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5화
“더럽게 단단하네!”
하랑의 몸을 맨손으로 후려치면서 얼얼한 손이 아픈 것인지 사련화가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인간의 몸으로, 거대한 하랑의 용의 육체를 주먹으로 때려대는 사련화의 그 무지막지한 모습에 그것을 지켜보던 하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단단하여 참으로 미안하구나. 그보다 정말 그 모습으로 움직여도 괜찮겠느냐?”
“네 몸이 다치면 안 되잖아.”
“아니, 딱히 상관은 없다만…….”
하랑의 용의 육체를 걱정하였기에 자신도 용의 모습으로 변하여 싸우는 것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상대를 해주었지만 하랑으로서는 오히려 사련화가 다치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사련화의 행동에 카르카노가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이지, 애가 왜 이렇게 무식한 거람.”
“시꺼!”
다행히 이런 사련화와는 달리 카르카노는 자신의 용의 모습으로 변한 채 하랑의 용의 육체를 대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사련화가 마음 놓고 하랑의 용의 육체를 마음껏 난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육체를 막는 것은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기에 하랑도 안심하며 조용히 시선을 돌려 파사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하자, 파사.”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거절한다.”
“파사…….”
여전한 파사의 대답에 하랑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미엘과 하랑.
아 두 존재가 자신을 막아선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용의 본 모습도 아닌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 맞서고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겐 배려일 수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감일 것이다.
이곳, 이 장소에서만큼은 파사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뛰어나다.
특히나 인간의 모습으로 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그였기에 용의 본 모습보다 오히려 지금의 이 모습이 더 뛰어났으니 말이다.
어쩌면 자신들을 만들어낸, 부모와도 같은 드래곤과 비견되어도 전혀 모자라지 않는 존재일지도 몰랐다.
“지금껏 이 장소를 지켜오며 세상을 위해 힘을 써준 용들의 노고에 나는 감사한다. 하나…….”
하지만 파사의 앞에 있는 존재는 모든 드래곤들을 이끌던 크세니아의 친우이자 그조차도 어쩌지 못하던 요정들의 여왕이다.
“우리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미엘 님,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으십니까?”
“그래. 너나 나나 그런 말을 할 자격은 되지 못하지.”
파사는 자신의 의지대로 의무를 등졌다면, 아미엘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지금껏 이 세상을 지탱해온 용들에게 감사하는 한편,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지막 마무리는 내가, 그리고 네가 지어야 하는 일이니라.”
“…….”
아미엘이 조용히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수 쌍의 날개는 하나하나가 아미엘 그 본인의 몸보다 컸으며 여러 색과 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단순 외형만 보면 아름답다.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지만, 그 날개에서부터 전해지는 힘의 파동은 바로 곁에 있는 하랑이나 눈앞의 파사 그리고 한참 하랑의 용의 육체와 다투고 있던 카르카노와 사련화마저 놀라게 하며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아미엘의 힘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그녀를 노려보던 파사가 말했다.
“거절합니다.”
그리고 파사 역시 자신의 힘을 끌어내었다.
용의 모습으로 한계까지 끌어낼 수 있는 그 힘을 아득히 뛰어넘는, 오직 이곳. 이 장소에서만 나타낼 수 있는, 자신의 수명을 담보로 한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 * *
“……여긴?”
검은 상자와도 같은 봉인지의 중심에 손을 대고 신성력을 불어넣은 것까진 좋았지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눈을 뜰 수도 없는 강한 빛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한 주안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호수 아래의 그 장소가 아니었다.
허허벌판처럼 넓은 공간이었으며 왠지 낯이 익은 돌산이 자리를 잡고 있는 장소였다.
“여, 오랜만이지?”
“응?”
갑작스레 들려 온 목소리에 주안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낯이 익은 한 남성이 주안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세니아…… 님?”
바로 크세니아, 아니, 그의 그림자라고 소개했던 이였다.
“왜 여기에…….”
“응? 멋대로 온 것은 넌데?”
“제가요? 아……. 그러고 보니 여긴…….”
아미엘과 소니아와 함께 왔던 그곳.
바로 크세니아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그 장소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주안은 그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제, 제가 왜 여기에……?!”
“음……. 뭐라고 할까. 간단하게 말한다면…….”
팔짱을 낀 채 잠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하는 듯,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고민하다 떠오른 말이 있는 것인지 금세 다시 미소를 지으며 주안에게 말했다.
“반쯤 죽은 상태로 영혼이 여기로 흘러들어왔다고 해야 하나?”
“예?!”
“아, 걱정 마. 물론 진짜로 죽은 건 아니니까.”
“……아, 예.”
그런 건 처음부터 말을 하세요, 라고 소리를 칠 뻔했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림자라고 소개를 하였다 하나 어쨌든 드래곤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존재.
아미엘도 곁에 없었기에 주안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전 분명 신령산에 있었는데…….”
