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6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응? 아미엘에게 아무 말도 못 들었던 거야?”
주안이 신성력을 흘려보내던 행동을 멈춘 채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주안의 시선에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안 했다면, 내 입으로 알려주는 건 일단 예의가 아닌데…….”
이미 말을 꺼내버린 이상, 잘못하면 아미엘에게 크게 혼날 수도 있었기에 괜히 걱정스러웠다.
때문에 여기서 더 이야기한다면 혼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가 있었기에 그 역시 무섭기도 하여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꽤 망설였다.
“말씀해 주세요. 방금, 아미엘 님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용들과 같이……?”
“으음…….”
주안이 기어이 하던 행동을 멈춘 채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이 일은 어쨌든 세상에서 인간과 이종족을 밀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들을 배제하는 거야. 그리고 가장 먼저 몬스터가 되었지.”
개체가 다양하지만 흉폭하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몬스터는 어떻게 본다면 실패작인 생명체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신이 만들어낸 자식과도 같았다.
때문에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린다는 극단적인 생각보다는, 그들이 알아서 어울려 살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분리를 시켜 놓았다.
“그 역할을 한 것은 드래곤들이었고, 몬스터와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배제된 것은 바로 우리이긴 했지. 물론 알고 한 일이었고, 우리도 딱히 불만은 없었으니까.”
신의 뜻을 그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되고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 그 생각을 알았고 드래곤들 역시 이 세상에 큰 미련이 없었기에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하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갑갑한 육체와 무료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던 드래곤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크세니아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은 존재, 크세니아 역시 마찬가지이긴 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몬스터를 물러나게 하고, 단단한 봉인지를 만든 드래곤들 역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겨둔 그곳을 지키는 용들 역시 그 역할이 끝나면 떠나야 할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 이건 너도 알지?”
“……예.”
그렇기에 용이 만들어지고 이 세상에 남게 된 이유로 인하여 그것에 대한 큰 불만을 느낀 파사로 인해서 조금 일이 힘들게 돌아갔지만, 주안 역시 이 부분까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미엘 역시 역할은 있었지.”
“역할이라니요?”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말에 주안이 갸웃하자, 그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종족들의 보호. 그리고 자립을 시키는 것.”
“보호와 자립……?”
“그래. 인간들의 손에서 보호하고, 때를 봐서 인간과의 다시 화합을 추진…… 마지막으로 이종족들을 자립시키는 것으로 아미엘의 역할은 끝나게 된다.”
단순히 이종족의 보호를 하는 것이 아미엘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이종족들을 지키며, 언젠가 인간과의 화합을 끌어내는 것.
하지만 과거의 아미엘은 이런 자신의 역할보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컸으며 이종족의 보호……. 과보호를 하였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엘프들과 드워프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역시 신의 뜻이기도 하고, 그 역할을 추천한 것은 이전의 나였으니까.”
“…….”
그건 알고 있다.
크세니아가 아미엘을 이종족의 보호를 부탁하였다는 사실을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직접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주안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역할은 정말 뜻하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졌지. 너로 인해서.”
“저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했다시피, 아미엘의 역할은 인간과 이종족의 중재자. 이종족을 보호하면서 그들의 자립을 도우며 인간과의 평화를 이루게 만드는 존재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게 이루어졌단 말이지.”
“설마…….”
“그래. 너로 인해서 인간과 이종족은 어쨌든 서로 손을 잡는 형태가 되었단 말이지. 반쯤이긴 해도 말이야. 그게 뭔지는 너도 알잖아?”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말에 주안이 잠시 갸웃했지만, 흠칫 놀라며 금세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종족과의 화합.
아미엘이 활동하던 그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고,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말처럼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아미엘의 역할이 완수되었다.
바로 주안으로 인해서.
“달란트 부족…….”
“뭐, 그보다 인간들이 이종족을 잊었기에 자연스럽게 합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더 컸겠지만.”
잊었기에 평화로워질 수가 있었다.
엘프들은 여전히 위협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주안으로 인해서 충분히 억제가 가능했다.
드워프들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 역시 충분히 인간들의 세상으로 끌어들일 수가 있었다.
이 역시 주안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 세상에 남은 인간과 이종족들을 위협할 모든 것은 자신들의 역할을 완수하면서 끝나게 되는 거야. 몬스터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용들은 그들이 살 수 있는 터전과 침범할 수 없는 크고 높은 벽을. 용은 그곳을 부서지지 않게 지키면서, 인간과 화합을 이룬 이종족을 기다린다. 그리고 성흔을 가진 이가 마지막으로 그 역할을 완수한다.”
몬스터를 떠나가게 만들고, 드래곤은 그들이 돌아올 수 없는 담을 쌓았다.
그리고 용들을 만들어 이 담, 봉인지와 문을 지키게 만들었으며 인간과의 화합된 이종족들이 자신들이 가진 성흔…… 열쇠를 가진 자애의 성흔을 이용해 이곳을 마지막 완성을 시켜준다.
