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53화
“엘프……?”
주안의 말에 걸음을 멈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안은 그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엘프라.”
그러지 않을까, 생각은 하였지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조금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대충 예상은 하였다. 달란트 부족이 오크라는데, 어딘가 엘프든 드워프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이 믿는 교단이 아닌, 이 세상의 어딘가라는 전제하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교단을 만들고, 그것을 활용한 것이 이종족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시는 거예요?”
“그 이종족들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을 때 알았다면 크게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 너나 나나 그 이종족들이 왜 남부 대밀림의 그 험한 땅에서 생활하게 된 것인지 잘 알지 않느냐?”
“그렇긴 하죠…….”
“그런 이들이 인간을 위해 일어선 교단의 창시자이고, 최고위층이었다……? 과연 그게 선한 행동으로 한 것일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종족이 인간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처럼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을 미워하고, 인간에게 박해를 받고 쫓겨났던 이종족, 엘프가 교단을 만들고 인간 세상으로 나와 인간을 위한 일을 했다는 사실은 주안으로서도 의아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교단의 최고위층, 대신관의 자리에 있었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겐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한데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이더냐?”
“아, 그게……. 마를렌에 갔을 때, 일이 좀 있었거든요.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하면 너 말고도 아는 이들이 있느냐?”
“일단 아미엘 님은 아세요.”
이 일을 부탁한 것이 바로 그녀였기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 그분께 알려야 하겠구나.”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그리고…… 가능하면 아미엘 님과 함께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확실히…….”
그녀가 찾는 게 마를렌뿐만이 아니라 달란트 부족, 오크들과 함께 지내었던 엘프들과 드워프였으니 그녀 역시 주안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그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예프에서 온다는 분들은 언제쯤 도착을 하신다고 해요?”
“3일 안에 도착을 한다더구나.”
“다예프라면 북부의 끝에 있는 곳일 텐데…….”
“모르지. 아미엘, 그분과 같은 능력을 가졌을 수도 있지 않느냐.”
“아……. 하긴.”
이미 아미엘 뿐만이 아니라 요정들의 힘까지 본 주안과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었고, 특히 그는 아미엘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장거리 광역 이동용 마법인 워프도 이미 겪어 보았으니 말이다.
단순히 달란트 부족을 생각하면 불가능하다 싶겠지만, 육체적인 힘이 대단히 강한 이종족 오크와는 달리 엘프란 인간보다 더욱 뛰어난 마나 친화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은 웬만한 마법사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이종족에 관한 것들을 알아본바, 그들이 엘프, 혹은 그 자손들이라면 현재의 인간들보단 월등히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너도 아미엘, 그분께 연락할 방법도 부르는 방법도 알지 않느냐.”
“으음……. 그렇긴 하죠.”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그 말에 주안은 속으로는 뜨끔 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하긴. 마누엘 신관님이야 이미 아시겠지.’
아미엘과 함께했던 그 자리에 있었고, 워프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던 그였기에 아미엘과 연락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요정 꼬맹이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예상이 아닌 확신이 되어 있었다.
“실은 이미 워프 게이트는 만들어졌어요. 하지만 이건…….”
“비밀이라는 것도 나 역시 잘 안다. 그렇지 않았다면 메데아 대족장을 걸어오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 말이다.”
“하하……. 그래도 나름 지루하지 않게 모셔오도록 부탁은 했었거든요.”
이미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메데아 대족장을 걸어오게 만든 이유야 뻔하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주안은 곰곰이 생각하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아미엘 님에게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음? 나와 말이더냐?”
“예.”
갸웃하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올려다보며 주안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교단에 대해선 제가 알아본 것보다 마누엘 신관님이 훨씬 더 잘 아시니까요. 미리 만나서,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주안이 조사한 교단에 관한 사실은 아직 페트롤 대신관이 알아보는 중이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알아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라면, 교단의 최고위층의 이들에 대해 주안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는 한때 교단의 한 지역을 담당했던 대신관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며 답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안은 그대로 그를 저택으로 안내하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아미엘에게 알려주고 싶었기에, 주안의 발걸음은 매우 빨랐지만, 주안의 뒤를 따르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런 주안의 걸음을 여유롭게 따라갔다.
* * *
저택 안으로 들어온 주안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안내했고, 하인들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먼저 와서 피곤했던 것인지 자신의 바구니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던 세냐가 이런 주안이 온 것을 보고는 힘겹게 일어나 반겨주었지만, 주안의 곁에 함께 들어온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보고는 갸웃하며 말했다.
