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4화
“우와와와~?!”
기세 좋게 달린 것은 좋았지만, 말 그대로 정말 호수에 길을 뚫어 놓은 물길이라 그런지 세냐가 만들어 놓은 길과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주안은 금세 허둥거렸다.
땅과는 달리 물컹물컹한 물의 계단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고 안 그래도 운동신경이 평범 이하에 가까운 주안에게는 중심을 잡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곁으로 어느새 날아온 세냐가 이런 주안을 매우 한심스럽다는 듯 보며 말했다.
“완전 꼴불견이네요?”
“어, 어쩔 수 없잖아. 그보다 좀 더 편하게 길을 만들어 주면 안 되는 거야?”
“이게 최선이거든요?”
주안의 작은 투정이 있긴 했지만, 세냐로서도 지금의 이게 최선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세냐가 아미엘을 제외한다면 요정들 사이에서는 독보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인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곳은 어떻게 보면 용의 영역.
게다가 드래곤들의 힘이 깃든 장소인지라 쉬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여타 다른 호수들보단 깊지 않은 장소라고는 하나 그곳에 길을 뚫고 주안을 위해서 계단까지 만들어 준 능력은 다른 마법사들이 본다면 기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주안에겐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어 그저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으, 아, 으으…….”
달려 내려가다 어느새 걸음이 느려지더니 이제는 아예 앉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떼야 할 정도로 힘겨워 보이는 주안의 모습에 세냐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오빤 다른 사람들보다 운동신경이 좀 많이 모자라 보여요.”
“어, 어쩔 수 없는걸. 그동안 뭐, 내가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기사들을 위한 훈련은커녕 기본적인 운동조차 거의 해본 일이 없는 주안이었기에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 운동이라는 것도 최근 승마 연습 정도뿐이었으니까.
다만, 그래도 그 승마 연습도 금세 익숙해져서 나름 말을 잘 타게 된 것을 보면 자신이 썩 운동능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완전 소니아 언니나 세라타 언니보다도 한참 모자라 보이는데요?”
“그 누나는 아마 웬만한 견습 기사들보다도 힘이 셀걸?”
“……뭐, 그렇게 보였지만.”
농담이 아니라 소니아는 마법사가 되지 않았다면 기사가 되어도 될 재목이긴 했다.
거기에 세라타도 나름 힘도 좋고 운동신경도 있어서 최근 피터가 눈여겨보기도 했지만, 주안은 소니아라면 몰라도 세라타에게 우악스러운 훈련 같은 걸 시키는 것엔 절대 반대를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느리게 가다간 내년쯤에나 도착하겠어요.”
“그 정도로 느리진 않거든?!”
물론 이 급박한 상황과는 달리 세냐가 보기엔 매우 한심스럽고 여유로워 보이는 주안의 모습이긴 하나 주안은 주안 나름대로 굉장히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항변에도 세냐가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더니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도와주게? 아, 세냐 너도 아미엘님처럼 나 허공에 떠오르게 해서 움직이게 해줄 수 있지 않아?”
“그것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있거든요.”
“그런 거라면 진작 좀 해주지.”
“그러게 말이에요.”
주안의 투덜거림에 세냐가 생긋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서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낀 주안이 잠시 갸웃할 틈도 없이 세냐가 손가락을 튕겼다.
“……응?”
그리고 그 순간, 세냐가 만들어 놓은 물의 길과 그 계단이 출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세, 세냐?!”
“자, 그럼 바로 갑시다.”
“뭐……?! 으아아아악~?!”
흐물거리던 물의 계단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평평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마치 미끄럼틀처럼 변하더니 어디 지탱할 곳도 없는지라 주안은 순식간에 미끄러져 아래로 쭈욱 떨어졌다.
“세냐아아아아아~!”
“오, 빠르다.”
엄청난 기세로 순식간에 바닥까지 내려가면서도 주안은 비명 대신 세냐의 이름을 불렀지만, 세냐는 그런 주안을 여유롭게 보며 뒤따라 내려갔다.
* * *
“으악?!”
중력의 이끌림에 따라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진 주안은 바닥에 처박히며 크게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러한 것은 마치 기우인 듯했다.
첨벙, 하는 소리와 작은 충격은 있었지만, 몸 어디에도 아픈 구석은 없었다.
그저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버둥거리다 겨우 몸을 일으킨 후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하아, 하아……. 으…….”
“괜찮아요?”
“안 괜찮아…….”
물을 조금 먹은 것인지 주안이 콜록거리며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다행히 바닥은 물이 조금 차 있었고, 그 전에 주안이 떨어지는 자리에 세냐가 물을 잔뜩 만들어 주안을 받아 주어서 크게 다칠 일도 없었다.
“미리 좀 말을 해줘, 세냐.”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생각은 해볼게요.”
“……생각만 할 거잖아.”
“정답.”
주안의 말에 세냐가 생긋 웃으며 윙크까지 날려주며 답했다.
이런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젖은 몸과 옷을 말릴 생각인 듯 신성력을 끌어 올려 몸을 감쌌다.
그리고 순식간에 세탁과 목욕을 끝내고 정신을 차린 주안이 보송보송해진 모습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로 보면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지만, 주안이 서 있는 이 부분은 전혀 아니었다.
