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5화
페트롤 대신관을 만난 후 짧게 이야기를 나눈 뒤 응접실로 안내된 주안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응접실 안으로 들어온 거구의 신관에게 주안은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오셨어요, 마누엘 신관님.”
“그래. 연락하기도 전에 먼저 왔구나.”
“아, 그게…….”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왜 일찍 온 것인지 대충 알겠다는 듯 아미엘을 보며 말했다.
“이런 일로 이곳까지 불러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니다. 나의 일이기도 한 일이니 괘념치 말라.”
담담한 아미엘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 역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주안과 함께 온 사람들을 둘러 보다, 카르카노를 보며 갸웃하더니 주안에게 물었다.
“메데아 대족장은 이해하는데, 이 남자는 누구더냐?”
아무래도 처음 본 카르카노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듯싶었다.
메데아 대족장이야 크게 관련이 되어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 역시 크게 상관이 없다 싶었으며, 세냐야 아미엘의 가장 가까운 아이니 그 역시 별로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처음 보는 카르카노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주안이 말했다.
“이분은 그러니까, 카르카노 님이세요.”
“카르카노? 네 집안사람이더냐?”
“아뇨. 그게…….”
용입니다. 동방 대륙의 전설적인 생명체이며, 절대자이죠…… 라는 말을 꺼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주안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갸웃하자, 오히려 카르카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에게도 강한 바다의 냄새가 나는구나. 게다가 신의 아이라니. 마음에 들었어.”
“나는구나? 마음에 들어?”
웬 어린놈이 반말을 해대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오랜만에 근육을 꿈틀거리며 크고 단단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주안이 움찔 놀랐지만, 카르카노는 오히려 여유롭게 말했다.
“소개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카르카노. 너도 바닷사람이라면 들어는 봤을 것이다.”
“카르카노, 카르카노…….”
그야 한때 마르티네스 공작령을 돌아다니며 검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벡브란 전대 공작의 검술 스승이기도 하여 항구도시인 마를렌에 꽤 오래 머문 경험이 있어 바닷사람이라는 게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카르카노의 그 말에 이상하다는 듯했지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다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설마, 해룡이라 불리는 그 카르카노…….”
“정답이다.”
조금은 우쭐해진 듯 카르카노가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었다.
아미엘의 앞에 서면 작아지긴 하지만, 인간들 앞에서는 한없이 높은 존재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이런 카르카노의 바람과는 다르게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세 침착함을 되찾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을 보며 물었다.
“왜 용이 여기에 있는 것이더냐.”
“사정이 좀 있었어요. 실은 어제 갑자기 찾아오셨거든요.”
“사정? 어제?”
뭐라고 설명을 할까, 고민하긴 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기에 어제 있었던 카르카노와의 대화를 빠짐없이 그에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은 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동방의 용들도 너의 일에 매우 관심이 큰가 보구나.”
“그런가 봐요. 무려 용들이 저를 지켜준다고까지 했으니까요.”
“용들의 보호라……. 마치 슌 제국에 내려오는 전설과도 같구나.”
“그거 전설 아닌데……”
“응?”
“아, 아니에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슌 제국이 용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저 전설이고 재미난 이야깃거리일 뿐이지만 진실을 아는 주안에게는 꽤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무려 하나도 아닌 모든 용이 지켜준다는 것은 실로 엄청나고 대단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면 하나만 묻겠소만.”
“응. 뭐를?”
“다예프에서 온다는, 엘프를 만나면 당신은 어쩌실 생각이시오?”
“글쎄다. 어떻게 해야 한다…….”
카르카노 역시 자신들을 고생시킨 엘프를 만나고 싶지만, 이미 죽은 이였고 관련된 이를 만나서 뭔가 따지기도 조금 그렇다.
단지 이러한 고생을 시킨 이유나 좀 듣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저 하찮은 이유라면…….
“일단은 왜 그랬는지 이야기나 좀 들어 봐야겠지. 그거 때문에 따라온 거기도 하니까.”
“그렇소?”
그러면 다행이긴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용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고, 그런 용이 황도에서 날뛴다는 상상을 하니 아무리 대단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라 하여도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는 아미엘도 있다 하지만, 카르카노가 그녀에겐 힘도 못 쓴다는 사실을 모르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걱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긴 하네요.”
