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Episode. 07 신성력 (2)
“신성력…….”
마나 아니, 이제 신성력이라고 불러야 하나.
손에 맺혀진 그것은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언뜻 보면 신앙과도 같았지만 조금 달랐다.
‘마나와 신앙을 섞은 느낌?’
밝은 빛을 뿜어내는 신성력은 알갱이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데, 마치 반딧불이들이 손에 모여든 것 같았다.
꽈악-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곤 허공에 몇 번 주먹을 날려 보았다.
팡팡 터지는 파공음은 내 몸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루트를 순환하며 빛을 밝히는 신성력이 내게 활력과 힘을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버프라고 해야 할 터.
“하하…….”
아무래도 정말 특성 보유자가 된 모양이다.
재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날 때부터 축복받은 부류.
‘아무튼 나도 그렇게 됐다, 이거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특성은 선천적인 부분이기에, 기연 같은 것으로도 얻을 수 없다고 설정했었으니.
나 참, 신앙의 운용법을 찾으려고 했더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흥분을 가라앉혔다.
우선은 이 능력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신성력을 좀 더 많이 활성화시키자, 루트를 통해 순환하는 신성력이 몸을 뜨겁게 달궜다.
‘상당한 버프 능력이야.’
활성화시킨 신성력이 많아질수록, 버프 또한 강해진다.
온몸에 힘이 넘치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고양감이 느껴졌다.
내가 얻은 특성의 힘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일반 마나보다 훨씬 더 고밀도로 압축되어 있어.’
원래 마나는 기체의 형태를 띤다.
때문에 마나는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대기 중으로 산화하는 탓에 끊임없이 소모되는 양이 많았다.
단순히 말하면 연비가 안 좋은 셈.
그것을 이끌어 낸 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몸에 붙들고 있느냐가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척도가 될 정도니까.
그러나 지금 내 손에 머물고 있는 빛의 알갱이는 달랐다.
몸 밖으로 활성화시켰으나, 쓸데없이 소모되는 게 아닌 그저 계속 손 주위를 돌아다닐 뿐이었다.
‘이거라면 오러를 엮기 훨씬 더 쉬워지겠어.’
기체의 형태보다 이런 고밀도의 신성력이 훨씬 다루기 쉬웠다.
게다가 더 좋은 점은 신앙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최고지.’
만능의 힘인 신앙보다는 효과가 덜할 테지만, 저번처럼 마족의 습격을 받을 위험도 적을 터.
그리고 버프 효과 또한 절대 무시 못할 능력이었다.
아주 유용하게 쓸 힘을 얻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도련님. 가주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하인의 목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가주가 호출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그에 신성력을 갈무리하고는 방을 나섰다.
◈ ◈ ◈
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오, 리하르트 도련님. 간만에 뵙습니다!”
나이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일까.
순박하면서도 경쾌한 인상의 기사가 반가운 듯 말을 붙였다.
순간 누구지 싶다가, 금방 그의 이름을 떠올랐다.
“레오 경.”
바텐베르크 제1기사단의 단장이자, 가주의 오른팔.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가주의 곁에서 엄청난 공적을 세운 인물이다.
“가주께서 호출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다음을 기약해야겠군요.”
그럼 이만-, 인사를 마친 그가 걸음을 옮겼다.
잠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곤, 가주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가주를 뵙습니다.”
언제 봐도 험악한 인상의 가주, 루드비히 바텐베르크.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 ◈ ◈
“제법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묵직한 중저음이 집무실을 울렸다.
루드비히쯤 되면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백이 장난이 아니었다.
“예. 데스나이트 외 30여 마리의 언데드가 스노우폴을 습격했습니다.”
한 차례 침을 삼키곤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데스나이트는 크롬벨이라는 자에게 습격을 명받았다고 했습니다.”
“크롬벨…….”
“데스나이트를 수족으로 부리는 것을 보아, 마족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겠지.”
루드비히는 표정을 굳혔다.
마계란 약육강식의 세계 그 자체. 그곳의 생명체인 마족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었다.
즉, 이름을 가진 자는 약육강식 중 강의 위치에 서 있는 마족이란 말이었다.
크롬벨을 비롯한 현재 대륙에 있는 세 마리의 리치가 그런 존재다.
“발락이 말했던 리치인가.”
그의 중얼거림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그의 손가락이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곧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고.”
“……발락 경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렇지. 발락에게 큰 빚을 졌어.”
