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Episode. 09 루드비히의 오른팔 (2)
기세 좋게 대련을 신청했다가, 도리어 참패한 모리츠의 이야기에 바텐베르크는 떠들썩해졌다.
그것이 바로 어제였는데도 말이다.
수많은 기사들이 참관한 그 광경은, 비허가 대련을 공식적인 서열 정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부동의 서열이 드디어 바뀌었군.”
모리츠는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고.
“이제야 리하르트 도련님의 재능이 개화하신 건가!”
그를 짓밟고 올라선 리하르트는 이목을 끌었다.
바텐베르크는 그 혈통들에게 철저한 능력주의를 들이미는 가문.
약한 자는 도태되며, 강한 자는 칭송받는 약육강식의 울타리였다.
“리하르트 도련님이 빛나는 마나를 사용하셨다던데.”
“그거 마나 특성을 말하는 거 맞지? 맙소사!”
하다못해 시종들까지 소곤거릴 정도였으니.
망나니 리하르트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일각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 제1 기사단장, 레오가 리하르트의 수련을 지도하게 되었다더라. 이는 곧, 차기 후계자로 지지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아…….”
마른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어차피 후계는 가주의 둘째 아들, 지크 바텐베르크가 크나 큰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가.
뭔가 묘한 표정의 아론을 무시하곤, 몸을 풀었다.
어제 레오에게 입었던 부상은 귀하디귀한 포션 덕에 말끔히 나은 상태.
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다신 겪고 싶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이득이 너무나 달콤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오늘부터 수련을 도와주겠다더니, 레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양반이 그냥 튄 거는 아니겠지?’
샘솟는 의심을 애써 가라앉히곤, 우선 체력 단련을 시작했다.
레오가 내 개인 연무장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후였다.
“사람 뼈를 부숴 놓고,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당연히 내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눈을 흘기며 바라보자, 레오가 멋쩍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직책이 직책이라, 저도 나름 해야 할 일이 많은 입장입니다.”
정리하자면, 제 할 일을 미리 끝내 놓고 오느라 늦었다는 뜻이었다.
그럼 늦는다고 말을 하던가.
두 달이라는 제한 시간이 걸린 이상, 나와 아론의 시간은 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오 경을 보니 부러졌던 빗장뼈가 다시 아파 오는 것 같습니다.”
“윽…….”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잠시 질린다는 표정을 짓던 레오가 곧 바로 마주 잡았다.
“제가 도련님의 수련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삼 주입니다.”
삼 주라. 이왕 하는 거 한 주 더 채우면 안 될까, 싶을 때였다.
레오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 이상은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가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기간 동안은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아직 도련님께 궁금한 것이 많으니까요.”
일순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내 모든 것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의 가득한 시선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큼큼- 레오가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우선 어제의 대련을 통해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레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초 검술은 제법 완숙해지셨다고 판단이 됩니다. 집중력도 정말 남다르시더군요.”
그야 당연한 일이다. 기초 검술은 S랭크를 달성했고, 집중력은 초집중 특기가 있으니까.
그것들은 부족한 재능을 채우고도 남았다.
“게다가 도련님의 마나 특성은 신체 능력을 증가시키는 듯합니다. 맞으신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도련님께선 베이스는 완성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고급의 검술인데…….”
그의 시선이 내 손등을 향했다.
“발락 경의 각인이 있는 이상, 다른 검술을 배우는 것은 썩 좋지 못한 선택이죠.”
“시험의 각인을 알고 계십니까?”
“세상엔 수많은 검술이 있습니다. 개중엔 다양한 형태로 전수되는 검술이 있다고 하지요.”
레오는 발락이 검성의 후예라는 사실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검술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 어떻게 전수되는지는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분은 가주님과도 비견될 엄청난 검사입니다. 함께 전장에 설 때면, 늘 소름이 돋곤 했죠.”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든 각인을 개방시키라고 레오가 덧붙였다. 안 그래도 그럴 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도련님께서 최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마나 컨트롤.”
그가 제 손을 앞으로 뻗어 보였다.
“마나 불감증이 완치되신 것은 최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나의 총량은 논외로 쳐도.”
후웅-
레오의 손에 마나가 덧씌워졌다.
극도로 얇은, 천 같은 형태의 마나가.
“마나 컨트롤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별다른 마나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닌데도, 레오의 손에 흐르는 마나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마나의 천은 스스로 움직여 레오의 손을 감싸더니, 이윽고 마치 연푸른색의 장갑을 낀 것 같은 모양새로 변했다.
그야말로 굉장한 컨트롤이었다.
“마나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오러 또한 엮어 내지 못합니다. 수많은 기사들이 그렇게 상급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지요.”
문득 누군가가 생각나, 슬쩍 옆을 보았다.
아론은 한껏 굳어진 얼굴로 레오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러를 엮지 못해 상급의 벽에 막힌 기사 중에 하나가 바로 아론이었다.
“특히 도련님은 지금부터라도 마나 컨트롤을 단련해야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 말한 레오가 마나를 흐트러트렸다.
