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60화
“사실 하랑은 너에 대해서 걱정이 컸거든. 나나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하는 일이 매일 걱정하는 것이라서 말이야.”
“저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이 저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네요.”
“나도 그래. 너라는 아이에 대해서 왜 걱정을 하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거든.”
단순히 첫인상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뱃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동방대륙의 상단을 통해서 듣게 된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주안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자세한 것들이 많았다.
서방과 동방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가 마르티네스 공작령인 이상, 작은 것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된 주안의 이야기는 카르카노에게도 꽤 재미난 것들이었고, 이렇게 마주하고 잠시나마 대화를 해보니 썩 마음에 드는 아이이기도 하였다.
“하랑은 네가 엘 하임 마를렌, 그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을지 무척 걱정스러워하고 있어서 말이야. 그것 때문에 나한테 너에 대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 하더라.”
“…….”
“뭐, 귀찮긴 해도 나야 다른 녀석들보단 인간들과도 친하고 이런 곳을 오가는 것엔 누구보다 빠르니 이해는 하지만…….”
물이 있는 곳에서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그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카르카노이기도 했지만 하랑이 믿는 것은 그의 힘보다는 그가 인간들과 매우 가까워 보다 손쉽게 주안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마르티네스 공작령을 몇 번인가 오간 경험도 있었기에 주안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동방 대륙의 상인이든 서방 대륙의 상인이든,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 해도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도 아니니 말이다.
“하아…….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시는 건 조금 그러네요. 미리 말씀이라도 주시고, 만남을 요청하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 그건 사과할게. 사실 시간도 별로 없고 나도 빨리 돌아가야 해서. 다른 녀석들도 이 서방 대륙에는 발을 디디기 조금 힘들지만, 특히 나는 땅 위라면 질색이라서 말이야.”
“……그런 걸 말씀해 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그들이 서방 대륙에서 활동하지 못 하는 이유를 들어버린 듯하고, 거기다 스스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하는 카르카노의 말에 주안이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카르카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딱히 상관없는걸. 그렇다 해서 우리에게 위해를 끼칠 간 큰 애들이 있으려고.”
“세상에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제가 이런 부분을 소문내고 다니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글쎄? 만약 그러면 바닷길을 막아버리면 되지. 태풍 몇 개나, 아니면 바닷길에 꽤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면 알아서 막힐 거니까.”
“…….”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내뱉는 카르카노.
그가 하는 일이란 단순한 무력행사가 아닌,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인 일인 듯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는 메데아 대족장이 긴장한 이유나, 자신의 앞에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남자가 정말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대체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또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런 용들을 만들어 냈던 거지.’
만들어진 생명체라고는 하나 그들은 인격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며 활동하는 존재들이다.
그것도 엄청난 능력까지 지니고 있으니,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자연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존재들을 만들어 낸 드래곤이라는 생명체에 대해서 주안은 정말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비밀로 하겠습니다.”
“뭐, 네가 떠들고 다닐 그런 아이라고는 생각이 되지는 않아서 나도 꺼낸 말이니까. 네가 먼저 애먼 짓을 벌이지 않는다면 나나 우리도 절대 너와 네 주변을 건드리지 않아.”
그리고 카르카노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주안에게 말했다.
“네가 바라는 건, 그거잖아. 맞지?”
“예…….”
마치 주안을 잘 안다는 듯, 그는 확신에 찬 말을 하였다.
“일단 너는 딱히 이상한 짓을 저지를 아이로는 보이진 않긴 하네. 그나마 다행인가. 그 여자랑 달라 보여서 안심했어.”
“……마를렌 님을 무척이나 좋지 않게 보시는 듯하시네요.”
“응. 그 피가 섞인 네게 할 말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 여자 때문에 우리가 이런 개고생을 하는 것이기도 하거든. 아, 이 험한 말은 사련화의 말을 빌린 거니까, 욕을 하려면 그 녀석에게 해.”
넉살 좋게 농담도 건네는 카르카노였지만, 주안은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용들에겐 마를렌이라는 존재는 썩 달가운 인물이 아닌 듯했다.
“그런데 고생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응? 몰라? 아미엘 님에게서 그건 안 들었나 보네.”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카르카노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몬스터가, 지금은 마물과 요물이라고 불리는 건 알지?”
“예.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게 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는…….”
“그것 역시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 이유가 마를렌임을 주안도 모르지 않았고, 주안이 그 사실까지 알고 있으며 안색이 어두운 것에 카르카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뒤처리야. 적어도 아직 세상이 크게 혼란스럽지 않은 것도 우리 덕분이니까 감사하게 여기라고.”
