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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58화 (25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58화

다예프에서 온다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도 주안은 침착하게, 그리고 매우 조용하게 지냈다.

엄마와의 일과를 보내는 것 외에는 바깥 외출을 최대한 줄였으며, 집 안에서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 역시 세냐와 함께 아미엘을 만나러 가며 그녀와 함께 보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일은 그들이 온다는 날의 바로 전날까지 이어졌고, 주안은 아미엘과의 이야기를 나누다 그 자리에 한 사람을 더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바로…….

“음? 내일 시간을 빌려달라고?”

“예, 메데아 대족장님.”

워랜도, 그렇다고 가장 친한 친구인 토미도 아니며, 소니아 역시 아닌 바로 메데아 대족장이었다.

“흠, 내일이라…….”

“혹시 일정이 잡혀 있으세요?”

“내일은 쿠단 녀석과 토미 녀석을 함께 손봐주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말이다.”

“하하…….”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 늘 함께 하는 쿠단에게 조용하고 재미없는 대신전은 그야말로 최악의 장소나 마찬가지인 듯,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대신해 매일 저택을 방문하였다.

의외로 토미와도 잘 어울렸지만, 메데아 대족장 역시 이곳을 찾는 자신의 부족원인 쿠단을 매우 반겼으니 말이다.

달란트 부족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서 이 저택에선 거의 유일하게 친분을 가지고 있는 쿠단과 토미이기도 했고, 내일은 그러한 두 녀석을 함께 가르칠 일이 생겼던 것인지 이미 약속이 잡혀 있는 듯했다.

다만, 주안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 것을 느낀 듯 메데아 대족장이 말했다.

“혹 급한 일이라도 있나?”

“예. 조금 그런 일이 생겨버렸어요. 메데아 대족장님이 꼭 함께 해주셨으면 해요. 이건 아미엘 님도 바라는 일이세요.”

“호오? 정원사님까지?”

아미엘에 대해서는 늘 정원사라 칭하지만, 그 말에는 큰 존중의 이미도 담겨 있었기에 아미엘 역시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이미 달란트 부족이 자리를 잡은 세계수 인근은 달란트 부족의 땅으로서, 모두가 떠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돌아올 이들을 기다렸던 그 노력과 열정에 아미엘은 크게 감동하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미 잊혀진 요정들을 그대로 거리낌 없이 반겨주었고 어머니의 나무라고 소중히 여기던 장소까지 내어준 것에서 아미엘은 마찬가지로 달란트 부족을 존중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잠깐 부족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정원사님이 이곳으로 오는 것인가.”

“……아시고 계셨어요?”

“쿠후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정원사님의 능력 아닌가. 그리고 마르티네스의 주안, 너도 자주 우리 부족을 찾아 왔지 않았나. 이리도 먼 거리임에도 말이다.”

“하하…….”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을 단순하고 무식하고 야만적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멍청해 보일 정도로, 그녀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고 기억하고, 그것을 가지고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적당히 모른 척해주는 배려까지 있었기에 주안은 솔직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해하였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오실 수 있으셨는데…….”

“뭐, 나야 크게 상관은 없었다. 오는 길도 재미있었고 이곳에 와서도 즐거웠으니 말이다.”

자신의 부족원들과 지내는 것도 좋고, 고향의 땅도 좋지만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 모든 것이 다른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겪는 재미도 재미였고, 부족원들과는 전혀 다른 강한 이들과 함께 검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누는 것을 그녀는 진심으로 즐겼다.

그렇기에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기에 주안이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털털한 그녀의 말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누엘 신관님과 아미엘 님, 그리고 저……. 아마 달란트 부족,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과도 매우 크게 연관된 일이 있어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메데아 대족장님은 꼭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슨 큰일이라도 있나 보구나. 그 괴물 영감도 모자라 정원사님까지 함께인 것을 보니 말이다.”

“큰일은 맞을 거예요. 그리고…… 달란트 부족이 기다리던 그 친우가 방문하는 일이에요.”

“……우리, 친우……?”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아니, 그 표정만이 아니라 기세도 변했다.

이 장소가 그녀에게 배정된 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주안의 신성력이 가득한 장소이가 상대가 주안이 아니었다면 숨이 턱 막혔을 기세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엇이냐, 마르티네스의 주안.”

“……메데아 대족장님도 인정하시기는 싫으시겠지만, 달란트 부족원들이 이종족이라는 사실은 아실 거라 생각이 돼요.”

“…….”

고귀한 전사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광대한 남부 대밀림 주인인 달란트 부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이종족인 오크라는 사실은 이미 잊혀진 일이었고, 바깥 주민들과는 다르나 그들 역시 자신들을 인간이며 전사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히 달란트 부족을 이끌고 있는 메데아 대족장은 아미엘을 통해서, 그리고 바깥으로 나와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겪어 보며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종족 오크.

