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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67화 (26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67화

단호한 그 말과 자신을 바라보는 올곧은 눈빛.

하는 행동도, 내뱉는 말도, 그 외모도…….

“주안 마르티네스. 너는 누님과 닮아 있구나.”

“예?”

뜬금없는 케들락 대신관의 그 말에 주안이 갸웃하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말을 아미엘이나 세냐는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외모가.

만남을 가지다 보니 행동과 심성,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주안은 마를렌과 많이 닮아 있었다.

케들락 대신관은 주안의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들으며 오랜만에 누님을 떠올렸지만 금세 지워내었다.

대신 그런 그를 보며 아미엘이 말했다.

“마를렌이 나를 떠난 이유에 대해선 모르겠으나 너를 떠난 이유는, 조금은 알 듯하구나.”

“……당신이 무엇을 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아미엘이 마를렌을 입에 담자 케들락 대신관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미엘이 케들락 대신관을 똑바로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너희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다.”

“…….”

“그 아이가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직접 보지는 못 하였으나, 아미엘은 많은 것을 통해 마를렌이 그러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 욕망이 가득한 인간들조차 반성하게 만들었던 일.

그리고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인간들의 평화로운 시기.

“대암흑기라는 것을 일으킨 그 죄. 마를렌은 그것을 홀로 짊어지고 너희를 떠났을 것이다. 더 이상 큰 죄를 짓게 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그런 괴로움을 가지지 않길 바라며.”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아미엘은 마를렌이 어떤 심정을 가졌을지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떨어져 만나지 못하였다고 하나, 가족으로서 함께 지낸 그 세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함께 하였기에 아미엘은 엘프들이 행한 그 행동에 마를렌이 가졌을 괴로운 마음을 그녀 역시 느낄 수가 있었다.

“너는 어이해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더냐. 정녕 그렇게 인간이 미웠던 것이더냐.”

마를렌이 행하였다고는 하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한 것이 케들락임을 아미엘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물음에 케들락 대신관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한 행동들을 직접 보고 겪으신 분께서, 이제는 인간의 편에 서서 그들을 감싸는 것을 보니 조금 우습군요.”

“이미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나는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 역시 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니더냐.”

“변했다, 라…….”

케들락 대신관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주안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케들락 대신관의 시선에도 물러섬 없이 주안은 그와 마주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 역시 변할 수 있다. 지금의 이 세상이 그러하지 않느냐.”

“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 놓았다?”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흠칫 놀랐다.

그리고 반대로 아캄 대족장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였다.

“인간의 강함. 인간의 무서움. 그것은 끝없는 욕망과 욕구, 서로 죽고 죽여서라도 빼앗으려는 멍청함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발전할 수 있었고 우리는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과격한 말이기는 하나 인간이 이종족을 누르고 세상의 정점에 오른 이유는 바로 그러한 단순하면서도 멍청한, 그리고 욕망에 있었으니 말이다.

“대암흑기가 그들의 역사를 지우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에게서 이종족이라는 이름을 지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은 되었지요.”

“…….”

좋은 수단이라는 말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나 주안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 일로 인해서 인간이 한때 정말 사라질 뻔하였는데, 그는 너무나 여유롭게 그러한 사실을 입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케들락 대신관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누님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떠나지만 않으셨다면, 이러한 번거로움도 없었을 터인데. 매우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역사를 조작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가지고 노는 것이…… 너에게는 그게 정녕 올바른 행동이라 생각한 것이더냐.”

“예. 제게는 그것이 올바른 행동입니다. 인간에게 당한 나의 가족, 나의 친우들을 위한 나의 방식입니다.”

당당한 그의 모습에 아미엘은 슬픈 눈으로 케들락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과거에도 그는 확실히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들을, 엘프들을 위한다는 그 마음이 과하였지만,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고 인간들을 습격하여도 싸울 수 없는 노인과 여자, 아이들을 해하는 법 역시 없었다.

지켜야 할 선은 지켰기에 그를 많은 엘프가 따라주었고, 그렇기에 아미엘 역시 이런 케들락 대신관을 크게 꾸짖거나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가련한 엘프, 케들락은 달랐다.

그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런 그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미쳤군.”

절대 과한 말로 들리지 않을 만큼, 모두가 공감하는 한 마디였다.

다만, 주안은 이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는 달리 조금은 차분한 모습으로 케들락 대신관에게 말했다.

“인간을 혐오하는 것은 이해했어요. 하지만, 케들락 대신관, 당신이 하는 그 행동 자체가 당신이 혐오하는 인간의 본성과 같다는 생각은 하지 못 하는 건가요?”

“그들의 욕망과 악의를 이겨내기 위해선 더 한 악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겠느냐.”

