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Episode. 08 못난이 모리츠 (2)
“말도 안 돼! 그게 정말이야?”
제 방으로 돌아온 모리츠는 호위기사, 헨드릭으로부터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예에…… 리하르트 도련님을 호위했던 하급 기사들이 말하기를, 빛나는 기운을 흩뿌리며 언데드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 망나니가?
기사들이 정말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단체로 약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빛나는 기운이 뭔데? 마나? 설마 마나 특성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모리츠의 눈빛에 불안한 기색이 어렸다.
마나 특성이 무엇인가. 보유자에게 엄청난 어드밴티지를 안겨 주는 축복이 아닌가.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는 제 위치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다.
바텐베르크는 철저한 능력제.
유능한 자는 부각되고, 무능한 자는 도태되는 냉정한 집안이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위기사 헨드릭이 모리츠를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마 리하르트 도련님이 자신의 무용담을 과장하도록 부추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모시는 도련님이 이렇게 흔들리면 자신 또한 곤란해진다.
그렇게 판단한 헨드릭이 리하르트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리하르트 도련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나 불감증을 갖고 계신 그분께서 어찌 마나를 사용하겠습니까.”
“그, 그래! 마나 불감증!”
모리츠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리하르트가 앓고 있는 마나 불감증.
“하하! 그걸 잊고 있었다니!”
그는 리하르트의 마나 불감증이 나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저주와도 같은 불치병이지 않은가.
“미치겠군, 정말 놈의 호위기사들이 약이라도 한 거 아닌가? 그놈이 빛나는 마나는 무슨!”
“저도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기사들이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헨드릭은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던 하급 기사를 떠올렸다.
‘거짓말을 할 친구는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리하르트가 마나를 사용하며 언데드와 싸웠다는 소리는 너무 허무맹랑했다.
마음 같아선 더욱 캐묻고 싶었으나, 어째선지 하급 기사는 그 뒤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놈 요즘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리하르트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어!”
모리츠가 쉴 새 없이 리하르트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간 자주 있었던 일인 듯, 능숙하게 맞장구를 치던 헨드릭이 입을 열었다.
“그럼 확실하게 서열 정리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작 호위기사 따위가 입에 담기엔 지나친 말이었다.
아무리 리하르트여도 도련님은 도련님.
그러나 그와 모리츠 사이엔 리하르트는 시종만도 못한 존재였다.
“도련님께서 리하르트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확실히 내가 동생한테 무관심하긴 했어. 리하르트는 주기적으로 밟아 줘야 했는데.”
모리츠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연무장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줬던 그날.
쏟아지던 기사들의 시선이 어찌나 치욕스럽던지.
까드득-
절로 이가 갈릴 정도였다.
“놈을 기사들 앞에서 철저히 무릎 꿇려야겠어.”
식당에서 보았던 가주와 리하르트의 미묘한 분위기도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참에 단단히 밟아야겠다.
그렇게 한다면 가주도 다시 관심을 접으리라.
결정을 굳힌 모리츠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 ◈
“제가…… 정말 이곳에서 수련해도 되겠습니까?”
아론이 내게 물어 왔다. 눈망울이 촉촉한 것이 꽤나 감동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한테 기도나 좀 하지.
어제 아론에게 대차게 까였던 것이 떠오른다.
아주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젓더만.
“그렇다니까.”
나는 대충 답하며 몸을 풀었다.
가주에게 개인 연무장의 사용 허가를 받은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공용 연무장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고 쾌적한 공간이란!
수련 욕구가 절로 샘솟는다.
‘리하르트’는 대체 뭔 짓을 했길래 개인 연무장까지 사용 금지 처분을 받은 걸까.
언뜻 그 이유가 떠올랐지만 애써 지워 냈다.
어차피 사용을 허가받은 이상, 불필요한 잡념이다.
“어때, 시끄럽고 땀내 나는 공용 연무장보단 여기가 훨씬 낫지?”
“그렇습니다.”
다행히 아론도 마음에 드나 보다.
우리는 빠르게 체력 단련을 끝내 몸을 달구곤, 수련을 시작했다.
“후욱……!”
수련검이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스노우폴에서의 실전이 큰 경험이 되었던 건지, 내 스스로 평가해도 나쁘지 않은 검격이 흩뿌려졌다.
‘이 정도면…….’
검술 숙련도 상승이 머지않은 듯했다.
그렇게 한참 수련을 하고 있을 때, 곁에서 창을 휘두르던 아론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 괜찮으시다면 대련 어떻습니까?”
“오!”
이것 참 반가운 소리다. 확실히 보통 수련으론 영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였다.
“핸디캡은?”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전력을 다해 주십시오.”
아론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보다 내가 필요한데 왜 자기가 필요 없다는 거야.
“뭔 소리야. 핸디캡도 없이 내가 널 어떻게 이겨.”
“도련님이야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러도 엮을 수 있으신 분이…….”
“오러?”
아무래도 아론이 아직도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설왕과 싸울 때, 아이스 크레센도에 신앙을 몽땅 때려 박았던 것을 오러로 착각했었다.
