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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73화 (27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73화

“저기, 하랑 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너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구나, 주안 마르티네스.”

파사에 의해 강제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인간의 육체에 깃들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은 하랑에게도 꽤 크게 다가왔다.

태초부터 단 한 번도 인간의 모습이 되어 본 일이 없었던 하랑이었기에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주안은 이런 하랑의 모습을 보며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동방 대륙의 서생.

카르카노가 젊은 뱃사람의 이미지라면, 하랑은 동방대륙에서 부르는 서생의 이미지와 비슷하였다.

나긋나긋한 말투나 여린 이미지는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주안을 대하는 그 정중한 태도 역시 주안에게선 꽤 의외로 다가왔다.

카르카노야 워낙 넉살 좋게 다가왔기에 금세 적응이 되기도 하였지만, 사련화는 그 이미지와는 달리 사람을 마냥 싫어하기만 한 이도 아니었다.

하랑의 이런 태도나 파사를 보니, 용들도 다양한 성격과 생각을 가지고 서로 친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는 것에서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괜찮으냐.”

파사가 몸을 일으키자, 카르카노와 사련화가 이런 하랑을 부축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파사를 보며 아미엘이 조용히 묻자, 하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파사에게서 시선을 고정하였다.

“내가, 집착한다고?”

“그래. 집착이다.”

인간의 육체가 익숙하지 못한 하랑이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카르카노가 일으켜 주고, 사련화가 지탱해주니 금세 적응이 되는 듯 어느새 하랑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파사를 마주 보며 말할 수 있었다.

“너의 그 감정은 한때 이해했기에 너를 위해, 네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나는 나를 희생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하랑이 파사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네가 사랑하는 이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카르카노와 사련화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고 생각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저 이곳에 남아 이 자리를 지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론 카르카노의 눈으로, 때론 사련화의 눈으로, 그리고 때론 파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감정들을 느꼈다.

한때 하나의 몸과 하나의 감정 하나의 생각을 하였던 형제들이었기에, 그리고 오롯이 하랑에게만 허락한 것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는 정말 이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미 네가 사랑했던 여자는 없다. 그 흔적조차 희미해져 있다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아니.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그 후손이 남아 있고 그 나라가 남아 있고, 그 장소, 그 물건, 그 추억……! 나에겐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들이다.”

“파사…….”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나는 그 아이들의 곁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지켜 줄 것이다.”

파사가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그것이 나의 바람, 나의 약속이다.”

* * *

정말 강제로 떠나게 만들 생각인 듯, 아미엘의 힘으로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법을 강제로 부수려는 파사의 행동에 발끈한 사련화가 가장 먼저 파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카르카노 역시 이제 더 이상의 설득 따윈 의미가 없다는 듯 사련화의 행동에 함께하였다.

“파사…….”

단지 하랑만이 형제들의 다툼에 슬픈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파사 님에게 슌 제국의 황족은 대체 뭐죠?”

하랑의 말대로 파사의 행동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위험한 집착이었다.

그가 그 집착의 결말이 어떻게 완성된 것인지 주안은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 줄 수는 없었을 뿐이었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니 말이다.

이런 주안의 말에 하랑이 답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용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올바른 존재로 봐준 이의 후손이다.”

용은 분명 혼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이해해 주는 이들은 결국 같은 용들뿐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파사는 처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만들어진 채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하나의 존재로 만들어준 그 이의 후손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외롭고 쓸쓸할 때 누군가가 내밀어준 손길이 얼마나 소중할지, 이곳에 돌아온 뒤 깨달았기에 파사의 마음을 공감은 하였다.

하지만 공감한다 해서 그 생각에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품에 껴안고, 지켜주고 바라만 봐준다고 해서 다가 아닌데…….”

파사의 행동은 확실히 부모로서의 행동이 강했다.

그가 사랑했던 여성의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아껴주는 것은 분명 칭찬을 해줘도 모자라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아이가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릴 때나 해당이 된다.

주안이 그랬으니까.

엄마의 품에 안겨 언제까지나 그 품 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뭐든 다 해도 된다 생각했고, 뭐든 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좁은 생각과 마음으로 한 멍청한 행동들일 뿐이었다.

파사가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여성의 자손들, 슌 제국의 황가는 현재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래, 현재까지는 아니지. 하지만 다음 대는 아니야.’

실제로 이전 삶 속에서의 슌 제국은 새 황제가 옹립된 뒤 많은 문제가 뒤따랐다.

그는 폭군이라기보단 암군에 가까웠다.

차라리 폭군이 나았을 정도로 미래의 슌 제국의 황제는 멍청했고, 제멋대로였으며 민심뿐만이 아니라 황가를 따르던 절대적인 이들인 황실 중앙군까지 등을 돌리게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나와 같이…….’

주안 역시 엄마의 품에 안겨 제멋대로 행동을 하다 가장 신뢰를 하고 신뢰를 받을 이들인 가신들의 대부분이 등을 돌렸으니 말이다.

“아이를 마냥 품에 안고 아껴만 준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에요. 부모의 역할 그 아이가 바르게 크고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어야 하는 거죠.”

