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279화 (27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79화

파사는 그저 자신이 지켜야 할 아이들을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여성을 볼 뿐이다.

결코, 그 아이들, 그 자체를 봐주고 돌봐준 것이 아니다.

“너는 그 아이들을 통해 그저 너에게 손을 뻗어준 그 존재를 투영할 뿐이구나.”

그리고 아미엘의 그 말이 바로 정답이었다.

“가엾은 아이로고…….”

정곡을 찔린 파사였지만, 오히려 그게 왜 잘못되었냐는 듯 아미엘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오히려 순수해 보일 정도라 아미엘로서도 파사가 참으로 가엽게 여겨졌다.

“당신에게 그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사로선 그녀의 그 말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런 파사의 반응에 아미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이의 그림자를 쫓는다 해서, 그가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욱 괴로워지는 법이지.”

아미엘은 쭈욱 마를렌에 대해서 쫓았다.

“나는 말이다, 한때 너처럼 소중한 이의 그림자만 쫓았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였다 해도 그녀의 흔적을 주안을 통해서 줄곧 찾아왔다.

주안을 보며 그녀를 떠올렸고, 주안의 말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찾았으며 주안의 행동을 보며 그녀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르다.

주안은 주안이고 마를렌은 마를렌이다.

이미 사라진 이였고 떠나간 존재였다.

그것을 깨달았을 땐 오히려 홀가분해졌을 정도였다.

“네게 부탁을 한 이도, 너의 이런 모습을 바란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그래,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은 안다.”

차분한 어투로 아미엘이 조용히 파사의 앞까지 걸어갔다.

수면 위를 사뿐거리며 걷는 그 모습은 매우 신비로웠지만, 다른 용들은 그런 것보다 그녀의 행동에 더욱 집중되었다.

날개를 접은 채, 모든 힘을 거둔 그 모습은 크게 놀라게 만들었으며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파사가 손을 내밀고 조금만 힘을 써도 저 가녀린 몸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미엘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파사가 당황했을 정도였다.

“네게 약속을, 바람을 부탁한 이는 그저 네가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보고 더욱 행복해졌으면 하였겠지.”

“…….”

“너를 하나의 존재, 인격체로 대해준 만큼…… 너 역시 용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서 살아가길 바라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미엘은 착잡한 마음을 가진 채 파사에게 말했다.

“하나 너는 그 마음도 모른 채 잘못된 길을 가고야 말았구나.”

그것이 아미엘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처음으로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의무에 대해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 용이었으나 결국 새로운 의무와 집착에 빠져든 안타까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면……. 의무에 대한 짐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며 크게 미련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파사에게 남겨진 것은 그저 자신이 사랑하게 된 존재에 대한 집착뿐이다.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많지가 않구나. 너나 나나 선택할 때라는 것이다.”

괴로운 표정의 파사를 보며 조용히 손을 뻗은 아미엘은 그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잠시 뒤 파사의 눈이 감기거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파사!”

이런 파사의 모습에 하랑이 잽싸게 다가와 파사를 안아 주었고, 다행히 몸에 큰 문제가 생겼다거나 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였다.

그리고 재차 안심을 시켜주려는 듯 아미엘이 말했다.

“조금 재워두었을 뿐이니 걱정 말거라.”

“감사합니다, 아미엘 님.”

“눈을 떴을 때, 조금 걱정스럽긴 하다만 그것은 너희들의 몫이니 맡기겠다.”

아미엘의 말에 하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듯했고, 실제로 지금에 와서는 이미 모든 게 끝나가는 듯했다.

아미엘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 하랑과 카르카노, 사련화 모두가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수면의 아래, 불안정하던 힘이 조금 전부터 정돈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고 지금에 와서는 용들이 이 장소, 이 자리를 지켜내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그때보다도 훨씬 안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오는구나.”

그리고 아미엘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호수의 수면에 길이 생겨나며 그 틈으로 주안과 세냐가 나왔다.

“아미엘 님!”

“왔느냐.”

주안의 외침과 함께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모습에 아미엘이 생긋, 미소를 지었지만 주안은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다.

* * *

“아미엘 님…….”

그리고 아미엘의 곁으로 세냐의 안내에 따라 날아 온 주안은 그녀와 그녀의 곁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랑, 그리고 그 품에 안겨 있는 파사의 모습에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이 되었다.

“파사 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그래, 괜찮단다.”

이곳의 모든 이를 위태롭게 만들 뻔한 파사의 행동이 있었음에도 주안은 그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게 가장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행동에 비난이 아닌, 그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드는 듯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너는 갔던 일은 잘 되었느냐?”

“아, 네. 그보다 저기, 아미엘 님.”

