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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43화 (43/216)

43화. Episode. 15 환골탈태 (3)

“하.”

루드비히는 헛웃음과 함께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막내아들이 변해도 너무 변해 있었다.

외적으로나 느껴지는 기백으로나,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이런 변화를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기연은 단 하나.

“설마, 환골탈태를 한 게냐.”

“예. 드래곤 하트 덕에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가주의 눈이 한차례 흔들렸다.

“드래곤 하트를 날것으로 먹기라도 했다는 말이더냐.”

“그리했습니다.”

리하르트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듣도록 하지.”

가주는 리하르트에게서 시선을 떼고 제3기사단의 노고를 다시 한번 치하했다.

제3기사단은 가주의 격려에 한껏 감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3기사단장은 피해를 보고하라.”

명을 받은 폴크가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대 드래곤용 발리스타 5기가 파괴되었습니다. 그 외의 별다른 피해는 없습니다.”

“전사자는 얼마나 되느냐.”

가주는 기드를 비롯한 전사자들의 장례식을 치를 셈이었다.

바텐베르크의 검이 되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그런데 갑자기 폴크가 고개를 저었다.

“전사자는 없습니다.”

“……뭐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어리다곤 해도 용을 상대하는 데 사망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애당초 기드는 담금질에 들어서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게 리하르트 도련님 덕분입니다.”

리하르트가 기드를 살렸단다.

또 그가 미쳐 버린 용으로부터 기사단을 구해 냈으며, 온갖 활약을 해냈다고.

폴크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          ◈          ◈

바텐가에 복귀하고 3일.

나는 일약 대스타가 되어 버렸다.

그래.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말이 가장 어울렸다.

“아, 안녕하십니까, 리하르트 도련님!”

“그래. 수고가 많아.”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기사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다 들킨 모양새나 다름없었다.

징그러운 사내놈한테 이런 관심을 받는 건 좀 그런데.

이게 다 폴크가 모두 앞에서 내 얼굴에 금칠을 해 댄 탓이다.

제 집사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한달음에 달려가 구해 낸 도련님.

기사들이 마왕의 마기 앞에 몸을 떨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용맹을 떨친 진정한 바텐베르크의 핏줄.

미쳐 버린 용의 머리통에 검을 꽂은 용살자요, 그 심장을 생으로 먹고 완벽히 소화한 천재.

더불어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

내 뒤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그러했다.

바텐베르크의 기사들은 내가 몇 달 전만 해도 망나니였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듯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가 영 부담스러울 때였다.

“리하르트!”

“모리츠?”

휴거를 살짝 닮은 내 형제, 모리츠 바텐베르크가 앞을 막아섰다.

“왜 불렀어? 가주님의 호출을 받은 참인데, 용건만 말해.”

녀석과의 사이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저번의 대련에서 아주 혼쭐을 내 준 이후론 나를 피하기 급급했던 모리츠였다.

“그게…… 있잖아.”

그런 놈이 지금 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이건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풋풋한 소년 같은 모습이 아닌가.

“미친.”

“가, 갑자기 왜?”

기사들의 시선은 참을 수 있어도 놈의 이런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바쁘니까, 간다.”

“자, 잠깐……!”

신종 괴롭힘이라면 그 잔악함에 박수가 나올 지경이다.

나는 놈이 붙잡을세라 냅다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제3기사단이 지내는 숙소였다.

“오, 도련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잭, 휴거 좀 불러 줘.”

바텐가에 복귀한 당일 마주친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던 루드비히.

그가 조금 전 나를 집무실로 호출했다.

또 언제 볼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휴거를 인사시킬 생각이었다.

“취익! 드디어 이 로브를 벗어도 된단 말이오?”

숙소에 반강제로 감금되어 있던 휴거가 신이 나 외쳤다.

하기야 오크에겐 로브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닐 테지.

“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알았소. 저번에 보니 까딱 잘못하면 썰리겠더군! 췩!”

오크 특유의 감이라고 할까.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는 데 능한 휴거는 루드비히가 위험한 남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여기서 대기해.”

나는 가주의 집무실 앞에 휴거를 세워 놓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거라.”

나직이 들려오는 음성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주를 뵙습니다.”

대체 무슨 서류가 그리도 많은지, 산을 쌓아 놓은 가주의 책상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서류를 치우고 펜에 마개를 꽂은 가주가 물었다.

“기드는 어떻지?”

“아직 정신을 차리진 못했습니다.”

“그렇군.”

툭, 툭-

가주가 책상을 두드렸다.

“담금질은 육체를 붕괴시킨다. 본래의 격을 억지로 넘어서면 그 끝은 결국 파멸이지.”

“알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담금질의 후유증을 막은 게냐. 마경에서 무얼 발견했지?”

가주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후유증을 막는 방법이었다.

담금질을 아무런 페널티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지나치게 사기적이니까.

그렇게 되면 마법가는 무가에게 쪽도 못 쓸 터다.

“…….”

나는 그의 물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굳이 말해 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세계수의 열매는 일 년에 하나 맺을 수 있었고, 그건 나의 밑천이다.

눈앞의 속 모를 남자에게 그것을 털어놓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드래곤 하트도 비슷한 방법으로 섭취했을 터.”

과연.

예리한 통찰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쯧, 비밀이 많구나.”

“죄송합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마. 저 하늘이 깨졌을 때, 너는 무엇을 느꼈느냐.”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무엇을 느꼈냐니.

