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6화
주안의 드워프라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작은 노인에게 향했다.
갑작스러운 시선 집중에 그가 당황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케들락 대신관은 그저 조용히 이들 중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엘 하임 케들락이 아미엘 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이런 케들락 대신관의 행동에 곁에 있던 노인 역시 조용히 아미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칸데 아캄이 아미엘 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칸데……?”
아캄 대족장의 말에 주안이 잠시 갸웃하였다.
낯이 익은 이름이라 그런지 곰곰이 생각에 빠졌지만, 그보다 앞서 아미엘이 먼저 아캄 대족장에게 물었다.
“칸데의 자손이더냐.”
“예. 그분의 핏줄을 잇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미엘에게 고개를 숙인 채 공손히 답하는 노인, 아캄 대족장의 모습은 조금 이상하긴 하였지만, 그가 진심으로 아미엘을 대하는 것을 주안은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 다르게 묵묵히 서서 차가운 눈으로 아미엘을, 그리고 주안을 흘겨보는 케들락 대신관의 모습과 완벽히 상반되어 있었다.
“그만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으시지요.”
그런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담담하게 그에게 앉을 자리를 권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적대감까지 묻어나는 시선과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케들락 대신관이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자, 뒤이어 아캄 대족장 역시 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주변을 훑어보던 케들락 대신관은 자신에게 향하는 여러 감정을 느끼며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단 두 사람과의 만남을 바랐는데, 참으로 많은 이들이 나오셨군요.”
“불만이시오?”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누엘 신관님.”
“…….”
여유로운 케들락 대신관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모인 많은 이가 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이 남자가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을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한 가지만 묻겠소.”
“말씀하시지요.”
“……진정 그대는, 다예프의 신관들은 모두 엘프이오?”
아미엘이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고, 주안이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다.
순수하게 마누엘 전대 대신관, 그 혼자만의 궁금증이었고 교단의 사람으로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물음에 케들락 대신관이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귀를 가리고 있던 긴 머리카락을 살며시 들어 보였다.
“허허…….”
그리고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긴 귀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궁금증은 해결이 되었습니까.”
“…….”
해결은 되었다.
하지만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예상은 하였으나 직접 확인하는 것과는 다른 듯, 오랜 삶을 살아가며 쌓아 온 그러한 노련함조차도 지금의 충격은 다 해소해 주지 못 하였다.
“어이, 그보다 아저씨.”
‘아저씨?!’
대뜸 카르카노가 턱을 괸 채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주안은 꽤 당황하였다.
세냐나 메데아 대족장에겐 아가씨라고 하더니, 케들락 대신관에겐 아저씨라니.
주안으로서도 황당할 수밖에 없는 카르카노의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케들락이라는 그 엘프구나. 사련화가 널 만나면 씹어 먹겠다고 벼르던데 말이야.”
“다행히 같이 오지 않으셔서 그럴 일은 없을 듯하군요.”
“나도 널 씹어 먹고 싶기는 한데 말이야.”
“…….”
카르카노의 말에 케들락이 작게 웃어 주었다.
그 미소에 넉살 좋아 보이던 카르카노 역시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케들락이야 모든 용이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에 나오는 웃음이긴 하였지만, 카르카노 입장에선 그게 아닌 듯했다.
“케들락.”
하지만 이런 날카롭게 서 있는 분위기를 아미엘이 나서서 일순간 잠잠하게 만들었다.
“마를렌이 왜 그랬던 것이더냐. 너라면 알고 있지 않느냐.”
그 말에 인간도, 용도, 엘프와 드워프, 오크나 요정까지.
모두의 시선이 아미엘과 케들락 대신관에게 향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났음에도, 아미엘 님에겐 여전히 우리라는 존재들보다 마를렌, 누님에 대한 것밖에 없으신가 봅니다.”
서로가 불편한 관계로 틀어졌다고는 하나,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 대해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이 마를렌이라는 케들락 대신관이 아미엘을 노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게 그리도 궁금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드리지요.”
아미엘 역시 자신이 한 행동에 케들락이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케드락 대신관은 그런 말 따윈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먼저 말했다.
“누님께선 당신이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당신에 대해 힘들어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힘들게 하였다……?”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아미엘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세냐의 시선이 곱지 않게 변했고, 주안 역시 케들락 대신관을 노려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어 나갔다.
“누님이, 우리가 떠난 이유를 궁금해하셨습니까? 당신은 우리를 품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지요. 우리는 노예도 아니고 당신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미엘이, 자신이 한 행동은 그저 그들 모두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을 해주고 싶었고, 케들락 대신관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다만, 그럼에도 아미엘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크세니아의 그림자 역시 그랬다.
