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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46화 (46/216)

46화. Episode. 16 모리츠라는 혹이 붙었다 (3)

스노우폴의 주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선지자의 본분을 다하겠노라 말했다.

그들의 신앙심이 투철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예상외의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무서울 텐데.’

물론 창칼이 오가는 격전지가 아닌, 아군의 주둔지에서 포교 활동을 하게 할 셈이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마당에 전장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을 리가.

‘메리 이 녀석.’

도대체 그들을 어떻게 휘어잡았길래 그 지경이 된 건지.

응접실에서의 광경을 되새기니 광기의 집단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과연 이걸 좋아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상태창.”

[호르] [최하급 신격]

▶ [교단 레벨 - 1]

□ 신도 수 - 33 □ 신앙 - 40,192

□ 권능 [신도 임명] [기도 받기]

□ 해금 된 직위 - [최하급 전도사] [최하급 성기사] [최하급 사제]

스노우폴의 주민들이 바텐베르크에 머문 지 일주일. 21명의 신자까지 모두 신도가 된 덕에 하루에 모이는 신앙은 3,000 이상이 됐다.

신도 하나당 최대치가 100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최고 수준의 신앙심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야 밥값 부담이 좀 덜하네.”

그동안은 아델이 신앙을 하루에 일천씩 먹어 대니 도통 쌓이질 않았다.

그 외에 홀리 오러 특기의 숙련도도 올려야 했고.

똑똑-

“성…… 아니 도련님. 아침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내 방문 너머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왜 네가 시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음식을 세팅하고 있는 메리를 바라보았다.

“어머. 제가 도련님의 전속 시녀잖아요.”

“그냥 쉬고 있으라니까.”

“에헤헤…… 습관이라 그런지, 일하는 게 더 편하네요.”

참 징하다.

메리는 바텐가에 복귀한 다음 날부터 시녀복을 주워 입었다.

도련님의 밥은 제가 챙겨 주고 싶어요! 라고 했던가.

“음식이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밝은 얼굴로 날 돌아보는 그녀를 보았다.

같은 장소, 같은 상황.

망나니 리하르트의 기억 속에선 메리는 항상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새삼 처음 빙의했을 때와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잘 먹을게.”

나는 식탁에 앉아 음식을 깨작거렸다.

요새는 통 입맛이 없다.

“드디어 오늘이네요. 저희가 출발하는 게.”

오늘, 바텐가를 떠나 언데드와 엎치락뒤치락해야 하는 전장으로 간다. 입맛이 없는 건 긴장감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긴장감 사이사이로 묘한 흥분과 설렘이 자리 잡았다.

“정말 어머니를 뵙고 가지 않아도 되겠어?”

“음…….”

내 물음에 메리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포교 회의를 하느라 시간이 나질 않아서……. 이번 선지자의 임무를 마치고 뵈러 가야 할 것 같아요.”

“……포교 회의는 또 뭐야?”

소시지를 썰던 나이프가 뚝 하고 멈췄다.

나는 나이프를 내려놓곤 메리를 바라보았다.

“맨날 모여서 쑥덕거리더니, 회의 같은 걸 하고 있었던 거야?”

“네!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 포교해야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가 하는 말만 들으면 정말 기특한 이들이지만, 왜인지 모를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주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다.

“거기 가서는 저번처럼 깃발 흔들어 대지 마. 솔직히 말해서 정상인처럼은 안 보여.”

“아…… 아하하! 안 그래도 회의에서도 얌전히 포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왔어요.”

“뭐, 정말?”

의외였다. 전장에 가자마자 ‘믿을지어다!’하고 소리칠 줄 알았더니만.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면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니까요. 그래서 그냥 서서히 세뇌를 건다는 느낌으로…….”

메리가 언뜻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과하지 않게만 해.”

“저만 믿으세요, 도련님!”

◈          ◈          ◈

리하르트는 얼음 왕관을 머리 위에 얹었다.

두툼한 털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아이스 크레센도는 허리춤에, 애검인 드래곤투스는 등에 비껴 맸다.

“…….”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와 아론의 앞에는 기드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금방 일어날 줄 알았더니, 출전의 날이 되었음에도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다.

“아론, 괜찮냐?”

“예.”

그런 것치곤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데-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켜 낸 리하르트가 기드를 응시했다.

그렇게 가만히 노인을 보던 그는 몸을 돌렸다.

“가자.”

제3기사단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리하르트와 아론이 방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도…… 련님? 아론?”

등 뒤에서 끊어질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분명 리하르트와 아론이 기억하는 노인의 인자한 목소리였다.

“기드!”

“조부님!”

두 사내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침상에 누워 있는 기드가 가만히 눈을 끔벅였다.

손자와 손자 같은 도련님의 말소리가 정신없이 귓가를 때렸다.

다시는 못 들으리라 생각한 음성일진대.

“……제가,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담금질에 들어선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길어.”

리하르트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기드에게 말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거하게 타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왜 멋대로 희생을 자처한 거냐, 네 피 묻은 드래곤 하트를 보고 내가 좋아할 것 같았냐…….

