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Episode. 16 모리츠라는 혹이 붙었다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였다.
모리츠가 날 짝사랑한다거나 하는 역겨운 상황 같은 게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 신명 나게 두들겨 팬 이후에야 오해가 풀렸다는 것 정도일까.
“설명해. 왜 날 미행했는지, 왜 너까지 전장에 가겠다는 건지.”
“으윽…….”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던 모리츠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시선이 언제나 나를 향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빛…….”
“뭐?”
“너한테서 빛이 나. 그걸 보고 있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야.”
나는 슬쩍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놈의 말대로 내 몸에서는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피부가 윤기 있다는 게 아니라, 성골(聖骨)의 효과로 육신이 신성을 품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날 따라다녔다고?”
“흥! 그건 눈치채지 못한 네 잘못이지.”
“이것 봐라?”
나자빠진 채로 적반하장을 실천하는 놈에게 발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취익! 그, 그만하시오. 이쯤하면 되지 않았소!”
“넌 꺼져라. 이 배신자 녀석! 사나이끼리의 비밀이라더니!”
“동포여……!”
나를 말리던 휴거가 모리츠의 원망 어린 눈초리에 시무룩해져서 물러났다.
어이가 없는 상황에 한숨을 참고 있는데, 모리츠가 내게 말했다.
“아무튼 나도 가주께 허가를 받았다. 너와 함께 전장에 가기로.”
“그곳은 여기보다 훨씬 더 마기가 짙을 거야. 가서 오줌이나 지릴 셈이면 따라오지 마.”
고작 대륙에 흩뿌려진 마기에도 겁을 집어먹은 놈이 모리츠다.
그런 주제에 언데드가 판을 칠 전장에서 검을 휘두를 수나 있을까.
“나도 바텐베르크의 피를 이었어. 얕보지 마!”
“얕보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 보아하니 그간 제대로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바텐가의 가신들이 그러하듯, 놈의 눈가는 퀭했다.
결국 모리츠의 정신력은 여타 기사들보다 낮은, 일반인 수준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설마 전장에서도 내 뒤에만 졸졸 붙어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건 사양이다. 어째서 가주가 허락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못 미더운 혹을 달고 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집에 있어라.”
“리하르트!”
쾅, 모리츠가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곤 한참 분을 삭이더니 입을 열었다.
“네놈에게 무시당하는 건 정말 짜증이 나! 기사들이 비웃는 것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날 바라보는 놈은 화가 났다기보단, 그저 자존심에 상처 입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분한 건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나는 달라져야 해!”
그를 절벽까지 몰아넣은 것은 심마였다.
심약한 이가 마왕이라는 거대한 어둠을 마주한 대가.
모리츠는 그 심마를 벗기 위해 전장을 진창 구르겠노라 말했다.
“난 네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통보를 하는 중이다!”
“그래. 그럼.”
“……뭐?”
“가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내가 쉽게 태도를 달리해서일까.
모리츠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건 좋은 기회잖아.’
놈은 내 빛, 그러니까 신성에 의지하는 중이다.
바텐베르크의 형제 중 하나를 신도로 만들 기회는 흔치 않았다.
“단, 한 번만 더 내 뒤를 밟거나,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기면 가차 없이 버릴 거야.”
“아, 알겠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형제를 보며 픽 웃었다.
설마 그 포악한 모리츠가 순한 양이 될 줄이야.
◈ ◈ ◈
『한 자루의 검성(劍星) - 발동.』
콰가각-!
허공에 빛의 검이 나타났다. 내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으며, 손으로 직접 쥐고 휘두를 수도 있는 검의 별.
“와, 와아…….”
개인 연무장에서 한창 수련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감탄사가 들려왔다.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리츠가 낸 소리였다.
“수련 안 할 거면 가라.”
한 번 만 더 내 뒤를 밟으면 버릴 거라 엄포를 놓은 지 일주일.
모리츠는 아예 대놓고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내 개인 연무장에도 발을 들이미는데, 쫓아낼까 하다가 그냥 무시해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 녀석을 동료로 받아들인 건 결코 아니었다.
‘쟤가 개과천선하면 또 모를까.’
놈이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것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성정 때문일 테니까.
그렇게 묘하게 거슬리는 시선을 꾹 참으며 수련에 집중할 때였다.
기사 하나가 연무장을 찾아왔다.
“리하르트 도련님. 명을 받았던 기사들이 스노우폴의 주민과 함께 복귀하였습니다!”
“오!”
신자와 신도들이 드디어 도착했단다.
“주민들은 어디 있어?”
“응접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나는 아론과 모리츠를 연무장에 내버려 둔 채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몸이 땀에 푹 젖어 있는 터라 찝찝하긴 했지만, 할 일부터 끝내야 했다.
‘과연 몇이나 신도가 될까.’
스노우폴의 주민은 총 31명.
그중 10명이 신도였고, 나머지가 신자였다.
그간 꾸준히 기도했던 신자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모두 신도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리하르트 도련님을 뵙습니다.”
응접실 앞에 도착하자, 그곳에 서 있던 기사 다섯 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수고 많았다. 근데 왜 여기에 서 있어?”
“리하르트 도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스노우폴에 갔다 오는 길에 마기를 많이 쐰 모양이다.
나를 보며 힐링하겠다는 심산인 듯, 기사들의 시선이 뜨거웠다.
툭, 툭-
그게 부담스러워 각각 50의 신앙을 담아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헉!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그럼, 이제 가 봐.”
“충!”
그제야 불청객들이 사라졌다. 나는 응접실에 들어가려 문 앞에 다가갔다.
