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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62화 (26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62화

주안의 시선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을 느낀 것인지 카르카노가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뭘 그렇게 불쌍하게 보냐? 근데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우리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는 인간이 나올 줄이야.”

“……죄송합니다.”

“아냐. 오히려 기분은 좋은데. 우리를 전혀 다른 생명체로 보고, 언제나 올려다보는 다른 인간들보단 훨씬 나아.”

아무리 친근하게 다가간다 해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게 존재한다.

카르카노는 항상 그것을 느꼈고, 그렇기에 더욱 인간들에게 다가가 그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자 하였다.

언젠가 사라질 자신이 인간의 위에 서 있는 존재이자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생명체가 아닌, 인간의 곁에 서서 함께 해주었던 존재로 인식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오히려 안쓰럽다는 듯 바라 봐주는 주안의 시선이 그에겐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뭐 쫓겨나는 게 아냐. 우린 우리 일을 끝내면 바라던 대로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려는 것이니까.”

“바라던 곳이요?”

“응. 저세상.”

“…….”

“반은 농담이긴 했는데, 재미없었나 보네.”

“설마 반은 진담이었다고요?”

“응.”

세냐보다 오히려 소니아와 가깝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정말 상대하기 힘든 용이라는 생각이 주안의 머릿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반은 진담이라고 하시면, 정말 저세상…… 가시는 게 바람이시라는 말씀이세요?”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신의 품…….”

주안은 카르카노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뒤 상상도 하지 못 할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 명령을 수행한 끝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

“어째서 죽는 게 바라는 것이라는 말씀이세요?”

“말했다시피, 저세상이라는 건 반쯤 농담이라니까. 뭐, 죽음이라는 게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하지만…….”

“신의 품으로 간다는 게 꼭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니야.”

“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 다른 삶, 그런 것이라는 말씀이세요?”

“음……. 그건 비슷하려나.”

죽음은 곧 끝이 아니다.

교단이 항상 하는 말이며, 현생의 끝은 이후 신의 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며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주안은 그러한 말을 믿지 않았었다.

과거에는 확실히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의 끝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무수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그러한 죽음을 경험하고 신의 품이 아닌, 과거라는 지금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자신에겐 그 말이 잘 어울리지 않나 싶었다.

“우리의 임무가 완성된다면, 이전의 드래곤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육체를 벗어나 자유가 되는 것이니까.”

“그게 정말 자유로운 것인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렇긴 해.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우리라는, 연약한 인간과 이종족이라는 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모든 것을 배제해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 배제가 본인들까지 포함이 된다는 것에 이상함도, 그렇다고 부당함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우리라는 존재가 대체 뭐라고…….”

몬스터라는 것이 인류에, 이종족에게, 대륙의 모든 것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타 차원으로 보내어 봉인시켜 버렸다.

강한 힘을 가졌기에, 드래곤 역시 이 땅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현 세상에서 절대적인 힘을 나타내는 용들 역시 그들이 할 일을 끝내면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인간.

잊어버린 이종족.

숨어버린 이종족.

그렇게 모든 위협이 사라진 뒤 화목하게 알콩달콩 살아간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고,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도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이들도 아니고, 그것은 이종족들 또한 마찬가지인데…….”

인간의 역사는 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피를 뒤집어쓴 이종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지만, 힘이 있는 일부는 남은 모든 인간을 폭주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이종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고, 이종족…… 엘프들이 그것을 실행에도 옮겼으니까.

“너는 인간을 그다지 신뢰를 하지 않는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이 많은 인간 사이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죠.”

“하지만 그 극히 일부분 때문에 세상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

카르카노의 말도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일부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결국 또 다른 인간들이 바로잡았고, 그것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어긋나면 바로 잡고, 망가지면 고치고, 그렇게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세상이 유지된 것 역시 사실이니 말이다.

“그분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인간의 그런 부분을 가장 마음에 들었겠지. 우리와는 달리, 약하고 멍청하면서도 욕심도 많지만…… 반성할 줄 알고 바로 잡을 줄도 알고, 서로를 돕고 나아가는 그 모습을 좋아하셨겠지.”

그러면서 카르카노가 주안의 곁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종족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안 그래? 아가씨.”

“…….”

카르카노가 슬쩍 메데아 대족장을 바라보며 윙크까지 하였지만, 메데아 대족장은 그저 담담하게 팔짱을 낀 채 무시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인간만큼 지독한 욕심은 없으나 다양함을 가진 이종족들 역시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이나 이종족, 오크나 엘프, 드워프.