‘갑자기 이런 건 왜 묻는 거지?’

나는 루드비히의 심중을 읽으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곧, 바텐가에 도착했을 때 본 기사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여타 사람들과 다름없이 심마에 빠진 얼굴이었고, 그건 모리츠 바텐베르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상컨대 가주는 겁먹은 기사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역겹고 불쾌했습니다. 균열 사이로 드러난 괴물의 눈알을 찔러 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호오. 마기가 두렵진 않았느냐.”

“그 자리에서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면, 저희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이건 하나의 시험이었다.

이놈이 겉만 번드르르해져 온 것인지, 아니면 싹수부터 남달랐던 게 드디어 개화한 것인지.

다행히 정답이었던 모양인지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작 마기에 겁을 먹었다면 각인을 개방시키지 못했을 터.”

“맞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무인은 시련 앞에 성장하는 법이지.”

그의 입가에 흡족함이 걸렸다.

몹시 놀라웠다. 이 인간이 저런 웃음도 지을 줄 알다니.

“너는 모르겠지만 발락의 검술은 실로 대단하다. 내게 견줄 자는 오직 그뿐이었지. 더욱 열심히 정진하거라.”

한층 너그러워진 음성이 나를 향했다.

기특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어쩐지 귓가로 들린 기분이었다.

“이만 가 보거라.”

가주가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내 용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주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나는 그의 앞에 놓인 서류를 흘긋 보았다.

『언데드 군단, 스무 번째 전투 보고서』

제1기사단과 여러 무가들이 한창 씨름하고 있을 전장.

내가 가장 빨리 클 수 있으며, 가장 필요한 곳.

“제3기사단과 함께 전장에 참여하겠습니다.”

그곳에 내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어떤 전장인지 알고는 있느냐.”

“대륙에 암운을 몰고 온 리치들과의 전장입니다.”

“……이상 사태 후, 놈들의 마기가 더욱 치솟았다. 제1기사단과 무가 연합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지.”

그렇겠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는 머릿속에 그려졌다.

제1기사단이 놈들의 근거지를 발견했고, 생각보다 심각한 규모에 무가 연합이 급히 결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루어진 대치 상태.

마왕의 마기가 진하게 흩뿌려진 지금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을 터.

호기를 담아 말했다.

“제가 가서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

루드비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          ◈

나는 집무실을 나섰다.

그 뒤에는 휴거가 꼭 붙어 있었다.

“으으, 저 귀신 같은 양반! 내가 오크란 걸 진작 눈치채고 있었소. 취익!”

“허가받았으니 됐잖아.”

이야기를 끝내고 난 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휴거를 가주에게 소개했다.

그런데 가주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단다.

오크에겐 특유의 기세가 있다나.

처음부터 문제 삼지 않았던 건 그 나름대로의 허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피 튀기는 전장에 갈 생각을 하니 흥분되지 않소?”

“너만 그래.”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장에 참여하는 것 또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제3기사단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췩! 대단한 인간 전사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간다 했으니, 무어 문제가 되겠소?”

맞는 말이었다.

이제 와서 그들이 내뺀다고 하면 그것대로 실망이다. 나는 휴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3기사단 숙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론이 태평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아론? 네가 왜 여기 있어?”

“단련을 마치고 쉬고 있던 참입니다.”

본래 소속이 제3기사단이었다더니, 아론은 이곳에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마침 잘됐네. 다들 모여 봐!”

내 외침에 기사들이 빠릿빠릿하게 모여들었다.

“제3기사단, 소집 완료하였습니다!”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다가 왔는지 입가에 침이 묻은 놈도 있었고, 수련을 하다 와서 땀범벅이 된 기사도 있었다.

저마다 행색은 달랐지만 날 향한 눈빛은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식들. 눈에서 꿀 떨어지겠네.

“아마 진작 얘기를 들었을 거야. 언데드 군단에 대해서.”

내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용이랑 드잡이질하는 사이 큰일이 있었다더군요.”

“리치 놈들이 그렇게 말썽이라던데.”

짝-!

난 손뼉을 쳐 웅성거리는 입들을 막았다.

“가주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았다. 출전은 20일 뒤, 서둘러 준비해야 할 거다.”

“…….”

왜일까.

장내의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눈치 없는 휴거만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기뻐했다.

“우우!”

기사들은 침묵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야유까지 해 댔다.

“이것들이! 기사가 돼서 전장이 그렇게 싫냐!”

기사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려는 찰나, 그들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전장이 싫은 건 아닙니다!”

“동료한테 전장에 대해 듣자마자, 도련님이 나서실 거란 것은 예상했습니다.”

“왠지 그럴 것 같았거든요.”

“그야 도련님은 등불이시니까!”

그럼 반응들이 왜 이런 거야.

멀뚱멀뚱 서 있는 내게 아론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저, 도련님? 기사들이 기대한 건 연회입니다.”

“뭐?”

“제가 연회에 관한 이야기를 슬쩍 흘리는 바람에…… 아무래도 기사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입에서 연회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애먼 출전 명령이 나와서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드래곤 고기도 못 먹고!”

“연회도 못하고!”

“아이고, 부질없다!”

기사들이 땅에 드러누울 기세로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 광경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무래도 출전 준비에 밀려 연회가 취소되었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멍청이들아, 내일 연회 열 거니까 징징대지 마.”

“엇……?”

“정말입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정도 당근도 없이 부려 먹으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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