이런 아미엘을 보며 케들락 대신관이 한 마디를 해주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강요한 당신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억압하던 존재일 뿐입니다.”
그 말대로 정말 자신이 엘프들을, 이종족들을 억압하였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떠난 것일 뿐입니다. 당신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위해서.”
담담한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그 누구도 뭐라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아니, 주안이 이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려고 하였지만, 주안보다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헛소리하지 마.”
“세냐…….”
바로 세냐였다.
그리고 이런 세냐의 모습에 주안은 처음으로 세냐가 진심으로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마를렌을 부추겨서 아미엘 님을 떠나가게 만든 게 네 짓인 거 모를 줄 알아? 그것도 모자라 아미엘 님을 쫓아내게 만든 것도 네 짓이라는 거 다 안다고!”
“누님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선택은 개뿔.”
하지만 세냐는 오히려 더 새초롬해져서 케들락 대신관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마를렌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 같아?”
“누님은 지금도 여전히 신뢰를 받나 보군.”
“신뢰가 아니라 너라는 녀석을 나는 잘 알거든?”
한때 엘프와 함께 살아가고, 그 어떤 이종족보다 가깝게 지낸 것이 요정들이다.
한집에서 함께 살아갔기에, 그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았다.
세냐의 경우 아미엘의 곁을 지켰던 아이인 만큼 그녀와 가깝던 마를렌과 케들락과의 인연은 그 어떤 요정들보다 깊었으니 말이다.
이런 세냐의 눈총에도 케들락은 여유로웠고, 그 모습에 세냐가 발끈하며 소리치려 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메데아 대족장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억압과 속박…….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지. 그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
“메데아 대족장님…….”
그녀의 이런 말에 주안이 적잖이 놀랐으며, 아미엘의 표정은 그만큼 어두워졌다.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그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달란트 부족인 만큼 케들락 대신관의 그 말을 이해한다는 듯했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은 아미엘에게 그 부분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닌 듯, 오히려 케들락 대신관을 더욱 쏘아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부족은, 초대 대족장이신 달란트 님은 너희를 따르지 않은 것이냐.”
아미엘을, 세계수라는 이종족들의 유일한 그 땅을 떠난 것은 바로 엘프와 드워프들이다.
그 누구보다 꿋꿋하게, 이미 잊어버린 자신들의 정체성이었고, 아미엘이었으며, 친우라던 엘프와 드워프 모두를 잊었음에도 달란트 부족은 그 자리에 남아서 기다렸다.
언젠가 그들 모두가 돌아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는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이 싫다. 누군가가 우리 위에 서서 명령하려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하나이며 가족이기에, 대화를 나눈다.”
달란트 부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운명공동체였다.
제안하고 가장 앞에서 나아가며 이끌어 가주는 존재, 대족장이 있을지언정 그의 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말과 처사가 부당하다면 언제든 반발을 하였고,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때론 싸워서 자신들의 의지를 내비쳤으며 그것이 수용된다면 다른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은 채 따라준다.
그런 달란트 부족이, 초대 대족장이 정한 것이 아닌 그러한 본능을 가진 이들이 아미엘이 자유를 억압하고 보호라는 명목하에 족쇄를 채웠다면 다른 그 어떤 이들보다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떠났어야 하였다.
“우리가 그런 취급을 당하였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떠났을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남았다. 그것은 결국 정원사님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메데아 대족장의 진심 어린 그 말에 아미엘은 적잖이 감동한 듯했다.
그녀의 모습에서 오래전 이미 대지의 품으로 돌아간 달란트의 모습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너희가 떠난 것은 결국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지, 정원사님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지 말라.”
“저 역시 메데아 대족장님의 생각과 같아요.”
그리고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주안이 나서서 말을 더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우리 가문에 남겨진 마를렌 님에 대한 것은 그분만큼 정이 많았던 분은 없다는 사실이에요.”
비록 마를렌에 대해서 직접 곁에서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아미엘과 세냐를 통해서 전해 들었던 마를렌과 가문에 남겨진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케들락 대신관은 주안의 말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겪은 것은 나였다. 네 가문에 남겨진 이야기보다, 더욱 오랜 시간을 함께하였던 것이 바로 우리였다.”
“하지만 그런 마를렌 님은 당신들을 떠나셨죠. 아닌가요?”
“…….”
주안의 말에 케들락 대신관이 입을 다물자, 주안은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저는 당신을 절대 믿지 않아요.”
“실망하였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던 가족이, 친우가 이딴 존재였다니.”
주안만이 아니라 메데아 대족장 역시 크게 실망하며 케들락 대신관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