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1화
“호오…….”
주안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 카르카노는 꽤 흥미롭다는 듯 주안을 바라보았다.
“엘프들이라…….”
“혹시 카르카노 님도 엘프들의 존재를 아시고 계셨어요?”
“알고는 있었지. 마를렌을 만나기도 했었으니까. 단지, 어디 숨어 있었던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능력이라면 엘프들이 어디 있었던 것인지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였기에 주안이 갸웃하자, 카르카노가 작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동방 대륙과는 달리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거든. 특히 나는 더욱더 말이야.”
“아…….”
다른 용들과 달리 땅이 아닌 바다와 물이 있는 장소에서 그 능력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카르카노 입장에서야 서방 대륙 깊숙한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엘프들에 대해서 알 길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용의 능력이 그렇게 제한적이라는 것에 주안은 매우 이상하다 싶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보네.”
“그게, 용이라고 하면 정말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그런 존재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특히 동방 대륙에선 신과도 같잖아요.”
“신이라……. 뭐, 비슷하려나. 하랑 녀석이 있는 곳에선 매해 하랑을 모시는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니까.”
“우와…….”
주안이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느꼈던 일은, 보다 먼 미래의 일인 파사의 슌 제국 황도에서 일으킨 사건 때문이었다.
슌 제국, 그것도 황도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그의 능력은 당시 랭크 8에 버금가는 능력자와 수많은 고랭크 무사가 버티고 있던 제국의 황도를 잿더미로 만든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카르카노의 말을 들어 보아도 그들이 차지하는 동방 대륙에서의 위치를 대충 짐작게 하였다.
신령산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무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검을 나누고, 갈고닦으며 수양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여 숨겨진 대단한 실력자들이 수없이 많은 곳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장소에서 그들이 하랑을 모시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서방 대륙에서 기사 집단이 주군이 아닌 어떤 특정한 존재를 위한다 봐도 무방하였다.
경외심 가득한 인간보다 더욱 위에 위치한 특별한 존재.
동방 대륙에서의 용의 위치는 황제와 왕, 그 이상의 존재임은 확실했다.
“뭐, 어쩔 수 없어. 우리가 태어난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태어난 이유요?”
“우린 단지 몬스터를 가둔 봉인지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로 만들어졌으니까.”
만들어졌다는 것에 주안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이미 아미엘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조금 마음이 심란했다.
“……괜한 걸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응? 뭐가? 아, 우리가 만들어졌다는 것?”
“……예.”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주안의 표정이 좋지 않자, 오히려 카르카노가 웃어주며 말했다.
“결국, 다들 만들어진 건 다 똑같은데.”
“다, 똑같아요?”
“그래. 인간이나 엘프나, 드워프나, 여기 오크 아가씨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졌다고. 단 한 분에 의해서.”
“……신.”
주안의 짧은 말에 카르카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초에 단 하나.
신이 존재하였고 세상이 만들어졌으니, 지금의 이 모든 것은 결국 단 하나의 존재에게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교단의, 신전과 신관들이 주장하는 말들이었다.
다만, 그러한 주장을 믿는 이는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주안도 한때 그랬으니까.
신이라는 존재를 본 적도 없는데, 그를 맹목적으로 믿는 신관들이 웃겼고 신성력의 힘을 보았음에도 그것은 단지 마법과도 같은 그러한 것으로 취급을 했다.
하지만 자신은 죽음이라는 것을 뒤로하고 이렇게 다시 과거로 돌아온 직후…… 그리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신은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이 겪은 그것은 신의 힘이 아니었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힘이라는 것도 결국 그 문에서 가까울수록 강한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 사실 동방 대륙을 떠나서는 큰 힘을 낼 수는 없어. 뭐, 그렇다 해도 인간들이 어찌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하하……. 어찌할 사람도 없다고 생각이 돼요.”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메데아 대족장이 긴장하던 것만 보아도 이 서방 대륙에서 아무리 제약이 걸린 용을 어떻게 할 사람이 있다고는 주안은 생각이 되지 않았다.
숫자로 어떻게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용이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재앙이자 자연재해와 같았으니 말이다.
결국, 이런 용을 어떻게 할 존재란 같은 용 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니, 아미엘 님이라면…….’
그런 용들과는 전혀 다르나, 그들을 창조해낸 드래곤들의 친우이자 어깨를 나란히 한 존재라는 아미엘이라면 이들도 어쩌지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그 엘프라는 녀석을 나도 좀 만나 봐야겠네.”
“함께 해주실 건가요.”
“그래. 나도 그 자리에 좀 나갈게. 엘프 놈들에게 나도 할 말이 좀 있어서 말이야.”
“할 말이요?”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카르카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개고생시킨 이유를 좀 알아봐야지.”
“……그, 저기, 소란은 곤란해요.”
