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57화
방으로 돌아온 주안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직접 배웅을 해주었고, 차후 아미엘과 함께 대신전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배웅해준 뒤 방으로 돌아온 주안은 자신을 맞이해주는 세냐의 모습에 갸웃하며 물었다.
“세냐……? 너 아미엘 님이랑 같이 있으려던 거 아니었어?”
아무래도 혼란스러울 아미엘이 걱정이 되어 세냐가 그곳에 남아 함께 있어 주길 바랐던 주안이었지만, 세냐가 방으로 되돌아온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세냐 역시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했다.
“아미엘 님이 오빠가 더 걱정된다고 가보라고 하셨거든요.”
“걱정이라…….”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지만, 주안은 자신이 아미엘을 걱정하는 만큼 아미엘 역시 자신을 걱정해준 것에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였다.
“많이 혼란스럽죠?”
“뭐, 조금 그렇긴 하지. 갑작스럽기도 하고, 날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엘프인 것도 모자라 내 선조의 동생분이라니…….”
“엘프, 특히 마를렌의 핏줄은 조금 특별해서 아미엘 님만큼이나 오래 살거든요.”
“특별? 아, 하긴.”
성흔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다.
신성력만 가지고 있는 신관들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별다른 병치레도 없이 매우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기도 하였다.
그런 신의 축복을 받은 마를렌이었고, 그 핏줄에까지 이어졌다면 당연하다 생각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거든요. 아미엘 님이, 엘프들은 남아 있을 거라 생각을 하셨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마를렌 님에 대해서, 엘프들에 대해서 우리보고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거구나.”
“네…….”
세냐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제야 주안도 조금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안은 조용히 의자 쪽으로 걸어가 앉은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마를렌 님의 동생이라니…….”
“저도 조금 당황스럽긴 해요. 갑작스럽기도 하고, 이곳까지 찾아와 오빠를 만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요.”
“가짜라고는 생각은 안 해?”
“글쎄요. 이미 저쪽이 엘프라는 사실을 아는 이상, 그 이름을 쓴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훨씬 크죠.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써서 오빠를 만나서 뭘 하겠다고 속이겠어요.”
“하하……. 그건 그렇지.”
확실히 세냐의 말대로 자신을 속여 가면서까지 만남을 청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무언가 자신이 있기에, 그것이 아니더라도 속일 필요도 없다는 당당함이 있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말이야, 이미 아미엘 님이 나와 같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만남을 청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
“네? 아미엘 님을요?”
“응. 우리가 그들을 아는 만큼, 그들도 우리를 알기에 나를 만나려는 거겠지. 마누엘 전대 대신관님도 그러셨고 말이야.”
“하긴……. 그런 게 아니라면야…….”
단순히 성흔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직접 이곳까지 찾아오는 것도 이상하다.
“나를 통해 아미엘 님을 불러내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오빠 곁에 아미엘 님이 있으니, 오빠를 불러내면서 아미엘 님도 함께…….”
어쩌면, 정말 그럴 가능성이 컸기에 세냐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아미엘 님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단 말이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미엘 님도 엘프들에게, 케들락에게 할 말이 있는 만큼 케들락 역시 아미엘 님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니까요.”
주안은 아미엘이나 엘프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그 어떠한 이종족들보다 가까웠고 엘프들을 이끌던 마를렌과는 더욱 특별한 사이라는 것은 아미엘을 통해 듣고 겪었기에 대충 알 수는 있었다.
그런 만큼 마를렌의 동생이라는 케들락이나, 다른 엘프에게서 듣고자 하는 게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을 이 세상에서 쫓아낸 것에 대한 이유.
그것을 말이다,
“세냐 넌 지금 온다는 그 대신관, 케들락 대신관에 대해서 잘 알아?”
“뭐, 저한테는 엘 하임 케들락이겠지만……. 만약 그 자식이 맞다면, 상대하기 상당히 싫다…… 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겠네요.”
“응? 상대하기 싫다고? 세냐 네가?”
조금 비뚤어진 성격에 예민해서 대하기 참으로 어려운 세냐이지만, 의외로 넉살이 좋아서 사람들과는 금방 친해지고 잘 어울리는 아이이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직설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쓰자 주안도 조금 놀란 듯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놀람에도 세냐는 잔뜩 찌푸린 채 입술을 삐죽였다.
“그땐 뭐, 다들 인간이 싫었지만 다른 이종족들보다도 케들락은 인간을 증오하고 실제로 바깥으로 나가 인간들을 습격하기도 했던 녀석이거든요.”
“습격씩이나…….”
“때때로 성공하기도 하고, 피해도 끼치긴 했지만…… 아미엘 님이나 마를렌이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 벌어졌어도 몇 번이나 벌어졌을 거예요.”
“조금, 과격한 분이구나.”
전설이나 혹은 여러 학자의 연구 속에서 엘프란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이라고들 하지만, 세냐의 말을 들어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물론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인간들에 의해 오지로 밀려난 이종족들, 엘프들이 가질 큰 상실감과 인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미엘 님이나 마를렌 님도 말렸다는 거야?”
“네. 사실 마를렌보다 엘프들을 이끌던 건 케들락이었거든요.”
“응? 마를렌 님이 대표가 아니셨어?”
“대표는 맞아요.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컸고, 마를렌을 따르는 엘프들이나 다른 이종족도 많았죠. 단지, 따르게 하는 것과 이끌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고 싶고, 지켜주고 싶으나 그것은 그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것만이 아닌, 많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이끌어갈 수 있는 강한 카리스마. 힘 역시 존재하니 말이다.