위대한 전사이자 최초의 대족장인 달란트의 정신을 계승한 자신들이 이종족이라는 것에 조금은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은 들지 않아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된 거죠.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 달란트 부족은 달란트 부족, 전사의 집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주안으로선 종족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게 그들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사람 역시 그 외모나 지위, 성별과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지가 더욱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마음이 통하고 뜻이 같다면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가족이 되는 것처럼, 종족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 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작게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후후. 그래.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우리에게 전사의 혼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더욱 중요한 법. 선조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전사로서의 의무를 가지고 가족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런 것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자신의 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잊게 된 이유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종족이라는 것보다 선조를 택하였고, 선조의 이름을 짊어지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전사라는 것을 생각한다.

남부 대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했을 뿐이고 후회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하면, 그 친우라는 녀석들이 왜 우리 부족이 아닌 마르티네스의 주안, 너를 찾아온 것이더냐.”

“일단 저도, 제 가문에 그 피가 아주 약간 흐르거든요.”

“그건 안다만, 그것뿐만은 아닌 듯한데?”

“예. 그것만은 아니죠. 정확한 것은 그들도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아마 이 성흔과…… 저를 통해서 아미엘 님을 만나기 위함이 아닐 듯싶어요.”

주안이 보여준 왼손에 새겨진 성흔과 그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리고 주안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찻주전자를 들어 그녀의 찻잔을 채워 주었고 자신의 잔 역시 채웠다.

그리고 따뜻한 차가 식기 전에 생각을 끝낸 듯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을 보며 말했다.

“찾아온다는 이가, 정말 우리 부족이 기다리던 그 친우가 확실한 것인가.”

“확실한 것에 가까워요. 아니, 확실해요.”

애매한 답보다 확실한 답을 주안이 말하자,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이 채워 놓은 찻잔을 집어 들고 한 번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나도 함께 하겠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에게 말을 이었다.

“나는 나의 부족을 대신해서 물어 볼 말이 있다. 만약 그들이 진정 우리 부족이 기다리던 친우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다.”

그녀의 모습에 주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랜 시간을 그 자리를 지키며, 오직 떠나간 친우들…… 엘프와 드워프들을 기다리던 달란트 부족이다.

자신들의 종족을 잊을 만큼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면서도 그 위험한 남부 대밀림의 땅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의 나무라는 세계수를 지키며 오직 떠나간 그 친구들이 다시 찾아올 때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땅을 지켰던 달란트 부족의 노력은 주안으로선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위협.

그 양쪽의 위협에서 달란트 부족은 흔들리지 않았고 드디어 나타난 그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음을 주안도 느꼈다.

그리고 묘한 기대와 함께 기쁨도 느껴졌기에 주안은 그녀에게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도 이내 포기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시던 그 친구들이 어떤 이들인지, 아시게 된다면…….’

아름답지 않은 재회가 될 수가 있었다.

그들이 한때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이들이라는 것을 아직 그녀는 모른다.

이 사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알려줘도 괜찮을지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곳에 가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단 차라리 이 자리에서 미리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하지만 주안이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메데아 대족장의 방문에 노크하는 소리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안 도련님. 세라타예요.”

“세라타?”

집 안에서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면 웬만해선 세라타도 엄마에게 보내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라며 주안이 자유시간을 주었었다.

그렇기에 메데아 대족장의 방에 방문한 것도 혼자였기에, 세라타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 주안이 의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안이 방문으로 향한 뒤 문을 열어주자, 세라타가 조용히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말했다.

“그게, 실은 이상한 손님이 찾아오셔서…….”

“이상한 손님? 쿠단이 또 놀러 온 거야?”

“아뇨. 그분이 아니라 처음 뵙는 분인데, 도련님을 뵙고 중요한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하셔서요.”

“날 알고 중요한 할 말을……?”

잠시 갸웃했지만, 이내 혹시 다예프에서 온다던 이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고 오늘 온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들이 한 약속은 3일 안에 온다는 소리지, 3일째의 그 날에 맞춰 온다고 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안이 세라타에게 물었다.

“다른 말은 없었어?”

“이 말씀을 전해드리면 아실 거라고…….”

“무슨 말이야?”

잠시 머뭇거리던 세라타가 조용히 주안을 보며 말했다.

“엘 하임 마를렌을 아냐고…….”

“…….”

“도, 도련님?!”

주안이 방을 나서자, 화들짝 놀란 세라타였지만 그 뒤로 메데아 대족장 역시 뒤따라 나가자 세라타 역시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주안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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