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Episode. 18 망자의 군대 (1)
“이 시국에 어딜 가시겠다는 겁니까!”
“도련님, 차라리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레오와 아론이 쌍으로 반대를 펼쳐 댔다.
어차피 나도 순순히 보내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나르 평원에 갈 거야.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성이나 지키고 있어.”
내 말에 레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르 평원이라 하심은…… 혹, 영물 때문에 가시는 겁니까.”
“그래.”
리오 성의 동남쪽에 있는 나르 평원.
거기에는 영물 혹은 아티팩트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
여기서 시간 낭비만 하다가 놓치기엔 아까운 기연이다.
“아무리 영물이라 한들,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언데드가 되었거나, 죽었거나 했겠지요.”
“살아 있어.”
애초에 죽거나 하는 종류의 녀석이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마기에 오염되진 않을까 싶은 건데, 그렇게 되기 전에 서둘러 다녀와야 했다.
“영물은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평원에 가서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길들일 건데?”
“하…….”
나는 이마를 부여잡는 레오를 보며 말했다.
“가다가 이상한 낌새라도 느끼면 바로 돌아올 거야. 너무 걱정 마.”
“인원을 차출해서 가십시오. 아니, 제1기사단 중 몇 명을 보내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혼자 다녀올게.”
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리오 성에 없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리오 성을 떠났다.
악취가 올라오는 땅 위를 달린 지 한참.
밤낮 구분 못 할 하늘은 온종일 새까맸고, 곳곳에 불쾌한 기운이 가득했다.
푸르르-
“워워.”
나는 난동을 부리는 말을 진정시켰다.
폴린 성에 가까워져서 그런 것인지, 살을 에는 듯한 마기가 사방을 짓눌렀다.
‘심각한데.’
전쟁이 끝나도 이 지역은 저주받은 땅이라고 불리며 텅텅 비어 버리겠지.
바렌 왕국에겐 국토의 절반이 무주공산이 되는 것이다.
“키에에엑!”
“크륵!”
폐허가 된 영지에 도착하자, 덩그러니 서 있던 언데드 둘이 덮쳐들었다.
열 살 난 여자아이로 보이는 것 하나와 성인 여성의 시체.
서걱-
번개처럼 뽑아 든 검으로 한 번에 목 두 덩이를 베었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시체들이 눈에 띄었다.
“케엑!”
덤벼드는 언데드의 목을 베어 넘기곤 서둘러 영지를 가로질렀다.
오늘로 리오 성을 떠난 지 사흘.
아직 적군에게선 별다른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기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을 뿐.
얼른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히히힝-!”
“……!”
난데없이 말이 미쳐 날뛰어댔다.
신앙을 사용해 진정시키려 해 보아도, 겁에 질린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동시에 내 지척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서걱-!
순식간에 참격이 날아들었다.
내가 어찌 반응할 새도 없이 말의 기다란 목이 떨어져 나갔다.
“누구냐!”
“끄, 어…….”
건물 너머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지를 지키던 기사인지, 은색 철갑을 입은 시체였다.
놈이 입을 열었다.
“언데드…… 죽인, 다…….”
구더기가 들끓는 눈두덩이가 나를 향했다.
저 시체의 눈에는 내가 언데드로 보이는 걸까.
생전의 마지막 기억만을 가지고선 행동하는 모양이었다.
저런 놈한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캉-!
허공에서 검이 맞부딪쳤다.
한 번, 두 번.
열댓 번 정도의 검격을 나눴다.
“지킨, 다…… 내, 가족…… 주군…….”
그게 놈의 유언이었다.
깔끔하게 목이 날아간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합군의 기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사기에 적잖은 영향이 미쳤을 터였다.
그만큼 끔찍한 광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음 왕관의 한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 ◈ ◈
“동지! 또 여기에서 죽치고 있소? 췩!”
휴거가 퍽 안타깝다는 눈으로 모리츠를 바라보았다.
리하르트가 대뜸 떠난 이후로 모리츠는 성벽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멍하니 연합군의 깃발을 바라보는 모습이 꼭 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리하르트는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며칠이나 됐다고 그러는 거요. 대단한 인간 전사가 그리도 좋소?”
모리츠는 휴거의 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좋긴, 개뿔이.
자신은 그저 리하르트의 빛을 이용해 먹기 위해 붙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깃발보다 놈 옆에 붙어 있는 게 더 마음에 안정이 생긴다고.’
왜 그런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리하르트가 온몸에서 은은하게 뿜어내는 빛이 모리츠에겐 더욱 와닿았다.
“휴거. 리하르트 그놈은 용이랑 싸울 때 어땠어?”
“굉장했지! 취익.”
휴거는 추억을 떠올리듯 입꼬릴 끌어올렸다.
그러곤 저를 닮은 어린 오크에게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신과 리하르트의 대결부터, 용과 싸울 때의 상황까지 전부.
“나는 그때 느꼈소. 아! 저 대단한 인간 전사와 함께라면 굉장히 즐겁겠다고 말이오. 취익.”
“…….”
“제3기사단은 그를 등불이라 부르더군. 취익, 꽤 어울리지 않소?”
“흥.”
