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8화
“가죠, 아미엘 님.”
“음? 아, 그래. 그만 집으로 가도록 하자꾸나.”
주안의 물음에 아미엘 역시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아미엘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집이 아니에요.”
“집이 아니다? 하면 세계수로 갈 생각이더냐.”
하지만 그것 역시 아니라는 듯,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동방 대륙, 신령산으로 가요.”
“……뭐라?”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과 카르카노, 게다가 교단의 일로 머릿속이 매우 복잡한 마누엘 전대 대신관마저 놀라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주안은 그러한 시선들에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에 아미엘이 갸웃하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더냐.”
“갑자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어요.”
“늦다니?”
아미엘이 갸웃하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자신의 왼손을 들어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면 안 될 듯해요.”
케들락 대신관이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아미엘을 만나러 온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에게 큰 혼란을 준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휘둘려 계속 혼란스러워할 필요도 없었고, 그의 말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는 게 주안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 결국 봉인지를 고치고 문을 닫는 것이잖아요.”
“……그러하겠지.”
여전히 인간을 미워하고, 인간에게 파멸을 안겨다 줄 봉인지. 그리고 몬스터가 쫓겨난 곳과 이어진 문.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이제 잘 안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을 이룰 수 없게끔 만드는 것.
바로 케들락 대신관의 헛된 꿈을 가지지 못 하게 그곳을 고쳐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은 절대 허약하지 않아요. 비록 엘프들보다 떨어지는 마법과 그들이 장악한 교단이 있다고는 하나, 절대 그것만으로 우리 인간들을 위협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 이상의 것.
바로 몬스터와 수많은 병마를 통해 대암흑기를 일으킨 전대미문의 사건만 아니라면 인간은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주안은 인간들의 좋지 못한 모습들을 보고 겪었고 직접 행동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꿋꿋하게 버티고 버텨 다시 일어난 것 역시 보았다.
엘프들이 무슨 짓을 꾸미든, 더 이상 휘둘릴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 전대미문의 사건이 다시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더냐. 엘프들을, 교단에 대해서 제노폴 제국에서 나서게 만들 것이더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걱정스럽다는 듯 주안에게 물었다.
주안이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제노폴 제국마저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가 현 황제였으며 어머니가 전 황녀이다.
황가를 제외하면 제국 제일의 부와 권력, 그리고 힘을 가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차기 공작임을 모두가 다 안다.
그런 주안이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제국을 움직인다는 것이 절대 헛된 망상이 아님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걱정스러웠다.
교단의 최고위층의 본 모습을 보았다고는 하나, 교단은 여전히 자신의 집이었으니 말이다.
“아뇨.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요.”
“하면……?”
“포기하게 만들어야죠.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어야겠죠.”
그리고 주안이 조심스레 마누엘 전대 대신관, 그리고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말했다.
“인간은 약하지 않고, 인간은 당신들을 잊었으며…… 인간은 더 이상 당신들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미 이종족에 대해서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게 된 상황이다.
그들에 대해 잊었다고는 하나, 결국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메데아 대족장을 통해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말했다.
“마르티네스의 주안. 너를 돕는다. 우리 달란트 부족은 너를 지지하고, 네 행동에 따라 줄 것이다. 멋대로 행동하는 것, 우리 역시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때 친우였으나, 이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작은 미련이 남았기에 주안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초대 대족장 달란트가 그리워하던 그 친우가 더 이상 나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놈이 쉽게 포기할 놈은 아닌데…….”
“케들락 대신관, 그분은 그렇겠죠. 하지만 아캄이라고 소개하셨던 그 드워프 분은 뭔가 조금 달라 보였거든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곁에서 듣던 아캄 대족장이었지만, 주안의 눈에 그는 매우 고민이 커 보였다.
케들락 대신관이 하는 말과 행동, 그 과격한 일들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주안은 느끼고 있었다.
“케들락 대신관을 따르는 것은 결국 엘프들뿐이겠죠. 아니, 모든 엘프가 또 그를 정말 따르고 있는진 몰라도 적어도 아캄 대족장이의 드워프는 아니지 싶어요.”
아무리 같은 이종족이라고는 하나, 생각까지 같을 수가 없다.
한때 같은 생각, 같은 의지를 가지고 나왔다 해도…… 한쪽이 정신 나간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욱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캄 대족장이, 드워프들이 정말 케들락 대신관이 생각하는 인간을 멸한다는 것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드워프의 본능, 본질은 결국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자랑하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생각해요. 몸에 두르고 있던 장식품만 봐도 알 수 있었거든요.”
