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81화
“아, 아직 저희 집에 아미엘 님, 소개 못 시켜드렸잖아요!”
“음?”
“할아버지한테도, 저희 부모님한테도…… 아직 아미엘 님을 소개시켜 드리지 못했어요.”
분명 그런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세냐가 괴롭혀도 제가 막아드릴게요.”
“제가 왜 아미엘 님을 괴롭혀요?!”
세냐의 불만 어린 목소리도, 주안에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리고 간절한 바람을 담아 주안이 아미엘에게 말했다.
“……조금 더, 저희랑 함께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분명 주안은 아미엘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무슨 선택을 하든, 그녀의 선택에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가슴은 계속 아미엘을 붙잡고 싶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아미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 주안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말해준 것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아미엘은 이런 주안을 보며 물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모든 것을 잃는 게 아니라, 다른 앞으로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잃는다는 표현이 맞다 생각지는 않았다.
주안으로선 그녀가 더욱 많은 것을, 지금까지 몰랐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 부모님, 가족들, 저희 가문의 사람들, 드워프와…… 엘프들까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아미엘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들도 다시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싶었다.
“아미엘 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 힘이, 아미엘 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미엘 님에게는 세냐가, 마냐와 아냐가, 요정들이…… 아직 많은 가족이 아미엘 님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아미엘에게 소개할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기다리는 이들도 이미 많았다.
요정들뿐만이 아니라 달란트 부족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러하구나.”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을 주억거리며, 아미엘이 살풋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혼자라고, 아니, 언젠가 혼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과 두려움. 그리고 그러한 외로움이 아미엘을 늘 쓸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그저 작은 투정이자 쓸데없는 걱정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은 언젠가 헤어져요. 하지만 어떻게 헤어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쓸쓸하고 슬픈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행복한 그런 기억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미엘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저는 아미엘 님이, 제게 그런 분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아미엘 님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저 지금, 이렇게 헤어지며 주안의 기억 속에 슬픈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닌, 조금 더 오래 함께 지내며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말없이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조심스레 주안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이런 아미엘의 행동에 주안이 흠칫, 놀랐지만…….
“……이것은 지금 당장 먹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더냐.”
아미엘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선택을 위한 정수를 쥔 채 크세니아의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행동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먹기 싫은 거야?”
“……이것을 먹으면,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집이라…….”
그 집이라는 게 세계수인지, 아니면 주안의 집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다.
“……앞으로 다시 보기는 힘들겠는데.”
“너는 언제나 나를 볼 수 있지 않더냐.”
“혼자 보는 것과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다르지. 또 다른 내가 무척 쓸쓸할 거야.”
또 다른 자신이라면, 결국 신이 되어 있을 크세니아를 뜻하였다.
하지만 아미엘은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라면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너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뭐, 조금은…….”
결국에는 크세니아는 크세니아.
그림자든 아니든, 그는 그라는 사실을 아미엘 역시 조금은 인정해 줄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인정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미엘.”
“……?”
“너는 여기서 꼭 행복해져라.”
“……너는 꼭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래. 노력할게.”
애초에 불멸의 삶을 바란 것도 아니다.
아미엘로서는 홀가분해졌고, 크세니아의 그림자로서도 아미엘의 이런 선택을 존중하며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길 바랐다.
아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아미엘 님, 집으로 가시는 거죠?”
“그래. 집으로 가자꾸나.”
이제는 그 집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듯했다.
그런 아미엘의 모습을 보던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세 용, 아니, 잠들어 있는 파사까지 네 용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 딸들. 새집으로 갈까?”
“누가 당신 아들딸이야?!”
물론 사련화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소리쳤지만 말이다.
서로 반대가 되는 길로 향했지만, 향하는 곳은 모두 자신들의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크세니아의 그림자와 용들도, 아미엘과 주안, 세냐도.
각자 자신들의 집, 자신들의 세상으로 말이다.
* * *
<에필로그>
“으음…….”
하늘거리는 옷이 매우 거추장스러웠다.
“으으음…….”
이리저리 만진 머리카락이 갑갑했다.
“후우…….”
두 발로 땅에 서는 것이 매우 어색했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했다.
“아, 지금 일어서시면 안 되는데!”
“그러느냐…….”
화들짝 놀란 그 목소리에 아미엘이 작게 찌푸린 채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슬쩍 옆을 흘겨보자,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주안이 곁에 붙여준 작은 소녀, 세라타가 도도도 달려왔다.
손에 장신구들을 가득 가지고 오는 그 모습에 아미엘의 안색이 무척이나 창백해졌다.
게다가 해맑은 세라타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세라타의 머리 위에 앉아서 쿠후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세냐의 얄미운 모습에 아미엘이 작게 한숨마저 내쉬었다.
“그것들은 대체 무엇이더냐.”
“뭐긴요. 아가씨, 아니, 아미엘 님을 더욱 예쁘게 만들어줄 것들이죠.”
“너무 많단 말이다. 매우 거추장스럽구나.”
“많다니요. 이것도 줄이고 줄여서 가지고 온 건데…….”
“이게 줄인 거라고?”
화장대 위에 올려져 있던 양도 만만치 않은데, 세라타가 가지고 온 것과 합치면 정말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로 다양하고 화려하고 부담스러우면서도 많은 양의 장신구들이다.
반지에 목걸이, 귀고리는 기본이고 팔찌와 발찌, 브로치나 머리띠 등등 참으로 다양했다.
“예쁘게 꾸미셔야죠, 아미엘 님. 안젤라 아줌마가 특별히 아미엘 님을 위해서 준비해준 것인데요.”
“으…….”