“모순이에요. 인간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보다 더한 악이 된다고요? 그래 봐야 결국 남는 건 더한 악일 뿐이에요.”

증오는 증오를 낳고 그 마지막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간은 먼저 깨달았다.

웃기게도 그러한 일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인간을 멸할 악의에 가득 찼던 엘프, 바로 눈앞의 케들락 대신관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였다.

“결국, 교단조차 그대들의 더러운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구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케들락 대신관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기는 하나, 심적으로 매우 지친 듯하였다.

“너는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이더냐. 그 끝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더냐.”

“의미 없는 질문이군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미엘의 물음에 케들락 신관이 오히려 당당하게 답했다.

“인간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있습니까?”

그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처럼 미쳐 있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 * *

“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

이미 눈앞에 있는 이는 자신이 알던 과거의 그 엘 하임 케들락이 아님을 깨달은 듯, 아미엘은 더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묻고 설득하고자 하는 생각이 사라진 듯했다.

차가운 그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나 카르카노마저 움찔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저 역시 당신에게 기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것 역시, 당신을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나고 싶었을 뿐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할 말은 이미 다 끝났다는 듯 케들락 대신관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한 가지 경고를 해드리지요.”

케들락 대신관이 자리를 떠나기 전, 아미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하려는 일은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하려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제가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뭐라……?”

케들락 대신관을 붙잡고 무언가 더 물어보려 하였지만, 그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리고 뒤이어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아캄 대족장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미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는 것이더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였기에 아미엘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그녀의 어깨에 앉아 있던 세냐가 이런 아미엘을 위로해주려 했지만, 그보다 앞서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미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걱정 마세요, 아미엘 님. 우린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돼요. 그것만 다 한다면, 모든 걸 다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니까요.”

“……그래.”

주안의 말대로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봉인지를 고치고, 문을 제대로 닫고 모든 것을 바로 잡기만 하면 끝난다.

“뭘 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듬직한 아가씨도 있고 우리 용들 역시 있습니다. 걱정 마시죠.”

듬직하다는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콧김을 뿜어냈다.

그 모습에 주안이 작에 웃어 주자, 아미엘 역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예전과는 달리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이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그 후손들이 남아 다시 곁에 서주는 것에 그녀는 기운이 난 듯했다.

“그래, 다들 고맙구나.”

그리고 그 진심 어린 말에 모두가 느끼던 불안감이 조금은 해소가 된 듯했다.

* * *

하랑은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를 바라보았다.

“파사…….”

항상 용의 형태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형제는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형상을 하며 자유롭게 지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용의 본 모습을 잊은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본 모습으로 돌아가 세상을 돌아다녔다.

단지 그것에 파사와 하랑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랑은 용의 그 본 모습을 유지한 채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행하였고 파사는 인간의 모습만을 유지한 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만 행하였다.

그리고 눈앞의 파사는,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벗어던진 용의 본 모습이었다.

“낯설게 느껴지나, 너무나 그리운 모습이로구나.”

하랑이 순백에 가까운 몸체라면 파사는 정반대의 검은 몸체였다.

하랑과 파사는 마치 쌍둥이처럼, 서로의 색만 다를 뿐 그 외형은 흡사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그리고 서로 이렇게 마주 보니, 마치 거울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이해서 그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더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해야 할 일?”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갑작스러운 파사의 모습에 매우 의아한 듯 하랑이 갸웃하였다.

“하랑.”

하지만 파사는 조용히 하랑을 마주한 채 말했다.

“너는 알고 있었느냐.”

“무엇을 말이더냐.”

“우리의 의무가 완성되면, 그것이 곧 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택권이 없는 종말. 너는 알고 있었느냐.”

“알고 있었다.”

“…….”

하랑만이 유일하게 그 의무를 이어 나갔고, 그렇기에 보다 많은 것을 안다.

아니, 알고 있었기에 그 혼자만이 스스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의무를 지켜 나갔다.

다른 형제와는 달리, 그만이 모든 것을 안다.

하랑의 답에 파사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떠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며,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 방법은 있다.”

“방법이 있다……?”

알 수 없는 파사의 말에 하랑이 의아한 듯했다.

그리고 무언가 파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느꼈지만

“우리의 의무가 끝나지 않으면 된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가능하다.”

파사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파사…….”

“그리고 찾아내면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희들이 떠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말에 따라주길 바란다, 형제.”

하지만 하랑은 이런 파사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였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는 상태였다.

“거절한다. 형제들의 바람은 의무를 벗어나는 것이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에 남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절한다. 파사.”

“…….”

그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가졌단 단 하나의 바람.

이 세상을 벗어나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바람이 곧 이루어진다.

그것이 의무이자 자신들이 태어난 이유.

유일한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파사에게는 그것은 자유가 아닌 속박일 뿐이다.

하랑의 거절에 파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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