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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69화 (26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69화

신령산은 본디 동방의 무사들이 수행을 위해 찾는 장소로 매우 조용하면서도 영험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산세가 험하여 일반적인 사람은 찾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였기에 수행을 위한 무사나 혹은 약초를 캐기 위한 약초꾼 정도만이 찾았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에게 그곳은 신성한 땅이자 삶의 터전이었고 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그곳에서만큼은 살생을 일절 금할 정도였다.

그만큼 신령산은 동방 대륙 내에서도 중요하고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지만, 최근의 그곳은 무언가 이상하였다.

“으앗?!”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주안은 몇 번인가 이런 일을 겪었음에도 크게 놀란 채 버둥거렸다.

다행이라면 지면으로 곤두박질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던 것과 주안을 포근하게 감싸는 그것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세냐가 주안의 머리 위에 올라앉았고, 아미엘은 이런 주안의 손을 꼬옥 잡아 주자 금세 차분해진 주안이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신령산……?”

분명 지면에서 높이 떠올라 있음에도 옆을 둘러보며 고개를 다시 들어야 할 만큼 높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바로 그 가장 높은 봉우리가 신령산임을 알 수가 있었고 이런 주안에게 곁에 있던 카르카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 저게 바로 신령산이지.”

“어, 엄청 높네요……. 서방 대륙에서 가장 높다는 팜벨 산도 저 산보단 낮겠어요.”

서방 대륙에도 높은 산이야 당연히 있었고 그 인근은 유명한 휴양지도 많아서 자주 놀러 갔던 주안이었기에 팜벨 산과 비교해 보아도 신령산이 더욱 높다는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까마득히 높은 그 산에 하얀 구름이 끼어 있는 모습은 대단하였으며 그보다 낮지만 수많은 산이 산맥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길 진짜 한 번에 오시다니……. 아미엘 님, 정말 대단하세요.”

“별 것 아니니라.”

농담이 아니라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의 거리를 생각하면 이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 대단한 카르카노도 바다를 이용하고 비슷한 능력을 상용하여 빠르게 동방 대륙에서 서방 대륙으로, 제노폴 제국의 황도까지 왔다고는 하나 며칠이나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미엘은 그저 손 한 번 허공에 휘젓는 것으로 순식간에 서방 대륙에서 이곳, 동방대륙의 신령산까지 한 번에 이동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미엘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자, 카르카노마저 하랑이 왜 그렇게 아미엘에 대해서 자신을 낮게 낮추면서까지 부탁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자신이 들었던 것보다 아미엘은 훨씬 더 대단하였기 때문이다.

“저기, 그런데 아미엘 님.”

“음? 왜 그러느냐?”

주안이 신령산의 정상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미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봉인지라는 게, 저기 정상…… 꼭대기가 아니에요?”

“그러하다.”

“그런데 저기 꼭대기가 아니라 왜 여기로 이동하신 거예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거리만으로도 한참을 가야 할 듯했기에 이런 주안의 물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아미엘을 대신해서 카르카노가 답했다.

“일단은 아주 중요한 장소라서 말이지. 이동에 대해서는 나름 철저하거든. 우리 용들을 제외하면 이런 마법을 통해서 하랑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히죽 웃으며 카르카노가 말을 이었다.

“몸이 가루가 되어 버릴걸. 아미엘 님은 어떤지 몰라도 너는 확실하게.”

“……진짜요?”

주안이 아미엘을 보며 묻자, 아미엘은 카르카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든 드래곤이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장소이니라. 허락되지 않은 자는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며, 더더욱 위협이 될 수 있는 마법들은 차단이 되는 장소이니라.”

“우와…….”

“뭐, 한 마디로 저곳을 온전하게 오갈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용들뿐이라는 말씀이지.”

자랑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카르카노.

하지만 그게 자랑할 거리가 되기에 주안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제가 안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한다.”

그렇기에 이제 이동에 대한 것은 카르카노가 맡겠다는 듯 그가 나섰다.

“아, 참. 사련화도 부를까요?”

“그 아이를?”

“이제 뭐, 조만간 떠날 텐데 그때까진 함께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주안과 아미엘이 하는 일이 완성된다면 머지않아 용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

보다 자유로워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역시 바라는 일이었기에 아미엘은 그들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묵묵하게 이 일을 해와 준 것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장난스럽게 말을 하지만, 카르카노 역시 조금은 쓸쓸한 듯했다.

“너는 보다 많은 인간들과 접하고 인연을 만들었다 들었다.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거나 하지 않느냐.”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게 제 생의 목표였으니까요.”

“……유쾌한 이로고.”

참으로 넉살 좋은 카르카노의 미소와 답에 아미엘도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카르카노의 모습에 주안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카르카노 님.”

“대단할 게 뭐 있나. 굵고 길게 살았으니까, 후회 따위 하는 게 오히려 사치라 생각되는 데.”

“사치가 아니죠. 짧은 삶이든 긴 삶이든, 어떻게 살았냐가 중요한 것이잖아요.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이 되는걸요.”

주안은 한 번,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후회를 하였기에 알 수가 있었다.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여 살면 안 된다.

후회한 삶은 그 끝에서 오직 절망만을 맞보며 그렇게 끝이 나는 것이다.