세냐가 마법을 거두자 주안을 받아 주기 위해 생성되었던 물도, 그리고 주안이 미끄러져 내려온 물의 길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단해, 세냐.”
호수에 길을 뚫고, 이런 공간까지 만들어낸 세냐의 실력에 주안이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세냐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응? 아니야?”
“네.”
세냐의 마법이라 생각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아닌 듯했다.
“여기를 만든 게 누군지 아시잖아요.”
“아, 드래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것이 드래곤임을 떠올린 주안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휑하고 텅 빈 공간처럼 보이지만 저 엄청난 호수의 물을 떠받치고 있는 게 바로 마법, 드래곤의 힘이라는 것에 그제야 납득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놀란 모습을 보며 세냐가 말했다.
“사실 오빠랑 같이 오는 게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저장된 마법의 숫자만 해도 세 자리는 넘어갈걸요. 그것도 죄다 극악무도한 마법들로만 말이에요.”
“그, 그 정도야?”
세냐 역시 마법에는 한 실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드래곤에게 비교가 될 정도는 아니다.
아미엘 정도가 아닌 이상 드래곤, 그것도 다수의 드래곤들이 만들어 놓은 이 장소에 들어올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용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허락된 존재가 아닌 이상 그 누구라도 거부하는 절대적인 영역과도 같았다.
“사실 제가 만든 길도 원래 이곳에 있던, 오빠를 위한 길을 제가 잠시 열었을 뿐이니까요.”
세냐가 한 것은 그저 주안을 이용해 단단히 잠겨있는 이곳의 유일한 문을 열고 길을 보여주었을 뿐이지 세냐 본인의 힘은 아니었다.
아니, 세냐가 한 것이라면 주안이 좀 더 빠르게 내려갈 수 있게 등을 슬쩍 떠민 것과 다치지 않도록 물의 쿠션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곳은 오빠를 위한 장소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나를 위한 장소…….”
세냐의 그 말에 주안이 그 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다.
“저게 아미엘 님이 말씀해주셨던 그거야?”
“여기 이 장소에 있는 거라면 맞을 거예요.”
이 장소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이기는 하지만 주안의 눈에 들어온 그것은 아무래도 아미엘이 말했고 용들이 지키며, 드래곤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봉인지의 중심이자 몬스터를 가두어 둔 인위적인 감옥.
문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마치 네모난 상자와도 같았다.
“이게 바로…….”
주안이 조심스레 다가가 그것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살펴보자, 자신이 생각했던 상자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쓴 웃음을 지었다.
세냐의 말이나 아미엘, 그리고 용들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장소이나 정작 이 장소가 만들어지고 그런 엄청난 마법적 보호를 받는 물건치고는 좀 많이 작고 볼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주안의 키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높이와 폭을 자랑하는 정사각형의 검은 광택을 가진 네모난 상자였지만, 바로 앞까지 다가가 보니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마법진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부서진 건가.”
“오히려 싸구려 마법 같은 것에나 마법진이 겉으로 드러나지, 저 정도의 물건에는 오히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게 정상이긴 해요.”
“정말?”
“네. 그리고…… 그거 잘못 만지면 먼지가 되어서 사라질걸요?”
“웃?!”
별달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모습에 주안이 손을 뻗었다가 흠칫 놀라며 손을 황급히 거두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모습을 보며 세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지 오빤 아니지만 말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건 좀 빨리 말해줘.”
“아까도 말했지만, 생각은 해본다고 했지 말을 해준다고는 안 했거든요.”
“성격 진짜 나쁘잖아.”
남을 골려 먹는 게 인생의 재미라도 되는 듯, 세냐가 쿠후후 하고 작게 웃는 모습이 정말 밉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걸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정말 신성력, 이 성흔의 힘을 이용해서 고치면 되는 거야?”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도?”
“제 능력으로는 저 물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파악조차 불가능해요.”
“그 정도란 말이지…….”
정말 보통이 아닌 듯, 주안이 살짝 고민이 된다는 듯 표정을 굳혔지만 이런 주안에게 세냐가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아미엘 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오빠라면 가능할 거라고 하셨으니까, 절대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응. 그러면 문제없겠네.”
세냐도 세냐지만, 주안 역시 아미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금세 납득을 하며 별 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왼손을 뻗어 검은 상자와도 같은 봉인된 문에 손을 대었다.
이런 주안의 거침없는 행동에 세냐는 굉장히 의외라는 듯 주안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미엘에 대한 이런 신뢰는 요정들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아미엘을 통해 세상에 태어난 자식들과 같았기에 보내는 신뢰나 마찬가지였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이종족들은 그러지 못 하였고, 아미엘에 대해 잊기도 하였으며 그녀에게 등을 돌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몇 달을 만나지 않은 주안이 이토록 아미엘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은 의외이긴 했지만 세냐로선 꽤나 기쁜 일이었다.
“자, 그러면 시작할게.”
“그러면 저는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드릴게요.”
“응. 고마워, 세냐.”
넉살 좋게 세냐가 날아와 당연하다는 듯 주안의 머리 위에 앉자, 주안 역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미묘하긴 하지만, 아미엘만큼이나 세냐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주안으로선 이렇게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세냐는 아직 모르는 듯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