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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42화 (42/216)

42화. Episode. 15 환골탈태 (2)

어디선가 광룡의 포효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용의 마나는 제 주인을 닮아 광기를 양껏 품고 있었고, 리하르트의 몸속을 난폭하게 유린했다.

우득.

온몸의 뼈가 뒤틀린다.

근육이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이따금씩은 쾅, 하고 몸속에서 벼락이 쳤다.

‘당황하지 말자.’

이깟 고난쯤이야.

기세 좋게 심장을 씹었을 때부터 예상하지 않았던가.

더불어 열매의 힘이 광기를 중화시키고 있으니 버틸 만했다.

다만, 정말 버티기만 해선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마나 제어에 실패한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그것만큼 허무한 것이 또 있을까.

이를 악문 리하르트는 신앙을 운용했다.

몸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마나를 신앙으로 엷게 감싸 안았다.

그러곤 이 포악하고 거대한 기운을 아주 천천히, 전신에 고루 순환시켰다.

콰아아아-

마나 루트는 수로가 되었고, 방대한 마나는 그곳을 내달리는 물이 되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순환이 거듭될 때마다 마나가 조금씩 마나 하트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우…….”

리하르트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에 새까만 연기가 섞여 나왔다.

신앙과 열매 부스러기로도 미처 중화시키지 못한 마지막 광기였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강대한 마나가 심장에 자리 잡습니다.』

『강골(强骨)이 성골(聖骨)로 변화합니다.』

리하르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긴 속눈썹 사이로 새하얀 광망이 일었다.

◈          ◈          ◈

나는 몸을 내려다보았다.

힘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팔다리가 이렇게 길었나?”

쭉 뻗은 팔의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매끈한 피부에 갑옷 같은 근육이 들어찬 게 보였다.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니, 정말 쇳덩어리를 치는 것 같았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 환골탈태까지 할 줄이야.

꽉 말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평소 신앙을 운용한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뿐인가, 마나 하트에 자리 잡은 신성력은 태산같이 불어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오러는 물론이고, 검성을 다루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성골은…….”

뼈가 변했다는 뜻인 것 같은데, 나도 처음 접해 보는 체질이었다.

게임 속 신으로만 활동해서 그런가?

약골에서 강골로 변화했던 것처럼 근골(武骨)의 단계 중 하나일 거라 짐작된다.

어쩌면 뼈 자체에 신앙이 깃든 것일 수도 있고.

“그나저나 9일이나 지났구나.”

시야 한편에서 반짝이는 기도 알림이 아홉 번이나 떠 있었다.

슬쩍 창밖을 내다보자, 제3기사단은 야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끼익-

나는 조심스레 마차 문을 열고 나섰다.

“도련님!”

곧바로 귀 밝은 아론에게 딱 들키고 말았다.

이런.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리, 리하르트 도련님?”

냅다 달려온 아론이 하려던 잔소리를 멈추고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두 손으로 눈을 힘껏 비볐다.

“……등, 등불!”

날 멍하니 바라보던 기사 하나가 외쳤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저마다 입을 열었다.

“오오! 등불이다!”

등불?

지금 나는 신성력이나 신앙을 운용하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야! 진짜 인간 등불이네?”

내 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어둠을 밝혔다.

기사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후광을 둘렀을 때와 똑같았다.

이게 성골(聖骨)의 효과인가?

“……드래곤 하트는 어디 갔습니까?”

어느새 내 마차에 들어갔었는지, 아론이 드래곤 하트를 보관했던 빈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잘생긴 얼굴에 설마 하는 기색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 설마가 맞아.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환골탈태도 해 버렸지 뭐야.”

아닌 게 아니라, 키가 정말 훌쩍 컸다.

장신인 아론과 비교해도 얼추 눈높이가 맞을 정도였다.

“피부도 엄청 좋아진 것 같은…….”

“무모함에도 정도가 있어야지요! 어떻게 용의 심장을 날것으로 드실 생각을 하십니까!”

아론이 빽 내 말을 끊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아론의 잔소리를 피해 모닥불에 빙 둘러앉은 기사들 사이로 달아났다.

“지, 진짜 환골탈태를 하셨습니까?”

“그래.”

“허어……!”

기사들이 숨을 들이키며 내 전신을 훑더니, 이내 경악을 토해 냈다.

“드래곤 하트를 완전히 소화하시다니!”

“앳된 태를 한 번에 벗어던지셨군요. 이젠 늠름한 성인처럼 보이십니다.”

“그야말로 기백 자체가 달라지셨습니다!”

그들이 활짝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다. 나도 마음이 넉넉해져 설핏 웃음이 나왔다.

“하아…… 잘못되기라도 하면 대체 어쩌실 생각이었습니까?”

“인마, 너는 어떻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없어.”

뒤따라와서 잔소리를 해 대는 아론이 산통을 깼다. 그를 흘긋 째려보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짐승의 뒷다리 하나를 집었다.

며칠 내내 굶었기 때문에 허기가 상당했다.

허겁지겁 고기의 살점을 한입 물어뜯었을 때였다.

휴거가 퍽 충격받은 얼굴을 하곤 물어 왔다.

“취익! 저 마차는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 있소? 뭐 이렇게 저 혼자 길쭉길쭉해졌소?”