“그리고 그 역할을 모두 끝낸 절대적인 이들은 완성된 이 세상에서 떠나야 하지. 좋든 싫든, 더 이상 이 세상에 그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잖아요!”
역할이 끝났으니 떠나라.
이처럼 냉정한 말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고생하였고 그 대가를 받아도 모자랄 이들인데, 그런 이들을 단지 인간과 이종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주안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외침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기적인 게 아니야. 뭐, 이건 우리도 바란 것이니까.”
“바라지 않는 존재도 있단 말이에요! 파사 님이 그렇고, 아미엘 님도……!”
“음……. 파사야 뭐, 그렇긴 하지. 근데 아미엘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란 말이지.”
“알고 있다 하셔도, 그렇다 해도…….”
주안의 모습을 보며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아미엘이 조금 부러워졌다.
이들, 드래곤이나 용들은 이렇게 인간에게 걱정과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는 절대 아니다.
경외심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며 절대 다가설 수 없는 그러한 존재로 인식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외로웠고, 그렇기에 떠나려는 것이니 말이다.
꼭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기보단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역시 느끼고 있었기에 행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너와 비슷한 인간 때문에 파사가 변한 거 같기는 하지만……. 너도 어쩌면 아미엘을 변화시키고 있나 모르겠네.”
파사 역시 처음에야 자신의 의무,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움직였던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용이 아닌 존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이자 동등한 존재로 생각해준 사람이 있었다.
“네가 아미엘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파사를 그렇게 만든 그 여자가 생각이 나서 말이야.”
“여전히 이곳에서 많은 것을 보셨나 보네요.”
“할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 역시 어떻게 보면 남겨진 이들이자 곧 떠나야 존재이기도 했다.
크세니아 본인이 남겨둔 안배이자 이 길을 지켜주고, 이 길을 따라갈 이들을 안내해주는 역할.
남겨지게 된 자신들의 아이들인 용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러면, 제가 이걸 고쳐놓는다면…… 용들은 물론 아미엘 님, 요정들마저 전부 이곳을 떠난다는 말씀이세요?”
“요정들 그 자체는 조금 애매하긴 하지. 요정들의 힘의 원천 자체가 아미엘에게서 나오는 것이니까. 아미엘이 사라진다면 이종족의 하나로 편입이 될 계획이었거든.”
아미엘 그녀 자체가 요정이라는 종족, 그 자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그러면 설마…… 아미엘 님 혼자, 요정들의 땅으로 가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아, 그건 아니야. 그녀 역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니까.”
그 말에는 그나마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미엘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안은 크게 걱정스러웠다.
“대체 그곳이 뭐기에…….”
“인간의 신앙을 기준으로 본다면, 저기 하늘 위지.”
“예? 하늘 위?”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크세니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신이 되는 것이니까.”
“……예……?”
* * *
신은 하나다.
교단에서 말을 하는 절대적인 신은 하나였고, 세상을 창조하고 수많은 생명체를 만들어낸 존재.
그렇기에 신이라 불렸다.
아미엘 역시 신에 대해서 늘 하나의 존재로만 말을 했으며, 그것은 드래곤이기도 하였던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그랬으며 용들 역시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크세니아의 그림자는 이전과 달리 지금 다르게 말하였다.
“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간을 통해 깨달으셔서 말이지. 언젠가 또다시 실수할 수도 있기에 자신의 곁에 많은 이들을 두고 그들을 통해 자신이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는 존재로 거듭나려고 하고 있으셔.”
그리고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주안에게 선생님처럼 설명을 해주었다.
“더 이상 혼자서 세상을 만드는 것을 그만두셨거든. 혼자가 아닌 여럿, 자신을 도와줄 또 다른 신. 그게 바로 이전의 드래곤이었으며, 앞으로의 용과…… 아미엘이 되는 것이니까.”
“세상을, 또 만든다고요? 이 세상만이 아니라…… 또?”
“세상이 이곳 하나만 있다 생각하지 마, 주안 마르티네스. 신이 왜 신이라 불리는 것인지, 왜 절대적인 존재인지 너도 이제 조금은 알 것 아니야?”
“그…….”
하지만 주안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신은 신이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만들어낸,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그저 신.
하지만 그 신조차 당황스럽게 만든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러한 일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혼자가 아닌 여럿.
자신을 도와줄 새로운 신들.
그게 바로 드래곤들이었으며 용이 될 것이며, 아미엘이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신의 뜻을 거부했겠지. 이곳에서 무료하게 세상을 보낼 바에, 신의 곁에서 신을 도우며 자신들 역시 신이 되어 신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것을 하고 싶었으니까.”
결국, 원래의 신은 창조신이 되어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내었으며 그들을 통해 세상을 점차 넓혀간다.
이후 더 많은 신이 태어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급할 것 없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실수하지 않고, 더 많은 세상. 더 많은 생명체. 더 많은 이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