그 뒤처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주안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카르카노의 여유로운 태도에 주안이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하지만 이 서방 대륙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던 것 아닌가요? 요물은 몰라도 마물은 적어도 이곳, 남부 대밀림에 있으신 메데아 대족장님의 달란트 부족 덕분이라 알고 있는데요.”
“뭐, 그 부분은 우리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왜 거기서만 나타나고 있는지 의문은 안 들어?”
“예?”
확실히 카르카노의 말대로 동방 대륙의 요물과는 달리 서방 대륙의 마물은 남부 대밀림의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활발한 활동까진 아니며, 드문드문 나타나는 형태로 말이다.
물론 최근 그 빈도가 잦아져서 달란트 부족의 피로도가 심해지고 있었고, 그 이유로 바깥의 힘 있는 세력과 손을 잡으려고 생각을 하고 메데아 대족장이 직접 오게 된 것이기도 하니까.
“봉인지와 가까운 동방 대륙은 어쩔 수 없지. 그만큼 가까운 장소이니까. 다만, 하랑이 봉인지에서 최대한 억제를 하였기에 이 거대한 대륙에서는 동방 대륙만큼의 혼란은 피할 수 있었던 거니까.”
“……설마, 유도하신 것입니까?”
“그래. 여긴 멀어서 그만큼 나타나기 어려운 장소이지만 완벽히 나타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 단지 특정한 장소에 나타나게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을 뿐이니까.”
싱긋 웃으며 카르카노가 주안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도 들었거든.”
“그러니 우리에게 감사하라, 이 말씀은 아니시겠죠?”
“조금은 그렇게 생각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덕에 큰 피해는 없으니 말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주안이 빙글빙글 웃는 카르카노의 모습에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려 했지만, 그런 주안을 메데아 대족장이 조용히 말렸다.
“마물의 존재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이 카르카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들은 항상 우리를 위협하였고, 내 가족들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미안하군. 그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이 되었어. 적어도 이익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것들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막아 줄 것이라고 생각되던 건 그쪽의 존재들밖에 없어서 말이야.”
어떻게 보면 달란트 부족을 믿었기에 행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행한 행동에 쉬이 납득을 하고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본 달란트 부족의 대족장인 메데아의 입장에선 카르카노나 용들을 좋게 볼 수 없게 된 이유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이야. 이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나의 이름을 걸고…… 우리의 이름을 걸고 그 자리를 지켜주었던 그대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하지.”
그의 사과를 메데아 대족장이 받아들이는 것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주안도 느꼈다.
때문에 메데아 대족장 역시 불만스럽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가 언급한 자신들의 이름의 무게를 느끼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안이 이런 메데아 대족장을 보다, 카르카노에게 물었다.
“그런데 곧 끝이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그곳으로 가서 모든 것을 바로 잡는 것. 그것만 이루어진다면 마물이든 요물이든, 더 이상 이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것이니까.”
“그건, 알아요. 저 역시 그럴 생각이니까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싶었고, 그래서 너에 대해 알아보려고 이곳에 온 것이야.”
그리고 그 말을 나오게 할 생각이었다, 라는 말까지는 할 필요는 없었기에 카르카노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네게 한 가지 약속을 해줄게.”
“약속이요?”
갸웃하는 주안을 보며 카르카노가 생긋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과는 달리 눈은 날카롭게 빛났고, 주안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조금 전까지 능글맞아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너를 지킬 거다. 네가 그 봉인지의 문을 완벽하게 닫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때까지, 우린 네게 위해를 끼치는 모든 것을 차단할 거야.”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용의 눈으로 주안을 보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누구든 너에게 위해를 끼치려 한다면, 용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 모든 대륙에 똑똑히 각인시켜주마. 그리고 너 역시 반드시 우리가 바라는 일을 해주어야만 해.”
그것은 어떻게 보면 협박과도 같았다.
그 노도와 같은 기세에 주안이 식은땀을 흘렸지만, 신성력을 끌어 올려 몸을 감싸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카르카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주안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카르카노의 말에 주안이 놀라긴 했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각오를 한 일인지라 잠시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에요. 아미엘 님과 함께 방문하여,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니까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그리고 주안의 말에 금세 표정을 풀며 카르카노가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저도 카르카노 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음? 부탁? 얼마든지. 하지만 나는 여기 오래 있을 수는 없으니까, 짧고 간단하고 가능한 부탁만 하도록 해.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네게 맞춰 줄 것이니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에요.”
주안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겠다는 카르카노의 의지를 느꼈던 것인지 주안도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혹시 내일까지 이곳에 있어 주신다면,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장소가 있어요.”
“내일까지? 뭐, 그건 상관은 없는데……. 혹시 아미엘 님에게 가려고?”
“그건 아니에요. 실은…….”
주안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