“언젠가 죽는다 해도, 저 역시 카르카노 님처럼 제 인생에 한 점 후회와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싶은걸요.”

“하……. 이건 뭐, 스물도 안 된 애가 아니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같은 생각이잖아.”

“그런가요…….”

확실히 겉모습만 보면 아직 성인도 안 된 나이이긴 하지만, 그 속은 나름 세상의 더러움을 많이 겪은 노인이긴 했다.

단지, 그렇다 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겪은 이라기보단 너무나 많은 후회만을 가지고 인생을 낭비한 이였지만 말이다.

“그래, 후회 없는 삶. 눈을 감을 때, 자신의 생을 되짚어 보며 후회할 것을 떠올리는 게 아닌 즐거웠던 것을 떠올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겠지.”

주안은 엄마를 원망하며 눈을 감았던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달랐다.

지금 눈을 감는다면, 아쉽긴 하겠지만 후회나 절망이 남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더 이상 이들과 하지 못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하겠지만.

‘뭐,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을 생각은 없지만.’

카르카노의 말처럼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하고 후회 없는 삶을 즐겁게 살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이곳에, 이 장소로 온 것이기도 하니까.

“자, 그러면 일단…….”

카르카노가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나가자, 대기에 분포된 수분이 뭉치더니 이내 하늘에 물로 된 글씨가 새겨졌다.

그리고 카르카노가 그 글자에 손짓하자 순식간에 어딘가로 날아 가버린다.

이러한 마법을 발현하는 모습을 아미엘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카르카노에게 말했다.

“용의 마법은 특이하구나.”

“조금 다르긴 한가요?”

“많이 다르다. 너희는 확실히 다른 방향으로, 너희들만의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었구나.”

“남겨진 게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모든 걸 스스로 다 해결해야 해서 말이지요.”

마법이라는 것도 과거의 것과 많이 달랐고, 드래곤의 남겨진 것들도 많지 않았기에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을 보다 쉽게, 자신들의 몸에 맞게 맞추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특색에 맞는, 자신들의 이명에 어울리는 것으로 발전시켰으니 말이다.

바다의 용, 대지의 용, 하늘의 용, 그리고 수호의 용.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그들의 힘의 원천,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자, 예민한 사련화 아가씨에게 신호를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우린 먼저 가도록 하지요.”

“후훗……. 그 아이는 나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과연 올 것인지…….”

“올 겁니다. 뭐, 싫은 게 아니라 조금 어려워하는 것뿐이니까요.”

“너처럼 말이더냐.”

“……저는 그냥 낯을 가릴 뿐이지요.”

카르카노가 움찔 놀라긴 했지만, 금세 표정을 풀며 여유롭게 답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이 조금 어두운 것을 보니 아직도 여전히 아미엘을 조금 어려워하는 듯했다.

그런 카르카노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아미엘이 과거에는 정말 어떤 존재였던 것인지 용에게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게 하는지 주안으로서도 조금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 * *

카르카노가 앞장섰을 땐 아미엘처럼 순식간에 이동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빠르지만, 유유히 날아가는 것이 매우 신기하였다.

세냐나 아미엘이야 날개가 있기도 하였고 평소에도 잘 날아다녔기에 매우 여유로웠지만, 주안으로선 허공에 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새처럼 움직이며 날아가는 것 자체가 매우 생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참 신기하긴 하네.’

묘한 느낌에 주안이 아미엘과 세냐, 카르카노를 번갈아 가며 보며 갸웃하였다.

빠르게 움직이면 머리카락이 휘날리기도 하고, 강한 바람이 불면 쌀쌀한 느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주안만이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다는 점이 의문스러우면서도 신기하기도 하였다.

이게 마법인지, 아니면 용의 힘인지는 몰라도 매우 편하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뭐, 지금의 우리 마법으로도 비슷하게는 가능하지만……. 더럽게 비싸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실생활에 널리 쓰일 만큼 보급이 된 것도 아닌지라, 특정한 계층 외에는 마법이라는 것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언젠가 이들처럼 마법이 발달하고 보급이 된다면, 사람들의 생활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픽 하고 웃어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말이야.’

그런 것은 똑똑하고 재능 넘치는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이니,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게 주변의 경치 구경도 하면서, 때론 신기하다는 듯 구름을 스쳐 지나가면서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멈춰라.”

“…….”

아미엘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카르카노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세냐 역시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주안만이 왜 그런지 몰라 허공에 둥둥 떠올라서 갸웃하였다.

“왜 그러세요?”

이런 주안의 말에 얼굴을 잔뜩 굳힌 아미엘이 작게 중얼거렸다.

“……피 냄새가 나는구나.”

“예? 피?!”

그리고 그 말에 주안이 깜짝 놀랐지만, 카르카노는 용의 눈을 드러낸 채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하랑…….”

다른 일행들과는 달리 높이 떠오른 그는 자신의 시야 속에 비치고 있는 산 정상의 투명하고 맑아야 할 호수가 핏빛에 물들어 있고, 새하얀 몸이 붉게 물든 채 호수에 반쯤 잠겨있는 용, 하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하랑만이 아니다.

그 거체의 곁.

검은 용, 파사가 이런 카르카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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