그들은 어떻게 보면 형제와 같은 존재들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인간들이, 이종족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겠지. 더 이상 우리는 없으니, 어떻게 되든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 할 거야.”

“마치 독립을 시키는 아이들을 대하시는 것 같아요.”

“독립? 확실히 그러네.”

주안의 말에 카르카노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자식들이 다 크면 자립을 시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시기가 다 왔다는 것이고 말이야.”

“다 큰 것일까요. 한쪽은 욕심 많고 실수도 많이 하고, 다른 한쪽은 복수심에 활활 불타고 있는 듯한데.”

“뭐, 복잡한 집안 사정이야 어디든 있는 거잖아.”

“스케일이 큰 집안 사정이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카르카노를 보며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립이라는 것도 때가 되면 시키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때라는 게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울 정도라면 과연 이대로 해도 될지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카르카노는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는 이종족이 인간들과 계속 대립할 거라고 생각 안 하거든.”

“예? 어째서…….”

“저쪽 아가씨 집안을 생각해보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는데?”

싱긋 웃는 카르카노의 모습에 주안이 조심스레 메데아 대족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과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카르카노가 말했다.

“물론 중간에 너와 같은 인간이 필요하겠지만, 다행히 너라는 존재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잖아. 그렇지?”

“저를 너무 높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높게 봐줄 수밖에.”

그리고 카르카노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은 뒤 주안을 보며 싱긋 웃어 주었다.

“신에게 선택을 받은 네 역할일 수 있으니까. 안 그래?”

주안은 그런 카르카노의 말에 입을 꾸욱 다문 채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신의 선택이라는 그 말이 왠지 묘했으며, 그의 눈빛 역시 무언가를 안다는 듯 주안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대단하다고 말을 하진 않았어. 그저 네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일 뿐이지.”

그리고 카르카노가 주안에게 말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각각 주어진 역할이라는 게 있지. 우리 용들의 역할은 이 세상의 안정이었듯, 인간들…… 너라는 사람의 역할이 있을 테니까.”

“나의 역할…….”

“그 역할을 찾고 그에 맞는 일을 할 때, 그 존재는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

그의 말처럼 자신의 역할을 찾은 사람들을 주안 역시 꽤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으며, 피터나 소니아…… 워랜이나 토미, 메데아 대족장이나 마누엘 전대 대신관 등등…….

참으로 다양한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의미 있는 행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야…….’

뜬구름 잡는 신에게 선택받은 역할 어쩌고 하는 것보다 주안은 바로 곁에서 지켜본 그들의 역할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그렇기에 그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보다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끼지만, 항상 빛나는 그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며 카르카노가 뭐라 한 마디를 해주려고 하였지만, 그보다 앞서 메데아 대족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민할 필요가 있나? 마르티네스의 주안.”

“네?”

조용히 주안과 카르카노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주안이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안다는 듯 주안에게 말했다.

“너도 네 할 일을 열심히 하였지 않았나?”

“제가 한 일이라는 것은 별로 없는걸요.”

“별로 없었다? 정원사님을 열심히 돕고, 우리 부족을 위해 나서준 것만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큰 역할이었다.”

“그거야 저에게도 필요한 일이라서 그런 것일 뿐이었어요.”

“네게 필요한 일이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이지 않았나. 특히 우리 달란트 부족은 바깥 주민들에게 우리의 인식을 바꿔준 너라는 존재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메데아 대족장님…….”

“마르티네스의 주안. 오히려 아무것도 한 것 없다고 자책하는 게 너를 보고, 네게 도움을 받고 힘을 낸 모든 사람에 대한 실례라는 것을 기억해라.”

그 도움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면 가까이로는 토미와 세라타가 되겠고, 나름 정신을 차리게 계기를 만들어 준 쥬도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유우나 공주는 주안으로 인해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나라 자체에 큰 은혜를 입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으며, 도리안의 가족이라거나 동부의 여러 가문 역시 주안으로 인해서 가문에 큰 이득을 보면서 주안에 대한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 하여도 무방하였다.

‘나도 내 역할에 충실하여,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메데아 대족장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한 행동들이 많은 이들을 돕고 이롭게 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가식적으로 남을 띄워주기 위한 말 따위는 하지 않는 직선적인 달란트 부족의 사람답게 메데아 대족장 역시 주안을 위로한다는 것보단 할 말을 한다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직설적인 말이 오히려 주안에게는 나름 큰 힘이 되는 듯했다.

“고마워요…….”

“흠.”

주안의 진심 어린 감사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지만, 자신답지 않은 낯간지러운 말이었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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