네 아닌가? 뒤늦게 떼를 쓰는 건 보기 좋지 않네만.”
“아, 제가 오해를 샀군요. 떼를 쓴 것이 아니라 통보였습니다.”
빠직.
둘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아론은 생각지도 못한 강적의 등장에 경각심을 가졌고, 레오는 묘하게 지기 싫다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그 둘의 대치는 노래를 부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 ◈ ◈
“하아…….”
아델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대체 왜?”
아론은 둘째 쳐도, 레오만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첫 번째 신도는 메리인데, 기사 중에서라도 첫 번째가 되겠다고 괴성을 질러 대고 있다니 말이다.
저 양반이 언제부터 저리 독실했다고.
“혹시 저 머슴들이 아빠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풉.”
“헛소리 하지 마.”
나는 실실 웃어 대는 아델의 머리에 꿀밤을 놓았다.
정말로 그딴 이유는 아니겠지.
나중에 진지하게 왜 그랬느냐고 물을 셈이다.
“우선 지금은 말려야겠다.”
레오의 아이디어는 좋았다.
그런데 그 좋은 아이디어를 제스스로 망치고 있었다.
더불어 사령관의 위엄도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일보직전이고.
지끈거리는 몸을 이끌고 두 남정네에게 다가갈 때였다.
“꾸이익!”
어디서 잔뜩 성이 난 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꾸익, 꾸이익! 좀 닥치시오! 그대들 때문에 메리 소저의 지저귐이 안 들리잖소!”
다름 아닌 휴거였다.
그가 콧김을 세게 내뿜으며 아론과 레오 사이를 갈라놓았다.
“췩, 내가 불러도 그대들 고성방가보단 낫겠다오!”
“뭣이?”
“크흠! 잘 들으시오. 메리 소저와 이 몸의 듀엣을!”
빨간 돼지가 목을 가다듬더니 신도들의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정말 당연하게도, 휴거는 음치였다.
더불어 오크 특유의 콧소리와 걸걸한 음성까지 합쳐져, 몹시 듣기 힘든 괴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들이 진짜.”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노래를 부르는 것까진 괜찮은데, 굳이 메리와 눈을 맞추며 추파를 던지는 꼴이 참 우스웠다.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같이 나의 근사하고 멋진 찬송가를 모욕하고 있었다.
당장에 달려가서 한 대씩 후려치자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폴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뒤로 잭을 비롯한 제3기사단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그들이 씨익 웃었다.
어쩐지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뭐야. 또 뭘 하려고.”
내 불안한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그들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등불.”
“등불!”
급기야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어두운 한밤중에]
[그분께서 등불 통해 기쁜 소식 전할지니]
[곧 새벽 동이 터 오르리라]
그 와중에 찬송가가 다시 반복되었다.
그때부터 제3기사단이 나서기 시작했다.
“어두운 한밤중에!’
“그분께서 등불 통해 기쁜 소식 전할지니!”
“곧 새벽 동이 터 오르리라!”
시선은 올곧게 나를 향한 채.
경건한 음색도, 웅장한 느낌도 없는 음치들의 행진.
칼 밥 먹는 이들이라 그런지 노래에는 소질이 부족한 녀석들 천지였다.
“맙소사.”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시장판이었던 공터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뭐가 어찌 되든 제 노래에만 집중하는 신도들.
음공(音攻)을 단련하듯 괴성을 질러 대는 아론과 레오.
거기에 돼지 멱따는 소리와 제3기사단이라는 음치 집단까지 더해지자 소음 공해 수준을 넘어섰다.
이래선 안 된다.
모처럼 깔린 판이 난장판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이런 분위기에선 나와 신도들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그 노래를 선보일 수가 없었다.
“아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자.”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데, 아델이 내 옷깃을 붙잡았다.
조금 전만 해도 깔깔거리기 바쁘던 그녀의 눈이 자애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저 애들 좀 봐 봐.”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연합의 기사들을 가리켰다.
그제야 내 눈에도 그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당장 이틀 전에 큰 전투가 일어났고, 또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기사들의 멘탈 이곳저곳에 금이 간 건 당연지사였다.
그런 그들이 난장판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순수하게 즐거운 기색으로.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데.”
“그치, 그치!”
이렇게 되니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이 또 다르게 보였다.
듣는 이를 괴롭게 하는 소음 공해였던 것이, 체면치레 따윈 신경 안 쓰는 즐거운 연회처럼 말이다.