“응? 이 할아버지는 여기 왜 데리고 오셨어요?”
“아, 그게 일이 좀 있어서. 그보다 세냐. 미안한데 아미엘 님을 만나러 바로 가야겠어. 괜찮겠어?”
“네? 벌써요? 아직 술도 도착 안 했잖아요.”
“술보다 급한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을 곁에서 듣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넌지시 물었다.
“……네 녀석, 벌써 술을 마시는 게냐.”
“벌써가 아니라 이미 마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잖아요?!”
“그렇긴 하다만, 넌 술버릇이 좀…….”
“으…….”
소문이야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 그 이야기를 듣는 건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 채 주안이 세냐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세냐가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데 저 할아버지도 데리고 가시게요?”
“응. 마누엘 신관님이랑 아미엘 님이랑 같이 할 말이 있거든.”
“흐응, 그래요?”
“마누엘 신관님이야 워프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걸 이미 아시는 분이니까, 같이 가도 괜찮을 거야.”
“뭐, 그건 상관없지만…….”
이미 주안이 인정한 사람들이라면 상관이 없다는 아미엘의 말도 있었기에 사실 별로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리고 주안이 테라스로 걸어가 평소대로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키자, 이 워프 게이트를 처음 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다가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주안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이 워프 게이트가 만들어진 것을 알면 대륙의 마법사들이 억만금을 주어서라도 알아보려고 할 게다.”
“그 억만금은 우리 가문에게 딱히 필요가 없으니 거절할 거예요.”
“이래서 돈 많은 놈들이 어두운 곳에서 칼을 자주 맞는다니까.”
“딱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아서 걱정 없거든요.”
농담 같은 말로 들렸기에 주안도 농담으로 답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꽤 진지했다.
정말 억만금을 주려고 해도 거절을 한다면, 뒤로 수작을 부리는 놈이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건드리려면 정말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는 점이 그에겐 다행으로 여겨졌다.
자고로 힘이 없는 이들에게 보물이란 재앙을 부르는 물건이겠지만 힘이 있는 이들에게 보물이란 자신들의 힘을 더욱 키울 행운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조금 더 다르게 써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느냐? 예를 들면, 네 가문의 능력을 보탠다면 대륙의 물류 이동의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만.”
주안의 가문인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그 넓은 땅과 풍족한 자원만으로도 잘 굴러가는 가문이었지만, 그와 만만치 않게 동방대륙과의 서방 대륙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
물류 이동의 중심이 되는 땅이기도 하였다.
저 먼 동방 대륙으로 가는 상단과 서방 대륙으로 들어오는 상단 등은 대부분이 마르티네스 공작령을 거쳐야 하였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항구들을 이용하였다.
때문에 그곳을 통해 얻는 수익은 정말 천문학적인 금액들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워프 게이트를 상용화하고 대륙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이것은 가히 세상을 바꿀 혁명이자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생각했다.
하지만 주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도 가끔 저희 집에 놀러 오시거나 하는 용도로 쓰면 어떨까 싶거든요.”
“……제대로 된 사리사욕이긴 한데, 뭔가 욕심이 많이 없어 보이는구나.”
“충분히 욕심을 낸 건데…….”
키득거리며 웃는 주안의 모습을 보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꽤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욕심이 없는 아이가 다음 대의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짊어질 존재라는 점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만약 이것을 이용해 욕심을 채우려 하였다면, 대륙이 어떻게 바뀔지 장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세상을 그렇게 급하게 바꾸면, 분명 큰 부작용이 일어날 거예요. 이건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세상이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을 제어할 힘은 너의 가문에 충분히 있지 않느냐.”
“있죠.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몰라요. 그리고 만약 이것을 지킬 힘을 잃는다면, 혹은 우리 가문에서 조금이라도 더 욕심을 낸다면 분명 대륙은 크게 요동칠 거예요.”
지금이야 문제가 없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이며, 주안 역시 아미엘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의 큰 걱정에 공감하여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접었으니 말이다.
“허허…….”
그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런 주안의 말을 들으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힘도 있고, 그 힘을 더욱 강성하게 만들 보물도 있지만, 그 보물을 오직 소소한 행복을 위해 쓴다고 하니…….
……이보다 더 대단한 것은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 그러면 열게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을 조금은 다르게 보았지만, 그런 시선을 전혀 느끼지 못한 주안은 느긋하게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켰다.
워프 게이트가 활짝 열리며, 그 너머의 세계수. 아미엘의 방이 비추어졌다.
그리고 주안은 조용히 그곳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