빚이라.
그가 입에 담기엔 영 안 어울리는 단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 루드비히는 일순 표정을 바꿨다.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또 사고를 쳤더구나.”
“헤센 남작과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이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언데드의 습격 당시, 그는 제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 감히 남작 따위가 바텐가의 사람에게 손을 댄 것은 용납 못할 일이 맞다. 하나.”
나는 묵묵히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대충 무슨 말을 할지는 예상이 된다.
“어째서 네 독단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냐. 아직도 가문을 등에 업고 다니는 게냐.”
예상대로였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입을 열었다.
“제 독단으로 결정한 것은 죄송합니다. 그러나 헤센 남작이 건드린 것은 제 시녀입니다. 신분의 고하를 떠나, 제가 직접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는 가주.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스노우폴을 빼앗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스노우폴 근처에 있는 설산에서 요정이 만든 얼음성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변질된 요정이었으나, 성의 아름다운 외관과 요정이라는 특별함은 귀족들에겐 큰 가치가 있을다고 봤습니다.”
얼음성의 외관은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그곳에 한기가 몰아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눌러 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본래는 가문의 위신을 생각해 헤센 남작에게 기증할 생각이었지만, 명분이 생겼고 상황이 달라졌기에 방향을 틀었죠.”
“…….”
루드비히는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봤다.
나 역시 그를 마주 바라봤다.
이윽고 루드비히가 입을 열었다.
“변했구나.”
별것 아닌 말 같았지만, 호랑이 같은 가주에게 듣자 기분이 남달랐다.
이제야 망나니 인식이 벗겨졌다는 게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그래. 너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건드린 놈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 한다.”
어째선지 가주는 빙궁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메리가 내 사람이라는 말이 그렇게나 놀라웠던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리하르트’ 이 망나니는 오히려 제 사람을 괴롭히기 바빴으니까.
“기드가 좋아하겠군.”
“예?”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갑자기 기드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걸까.
“네가 말한 마을에는 관리자와 하급 기사 셋을 붙여 주마. 그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겠다. 스노우폴은 이제 네 소유다.”
“그럼 이후의 수입은 제가 갖는 겁니까?”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푼돈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
역시 대가문의 주인이라고 해야 하나. 여유가 넘쳐흐른다.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마나 불감증이 완치되었습니다.”
내 말에 간헐적으로 툭툭- 두드리던 가주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이제야 말하는군.”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한 얼굴.
하긴, 아론을 통해 보고를 받았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하겠지.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놈이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아론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더구나.”
“…….”
“데스나이트가 어째서 오직 너만을 노렸는지. 네가 어떻게 검성의 힘을 발휘했는지. 보고서엔 그저 알 수 없다고만 적혀 있더군.”
나를 내려다보던 가주가 말을 이었다.
“말해 보거라.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것이냐.”
당연히 의문이 들 것이다. 일부러 극적 효과를 위해 여지를 남겨 놓았으니까.
직접적인 사유는 신앙 때문이지만, 그것만큼은 아직 가주에게 말할 때가 아니었다.
원래 같았으면 마나 불감증의 완치에 관한 얘기를 하려 했지만, 마침, 딱 둘러 대기 좋으면서도 놀랄 만한 이유가 생겼다.
“제 마나의 특성 때문입니다.”
“……!”
비록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건 자랑을 해 줘야 한다.
숨길 건 숨기고, 내세울 건 내세운다.
그리고 특성은 지금, 내세울 가치가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가주의 눈이 한껏 치켜떠졌다.
그의 표정이 이렇게나 변한 건 처음 봤다.
웃을 때도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엄청난 포커페이스였건만.
덥썩-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곧 그의 손을 타고 마나 흘러 들어왔다. 그것은 매우 정순하고 고결한 느낌의 마나였다.
특성이 아닌, 순수한 마나를 극도로 갈고닦은. 대륙 최강의 기사에게 어울리는 순도 높은 마나.
‘큭!’
그것이 순식간에 내 마나 하트로 직행했다.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신성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채찍질을 당한 말처럼, 신성력이 마나 루트를 타고 내달렸다.
고오오-
그것과는 별개로 몸에 활력이 감돌았다.
나도 될 대로 되라 하고 신성력을 순환시켰다.
“이게 제 마나입니다.”
한술 더 떠서, 내 팔목을 붙잡고 있는 그에게 신성력을 흘려주었다.
확 그냥, 버프에 취해 버리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