“네가 여기 온 걸 보니 봉인지에 가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그걸 고치려고 했나 본데, 맞지?”
“아, 예.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딱히 묻지 않아도 알고 있던 사실인 듯했고, 애초에 그는 이곳에서 언제든지 바깥세상을 지켜볼 수 있긴 하였다.
그저 주안의 입으로 그 말을 듣고 싶었기에 한 질문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간단해. 여기나 거기나 들어가는 문은 달라도 길은 하나라서 말이야. 뭐, 열쇠가 같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열쇠…….”
그제야 주안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는 듯했다.
크세니아의 무덤이라는 장소로 들어갈 수 있는 큰 문도 그렇고, 신령산의 호수 아래에 만들어진 드래곤들의 봉인지이다.
그 문도 그렇고, 그것을 열 수 있는 존재란 오직 자애의 성흔을 가진 이뿐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것을 가진 존재는 바로 주안이었으니 말이다.
“하, 하지만 저는 여기 있을 수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다 문득,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떠올린 주안이 당황하며 말했다.
자신은 신령산의 봉인지에 만들어진 또 다른 문을 고쳐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다면…….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말했다시피 영혼만 반쯤 뽑혀 나온 것이라 네 몸은 여전히 거기에 있거든.”
“그러면 더 큰일이잖아요?!”
몸은 아직 그곳에 있고 영혼만 여기 있다면, 진짜 그의 말대로 반쯤 죽은 게 아니라 완전히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는 주안이 크게 당황하며 허둥거리자, 그 모습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어차피 곧 다시 돌아갈 거니까.”
“예? 갈 수 있어요?”
“당연하지. 아, 그리고 네가 여기까지 이끌려 온 것은 뭐, 여기도 좀 고쳐야 해서 그런 거니까.”
“이곳을요?”
“응. 바깥만 고치는 게 아니라 이 안쪽도 많이 망가진 상태라서 말이야.”
“아…….”
들어오는 문은 다르다 해도 그 길이 같다고 한 의미를 이해한 듯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이전에 크세니아의 그림자와 만났을 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떠올린 주안이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왜 그땐 그런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순서가 있으니까.”
“순서……?”
“뭐, 순서라고 해도 바깥에서의 그곳과 안쪽의 이곳을 동시에 고쳐야 한다는 것이지만.”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말에 주안도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다는 듯 왼손을 바닥에 대고는 성흔에서 신성력을 잔뜩 꺼내었다.
그 행동과 함께 이곳을 가득 채워나가는 신성력의 파동에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놀란 듯했다.
“……너는 확실히 마를렌 그 여자보다 낫구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말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그는 그저 웃어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용들, 아니, 파사가 조금 힘들게 하고 있지?”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보다 믿고 있을 뿐이야. 아미엘이 곁에 있으니까,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거니까.”
“이미 큰일이라고요……. 파사 님이 하랑 님의 몸을 빼앗지 않나, 갑자기 신령산을 차지하지 않나, 슌 제국까지 움직이질 않나…….”
주안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정말 대륙을 넘은 세계 급의 재앙이었다.
단지 인간의 제국만 움직인 게 아니라 용이라는 파사, 그 본인까지 나선 상황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런 그를 막아선 것 역시 같은 용들.
그리고 요정의 여왕이니까.
주안이 한숨을 쉬자, 그 한숨 속에 담긴 많은 것들을 느낀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조금 미안해진 듯 쓴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주도록 해. 우리가 제대로 교육도 못 하고 세상으로 내보낸 아이라서 말이야. 파사는 뭐, 사춘기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고 있다고 보면 되니까.”
“사춘기라니…….”
용들을 아이 취급을 하는 게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비록 그림자로 남겨졌다고는 하나 용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보니, 어쩌면 부모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파사 님을 이렇게 강제로 제압하고, 원치 않는데 그분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는 게 정말 괜찮은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나도 그렇긴 해. 하지만 어쩌겠어. 그렇게 태어난 아이인걸.”
“그건 너무 제멋대로잖아요. 파사 님이 그러셨거든요.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선택하겠다고 말이에요.”
“하…….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했어? 철들었네.”
마치 대견한 아들을 생각하는 듯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방법이 없는걸. 처음부터 이 세상은 우리가 아닌 너희들을 위한 무대였으니까. 인간과 이종족을 제외한 지성과 힘을 가진 이들은 모두 떠날 운명인 거야.”
“네? 모두, 떠나요……?”
“응? 몰랐어?”
주안의 갸웃하는 모습에 오히려 크세니아의 그림자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 문을 고치고, 용들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더 이상 인간, 이종족 외의 지성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들은 모두 떠난다는 의미야.”
그리고 조용히 주안을 마주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용들뿐만이 아니라 아미엘도 마찬가지이지.”
그리고 크세니아의 그림자의 그 말에 주안이 흠칫 놀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