모리츠는 대꾸 없이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등불이라.
정말 어울렸다.
그도 지켜보았으니까.
전장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꾸고, 연합의 붕괴를 꾀하던 배신자까지 처단하는 모습을.
‘정작 나는 아무것도 못 했지.’
배신자 폴랜드 헬가가 바텐베르크의 레오를 무시하고, 불경한 태도를 여과 없이 보였다.
그럼에도 자신은 회의실의 분위기에 짓눌려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못내 화가 났었다.
“동지는 대단한 인간 전사를 동경하는 것 같구려. 비록 사이는 영 안 좋지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꺼져. 내가 그 자식을 동경한다니, 무슨 헛소리야!”
모리츠의 날 선 말에 휴거가 껄껄 웃었다.
“그래도 동지는 동지만의 재능이 있잖소. 췩! 굳이 대단한 인간 전사를 따라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소.”
“내가 따라 한다고?”
“호흡부터 걸음걸이까지 전부 따라 하더만.”
사실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모리츠는 이따금 제 동생을 따라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기엔 그는 어렸다.
“따, 따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놈이야!”
“흐흐, 그런 거요?”
“……시끄러워.”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저기, 모리츠 도련님! 휴거님!”
뒤에서 가녀린 음성이 들려왔다.
양손 가득 주먹밥을 들고 있는 메리였다.
“오오, 메리 소저!”
그녀를 본 휴거의 붉은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헤헤, 휴거님이 부탁하신 주먹밥 스무 개!”
“내가 받으러 가려고 했는데, 굳이 찾아오게 해서 미안하오. 췩.”
“용사님들에게 그 정도도 못해 드릴까요.”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아름답구려. 전장에 핀 꽃 한 송이 같소.”
흘긋 지켜보던 모리츠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인간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오크라니.
“동지도 드시오. 대단한 인간 전사의 힘이 깃든 물로 지은 쌀 주먹밥이라오.”
모리츠는 순순히 주먹밥을 받아 들었다.
그러곤 메리를 바라보았다.
“너, 리하르트의 전속 시녀였지? 줄곧 이해가 안 갔는데, 대체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이러고 있어?”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다 싶었는데.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 보니, 리하르트가 괴롭히던 시녀가 아니던가.
“아, 맞습니다! 용사님들께 도움이 되고자 왔습니다.”
“리하르트도 미쳤구나. 민간인들을 데리고 오다니.”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놈이다-
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메리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자…… 아니, 리하르트 도련님의 명령으로 온 게 아닙니다.”
“뭐? 그러면?”
“사랑과 평화를 전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모리츠는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민간인들이 말끝마다 붙이는 저 구호 때문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췩, 사랑은 나에게 주면 안 되오?”
“아하하…… 용사님께는 평화를 드릴게요!”
또 저 여자는 왜 저리 밝은 건지.
마기에 벌벌 떠는 자신이 괜스레 바보처럼 느껴졌다.
“모리츠 도련님. 얼굴에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신경 꺼.”
“췩! 동지! 메리 소저에게 무슨 말버릇이오!”
메리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호르를 믿고 광명 찾으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리하르트가 당부했던 대로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 ◈ ◈
한편.
폴린 성 인근의 영지에선 수많은 시체가 모여들고 있었다.
“백작, 각하…… 출정 준, 비…… 완료…….”
“언데드를…… 처단…….”
쿵-! 쿵-!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은 기사 수백과 하급 언데드 수천이 집결했다.
“우, 리의 왕, 국! 바렌, 을…… 점령한…… 언, 데드……! 모, 두…… 처단하, 라……!”
“그, 어어……!”
폴린 성을 지키던 무가의 일각.
포이르 백작가의 기사들이 검을 치켜세웠다.
그들은 정말 살아 있는 기사처럼 전투를 준비했다.
먹지 않을 터인데 식량을 끌어모았고,
자지 않을 터인데 야영할 도구를 챙겼다.
멈춰 버린 심장에는 바렌 왕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을 품고 있었다.
“바렌, 티스 폐, 하께선…… 죽어, 서도 고, 통 받고 계신, 다……! 그분, 께 평안을……!”
그들에겐 살아 있는 자가 언데드처럼 보였다.
무가연합이 지키는 리오 성은 죽은 자의 요새였고, 바렌 왕국은 악의 요람이었다.
“전, 군…… 출정하, 라……!”
망자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이르 백작을 비롯한 기사들이 선두를 달렸고, 그 뒤를 수천의 언데드가 따랐다.
산자의 땅으로 향하는 죽은 자들.
리오 성에 진짜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리하르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늦을지도 모르겠군.”
요동치는 마기를 느끼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낌새가 느껴지면 곧바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미 나르 평원에 도착한 뒤였다.
어서 사자왕(獅子王)을 찾고 나서 되돌아가는 편이 현명했다.
“야! 대체 어디 있냐!”
그가 답답함을 한껏 담아 소리 질렀다.
이틀 내내 돌아다녀도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는 사자왕.
설마 놈이 영역을 옮겼나- 싶을 때였다.
크어어엉-!
위압감 넘치는 포효가 평원을 울렸다.
동시에 거대한 압박감이 저 멀리서부터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