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3화
“용?!”
주안의 소개로 카르카노를 만나게 된 세냐는 주안의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런 세냐의 모습에 카르카노가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반가워, 요정 아가씨.”
“아, 아가씨…….”
그에게 여자란 모두 아가씨인 듯했지만, 세냐는 처음 들어보는 말인지라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세냐가 소리쳤다.
“아니, 그보다 용이 여기 왜 있어요?!”
“으응, 그게 그러니까…….”
“일 때문에 온 거지. 그보다 요정들은 이 아가씨처럼 다들 귀엽게 생긴 거야?”
“귀, 귀엽……?!”
아미엘을 몰래 훔쳐보기는 하였지만, 요정을 직접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지 카르카노도 세냐를 매우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만, 그가 하는 말 자체가 뭔가 조금 철 지난 바람둥이들의 말 같아서 주안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세냐는 그게 아닌 듯했다.
“흐, 흥. 처음 보는 아가씨한테 귀엽다니. 무례하잖아요.”
“아, 그런가. 미안해.”
“뭐, 한 번쯤은 봐주겠지만…….”
토라지듯 고개를 돌렸지만, 세냐의 볼은 발갛고 입가에도 묘한 미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왜요.”
“아니. 왠지 나한테만 까칠한 것 같아서.”
다만, 주안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부루퉁해지며 볼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였다.
“그보다 일이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 그게……. 실은 하랑 님의 부탁으로 날 좀 알아보러 오셨다고 하셨어.”
“하랑? 아, 그 궁룡 하랑…….”
아미엘이 하랑과 만나고 온 것은 세냐 역시 들어서 잘 알고 있었고 잠시 갸웃하며 카르카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세냐의 시선에 순간 아차, 한 듯 카르카노가 잽싸게 말했다.
“아, 내 소개가 늦었네. 난 카르카노. 다들 해룡 카르카노라고 불러.”
“헤에, 아저씨가 그 인간들에게 코 꿰여 산다는 그 용이셨어요?”
“아저…….”
세냐에 대해 좋게 생각하던 카르카노도 순간 움찔 놀라며 눈을 가늘게 뜨며 세냐를 빤히 바라본다.
“왜요?”
“아냐…….”
다만, 역시라고 할까.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은 카르카노 뿐만이 아니라 세냐 역시 마찬가지라는 듯 주안을 대하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왠지 그 모습에 주안은 안심한 듯 작게 미소를 지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 아저씨 데리고 아미엘 님을 보러 가실 생각이세요?”
“아, 그건 아냐.”
“네? 아니에요?”
주안이 그를 방으로 데리고 온 것도 그냥 세냐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였고 또 세냐와 함께 카르카노가 바라는 대로 황도 구경이나 좀 시켜 주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
그리고 카르카노가 아미엘을 만나기 꺼리는 것을 들었기에 만나러 가는 것은 내일, 주안 혼자일 뿐이지 그와 함께는 아니었다.
결국, 아미엘이 이곳으로 오면 만나는 것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다.
세냐가 갸웃하며 카르카노를 빤히 바라보자, 그 시선에 카르카노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용까지 시선을 피하게 만들다니……. 세냐 대단해.’
주로 세냐를 상대하는 게 주안이라 그런지 카르카노가 세냐와 시선을 나누다 금세 피하는 것을 이해는 하면서도 그 대상이 용이라는 것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곳에 온 이유는 대충 끝나긴 했는데,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으시다 하셔서.”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갸웃하는 세냐를 보며 주안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런 세냐를 손바닥 위에 올려주며 말했다.
“황도 구경.”
“세상에……. 무슨 할 일이 그렇게도 없으면 그런 걸 해요?”
“관광은 매우 중요한 거라고, 요정 아가씨.”
“아, 예. 그러세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세냐의 표정이 매우 어이없다는 듯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시선 역시 한심하다는 게 가득하였기에 주안이나 카르카노나 식은땀을 흘리며 세냐의 시선을 애써 피할 뿐이었다.
