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52화
이런 주안과는 달리 유우나 공주는 정중하게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고 세냐는 주안의 어깨 위에 앉아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떠났었지. 그리고 오늘 돌아온 것이고.”
“예? 빠르시네요……. 성도 다예프로 가신 줄 알았는데.”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아미엘에게 비슷한 부탁을 받고 성도 다예프를 조사하였었다.
때문에 주안이 마를렌을 떠나기 전, 그 역시 황도를 떠날 준비를 하였었고 비슷한 시기에 황도를 떠났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사이 그 먼 북부를 벌써 갔다 왔을 리는 없었기에 눈앞의 이 거구의 노신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곳까지 가지 않았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그것에 이상함을 느껴 주안이 갸웃하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했다.
“다 늙어서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가겠느냐. 주변의 신전을 돌면서 타 지역, 다른 국가의 대신전들에게 연락해서 알아봤을 뿐이다.”
“아…….”
“그보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자꾸나.”
“예? 아, 예.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시겠어요?”
무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상당히 진지한 표정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표정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구나.”
“그러시면 정원 쪽으로 가시겠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택 정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인지 조금은 알겠다는 듯, 주안이 그가 마음에 들어 할 정원 쪽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권유가 마음에 드는 듯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표정도 조금 펴졌다.
그리고 주안은 일단 유우나 공주에게는 먼저 들어가는 말과 함께 세냐를 유우나 공주와 함께 보내었고, 그 뒤 주안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가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실은 말이다, 교단에서 너와의 만남을 바라며 연락이 왔다고 페트롤, 그 돼지 녀석이 나에게 연락을 하였었다.”
“네? 페트롤 대신관님이요?”
정원을 걷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그 말에 주안이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왜 저한테 바로 연락을 주시지 않고 마누엘 신관님에게……?”
“그야 그 녀석도 이상하니 너에게 바로 알려줄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 교단의 높은 녀석이 왜 너에게 만남을 바라는 것인지, 그 먼 다예프에서 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하……. 그래도 그렇지, 용케 마누엘 신관님에게 상담을 하셨네요.”
“그 돼지 녀석도 나보다 네 어미가 더 무서운 것 아니겠더냐.”
“으음……. 그렇게 말을 하면 우리 엄마가 많이 무서운 사람 같잖아요.”
“이 세상에 돈보다 무서운 게 없다는 녀석인데, 당연하겠지.”
“하아…….”
그래도 나름 신관이고, 한 지역을 대표하는 대신전의 대신관인데…… 정말 지나칠 정도로 돈을 밝히는 황도 대신전의 주인인 페트롤 대신관을 떠올리니, 주안도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돈을 밝히면서도 신성력이 강하여 대신관이 된 것도 모자라 이전 삶 속에서의 그는 정말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았기에 주안으로선 교단에서 믿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더욱 의문이 들 뿐이었다.
뭐, 그렇다 해도 그가 더러운 욕망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애먼 짓을 저지르기보단 좀 더 편한 삶, 정확히 말해선 돈이 많아서 편한 교단을 만들려는 게 꿈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교단의, 그것도 저희 제국과는 연관도 없는 그 북부의 성도에서 왜 저한테…….”
“그게 나도 이상하여 너를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주안을 보며 물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 없느냐.”
지그시 주안을 바라보는 그 눈은 마치 이미 다 안다는 것처럼 보이기에 주안이 움찔 놀랐다.
“너에게 있는 그 성흔으로 인해서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만 그것이 이유였다면 보다 요란한 방식으로 찾아 왔겠지.”
성흔은 교단을 대표하는 증표이자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보고 듣고 말을 해본 일도 없는 허상에 가까운 그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신성력이며 성흔이기에, 교단에선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신성력의 힘이 없었다면 교단은 애초에 그 절망 속에 빠져버린 당시의 대륙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며 많은 이를 이끄는 단체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나 이상하단 말이야. 너와의 만남도 비공식이란 말이지.”
“다예프의 신관이라……”
주안은 복잡해진 이런 부분을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는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이전 삶 속에서나 지금의 삶 속에서나 여전히 미숙한 주안과 이미 노련함은 정치인들보다 더 대단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모습의 주안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긴 하여도 먼저 그에 대한 것을 묻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안이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 말을 해주길 바라는 듯했다.
‘엘프들일까.’
이미 교단의 최고위층, 성도라 불리는 다예프의 모든 이가, 혹은 신관 대부분이 엘프라는 사실을 크세니아를 통해 들었던 주안이다.
그렇기에 페트롤 대신관에게 부탁까지 하여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먼저 주안,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올 줄은 몰랐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날 왜……. 그 사람들도 무언가를 알게 된 건가.’
주안이야 크세니아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다예프의 이들은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주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성흔 때문일까.’