“넌 왜 당연하단 듯 따라와서 헛소리를 하냐.”

저 돼지는 환골탈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기색이었다.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 신체를 훨씬 더 강하고 단단하게 재구성하는 거야.”

“허, 그런 재주가 있었단 말이오! 역시 대단한 인간 전사는 대단하구려!”

“그보다 넌 어떻게 할 셈이야? 아직 확답을 못 들었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귀환길에 같이 올라탄 휴거.

놈은 아직 내 동료가 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대답을 들어야지.

물론, 그가 무어라 할지는 뻔할 뻔 자였다.

“거,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당연히 동료가 되겠단 거 아니오?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인 줄 알았거늘, 췩!”

“얼마나 봤다고 눈빛 타령이야? 뭐, 앞으로 잘 부탁해.”

“잘 부탁하오!”

퍽!

건배 대신이라고 할까.

서로 들고 있던 짐승 뒷다리와 앞다리를 부딪쳤다.

“일단 우리 집에 들어설 땐 로브라도 뒤집어쓰고 있어라.”

아무래도 휴거는 오크다 보니 환대받을 순 없을 터.

나와 폴크가 가주에게 잘 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디쯤이야?”

나는 배불리 식사를 마친 후, 그간 있었던 일을 보고받았다.

최단거리로 쉬지 않고 달린 마차는 어느새 바텐베르크가 코앞이라고 한다.

내일 중으로 도착하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아델과 기드 경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론의 말에 흘긋 마차를 바라보았다.

“곧 일어나겠지.”

그저 아무런 탈 없이 푹 쉬다가 깨어나기를 바랐다.

◈          ◈          ◈

루드비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콰직-

그가 짚고 있던 집무실의 창틀이 우그러졌다.

“쯧.”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제1기사단을 비롯한 바렌 왕국의 무가(武家)연합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리치도 그렇고, 저 하늘을 찢고 나타났던 괴물도 그렇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둠이 맥동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루드비히의 심기를 불편케 만들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아래를 향했다.

바텐가의 정원에선 가신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낯빛은 결코 좋지 못했다.

‘저 기운이 심신을 갉아먹고 있군.’

이상 사태 이후 가신들은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밤마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개중에는 거품을 무는 이까지 나타났다.

가신에 비하면 기사들은 양호한 편이었지만, 그들 또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은 매한가지였다.

겁먹은 무인만큼 초라한 것이 어디 있던가.

우중충한 분위기의 집안을 내려다보던 루드비히가 미간을 찌푸렸다.

똑똑-

기사 하나가 집무실을 찾아왔다.

“리하르트 도련님이 제3기사단과 함께 복귀 중이십니다!”

“……어떻게 살아 있긴 한가 보군.”

이 시국에 대륙을 싸돌아다닌 게 바로 리하르트였다.

그것도 마경, 용 토벌 등 위험한 곳만 골라서 말이다.

어디선가 객사하지나 않았을까 했더니 살아서 돌아오고 있단다.

루드비히는 집무실을 나섰다.

물론 제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친히 발걸음을 옮기는 건 아니었다.

큰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기사들을 가주가 나서서 환대해 주는 것이 바텐베르크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하나 루드비히는 자신의 걸음이 유난히 다급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보고에 따르면 제3기사단이 드래곤 토벌에 성공했답니다.”

“그런가.”

그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하필이면 토벌 예정일에 악재가 발생했기에 우려가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투 중에 혼란에 빠지는 건 죽음과 직결되는 일이었으니까.

‘기드는…… 전사했을 터.’

리하르트가 무슨 짓을 해도 담금질의 리스크는 피할 도리가 없다.

기드 마이어라는 충직한 기사를 떠올린 루드비히의 입맛이 썼다.

“충!”

그가 정문에 도착하자, 도열한 채로 서 있던 수많은 기사가 예를 취했다.

절도 있지만 어쩐지 힘이 빠진 듯한 모습.

좌중을 한차례 훑어본 루드비히가 입을 열었다.

“승전고를 울린 동료들을 그딴 표정으로 맞이할 셈이더냐.”

나직하지만 강렬한 기세를 품은 말이 정문을 뒤흔들었다.

언제부터 바텐베르크의 기상이 이리 약해졌단 말인가.

고작 심마를 벗지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의 서슬 퍼런 기세에 기사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억지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부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흙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제3기사단이었다.

태양을 등지고 다가오는 그들은 위풍당당했다.

그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과도 같았고, 기사 하나하나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

“…….”

가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한층 더 성숙해진 기량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제3기사단,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수고했다. 그간의 노고를 치하한다.”

제3기사단장과 가주 간에 담백한 인사가 오갈 때였다.

마차의 문이 끼익- 열리며 리하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그 순간. 정문에 도열해 있던 기사들은 눈을 의심했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건지, 소년이었던 도련님이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기백은 결코 범상치 않았고, 몸 주변엔 은은한 빛무리가 맴돌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리하르트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올수록 기사들은 심신을 짓누르던 공포가 걷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빛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가주를 뵙습니다.”

루드비히의 앞에 선 리하르트가 덤덤히 고개를 숙였다.

그를 바라보는 루드비히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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