“내일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긴장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황도 구경을 다 하시고 말이에요. 세상 참 좋아졌어요. 오빠도 신경이 둔감함을 넘어서 없어지신 것 아니에요? 황도 구경시켜 달라고 그대로 해준다니 말이에요.”
“미, 미안…….”
엄마에게서도 듣지 못한 잔소리를 세냐에게서 들으니, 주안은 뭔가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괴로웠다.
그리고 이런 잔소리가 주안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카르카노에게도 향하였기에 그 역시 새파랗게 질린 채 주안에게 말했다.
“……취소할게. 그보다 여기 화장실 어디 있어?”
“화장실은 왜요?”
“토하고 싶어졌어.”
“……잔소리 좀 들었다고 그렇게나…….”
“그냥 육지에 오래 올라와 있으면 가끔 그래.”
“그러고 보니 물 밖으로 나온 오징어같이 보이긴 하네요. 3일 정도 물 밖으로 꺼내 놓으면 다 저렇게 변하던데.”
“…….”
‘해봤던 거야?’라는 말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새초롬한 세냐의 모습과 그 눈을 마주하고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
서방 대륙에서 제노폴 제국의 위상은 대륙 제일의 국가이자 기사의 나라. 그리고 서방 대륙의 최강국.
이견 없이 한목소리로 말을 할 정도로 제노폴 제국이 서방 대륙에서 가지는 위상은 남달랐다.
서방 대륙 남부와 동부, 중부를 아우르는 넓은 국토와 동방 대륙과 이어지는 유일한 바닷길을 보유하여 이곳을 오가는 수많은 이로 인해 얻어지는 엄청난 부.
국토가 넓은 만큼 수많은 자원을 소유하였고 강력한 황실의 힘으로 인하여 집중된 권력은 제국 내에 큰 잡음을 일으키지 않게 만든 채 평화롭게 이어나가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노폴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면 동방 대륙의 슌 제국이 될 것이다.
제노폴 제국만큼의 역사는 없다고 하나 단일 국가로선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제노폴 제국과 마찬가지로 강한 황실의 힘을 가진 슌 제국.
언뜻 보면 제노폴 제국과 비슷한 형태로 국가가 운영된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슌 제국의 황실은 확실히 강하나 그뿐이었다.
황실의 힘이 집중된 황도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에 대해선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나 그 영향력을 벗어난 외곽의 국토는 그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국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아니, 동방 대륙 전역에서 나타나는 요물이라는 생명체로 인해 자체적인 무력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니, 황실의 통제와 영향력이 집중된 지역을 벗어나면 여러 군벌에 의해 제국이 움직이고 있다 봐도 무방하였다.
황실에 해가 되는 일만큼은 그 누구도 하지 않고, 그러한 일만 하지 않는다면 황실도 적당히 눈을 감아 주니 중앙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는 여러 군벌에 의해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요물이라는 존재만 없었다면 강력한 황권과 국토, 군사력과 자원을 바탕으로 동방 대륙 전체를 집어삼켜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요물이라는 존재가 더 큰 혼란을 막고 있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슌 제국 황실 내에서도 아는 이들이 극히 드물고, 비밀스러운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이가 있었다.
바로 파사였다.
“누구냐.”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장식품처럼 보이는 투명한 수정구에 빛이 반짝이자, 파사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곳을 노려보았다.
마법을 사술이라 폄하하며 배우는 것조차 금하는 동방 대륙이긴 하나, 통신이라는 이 마법만큼은 배척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 서방 대륙에서 통신용 마법 수정구를 사들이고 마법사들까지 초빙할 정도로 이 부분에서만큼은 수용하는 형태였다.
그의 한 마디에 수정구의 빛이 허공으로 모이더니 순식간에 한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노려보다 파사가 허공에 손짓하자, 수정구 위로 비치던 사람의 모습이 이내 자신의 책상 앞으로 이동하였다.
“어떻게 이곳에 통신할 수 있었던 것이냐.”
그와 통신을 할 수 있는 이는 슌 제국의 황제와 그의 직계 가족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파사가 원할 때, 혹은 급박한 일이 있을 때나 가능할 뿐 이렇게 일방적인 형태는 아니다.