주안의 권유로 저택으로 오게 된 아미엘은 크세니아의 그림자에게 말을 해준 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드래곤의 정수를 삼켰고, 힘과 수명 등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아미엘을 정말 극진히 모시려는 듯, 세라타를 아미엘에게 붙여주고 주안의 옆방에 방도 마련해 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아미엘과 세냐, 마냐, 아냐와 함께 황도 구경을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었다.
“자, 이건 어때?”
“나쁘진 않은데요? 하지만 조금 수수한 쪽이 낫지 않아요?”
“역시 그렇지? 아미엘 님은 화려한 것보단 조금 단조로운 쪽이 좋으려나.”
“밋밋한 게 우리 아미엘 님의 매력이거든요.”
“…….”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미엘에게 이것저것 장신구를 맞춰주고 있는 세라타와 세냐.
수수하다거나 밋밋하다거나,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니 아미엘로서도 살짝 발끈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두 아이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미엘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으로서 주안의 부모님인 주레인 공작과 안젤라가 직접 허락을 해준 상태였고, 이 부분은 어쨌든 주안이 나서서 잘 말씀을 드린 결과물이기도 했다.
남부 대밀림에서 만나고 많은 도움을 준 소중한 사람이라는 그 소개로 주안의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이나 엄마인 안젤라에게 꽤 큰 호의를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안젤라에겐 아미엘의 정체가 뭔지 보다는 주안에게 매우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 더욱 중요했고, 주레인 공작에겐 메데아 대족장 마저 안젤라를 대하는 태도가 정중한 것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를 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장신구를 요리조리 써보며, 일단 최대한 아미엘에게 잘 맞는 것을 거의 맞췄을 때쯤 방문을 열고 주안과 함께 마냐와 아냐가 들어왔다.
“아미엘 님~!”
“언니야~!”
“앗? 아직 준비 중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다 된 것이더냐?”
주안만이 아니라 아미엘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상태인지라 다 끝난 것인지 잘 몰랐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물음에 세라타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끝냈어요. 그치, 세냐?”
“음음. 수수한 아미엘 님이 조금은 생기 있는 아미엘 님이 되셨죠.”
“……그거 참으로 고마운 말이구나.”
팔짱까지 낀 채 실실 웃는 세냐의 모습에 아미엘이 처음으로 부루퉁해졌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미엘의 눈총을 받고는 금세 표정을 지워버리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도착하셨다고 해요, 아미엘 님. 지금 나가야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러기 위해 이런 쓸데없는 치장을 한 것이 아니더냐. 함께 가자꾸나.”
“쓸데없다니요. 정말 예쁘신걸요.”
“음…….”
주렁주렁 무언가를 달고 있는 것과 얼굴을 갑갑하게 만드는 화장이 영 어색하고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의 예의라는 것도 있었기에 참아내었다.
주안이나 세냐, 마냐, 아냐, 거기다 이런 치장에 힘써준 세라타마저 좋아하니, 아미엘로서도 더 이상 뭐라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안이 이런 아미엘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아미엘이 이런 주안의 손을 빤히 지켜보다 그녀 역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주안의 손을 잡아주었다.
“자, 가죠.”
“……그래.”
주안이 이런 아미엘을 데리고 방을 나서자, 세라타가 뒤따랐고 세냐와 마냐, 아냐 역시 아미엘의 주변으로 날아오며 뒤따랐다.
“아, 그런데 아미엘 님. 한 가지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무엇을 말이더냐.”
“저희 할아버지한테는, 그, 아, 아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음? 어이하여?”
“그게…….”
갸웃하는 그녀에게 주안이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겐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였으니 말이다.
“마누엘이라는 그 아이보다도 훨씬 어리다 들었다만?”
“그야, 그렇긴 하죠. ……마누엘 신관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이 대륙에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분이라면 말이죠.”
“흠…….”
주안이 곤란해하자, 아미엘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네가 곤란해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마.”
“예, 잘 부탁드릴게요.”
아미엘의 양보에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저녁 파티 전에 잠깐 황도 구경이나 가시지 않을래요?”
“또 말이더냐?”
“아직 구경시켜드릴 곳이 잔뜩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서방 대륙의 유명한 와인들만 취급하는 가게라거나…….”
“……참으로 좋은 장소로구나. 허락하마.”
“그렇죠. 좋은 장소죠.”
물론 아미엘에게, 라는 말까지 해주진 않았다.
이곳에 와서 흥미로운 것들을 잔뜩 보았지만, 이만큼 기대가 되는 곳은 없다는 듯 아미엘의 눈이 반짝였고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느냐?”
“아뇨, 그게…….”
잠시 주안이 자신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는 아미엘을 보았다.
늘 하늘을 날아다니던 그녀에게 걷는다는 행동은 참으로 어색한 것이었고, 그 때문인지 주안에게 의지한 채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도 아미엘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에 흥미로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미엘 님이 즐거워 보이셔서요.”
“그러느냐.”
“불편하거나 그런 것은 없으시죠?”
“전혀 없구나.”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빙긋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원할 때, 언제든 세계수로 갈 수도 있고 이곳에서는 또 새로운 것들을 보고 접할 수 있으니……. 심심할 것도 없고, 네 덕에 매우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이에요…….”
그녀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주안이 안심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를 조심스레 불렀다.
“아미엘 님.”
“음?”
“좀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좀 더 많은 것을 경험시켜드릴게요. 그리고,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
크세니아의 그림자도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
행복해지라고.
그리고 주안 역시 이런 자신을 보며 말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바랐고,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준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단다.”
그 마음들을 알기에, 아미엘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다들 고맙구나.”
자신은 지금 무척이나 행복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