“걱정 마. 나도 그렇게 난폭한 용은 아니라서 말이야. 이 자리에 파사나 사련화가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걸.”
“으으음…….”
두 용 모두 성격이 더럽게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주안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카르카노의 말대로 정말 다행이지 싶었다.
“저기, 그러면 일단 일정은 내일로 잡혀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아미엘 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를 해드릴 수도 있는데.”
“응? 정말?”
주안이 아미엘을 언급하자, 카르카노의 표정이 바뀌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다. 나도 그분이 조금 불편하긴 해서 말이야.”
“불편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엄마 아빠의 친구들이잖아.”
“엄마, 아빠라니…….”
사실이긴 하지만 뭔가 어감이 심하게 이상하였다.
물론 농담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카르카노는 나름 진심이 담겼다는 듯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하랑과 만나는 장소에서 나도 가긴 했는데, 만나기 조금 그래서 숨어 있었거든. 나나 사련화, 파사 모두가 훔쳐보고 있던 것도 다 알고 계실 거니까.”
“……왜 숨어 계셨어요.”
“말했잖아. 부모님뻘이라서 상대하기가 힘들다고.”
“진담이셨군요.”
“응.”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르카노.
주안은 카르카노가 세냐만큼이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듯하였기에, 익숙하면서도 정말 상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뭐, 어쨌든 오늘은 여기서 좀 지내도록 할게. 아, 그리고 시간 있으면 이 도시 구경이나 좀 시켜줄래? 항구도시야 많이 가봤는데, 이런 내륙의 큰 도시는 처음이라 궁금하네.”
“관광 오셨어요……?”
“갈 때 선물도 사가야겠는걸.”
관광 와서 양손에 선물을 가득 쥐고 돌아가는 용을 상상하니, 무언가 엄청난 괴리감에 주안이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나름 익숙한 바람에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안내인…… 아니, 제가 함께해드릴게요. 모든 곳을 다 둘러 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많은 곳을 보여드릴게요.”
“오, 정말? 이왕이면 이쪽, 황성도 보고 싶은데.”
“그게, 그건 가능할지 좀…….”
아무리 주안이 옆집 할아버지 집처럼 자주 오간다 해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것도 용이라는 엄청난 존재를 데리고 갈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이런 주안의 곤란함을 느낀 것인지 카르카노가 말했다.
“뭐, 안 되면 할 수 없고. 슌 제국 황성도 파사 녀석 때문에 구경도 못 했는데…… 여기서도 또 못 하고…….”
“…….”
구시렁거리는 카르카노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봐서, 외할아버지인 황제 폐하에게 한 번 직접 부탁을 드려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의 구시렁거림은 주안뿐만이 아니라 메데아 대족장마저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저기, 카르카노 님.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황성 구경만 시켜준다면 다 대답해 줄 수 있는데.”
“……진지하게 외할아버지, 아니, 황제 폐하에게 부탁은 드려 볼게요.”
“그래, 그렇다면야.”
주안의 말에 카르카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고, 주안은 세냐를 데리고 와서 마주하게 하면 참 재미나겠다는 생각마저 해버렸다.
“그 봉인지를 지키고, 몬스터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카르카노 님이나 다른 용들이 얻는 게 대체 뭐예요?”
“얻는 것이라…….”
단순히 정해진 역할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또한 얽매이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어 보였다.
단지 지금 눈앞에 있는 카르카노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다른 용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으니 말이다.
개인의 인격이 있었고, 개인의 자유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그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으며, 그것을 완수하는 것에 과연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주안은 그것이 매우 궁금하였다.
이런 주안의 질문에 카르카노가 잠시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내 싱긋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지만, 그 역할이 완수되는 순간 우리의 목적이 달성할 수 있거든.”
“목적이요?”
“응. 목적.”
그리고 카르카노가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게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목적이거든.”
“이 세상을, 떠나는 것…….”
주안은 놀란 눈으로 카르카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여유롭게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네가 너의 일을 반드시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너를 지키는 것……. 어떻게 보면 그건 모두 우리를 위한 일이야.”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용들의 바람이란 말씀이세요?”
“그래. 아니지. 파사는 아니려나. 어쨌든 처음 우리들의 만들어지고, 드래곤들에게 역할을 받았지만…… 약속도 하나 받았거든.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때려치웠지.”
작게 웃어주는 카르카노의 모습에 주안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약속이라는 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니……. 저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이해할 필요는 없어. 이 세상에 몬스터가 필요 없듯, 우리 역시 필요 있는 존재는 아니니까. 이 세상에 큰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것들 모두가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위협이 될…….”
그리고 그 위협의 대상 속에 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주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을 위해서 힘써 온 그들임에도, 결국 세상에 위협을 끼칠 수 있는 존재로 낙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