수많은 말이 입안에서 머물기만 하다가 사라졌다.

“떠나기 전에 깨어나서 다행이네.”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건 다행이라는 말뿐이었다.

“떠난다니 그게 무슨……?”

“지금 아랫동네에서 언데드와 전쟁이 일어났거든. 이제 우린 가 봐야 해.”

“조부님, 부디 몸조리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없음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은데,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당장 떠날 듯한 두 사내에 기드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에겐 모든 게 꿈같았다.

죽기 직전에 꾸는, 환상 같은 것처럼.

“전, 전장에 가신다니요! 그게 무슨!”

다급히 침상에서 일어난 기드가 휘청거렸다.

육체는 완벽히 회복되었으나, 담금질의 후유증은 정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지금 그는 걷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누워 있어. 넘어질 뻔했잖아.”

노인은 제 몸을 단단히 받쳐 준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도련님이 이렇게 키가 크셨던가.

이제야 그의 모습이 이곳저곳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혹 제가 몇 년이나 누워 있었던 겁니까? 어, 어찌 이리 늠름하게 성장하셨는지요.”

“몇 년은 무슨, 네가 잠든 건 두 달 정도 됐나.”

“도련님은 드래곤 하트를 섭취하시고 환골탈태를 이루셨습니다.”

아론의 설명에 기드가 눈을 크게 떴다.

그간 리하르트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를 노인에겐 뜬금없는 소리였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네.”

“이 무지한 늙은이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면서 이야기하지. 일어난 김에 배웅이나 해 줘. 한때 네가 단장으로 있었던 제3기사단도 함께 출정하니까.”

리하르트는 기드를 부축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최대한 간략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마나 불감증은 완화되고 있었다는 것부터.

오러를 다루게 된 아론이 자신의 직속 기사가 되었고.

또 기드를 비롯한 제3기사단과 함께 용을 사냥했다는 것까지.

“……허어!”

모두가 미워하고 기피했던 리하르트가 이제는 어엿한 바텐베르크가 되었다니.

기드에겐 하나같이 믿기 힘든 얘기뿐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다름 아닌 제 도련님이 하는 말이었으니.

“리하르트 도련님은 정말 굉장하신 분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도련님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리하르트에게 별 감정이랄 게 없던 손자마저도, 그의 직속 기사로서 자부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정문에 도착했다.

“도련님! 이제야 오셨습…… 헉!”

이미 한참 전에 떠날 채비를 갖춘 제3기사단이 이쪽을 돌아보곤 숨을 들이켰다.

“기드 경! 깨어나신 겁니까!”

리하르트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온 기드.

그를 본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에워쌌다.

전 기사단장이 깨어났음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들이었다.

“폴크, 잭…… 제3기사단…… 전원 무사한가. 내 아집 때문에 고생이 많았을 터야. 미안하네.”

“용 사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리하르트 도련님의 활약 덕에 모두 무사합니다!”

“기드 경은 괜찮으십니까?”

염려가 담긴 물음에 기드는 그저 푸근하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기사들은 안심이 되었다.

“곧바로 전장으로 간다고 들었네. 어디의 어떤 전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쁜 이들을 붙잡고 있을 순 없지.”

“이렇게나마 깨어나신 걸 보니 저희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푹 쉬고 계십시오! 저희 모두 무사히 돌아올 테니 말입니다.”

훈훈한 장면을 지켜보던 리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시간 없어! 어서 채비를 갖춰라!”

“충!”

리하르트가 말에 올라타고, 스노우폴의 주민들은 두 대의 마차에 나눠 탑승했다. 제3기사단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론, 도련님을 잘 부탁한다.”

“맡겨 주십시오.”

툭- 노인과 손자가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 안에 많은 것이 오갔다.

“도련님.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너도 잘 먹고, 잘 쉬고. 다음에 볼 땐 이런 모습이면 안 돼. 명령이야.”

이제 인사는 할 만큼 했다.

곧 제3기사단과 리하르트가 말을 몰고 정문을 벗어났다.

희뿌연 흙먼지가 일어 눈앞을 가리는데도, 기드는 벽을 짚고 선 채로 도련님을 바라보았다.

“변하셨구나. 정말 변하신 게야.”

기사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도련님을 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리하르트를 향한 제3기사단의 시선엔 존경이 담겨 있었고, 리하르트 또한 그들에게 신뢰와 존중을 내비쳤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기드가 떠나가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모습을 보여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기드 경.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자네는…… 제2기사단의 중급 기사였던가. 도련님을 배웅하러 온 겐가?”

“옙! 하만이라고 합니다.”

그 청년만이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런! 벌써 떠나신 건가!”

“어찌 출정식도 없이!”

어느새 정문을 가득 채운 기사들이 말없이 떠나 버린 리하르트를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무엇이 그리도 안타까운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이도 있었다.

“하하, 리하르트 도련님께서 인기가 대단하시구나.”

“차기 후계자로 지크 도련님과 함께 거론되기 시작하시는 분이지요.”

하만의 말에 기드는 세상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른 회복해야겠군. 우리 도련님은 내가 옆에서 거들어 드려야만 안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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