ㅑ
한데 문 너머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슬쩍 귀를 가져다 대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 악이 도래하였고, 어둠의 씨앗이 곳곳에 뿌리를 내렸나니!”
“아아! 절망이로다!”
연설이라도 하듯 잔뜩 흥분한 메리의 음성과 단체로 탄식하는 주민들.
소음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만 가슴속 믿음을 품은 자들은 걱정할 것 없음이라!”
“우오오!”
“우리는 외치리라. 호르시여! 성자시여!”
“호르시여! 성자시여!”
맨정신으론 듣기 힘들었다.
이건 무슨 사이비도 아니고.
벌컥-!
“믿을지어다! 믿을지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바텐베르크의 깃을 쥐고 흔드는 메리와 열렬히 호응하는 주민들.
그야말로 광란의 현장이었다.
“어엇…… 서, 성자님?”
한창 열을 내던 그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안녕.”
내 모습이 많이 변했기 때문일까.
응접실에 정적이 흘렀다.
하나. 둘. 셋.
“으헝헝! 성자니임!”
정확히 3초 뒤. 독립 투사처럼 연설을 해 대던 메리가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에 안겨 들었고, 주민들이 울부짖으며 연신 호르를 외쳐 댔다.
‘아…… 정신 사나워.’
이놈들을 괜히 불렀나 싶다.
◈ ◈ ◈
“우리의 성자! 우리의 빛이시여!”
“역시 성자님이십니다! 온몸에서 후광이……!”
“아, 좀! 조용히 좀 해 보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주민들이 내가 뿜어내는 빛을 보고 난데없이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던 것이다.
“일단 메리,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흐윽!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거지요.”
메리는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떨었지만, 그녀의 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마을 주민 전원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올린 건 메리가 열심히 포교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중에 절반은 기약 없는 기도에 나가떨어졌을 터.
“흐음.”
나는 주민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멀쩡한 상태는 아니야.’
홀쭉해진 얼굴과 퀭한 눈.
여타 일반인들과 별 차이가 없는 상태였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주민들은 두려움이 커질수록 호르교에 빠져들었다는 것.
그것도 거의 의존에 가까운 수준으로 말이다.
“그간 너희의 기도가 신께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고맙다.”
“오오! 정말입니까!”
“쉿. 할 게 많아. 조용히 들어.”
다시금 소란스러워지려는 좌중을 제지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신께서 너희들의 믿음에 감격해 보답하려 하신다. 신도부터 일렬로 서 봐.”
상은 별것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조약돌을 하나씩 쥐여 주는 것뿐이니까.
“자. 성석(聖石)이란 거야.”
“서, 성석(聖石)!”
조약돌을 받아 든 마을 촌장 로먼이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이름만 거창할 뿐, 일반 조약돌에 약간의 신앙을 불어넣어 만든 돌멩이었다.
“항상 지니고 있어라. 신의 가호가 함께할지니.”
“죽어서도 함께 묻히겠습니다!”
하지만 순진한 이들은 눈물까지 흘려 대며 감격했다. 약을 파는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신도는 점점 늘어날 텐데 보상을 후하게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 상은 전부 받았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엔 신도 의식을 거행할 차례였다.
“신자들이여! 이번에야말로 신도가 될 준비가 되었나?”
“예! 저희 또한 신도들 못지않게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21명의 신자들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과연 그 말이 허풍이 아니었던 걸까.
『마리아가 신도가 되었습니다.』
『진이 신도가 되었습니다.』
『프리아가 신도가…….』
“오! 모두 축하한다.”
21명 전원 신도가 되었다.
하기야 그들의 독실한 태도를 보면 안 되는 게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호르시여! 성자시여!”
“그만. 아직도 할 게 남았어.”
이제 슬슬 본론에 들어갈 차례였다.
나는 모두를 자리에 앉히고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불러들인 이유는 도움이 필요해서야.”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지금 수많은 기사가 어둠과 대적하고 있어. 역겨운 마기가 넘실거리고, 죽었던 동료가 끔찍한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전장에서 말이야.”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곳.
또한, 나와 신도들이 가장 밝게 빛날 수 있는 곳.
우리가 갈 전장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신께선 일어날 때를 기다리셨다. 너희 선지자와 함께.”
“그, 그 말씀은……?”
“전장에 가서 신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자.”
“…….”
신도들은 말이 없었다. 저마다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역시 무보수로 부려 먹긴 힘드려나.
뭐라도 구미가 당길 만한 보상을 내걸어야 할 것 같았다.
“나와 같이 전장에 가는 선지자에겐 큰 답례를 해 줄…….”
“정말입니까?”
그러기가 무섭게 메리가 내게 물어 왔다. 눈을 번뜩이는 것이 보상이 굉장히 탐나는 모양이었다.
“그래. 성석을 무려 열 개씩…….”
“그, 그게 아니라! 정말 신께서 저희를 선지자라고 여겨 주시는 겁니까? 정말 저희와 함께 일어날 때를 기다리셨습니까?”
“그럼, 당연하지. 그건 왜?”
메리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을 때였다.
“와아아!”
돌연 신도들이 소리를 질러 댔다. 이미 펑펑 울어 부은 눈에선 또다시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우는 거야?”
나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었다.
“신의 계시가 내렸나니! 선지자들은 전장에 우뚝 섰음이라!”
“우뚝 섰음이라!”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줄지어다! 우리는 선지자의 본분을 다할지어다!”
“다할지어다!”
메리가 바텐베르크의 깃발을 미친 듯 휘저으며 소리쳤다.
목에 핏대를 세운 그 모습은 내가 알던 메리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지낸 거야.”
나는 이마를 짚었다.
눈앞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건 분명히 내 신도들인데, 어째서 광신도 집단처럼 보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