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1화
“파아아사아아아~!”
사련화의 외침과 함께 날아가는 무형의 힘은 그 하나하나가 산을 부수고 무너뜨릴 것들이었지만 파사에 닿기 전에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불같은 그 성격답게 사련화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파사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따라갔지만, 다행히 사련화에 휩쓸려 당황하던 카르카노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만 해, 이 멍청아!”
“뭘 그만해! 이 개자식이 감히 하랑을……!”
갑작스럽게 나타나 파사를 습격한 것이야 이해는 해도 지금, 이 모습으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사련화의 힘에 산이 무너지고 호수가 출렁이면서 위험해진 것은 파사가 아니라 바로 아래에 있는 주안과 아미엘, 세냐.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하랑에게 있었다.
카르카노가 황급히 파사와 사련화의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정말 앞뒤 가리지 않은 사련화로 인해서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비켜!”
“진정하라니까!”
“진정 못 해!”
“이, 바보가……!”
하지만 카르카노가 막아선 것에 잠시 주춤했을 뿐인 사련화였지만 이내 카르카노를 피해 파사의 거체를 물어 뜯어버릴 듯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 행동에 카르카노 역시 자신의 힘을 끌어 올려 공기 중의 수분을 이용해 사련화의 앞을 막아 세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압축된 물의 장막을 기세 좋게 뚫어버린 사련화가 카르카노의 검은 몸체에 이빨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큭……?!”
사련화의 이빨이 닿기 전, 파사가 꼬리로 사련화를 후려치며 연이어 사련화의 거대한 몸 곳곳에 힘을 난사하였다.
공기가, 아니, 하늘이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사련화의 몸을 때린 그 힘은 순식간에 카르카노까지 휩쓸어내며 두 거대한 용을 내동댕이쳤다.
* * *
그 압도적인 광경에 주안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정말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자연재해였고,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마법을 쓸 필요도 없다는 듯, 그 육체가 곧 힘의 상징인 용이었고 그런 용의 육체를 강타하는 파사의 마법은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였지만,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였다.
아미엘의 보호가 없었다면 그 힘에 휩쓸려 위험하였겠지만 그러한 힘에도 모자라지 않는 존재가 바로 곁에 있어 다행스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미엘은 용의 싸움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같은 용임에도, 같은 형제임에도 이토록 차이가 나는구나…….”
그녀의 말대로 동방 대륙에선 용과 용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라는 참 쓸데없는 토론을 할 때가 많았다.
인간의 본능인지, 누가 가장 강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깃거리니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그 절대적인 존재들의 다툼은 열띤 토론을 펼치던 것과는 달리 일방적이었다.
“어……?”
그러다 문득, 주안은 파사의 힘에 밀린 두 마리의 용.
카르카노와 사련화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어?! 아, 아미엘 님……!”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두 마리의 용이 주안이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 역시 작게 찌푸리며 층층이 마법의 보호를 쌓았다.
이동하면 훨씬 편하겠지만, 이곳에서 워프는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두 마리의 용들이 떨어지기 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수면 위로 사뿐히 착지하였다.
그 모습에 주안이 다행스러워했지만, 카르카노와 사련화는 서로 이를 드러낸 채 소리쳤다.
“작작 좀 하라고!”
“너나 작작해! 대체 왜 말리는 거야!”
머리카락이 산발인 작은 여자아이, 사련화의 모습에 주안이 진짜 이 아이가 그 무시무시한 용인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세 좋게 카르카노와 다투는 모습을 보니 용은 용인 듯했지만, 이쪽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상처가…….’
카르카노는 옷이 흐트러진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파사에게 꼬리로 가격을 당한 것도 모자라 마법까지 난타당한 사련화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해도 그 상처까지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닌 듯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엄청난 마법에도 여기저기 긁히고 멍이 든 것으로 끝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응?”
이러한 상처를 보니, 주안은 마치 본능적으로 다가가 사련화에게 손을 뻗어 신성력을 이용해 그 몸을 조심스레 치료해 주었다.
주안의 이 행동에 카르카노와 다투던 사련화가 흠칫 놀라며 주안을 돌아보았다.
“아, 저기……. 상처가 나셔서…….”
사련화의 날카로운 눈매와 노란 용의 눈과 마주하자 주안이 움찔 놀랐지만, 치료하는 행동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칫.”
인간을 싫어하고, 마를렌이라는 엘프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긴 하지만…… 주안의 순수한 그 행동까지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괜찮으냐?”
“아, 예. 괜찮고말고요. 이 녀석이 이래 보여도 엄청 튼튼하거든요.”
“뭐야?!”
카르카노가 사련화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주며 웃자, 사련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미엘이 주안을 지켜주기 위해 펼쳐 놓은 마법은 어느새 카르카노와 사련화까지 감싸주고 있었다.
여전히 다투면서 투덜거리는 두 용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짓던 아미엘이었지만, 이내 차가운 눈을 한 채 시선을 위로 돌렸다.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파사와 눈을 마주하며 아미엘이 말했다.
“올려다보기 힘들구나. 내려오거라.”
“…….”