“꼭 찬송가가 진중하고 경건한 분위기일 필요는 없잖아?”
“……그렇긴 한데.”
아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냥 내 욕심이었을 뿐이다.
위엄 있고 숙연한 장내. 그곳에서 부르는 기도의 노래.
지금은 물 건너갔지만, 뭐.
“이봐! 너희들도 따라 불러!”
“샌님처럼 빼지 마!”
한껏 흥이 오른 폴크와 잭이 연합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주춤거리던 기사 몇이 수줍게 구절을 읊었다.
[악몽 꾸는 이를 구원하사]
[어두운 세상 울던 백성 단잠 드네]
“드, 등불 비춰 밝힌 눈물 자국.”
“그분 숨결이 어루만지네……!”
목소리 열이 곧 백이 되고, 백이 또 천이 된다.
그 노래는 공터를 넘어, 리오 성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어째선지 내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기사들이 읊어 대는 노랫말에는 깊고 깊은 염원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 소중한 동료가 죽어 나가지 않기를.
기사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옥죄이는 마기에 당당히 맞설 수 있기를.
고오오-
성을 뒤덮은 마기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기사들의 음성에 미약하지만 성스러운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기도가 꼭 구색을 갖추고 빌어야만 기도인가.
지금 리오 성을 울리는 저들의 노래도 기도가 아닌가.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참 바보 같았다.
“……애써 준비한 노래가 쓸모없어졌네.”
“아빠, 솔직히 그 노래는 너무 별로였어. 호-르! 호-르! 행복하게 해 주시오, 호-르! 이게 뭐야, 대체?”
“시끄러워.”
쫑알거리는 아델을 밀어내곤 내면을 관조했다.
육신에 충만감이 잔뜩 차오른다.
아니,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천 칠백여 명의 기사들이 간절하게 올린 기도.
그 안에 담긴 신앙이 내 영혼에 차곡차곡 쌓였다.
한순간에 차오른 양이 총 오만에 달할 정도였다.
과연 이들이 모두 신도가 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신앙을 얻을 수 있을까.
“잘됐다, 아빠!”
“그래. 드디어 과실을 맺은 거야.”
쥐꼬리만 한 신앙을 악착같이 모으던 나날이 떠오른다.
사실 신도를 늘리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내 눈앞에 비춰지는 저들을 얻기 위해서.
“두 번째 템플나이츠가 탄생하려나?”
아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노린 게 바로 그거였으니까.
템플나이츠.
천 년 전, 나의 종교 아래 모여들었던 강대한 기사단.
용사와 함께 마계의 침략을 막아 낸 성마대전의 주축 중 하나.
“아래에서 차근차근 시작하면 너무 늦으니까.”
벌써부터 마왕이 눈깔을 들이밀고, 더러운 마기가 땅에 내려앉았다.
그런 마당에 대륙을 나돌며 세력을 키울 시간 따윈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머리부터 공략하기였다.
머리만 얻으면, 그리고 그 머리를 크게 키워 내면 나머지는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신도 프리아 - 호르교(敎) 최하급 전도사 자격 충족.』
『신도 로먼 - 호르교 최하급 전도사 자격 충족.』
『신도 아이란 - 호르교 최하급 전도사 자격 충족.』
『신도 찰스 - 호르교 최하급 전도사 자격 충족.』
『특기 후광(E) 습득.』
『최하급 전도사 5/5』
이런 걸 겹경사라고 하던가.
신도 중에서도 신앙심이 두드러지던 넷이 선택받았다.
아마 인원 수 제한이 없었다면 스노우폴의 모든 신도가 전도사로 승급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일은 대단히 진보적인 성취였다.
“아…… 아아!”
새로이 탄생한 네 명의 신도들은 자신이 내뿜는 후광에 탄성을 흘렸다.
두 눈 가득 감격에 젖은 그들이 기쁨의 노래를 불러 댔다.
“자, 그럼…….”
나는 좌중을 한 번 훑어보았다.
과연 오늘, 아론과 레오 둘 중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어쩌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기사 중에서 첫 번째 신도가 나올지도 모르고.
“우선 아론부터.”
『대상의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쯧.
그렇게나 설레발 치더니만, 아직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럼 다음은 레오인가.
『대상의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역시나 이놈도 무리.
기도랑 협박을 헷갈리는 녀석이 신도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음, 이렇게 빨리 신도가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나는 애써 고개를 주억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였다.
“아빠. 저 녀석한테 기회를 줘 봐.”
아델이 붉은 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