“레오 경은 마땅한 수련법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죠, 하하!”
호언장담을 하며 외치는 레오.
좋다. 아주 좋다. 마침 딱 필요한 수련이었고, 딱 필요한 스승이었다.
나는 아론의 옆구릴 푹 찔렀다.
“아론, 어서 인사드려.”
이 바보는 왜 멀뚱멀뚱 서 있는 건지.
같이 배우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애걸복걸해야 할 것 아냐.
◈ ◈ ◈
수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레오는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식하게 마나를 때려 박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리하르트와 아론의 양손에는 수십 가닥의 실이 쥐어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레오가 창안한 마나 컨트롤 수련법.
그 첫 단계는 모든 실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
한 번에 수십 개의 물체에 마나를 부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실 같은 작고 미세한 물체에는 더더욱.
여기에 레오는 한 가지 조건을 더했다.
마나 저항력이 높은 마물, 크리프의 털로 이루어진 실을 쥐여 준 것이다.
그러니 리하르트와 아론이 땀범벅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집중하십시오.”
레오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훑었다.
평소에는 사람 좋은 미소만 짓더니,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의 그는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휘릭-!
리하르트가 쥐고 있던 실 중 열 가닥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러다 이내,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림과 동시에 실 또한 바닥에 몸을 뉘였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리하르트는 계속해서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도련님의 진도가 빠르다.’
레오는 리하르트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마나 불감증이 치료된 것은 최근이라 했을 텐데.’
리하르트가 안고 있는 패널티는 치명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마나를 느끼고 품어 온 자와, 이제 막 마나 하트에 마나를 쌓기 시작한 자.
후자는 마나 친화력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때문에 리하르트에게 이 수련법을 알려 준 것이었다.
다소 막막하게 보일 수 있는 수련법이라고 생각해 왔거늘, 한데 그의 성장세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나 특성 덕인가?’
리하르트의 마나, 신성력이라는 것은 확실히 일반적인 마나와는 달랐다.
훨씬 더 다루기 용이하고 얌전한, 동물에 비유하자면 순한 양과도 같았다.
리하르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마나 특성.
축복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그에 비하면…….’
아론, 영악한 도련님이 은근슬쩍 수련에 참가시킨 제3기사단의 중급 기사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리하르트에게만 지도할 생각이었다.
이래봬도 기사단장인데, 아무에게나 가르침을 전수하기엔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그런데 리하르트의 등쌀에 못 이기는 척, 대충 확인해 본 아론의 마나는 충격적이었다.
언뜻 느끼기엔 일반적인 마나로 보였지만, 레오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주 사납고 흉폭한 무언가가 아론의 마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두말할 것도 없는 마나 특성이었다.
그 희귀하다는 특성 보유자가 눈앞에 하나 더 있었다니!
‘어찌나 놀랍던지.’
레오의 호기심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아론의 특성은 오러의 형태로 빚어졌을 때에서야 힘을 발휘할 겁니다.
놀람에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리하르트가 말했다.
결국, 레오는 아론에게도 흥미가 생겨 버렸다.
물론 그 괴랄한 특성 탓인지, 아론은 마나를 컨트롤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실 열 가닥은커녕, 다섯 가닥도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레오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 벽만 뛰어넘으면 자네는 몇 단계나 성장할 걸세.’
레오가 아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휘리릭-!
리하르트 쪽에서 거센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열네 가닥의 실이 허공을 수놓고 있는 게 아닌가.
“허…….”
분명 조금 전만 해도 고작 열 가닥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리하르트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제법 여유롭게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급격한 성장세에 레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론도 아론이지만, 역시 그의 흥미를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저 어린 도련님이었다.
“좀 더 세밀하게 컨트롤하십시오. 실이 흔들린다는 건, 마나가 불안정하다는 겁니다.”
레오의 지적에 리하르트가 말없이 입을 삐죽였다.
그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인지 리하르트의 실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집중하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갑자기 왠지 모르게 정신이 사나워져서.”
감고 있던 눈을 뜬 리하르트가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시스템 창이 떠올라 있었다.
『특기 - 마나 컨트롤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현재 숙련도 F → E』
수련 5일 차에 마나 컨트롤 특기를 얻었었다.
리하르트의 성장세는 숙련도가 상승한 결과였다.
‘확실히 효율적이군.’
리하르트는 손에 쥐고 있는 실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줄 알았더니,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무척 고되고 난이도 높은 수련법이었다.
그런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마나 컨트롤이 꽤 달가웠다.
신앙을 투자하며 수련을 이어 나가면, 더 빠른 시일 내에 A랭크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하르트는 고개를 돌려 아론을 살폈다.
이를 악문 채, 실에 마나를 부여하는 아론의 온몸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픽-
어렵사리 고개를 치켜들던 네 가닥의 실이 털썩 쓰러졌다.
두 달 안에 오러를 다뤄야 한다.
아론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할 터.
잠시 그를 바라보던 리하르트가 레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레오 경.”
“예.”
“잠깐 장소를 옮기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