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7화
“아미엘은 신이 될 거다, 주안 마르티네스.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품어줄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니까.”
이것은 일종의 신과의 거래였다.
자신을 도와줄 존재가 필요하였고 자신이 사랑한 이 세상을 아끼는 이유도 있었으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신이라니…….”
주안은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하는 말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생각과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들이었으니 말이다.
드래곤에 용, 요정의 여왕…… 거기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 될 신까지.
인간으로서의 삶을 나름 오래 살았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식선에서, 인간의 세상에서 살아오고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절대적인 존재들이 하는 일과 생각을 절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주안은 아미엘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엘 님도 그것을 바라셨기에 그 제의에 응하신 거죠?”
“뭐, 처음에는. 지금이야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크세니아가 그것을 제안했을 때, 흔쾌히 수락을 했던 것을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기억 속에서도 있었다.
크세니아의 그림자라고는 하여도 그의 의지와 기억, 생전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그림자이자 안내자인 자신에겐 여전히 아미엘은 매우 가까운 존재라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인정을 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아미엘은 확실히 드래곤이나 용들과는 달라. 그녀의 곁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럼 왜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예요? 크세니아…… 님이라면 아실 거 아니에요?”
주안 역시 크세니아의 남겨진 그림자에 대해 뭐라고 지칭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지만, 남은 기억이라고는 해도 그 역시 크세니아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를 하나의 올바른 존재로서 해주어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태도 변화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의외라는 듯했지만, 이래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외로웠을 것이니까.”
“……예?”
“아미엘의 수명은, 불멸이라고 봐야겠지.”
“불멸…….”
“그래.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태어난 나무…… 세계수와 함께 태어난 첫 번째 이종족, 그게 바로 아미엘이야.”
아득한 고대 시대, 아니, 태초의 시대까지 흘러가야 하는 이야기였지만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불멸이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지. 요정들 역시 긴 수명을 가졌다고 해도 아미엘과는 달리 영원하지 않으니까.”
“아미엘 님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는 게 힘드셨겠네요.”
“응. 그래서 힘들과 괴롭고, 외로울 수밖에 없지. 그렇기에 내 제안에 순수하게 응해준 것이기도 하니까.”
주변의 소중한 이들이 하나둘 떠나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주안은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에 아미엘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크세니아의 제안에 응한 것인지, 조금은 공감할 수가 있었다.
“신이 자신과 가장 닮았기에 인간을 사랑했다는 말은 들어 봤겠지? 그건 교단에서 줄곧 주장하는 말들이니까.”
“예……. 그건 알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니요?”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말했다.
“가장 닮게, 그리고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아미엘이었으니까.”
“아미엘 님을…….”
“하지만 뭐, 너무 닮게 만들어서 문제였지. 그 외모만이 아니라, 힘과 능력 수명과 세상을 만드는 힘까지……. 너무 많은 것을 주어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세상을 만드는 힘이라는 말에 주안이 놀랐다.
그리고 요정들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곳을 아미엘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어진 듯했다.
“아미엘과는 달리 다음에 만드는 것에는 수명을 빼고, 힘을 빼고, 여러 가지를 빼서 만들어낸 게 인간이니까. 그 하나씩 빠지면서 태어난 것이 엘프였고, 드워프였으며, 오크거든.”
아미엘에게서 세상을 만드는 힘을 뺀 것이 엘프이다.
아미엘에게서 외모와 수명과 마법을 뺀 것이 드워프이다.
아미엘에게서 수명과 마법과 지능을 뺀 것이 오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이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앞의 이종족들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였을 지도 몰랐다.
수명은 짧지만, 그것을 극복할 열정을 주었고, 마법의 능력이 모자라지만 그것을 극복할 기술과 노력을 주었다.
세상을 새로 창조할 힘을 대신, 세상을 가꾸어 나갈 힘도 인간에게 주었다.
이종족들에 비해서 많은 것이 모자라 보이지만, 그것을 보고 배울 지능이 있었고…… 욕심이 있었다.
“가장 모자라지만, 가장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 뭐,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모자란 것을 빼앗는 것.
남의 것을 탐하는 것.
타인을 해하는 것.
인간은 많은 것이 모자랐지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에 있어선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것을 얻었고 이종족들을 밀어내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신과 가장 닮게 만들었지만, 신과 가장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바로 인간이니 말이다.
“신과,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가장 닮아야 할 인간이 이따위니, 혐오할 수밖에 없었고 이종족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을 아미엘이긴 하지만…….”
주안 역시 아미엘이 이종족의 편에 서서 인간들의 손에서 그들을 지켜 준 것을 잘 알고, 무엇보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주안과 함께 있던 이들에 대해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도 기억해냈다.