“장식품? 그것이 왜?”
“아캄 대족장이 몸에 두르고 있던 그 장식품들 역시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니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 재능은, 결국 시기를 불러 일으켰지만 부러움도 가지게 만들었다.
그것을 빼앗고 가지고 싶을 만큼, 드워프들의 그 재능은 축복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그러한 것에 큰 자부심과 자긍심, 우월감을 느끼는 종족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어떨까.
보여 줄 존재도 없으며, 칭찬해 줄 사람들도 없다.
우러러보는 이들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자랑할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엘프들은 그런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드워프를 무식하게 취급을 하며, 모두가 장인인 드워프들 그들에겐 서로의 작품이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장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나타낼 대상은 인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미엘 님, 세냐에게 들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결국 그들도 고립되어 있는 것을 절대 반기지는 않을 거예요.”
이미 인간들이 자신들을 잊고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기만 한다면…….
“엘프들은 스스로 고립이 될 뿐이에요.”
“그들 스스로 자멸하게 만들겠다는 것이구나.”
“잊혀 있다는 것은 무섭지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스스로 도태되어 사라지기 싫다면 알아서 양지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니까요.”
고립된 채 서서히 말라 죽느냐, 아니면 양지로 나와서 살아갈 것인지.
주안은 그들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줄 생각이다.
“주의하고 경계를 하면서도, 그들이 어긋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해요. 교단에서도, 달란트 부족에서도, 그리고 제국에서도 함께 해야겠지요.”
혼자의 힘만으로 한다는 것은 자만심일 뿐.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주안의 곁에는 이런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믿는 것이고, 나설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교단은, 대신전은 서로가 독립된 단체이다. 교단의 목소리를 듣고 참고는 하여도 맹목적으로 따를 이유는 없지.”
“하지만 뜻이 맞는다면 함께 할 수는 있겠지요. 다예프가 아니라, 제국과 말이죠.”
“그래. 그렇지…….”
미소를 짓는 주안을 보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었다.
“물론 거기에 헌금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돈이네요.”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리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하…….”
그 말대로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도,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 바로 주안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이다 보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바로 그 부분을 믿고 있었다.
“예……. 대신전들을 모아만 주신다면, 뒤에서 지원하는 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 말거라. 제국의 대신전은 전부 내가 지은 것과 다름이 없고, 적어도 제국 인근의 대신전들 역시 내 목소리를 무시할 곳은 없으니 말이다.”
“든든하네요.”
그 몸만큼이나 든든한 인맥과 교단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아캄 대족장에 대해선 저나 아미엘 님도 설득하겠지만, 메데아 대족장님의 힘이 필요할 거예요.”
“내 힘이라니?”
“인간의 말보단 같은 이종족이었던 메데아 대족장님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니까요.”
“킁. 자신은 없다만, 말은 해보겠다.”
“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바로 설득을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지금의 인간 사회가 어떤지 메데아 대족장님이 보고 겪고 느끼신 것만 말씀해주시면 되니까요.”
“알겠다.”
메데아 대족장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아미엘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미엘 님은, 말씀드린 대로 저랑 같이 신령산으로 가도록 해요.”
“신령산이라…….”
아미엘이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주안의 말에 동의를 해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앗. 그러면 갈 때 저도 데리고 가주실 거죠?”
“……네 힘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지 않느냐.”
“헤엄쳐 가야 해서 힘듭니다.”
물론 빠르게 갈 수는 있지만 한 번에 슝 하고 날아가는 것과 직접 헤엄쳐서 가는 것은 전혀 달랐다.
넉살 좋은 카르카노의 말에 아미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함께 가자꾸나.”
케들락 대신관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기에, 카르카노와 함께하는 것이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럼 먼저 좀 갔다 올게요. 마누엘 신관님도, 메데아 대족장님도 갔다 와서 봐요.”
“어디 근처 공원에 놀러 가듯 하는구나…….”
그래도 그 먼 동방대륙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신령산임에도 주안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이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웃으며 답했다.
“그야 옆에는 아미엘 님도 계시고, 카르카노 님도 있으시잖아요.”
요정의 여왕에 용까지 함께다.
무서워할 부분이 전혀 없었다.
“흥. 나도 있거든요?”
“그래, 그래. 세냐도 있었지.”
물론 만만찮은 부루퉁한 채 자신을 빼먹은 것에 조금 심통이 난 세냐도 있다는 것이 든든하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