게다가 이 통신은 슌 제국 내에서 오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파사의 기분은 매우 불쾌해졌다.
이러한 파사의 기분을 통신구 너머로도 알겠다는 듯 허공에 나타난 한 사람이 고개를 숙여 사과의 말을 먼저 올렸다.
-무례를 용서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누구냐고 물었다.”
파사의 냉랭한 말에 고개를 든 그가 조용히 말했다.
-제 얼굴을 잊으셨나 봅니다.
“…….”
흐릿하던 모습은 파사의 힘으로 인해 보다 선명해졌고, 그 귀에 익은 음성과 선명해진 모습에 파사가 잔뜩 찌푸렸다.
“그때의 그 엘프로구나.”
-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파사 님.
“……엘 하임 케들락…….”
새하얀 신관복을 차려입은 남성, 케들락이 다시 조용히 고개를 숙여 파사에게 인사를 하였다.
“잘도 그 더러운 낯을 내게 보이는구나.”
-…….
파사의 기세는 마법 통신구 너머의 케들락 대신관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을 줄 정도로 날카롭고도 살기등등했다.
만약 그가 파사의 앞에 진짜 몸으로 서 있었다면, 그 기세만으로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용이라는 생명체의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이는 없으니 말이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용서라…….”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파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케들락 대신관을 날카롭게 날이 선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들이 아직 살아있는 것은 나의 아이를 살려주었던 이유, 그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한 말을 잊었나 보구나.”
-잊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았지만 이렇게 나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많이 우습게만 보였나 보구나.”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파사가 용의 눈을 드러내며 살벌하게 웃어주며 말했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나면 네 녀석과 네 녀석의 일족을 모조리 찢어 죽이겠다는 나의 경고가 매우 하찮게 들렸나? 엘 하임 케들락.”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헛소리.”
파사가 조용히 책을 덮으며 케들락 대신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케들락 대신관은 그저 묵묵히 그런 그에게 말했다.
-성흔이 필요한 날이 언젠가 또 올 것입니다.
“그 성흔이라는 것은 이제 네놈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성흔은 본디 신의 힘.
기적을 행사하는 능력을 가진, 제한적이나마 용이라는 절대자를 아득히 뛰어넘을 수 있는 신의 능력이다.
하지만 용에게는 그러한 힘이 필요치 않다.
용은 인간과는 다르니 말이다.
단지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용에게는 달랐다.
“그렇기에 이제 네놈들을 치워버릴 이유가 되었다, 생각하여도 될 것이다.”
-…….
“인간 세상을 어지럽힌 죄. 곧 받으러 갈 터이니 기다리거라.”
-그 이전에 하셔야 할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
케들락 대신관의 말에 파사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파사가 그러한 행동을 하든 말든 케들락 대신관이 말했다.
-곧 문이 닫히고, 용들은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나의 형제들이 떠난들, 내가 슬퍼할 것이라 보는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고 파사에겐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케들락 대신관은 이런 파사를 보며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강제로 떠나게 될 터. 파사 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들과의 작별을 생각해두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헛소리하지 말라 일렀다.”
-제 누이께선 참으로 많은 것을 아시고 계셨지요. 어떻게 보면, 용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셨다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누이라는 그 말에 파사가 멈칫했다.
엘 하임 마를렌.
드래곤의 친우라는 아미엘과 가장 가깝던 이였으며, 신에게 선택받은 최초의 존재이자 자애의 성흔, 열쇠로 선택을 받은 엘프.
그녀를 떠올리면 이가 갈리나, 케들락 대신관의 말리 틀리지는 않았다.
신은 드래곤에 의해 만들어진 용들보다 많은 것을 준 존재가 바로 엘프, 엘 하임 마를렌이었으니.
-문이 닫힌다는 의미. 그것은 곧 이 세상, 이 대륙에서 인간과 이종족을 위협할 모든 것을 배제한다는 뜻.
그리고 이런 파사의 모습에 케들락 대신관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들은 스스로 떠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