다행히 주안의 가족과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서 허락을 해주었던 것이 기억나자, 주안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것만은 아닐 거예요. 아미엘 님은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서로 다투고 싸우고,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니까요.”
“그래, 그렇긴 하지. 피를 보는 걸 정말 싫어했으니까.”
주안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아미엘에 대해서 잘 아는 크세니아의 그림자였기에 주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에게 아직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을 보니, 아미엘도 고민이 되고 갈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실 필요는 없으신데…….”
“응? 어째서? 너는 아미엘이 너에게 말도 없이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보기엔 아미엘과 주안의 관계는 조금 남달라 보였다.
아미엘은 주안을 통해 마를렌을 보았지만, 지금은 주안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좋아하였고 주안 역시 아미엘을 저 하늘 높이 손에 닿지 않는 그런 존재가 아닌 곁에 있어 주는 좋은 사람으로 대하였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주안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저는 아미엘 님의 의사를 존중하니까요. 제가 뭐라고 이곳에 남아 달라 하겠어요? 아미엘 님이 그것을 바라고, 그것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죠.”
이미 주변의 많은 이들이 자신만 남겨두고 떠나는 것에 크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주안으로선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불멸의 삶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아미엘처럼 정이 많고 사랑을 받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파사 님 역시 같겠지…….’
아미엘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 선택이겠지만, 그런 파사의 행동을 이해하기에 크게 비난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자신만의 약속을 위해서, 소중한 이의 부탁으로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아미엘이 남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저도 알아요.”
“…….”
이미 모든 것을 다 들은 주안이었기에, 그녀가 더 이상 이곳에 남고자 하여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신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들이 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다른 곳으로 보내었고, 드래곤들을 불러들였으며, 곧 용들도 이곳을 떠난다.
아미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주안이 조심스레 다시 몸을 숙여 바닥에 왼손을 가져다 대며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멈추었던 일을 다시 하려는 그 모습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의외로 담담하구나. 슬프진 않아?”
“슬프지 않을 리가 없죠. 저도, 세냐도, 다른 사람들 모두가 아미엘 님을 좋아하는데…….”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는 주안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혀를 찼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아미엘은 금세 주변의 사랑을 받는 참 특이한 존재였다.
신이 만든 최초의 존재였던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조금은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거부한다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아미엘 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닌 이상 제가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아미엘의 의사가 중요하다.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일인데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대답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잠시 주안을 가만히 지켜보다 생각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면 아미엘이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할래?”
“선택…….”
“그래, 선택. 아미엘의 선택 말이야.”
현재의 파사가 그러하였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굽히지 않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마냥 비난만 할 수 없었기에 주안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미엘 역시 자신이 정한 선택이 신이 정한 법칙에 반하는 일이라면, 주안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다.
“……그땐 도울 거예요.”
그리고 강한 어조로 재차 말했다.
“제 모든 것을 다 걸어서라도, 아미엘 님을 돕겠어요.”
“이곳에 남겠다는 선택을 하면 아미엘은 신에게 버림을 받을 거야. 지금의 파사처럼 비난을 받고 가장 가까운 이들과 다툴 수도 있어. 그래도 좋은 거야?”
“그게 아미엘 님의 선택이라면…… 그 비난은 같이 감수할 거예요.”
아미엘이 파사처럼 될 수 있다는 것에 주안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런데도 아미엘의 편에 서겠다며 크세니아의 그림자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이 말에는 거짓이 전혀 없었기에 당당할 수 있었고, 올곧은 눈으로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을 거예요. 파사 님처럼, 과격하지 않게……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을 말이에요.”
“그런 방법이 과연 있을 거라고 보는 거야? 결국, 아미엘의 존재가, 파사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 상황에서?”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어요. 그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느냐가 문제이지.”
그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시키고 올바른 답을 내놓냐, 이것만 해결한다면…….
주안의 이런 말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답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안에게 말했다.
“그러면 부탁 한 가지만 하지. 주안 마르티네스.”
“부탁…… 이요?”
“그 답을 알려주도록 하마. 아미엘이 이곳에 남고자 한다면 선택하라고 해라.”
그렇게 말을 하며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주안에게 다가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난 주안의 손을 붙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면, 이것을 주도록 해라. 그러면 아미엘도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니까.”
“크세니아 님……?”
그리고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주안을 돌려세우더니 살며시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아미엘에게 무엇을 선택하든, 이곳에는 꼭 한 번 더 방문해주길 바란다고 전해 줘. 뭐, 어차피 오게 되겠지만…… 그땐 피하지 말라고 말이야.”
“예?”
하지만 주안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하였다.
세상이 일그러진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