순수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따라오게 만드는 마를렌과는 달리, 케들락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 이끌어가는 역할이 아닐까 싶었다.
“어쩔 수 없다고 봤어요. 인간들을 내버려 두고 방관하는 마를렌은, 분명 소중한 존재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이나 언제나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는 아니었으니까요.”
“지도자는 인정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케들락은 지도자로선 최고였어요. 마를렌의 상징성이나, 케들락의 지도력이 있어서 엘프들은 다른 이종족들보다 더욱 잘 뭉쳤으니까요.”
오크들은 그 개성이 너무 강해서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생활했을 만큼 중심으로 완벽하게 뭉치진 않았고 드워프는 고집이 세서 누군가가 위에 올라서서 명령을 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두 이종족과는 달리 엘프는 중심이 되어 하나로 묶어주는 마를렌과 하나로 묶인 엘프들을 이끌어 가주는 케들락의 존재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다만, 그런 만큼 아미엘 님과는 자주 의견충돌이 있었어요.”
“아미엘 님도 힘드셨겠네……. 너도 많이 힘들었어?”
“당연하죠. 매일 찾아와서 아미엘 님의 힘을 이용해서 인간들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지……. 어휴. 그냥 명치에 마법을 한 방 콱 날려 버리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요.”
“아하하……. 용케 참았구나.”
“마를렌이 아니었으면 엉덩이도 걷어찼을 거예요.”
“마를렌 님이 있어서 다행이었네.”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는 듯 세냐가 허공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과격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말만 들어보면 케들락이라는 엘프는 정말 다른 이들과는 달리 꽤 과격해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미엘 님이나 우리를 고향으로 쫓아낸 것도 마를렌이 아니라 케들락이 분명해요.”
“응? 어째서? 그걸 여닫을 수 있는 건, 이 성흔을 가진 사람뿐이잖아.”
주안의 성흔인 자애의 성흔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열쇠의 역할도 한다.
그것은 요정들의 고향과 연결된 문을 여닫는 역할 뿐만이 아니라, 크세니아의 무덤을 열 수 있는 역할도 하며 그들이 봉인한 장소까지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역할이다.
그리고 주안 이전에 이것을 가진 이는 마를렌이며, 그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말에 세냐가 콧방귀를 뀌며 테이블로 내려와 앉더니 팔짱을 낀 채 주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닫는 것이야 마를렌이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뒤에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케들락이니까요.”
“조종이라니……. 아무리 마를렌 님이라도, 정말 그랬으려고.”
“정말 그랬을 거예요. 아미엘 님도 말은 안 하시지만, 그러리라 생각을 하실 거예요.”
“……진짜?”
“뭐, 마를렌이 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어서 충격이 크셨겠지만…… 더러운 짓은 결국 케들락이 다 했을 거니까요.”
“그분, 너한테 신용이 정말 없구나.”
“신용이고 나발이고, 그 자식이라면 확실하다니까요.”
어쩜 이렇게 신용을 크게 잃을 수 있는 것인지, 그것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것인지 주안으로선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아니, 그보다 정말 대단할 정도로 신용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 케들락이라는 엘프가 진짜 나오면 세냐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한 방 먹여 줘야죠.”
“……괜한 걸 물어봤구나.”
그것이 진담으로 들리기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하지만 정말 쌓인 게 많은 듯 세냐의 볼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불만 가득한 시선은 주안에게 향해 있었기에 주안 역시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도 이 정도인데, 아미엘 님은 더 혼란스럽겠네. 그래도 한때 같이 생활한 친구이자 아이들이잖아.”
“친구 아니거든요?! 그리고 아미엘 님의 아이들은 우리뿐이거든요?!”
“……질투냐.”
“익?!”
주안의 말에 세냐가 도끼눈을 뜨며 노려보았지만, 주안이 그런 세냐를 두 손으로 꼬옥 감싸주며 토닥이자 다행히 발차기라거나 마법을 날리지는 않았다.
“다른 것보다, 난 정말 아미엘 님이 걱정되긴 해.”
“…….”
“나야 그 사람들, 아니, 엘프들을…… 케들락이라는 분에 대해선 내 선조이신 마를렌 님의 동생이라는 것밖에 알지 못하지만, 아미엘 님은 그게 아니잖아.”
주안도 조금 당황스럽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인간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에 걱정이 들긴 하지만 그들은 아미엘에게 오랜 세월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은 무거운 짐과도 같았다.
보호해주어야 할 이들이나, 자신을 버린 이들, 곁에 두고 함께 하고 싶은 이나 떠나간 이들.
그들이 떠난 이유 역시 아미엘의 과보호와 억압 때문이라고는 하나, 과연 그뿐이었나 싶기도 했다.
“지금도 많이 힘들어하실 거야. 널 나한테 다시 보낸 것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나보다 우리 아미엘 님을 더 잘 아시는 것 같네요.”
“아니지. 세냐, 너도 아미엘 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순순히 나한테 온 거잖아. 그렇지?”
“…….”
주안의 말에 세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주안을 빤히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세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조금 있다가, 아미엘 님을 다시 보러 가볼까? 이번에는 마냐랑 아냐도 데리고 가서, 아미엘 님의 걱정을 조금은 덜어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네? 하지만…….”
걱정이라면 오빠도 많잖아요, 라는 말을 해주지 못하였다.
어떻게 보면 주안도 그런 걱정을 덜기 위해 가는 것임을 깨달은 듯 세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아미엘을 만나러 가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