“음? 뭐가 말이더냐.”
주안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게 말을 하자 모두가 갸웃하며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 집중에 주안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세상의 모든 이종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 같잖아요. 인간, 엘프, 요정, 오크, 용……. 그리고 혼혈.”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리킨 주안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드워프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모든 종족이 다 모이게 돼요.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확실히 주안의 말대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종족이 겹치는 이가 없다 봐도 무방하였다.
순수한 인간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었고, 그리고 요정은 세냐와 요정이라 보기도 힘든 능력을 지닌 모든 요정의 어머니이자 여왕인 아미엘.
그리고 잊혔지만 이종족인 오크인 메데아 대족장과 드래곤을 부모로 두고 있는 용.
곧 도착하게 될 엘프와 그런 엘프와 피가 조금이나마 섞여 있는 혼혈인 주안.
모두가 제각각인 종족들의 대표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구나. 확실히 네 말대로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모인 자리로구나.”
아미엘 역시 주안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도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있었고, 그리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자리인 듯했다.
“……예전에도, 아주 오래전에도 이러한 자리가 있었지.”
“아미엘 님…….”
세냐 역시 무언가를 느끼는 듯했다.
“나의 친우, 나의 가족, 나의 아이들…… 한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함께 있었었지.”
인간과의 분쟁으로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 전,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용이든, 요정이든…….
모든 이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니 아미엘은 씁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꿈과도 같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러한 일이라 생각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의 모습을 보던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메데아 대족장님의 달란트 부족도, 엘프들이나 드워프도 다시 다 같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 되죠.”
“앞으로도, 라……. 그래. 그렇게 하면 되지…….”
엘프와의 화합까지 바라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주안은 아미엘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양지로 끌어 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드워프 역시 찾아내고 싶었다.
아미엘을 위한 것도 있지만, 메데아 대족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조금씩, 천천히. 급하게 하지 말자.’
주안은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충분하고, 많은 이들이 도와주고 있으니 급하게 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혼란을 줄이고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주안의 역할은 정말 거기까지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
그런 것은 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자신이 할 것은 아니다.
수준을 잘 알기에, 거기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니 말이다.
* * *
신관 한 사람이 들어와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귓속말로 뭔가 말을 전하더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표정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구나.”
그의 말에 주안 역시 잔뜩 긴장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으고 아미엘 역시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잠시 뒤, 페트롤 대신관과 함께 새하얀 신관복을 걸치고 있는 한 남성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무척이나 젊은 남성이었지만,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나 그 외모만 본다면 여성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
단지, 그 차가운 표정이나 눈동자는 대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 보였다.
‘이분이…….’
서로가 말이 없었고, 일행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나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든 이종족이든, 감정에 매우 민감한 생명체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과 이종족들을 보아 온 주안으로선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나타내는 이들을 접해왔기에 이런 케들락 대신관의 모습은 낯설고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케들락…….”
아미엘은 이런 그를 입에 담으며 바라보았지만, 케들락 대신관의 시선은 올곧이 그녀에게만 향해 있지는 않았다.
“응?”
그러다 문득, 주안은 그와 함께 들어 온 인물에게 시선이 갔다.
페트롤 대신관이야 눈치가 빠르기에 케들락 대신관을 이곳으로 안내해준 뒤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빠져나간 뒤였다.
하지만 그런 페트롤 대신관 보다도, 마누엘 전대 대신관 보다도,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의 모습에 주안은 의아했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나이답지 않은 흉악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졌다고는 하지만, 이쪽의 노인도 만만치 않았다.
다만, 이쪽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아니며 매우 단단한 돌을 연상시켰다.
게다가 얼굴의 반을 덮는 덥수룩한 수염이나 구릿빛에 가까운 피부색, 이곳 중남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복장과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매우 고급스러운 장신구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수수해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다른 이들보다는 잘 아는 주안의 눈에는 보통의 물건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인의 키가 매우 작다는 점이 주안의 시선을 끌었다.
키가 작은 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안을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미엘의 부탁으로 이종족에 관한 여러 가지를 조사하던 것 중 보았던 무언가가 주안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설마…….”
작은 키. 많은 수염. 단단한 근육과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그리고 그를 재차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드워프……?!”
바로 이종족, 드워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