당시의 난 오러가 아니라고 했었지만, 말을 얼버무리다 보니 믿지를 못한 것 같았다.
이 오해를 어떻게 풀지 싶을 때였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십의 기척들이 느껴졌다.
“리하르트!”
“……모리츠?”
못난 형제가 기사들을 죄 이끌고 찾아온 것이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그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건방진 놈. 이젠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그보다 여긴 왜 왔어? 내 개인 연무장인데.”
이제야 막 얻게 된 내 공간. 그곳에 불청객들이 몰려 온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기사들이 시선을 피했다.
개중에는 익히 얼굴을 아는 자도 있었고, 처음 보는 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기사란 기사는 닥치는 대로 불러온 듯싶었다.
“이들은 내가 데려왔다.”
모리츠가 나서며 말했다.
흉흉한 기세가 느껴진다. 저놈이 이런 일을 벌인 의도가 대충 예상이 되었다.
저들 앞에서 나를 한껏 밟을 셈이겠지.
“리하르트. 오랜만에 이 형님이 널 지도해 주겠다.”
한껏 무게를 잡으며 말하는 모양새가 우습기 그지없었다.
쟤는 왜 뭘 해도 어설프냐.
“핸디캡은?”
아론에게 했던 질문을 그에게 재차 던졌다.
“큭! 무섭나 보지? 네놈도 바텐가의 피를 이었다면 당당히 맞서라!”
“……지금 이거 되게 웃긴 상황인 거 알지?”
검을 잡은 지 3개월도 안 된 나한테 대련을 하자는 주제에, 같잖은 도발이나 하고 앉아 있다.
그렇게 대꾸하자 모리츠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벌써 몇 년이나 검을 갈고닦은 모리츠가 여기서 물러났다간 크게 체면이 상할 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굳이 핸디캡이 필요할까 싶었다.
‘쟤, 약할 것 같은데.’
모리츠 바텐베르크.
검의 수재로 불릴 만큼 재능은 있는 편이었지만, 아직은 완전히 여물지 못했다.
게다가 놈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적어도 아론보다는 쉬운 상대임이 분명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근거 모를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래. 정 겁난다면 내가 봐줘야겠지.”
이를 악문 채 말하는 모리츠. 동시에 나는 결정을 굳혔다.
“너에게 다섯 수를 양보…….”
“됐고.”
수십의 시선이 우리를 향한 상황.
그 가운데에서 나는 입꼬릴 끌어올렸다.
모리츠가 판을 아주 잘 깔아 주었다.
“없어도 될 것 같다. 덤벼 봐.”
마침 언젠가 한번쯤 밟아 주리라 마음먹었던 참인데.
“……이 자식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모리츠가 덤벼들었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는 아론을 제지하고는 검을 치켜세웠다.
카아앙-
두 개의 수련검이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맞부딪쳐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교차된 채로 힘겨루기를 하는 검 너머, 모리츠가 안광을 줄줄 흘렸다.
그 섬뜩한 기세를 보아하니 보통 화난 게 아닌 듯한데.
콰드득-, 하고 흙바닥이 파이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발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여유가 있을지 한번 보자!”
일순, 온 힘을 다해 내 검을 떨쳐 낸 모리츠가 일갈했다.
기선 제압을 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행동이었다.
고작 그걸로. 아직도 내가 겁쟁이 ‘리하르트’로 보이는 걸까.
나는 천천히 호흡 조절을 하며 모리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금 나는 왕관과 망토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다. 어차피 아티팩트를 사용해 봤자, 정당한 대련이 아니니 뭐니 군소리만 나올 것이 뻔하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피했다. 내가 반격을 가할 틈은 없었다.
모리츠는 빠른 검놀림이 강점이다. 그에 맞게 얇은 검신을 가진 수련검이 허공을 쉴 틈 없이 갈랐다.
모리츠가 흐름을 잡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 지칠 때까지 방어만 하다가 결국 패하게 될 것이다.
중급 기사에게 무승부를 따낼 정도라더니,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더…….’
할 만하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은 위협적이긴 하지만, 눈에 안 보일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데스나이트의 거검이 빠르면 더 빨랐지.
캉, 카앙-!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빈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검은 쳐 냈다.
“모리츠.”
“앙?!”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모리츠가 눈을 부라렸다.
저 흉악한 기세는 가주를 쏙 빼닮았다.
문제라면 딱 그것만 닮았다는 정도?
놈의 얼굴은 유전자를 썩 물려받지 못했다.
살짝 들어 올려진 코에 툭 튀어나온 송곳니. 과장 좀 보태면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크가 더 어울리는 외모였다.
“그렇게 흥분하지 마. 오크 같잖아.”
그리고 그것은 모리츠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다. 다른 형제들은 빼어난 외모를 갖고 있는데, 자신의 얼굴은 그보다 못하니 얼마나 원통할까.
그래서 ‘리하르트’를 그렇게 괴롭혔던 걸지도 모른다.
“너, 너어……!”
작전 성공.
모리츠가 이성을 잃었다.
위협적으로 빈틈을 노리던 검의 궤적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특기 - 초집중 발동.』
반대로 내 이성은 뾰족하게 날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