아미엘의 그 말에 파사가 잠시 아미엘을 내려다보았지만, 잠시 뒤 그 거대한 몸체가 점차 줄어들더니 금세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며 인간 모습의 파사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 역시 사련화만 달려들지 않는다면 딱히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왜 이러는 것인지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느냐.”
아미엘의 말에 주안은 사련화를 치료해주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니, 주안만이 아니라 카르카노와 사련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르카노는 여전히 파사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련화야 애초에 이해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미엘이 나선 것에는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아미엘의 말에 파사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이곳을 떠나주십시오. 이제 이곳은 제가 지키는, 저의 장소입니다.”
“나는 이곳을 고치러 온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용의 바람을 이루어 주러 온 것이니라.”
“……제 바람이 아닙니다.”
“너의 바람은 무엇이기에 우리를 거절하는 것이더냐.”
파사는 잠시 카르카노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사련화의 눈총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상유지. 지금 이대로, 변화가 없는 삶……. 단지 그뿐입니다.”
“살 거면 너 혼자 살라고, 이 자식아!”
하지만 이런 파사의 말에 사련화가 발끈하였고, 그런 사련화를 카르카노가 막아 세웠다.
다시 달려든다 해도 솔직히 파사를 제압하거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거 진짜였어?’
사련화를 막아 세우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하랑을 흘겨본 카르카노는 작게 혀를 찼다.
파사의 말처럼 용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카르카노의 앞에 해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 힘의 원천이 바다에 있었으며, 사련화에게 지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역시 그 힘의 원천이 땅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랑은 하늘의 용.
그 힘은 온전히 하늘에서 나오는 힘이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을 했던 건가…….’
하랑이 이곳을 지켜주고, 모두의 뒤를 봐주며 희생하는 것을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였기에 파사의 이런 힘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파사는 수호의 용이다.
대체 무엇을 수호하는, 지키는 용이라는 의미였을까.
단순히 파사가 인간을, 한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의무를 버리고 가장 먼저 자아와 자유를 가진 채 뛰쳐나간 용이 아니었다.
‘하랑이 아니라, 파사였어…….’
천산이라 불리는 신령산은 하늘에서 가장 가깝다고는 하나 하늘은 아니다.
이곳은 그저 지켜야 하는 장소.
그 장소를 지켜야 하는 것은 결코 하랑이 아니었다.
파사의 말처럼, 원래 자신의 자리이자 자신의 의무.
그리고 자신이 가장 강한 힘을 나타낼 수 있는 장소.
바로 이곳을 수호하는 용, 파사였을 뿐이었다.
“떠나라고? 의무를 지키겠다고 한 녀석이, 지금 그 의무를 버리겠다는 소리잖아.”
“아니. 그게 바로 나의 의무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곳을 지키는 것. 두 번 다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만드는 것.”
말 그대로 신령산에 대한 모든 것을 자신이 관리 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파사가 말했다.
“앞으로 이 신령산은 그 어떠한 존재도 다가올 수 없을 것이다. 밖으로는 슌 제국의 중앙군이 지킬 것이고, 안으로는 이 내가 지켜낼 것이니 말이다.”
“슈, 슌 제국의 중앙군이라고요?!”
그 말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주안이었다.
양 대륙 최강의 국가라고 하는 제노폴 제국과 슌 제국은 그 규모가 타 국가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 규모에 맞게 군사력 역시 남달랐고 제노폴 제국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군사력만 따져도 아스란 왕국 정도는 단독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
이러한 거대 귀족도 이 정도인데 단순 규모로만 따지면 제노폴 제국 이상이라는 슌 제국의 중앙군이 움직인다는 것은 황실이, 그리고 슌 제국 전체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봐야 하였다.
“주안 마르티네스. 너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 신령산을 정말 봉쇄할 생각이시군요.”
“그러하다.”
황실 중앙군이 움직였다면 신령산에 머물던 무사들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용들의 다툼을 보았기에 수행을 위해 머무르던 무사들이 자리를 피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슌 제국의 황실이 움직여 신령산을 철저하게 봉쇄한다는 것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 땅에 인간이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왜 그렇게까지……. 이렇게 해서 파사 님이 얻는 게 대체 뭐란 말이에요.”
“말했다시피, 나는 지금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안 된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저기에 있는 저 망가진 문, 봉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세요?”
하지만 주안의 이런 말에도 파사는 말없이 무심한 눈으로 주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이곳을, 아니, 이 땅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
그 속사정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제 아미엘도 알 수가 있었다.
주안이 이 봉인지를 고치고 완성한다면, 용들의 의무는 이제 끝난다.
두 번 다시 깨어지지 않게, 아미엘이 나설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의무는 끝나고, 문이 닫히면 용들은 더 이상 의무를 행할 필요가 없으니…… 태초에 드래곤들과 한 맹약이 실행된다. 신의 품으로 돌아가겠지.”
“멋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은 감사하였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멋대로 이 세상을 떠나라 한다면, 아미엘 님께선 응하실 것입니까?”
“…….”
“저는 거부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였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제 의지대로 행할 것입니다.”
부모를 선택할 권리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권리는 그 개인에게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파사에겐 그 권리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권리를 찾아 독립하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그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