주안이 머뭇거리며 아미엘을 재차 부르자, 아미엘이 갸웃하였다.

“……저, 크세니아 님을 만나고 왔어요.”

“크세니아를?”

“아, 정확히 말하면 전에 봤던 크세니아 님의 그림자였어요.”

“그러하느냐.”

하지만 아미엘은 그다지 크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이라도 한 듯한 반응인지라,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미엘에게 말했다.

“이쪽만이 아니라, 크세니아 님이 계시는 곳도 고치긴 했어요. 잘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었다. 그러니 염려 말거라.”

주안은 자신이 한 일에 확신이 없었으나, 아미엘은 이런 주안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 말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힘이 나긴 했지만, 주안은 아미엘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다.

“그런데 저, 크세니아 님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어요.”

“무엇을 말이더냐.”

“……모든 것을요. 아미엘 님이 왜 이종족들을 돕게 된 것인지, 용들이 왜 이곳에 남겨지게 된 것인지, 드래곤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부 다 들었어요.”

그리고 잠시 심호흡 후 아미엘을 똑바로 보며 주안이 말을 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아미엘 님도 떠나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 다 들었어요.”

“…….”

그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 올곧게 느껴지던 맑은 눈이 지금은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무엇을 그리 걱정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 것인지 아미엘도 알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주안이 매우 안쓰러웠다.

“미리 말을 하지 못 하여 미안하게 생각을 하는구나. 하나 나는…….”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주안이 아미엘을 위로하듯,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주안과 세냐, 둘뿐이었을 것이다.

용, 특히 하랑은 이미 알고 있었고 카르카노나 사련화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파사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용들보다도 가깝게, 혹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주안과 세냐는 그 충격이 꽤 컸다.

“그래도 제게는, 그걸 알려 주셨으면 좋았잖아요.”

“미안하구나, 세냐.”

주안과는 달리 세냐의 섭섭함은 정말 컸다.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고, 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미엘은 그 오랜 시간을 혼자서 고민을 하고, 힘들어했다는 것에 섭섭함보다 더 컸던 게 아미엘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아미엘이 얼마나 외로움을 잘 타고, 또 작은 버릇에서부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것인지 까지 모두 다 안다고 생각을 하였던 세냐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매우 컸다.

“많이 섭섭하였느냐.”

그 말에 주안과 세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미엘의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주안이 먼저 나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아미엘 님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들어서, 그 마음을 이해해요.”

아미엘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마음을 먹으며 크세니아의 제안에 응한 것인지 이해하였다.

다만, 그래도 주안은 그녀에게 한마디를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미엘 님이 이곳을 떠난다 해서, 정말 그 외로움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주변의 누군가가 계속 떠나감에도 남겨지게 되는 자신에게 있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였기에 스스로 떠나고자 하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외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미엘 님뿐만이 아니라 저도, 세냐도, 다른 요정 아이들을 넘어 달란트 부족까지 모두가 말이에요.”

아미엘의 선택은 결국 혼자라는 것이다.

소중한 이들이 곁에서 떠나가는 것이 보고 싶지 않기에, 스스로 혼자가 되고자 하는 그러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단순하다.

“완전 아이 같은 선택이에요, 아미엘 님.”

“세냐…….”

세냐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주안마저 움찔하고 놀랐다.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냐가 말했다.

“헤어지는 게 두려워 도망치려 하지 마세요. 누구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예요. 이렇게 오래 사셨으면서, 아직도 그런 걸 모르세요?”

그리고 이런 세냐의 말에 혼나는 듯하여 아미엘이 몸을 움츠렸지만, 주안이 이 둘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이 이야기는 솔직히 반칙이기는 하나, 세냐의 말처럼 나잇값을 못 한다는 것에는 동의해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세냐의 말에 움찔 놀란 것은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인 용들 전부에게 해당이 되는 듯했다.

“아미엘 님.”

더 이상 세냐가 뭐라고 했다가는 용들마저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주안이 조용히 나서며 말했다.

“아미엘 님의 선택이 무엇이 되었든, 저는 언제나 아미엘 님의 편이라는 것만은 알아주세요.”

세냐는 여전히 불만스러웠지만, 주안은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 거예요. 다만, 어떤 선택이든 아미엘 님이 행복해지는 쪽으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주안이 조용히 아미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조심스레 신성력을 끌어 올려 아미엘을 감싸며 말했다.

“주변에 저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사람은 소중한 이들과 헤어질 때, 분명 괴롭다.

힘들고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남겨진 사람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역시 없다.

그녀의 외로움이, 고통이, 그 깊이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주안은 아미엘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이 아픔은 세냐나 다른 요정들 역시 똑같이, 혹은 더 많이 다가올 것이다.

그 점을 아미엘이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