파사의 그 행동을 공감한다는 것은 그가 무슨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주려는 것인지, 자신의 엄마를 통해서 느꼈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 역시 자신의 엄마를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부모의 품을 벗어나야겠죠. 과거의 용들처럼 말이에요.”

용들은 어떻게 보면 세상에 그냥 내버려진 이들이다.

강하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졌다 해도 결국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고 그 누구의 조언도 듣지 못했으며, 그저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명령을 받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른다.

이미 그런 경험을 하였기에 파사는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는 그런 외롭고 쓸쓸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게 비록 자신의 아이는 아닐지라도, 자신을 일깨워준 소중한 이가 자신에게 준 사랑만큼이나. 그것이 집착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주안 마르티네스, 네 말이 맞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하랑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는 이유는 우리의 바람이었기도 하지만, 네 말처럼 더 이상 이 세상에 우리는 필요치 않은 이유가 컸다. 그리고 그러길 바랐던 것 역시, 신의 뜻이기도 하지.”

인간들, 이종족들을 품에 껴안고 보호하고 싶었던 신의 바람은 그들의 불화로 끝나버렸다.

그저 감싸주고 보듬어주고 보호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았기에, 그들 스스로가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자립을 시키는 것.

용은 일종의 보모로서 그들을 지켜봐 주었고 보호해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이제 끝난 것이다.

인간들은 이제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아니다.

이종족들 역시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한 이들도 아니다.

다툼은 있을지언정, 그것을 해결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용들은 떠나는 것이다.

“흔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들 하지. 하지만 너희들은 이제 아이들이 아니다.”

“예. 맞아요. 아이들이던 시기는 지났죠. 인간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투정을 부리진 않아요.”

뭐, 가끔 싸우기는 하지만 그것이 크게 번지거나 하진 않는다.

앞뒤 가리지 않는 아이들이던 인간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기에 서로 대화를 하고 차이를 좁히고, 타협을 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된 것이다.

“언젠가 이종족들, 아니, 엘프들에게 역시 그것을 깨닫게 해줄 거예요. 잔뜩 토라져서 집을 나갔지만, 역시 집이 제일이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미소를 지으며 농담처럼, 자신의 바람을 말해주는 주안의 모습에 하랑이나 아미엘의 주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눈앞에 있는 주안은 작고 여린 인간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미엘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하늘 위, 파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좁은 세상이 갇혀 있는 저 아이도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깨닫게 할 것입니다. 뭐라 하여도 우리는 하나였던 존재. 우리 스스로가 인제 그만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아니 말입니다.”

“그래. 그렇구나. 떠나야 할 때…….”

어른이란 그렇다.

물러설 때를 잘 알기에 어른이다.

“세냐.”

“네, 아미엘 님.”

아미엘의 부름에 주안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세냐가 냉큼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런 세냐에게 아미엘이 말했다.

“주안을 데리고 가서 이곳을 고치도록 하거라.”

“네? 아미엘 님은요?”

“나는 저 아이에게 따끔한 훈계를 해줘야 할 듯하구나.”

그 훈계라는 것이 어떤 훈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말대로 조금 따끔한 사랑의 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아미엘의 말에 하랑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그 역시 조용히 파사를 보며 말했다.

“저 역시 제 형제에게 한 마디를 해주어야겠습니다.”

그저 파사가 안타까웠기에 파사가 하려는 일을 제대로 말릴 수 없었고, 그렇기에 이런 모습이 되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주안을 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지켜봐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그 역시 알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랑이 몸을 움직이자, 아미엘 역시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 위로 떠올랐다.

대신 세냐는 호수의 수면 위로 내려오더니 손짓 한 번에 호수 아래로 길을 만들어주었다.

“저기, 아미엘 님.”

하지만 주안이 잠시 머뭇거리며 아미엘을 불렀다.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이 되느냐?”

“그게 조금…….”

아미엘의 능력은 잘 안다.

드래곤도 어찌하지 못 하는 모든 요정들의 여왕이자 이종족들의 어머니.

용들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존재.

하지만 이 장소에서의 수호룡 파사의 힘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게다가 그는 하랑의 육체마저 움직이며 카르카노와 사련화를 상대하는 것에 전혀 밀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걱정에 아미엘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믿는다. 그러니 너도 나를 믿거라.”

단순한 말이었지만, 주안은 이런 아미엘의 진심이 마음에 닿는 것을 느끼고 자신 역시 마음을 굳게 먹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볼게요.”

“그래. 잘 부탁한다.”

파사를 막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선 이곳의 뒤틀림을 제대로 고쳐내야만 한다.

용들은 이곳을 지키는 역할이지 고치고 부술 수는 없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곳을 완벽하게 고쳐 놓기만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가자, 세냐.”

주안이 겁도 없이 냅다 호수의 물속에 만들어 둔 길을 따라 내려가자 세냐가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 주안의 기세 좋은 모습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짓던 아미엘이 하랑에게 말했다.

“우리도 그만 가도록 하자.”

“예. 아미엘 님.”

그리고 아미엘과 하랑 역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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