어떻게 보면 이 성흔이란 마를렌의, 그리고 엘프들의 성흔이었기에 그들이 새롭게 나타난 성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할 말이 있다거나, 한다는 의미일 것이니…….
“이곳으로 오고 있다면, 황도에서 그분들이 만남을 요청한 것인가요?”
“그래. 황도 대신전에서 너와의 만남을 바란다더구나.”
“황도라…….”
황도라면 크게 위험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곳은 주안의 편이 많았고, 주안을 지켜줄 이들도 많았다.
아마 그들 역시 이런 점을 염두해 두고 황도로 정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주안도 무언가를 안다면, 경계를 할 것이니 황도라면 만남의 요청에도 응해주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마누엘 신관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무엇이 말이더냐.”
“제가 그 다예프에서 오신다는 신관분을 만나는 것, 괜찮을까요?”
주안의 질문에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했다.
“우리가 남부 대밀림의 그곳에서 만난 요정들의 여왕이라는 아미엘에게 부탁을 받은 것을 알아보려면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처럼 아미엘에게 부탁을 받은 것을 확실하게 알아보는 것은 결국 그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주안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었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그것을 알면서도 조금 꺼림칙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이곳이 황도라는 점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들도 네가 고민할 것을 알기에 장소를 황도로 정한 것이겠지. 적어도 이곳이라면…….”
“……저도 안심하고 만날 수 있다.라는 의미죠.”
“그래.”
그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조심스레 주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들은 무언가를 알고, 너도 그러한 모습을 보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하구나.”
주안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여전히 고민하였고, 그것을 알기에 마누엘 대신관은 주안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교단에 대해서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다 보니, 무언가 많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도 깨달았다. 지나칠 정도의 폐쇄성도 그렇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나타나 교단을 만들어냈지.”
신성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라 불렸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때론 마녀라고 박해도 받기도 하였지만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하는 힘으로서 세상에 기록이 되었다.
남겨진 기록은 거의 없지만, 정확한 것은 그들은 갑작스레 나타났으며 매우 드문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성흔을 가진 이와 함께 나타난 그 단체는 마치 신의 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많은 자가 신성력을 사용하였고 대암흑기가 끝나고 통일제국 캄파니아가 나타났다가 금세 쪼개어진 뒤 혼란스럽던 그 시기에 많은 이들을 어루만져주며 세상을 보다 이롭고 평화롭게 만들어나갔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것이 참 이상했다.
성인이라 불리는 개인이 나타나 그에 감명받아 모인 이들이 단체를 꾸린 것이 아닌, 애초에 처음부터 그 단체가 있었다는 것처럼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것도…….
“최초의 성흔을 지닌 이는, 성녀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 어디에서 등장한 것인지 아느냐.”
주안은 그 말에 갸웃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매우 간단한 답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안다는 표정의 주안을 보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했다.
“바로 남부에서였다. 현재의 아스란 왕국에서 말이지.”
“남부…….”
“그리고 그들은 많은 것을 해결하며, 많은 이를 이끌고 그렇게 북부로 향했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곳이 성도 다예프란 말씀이시죠.”
“당시에는 다른 이름이었지만, 현재의 이름은 그러하지.”
교단은 그렇게 탄생하였고, 북부에 자리를 잡은 뒤 그 영향력을 다시 반대로 남부로 퍼뜨려 나갔다.
남부에서 북부로, 그리고 북부에서 다시 남부로.
“남부 대밀림, 달란트 부족이 모시는 어머니의 나무에 새겨진 성흔. 그리고 네 손에 새겨진 성흔. 교단의 성흔.”
교단이 움직인 그 방향, 그 최초의 성흔을 지닌 이가 나타난 남부.
그와 관련된 것들을 종합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하나의 답을 내릴 수가 있었다.
“……그들이 바로 다예프의, 우리 교단의 높은 이들과 관계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단지 달란트 부족만 연관되었다면 이상하다 싶었겠지만, 문제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미 요정들과도 접촉을 해버렸고 그들의 여왕인 아미엘에게서도 많은 것을 들은 입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매우 조심스러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라고 생각이 든다만. 달란트 부족이 기다린다는 형제가, 우리 교단의…… 최초의 성흔을 지닌 이와 관계되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한단다.”
교단은 인간의 문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희망을 주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간이 세운 것이라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은, 인간만의 세상이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
그렇기에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고,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주안이 듣게 된 것과 매우 근접한 답을 내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모습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민을 하였다.
알려줘도 괜찮을까, 하는 그런 고민을 짧게나마 했지만, 그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서 이미 많은 것을 알아낸 분이고, 알려주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알게 될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 역시 요정의 존재, 남부 대밀림의 달란트 부족의 정체, 아미엘에 대한 것.
……주안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이미 안다.
그렇기에 주안은 금세 마음을 굳히고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말했다.
“교단의, 다예프의 신관들 모두, 혹은 대부분은…… 엘프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