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51화
마지막으로 벌꿀 과자를 만들 수 있는 제과점까지 들린 주안은 유우나 공주를 데리고 잠시 쉬기 위해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주안은 아무래도 유우나 공주 역시 황도에 놀러 왔다기보단 일 때문에, 그것도 매우 절박한 입장 속에서 찾아 왔었기에 제대로 된 장소를 방문하거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던 일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녀가 조금은 편하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이런 주안의 배려가 기분이 좋은 듯하였고 그의 권유로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을 해보고 싶은 듯 유우나 공주 역시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주문했다.
이런 유우나 공주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 시간을 즐기고 싶은 한 사람이 더 있었지만 말이다.
“세냐, 그렇게 많이 먹으면 저녁 못 먹어.”
“흐흥~ 간식이 들어가는 배와 밥이 들어가는 배는 다르거든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여자는 그런 게 있거든요~ 그죠?”
“응, 그렇지.”
주안의 한숨에도 세냐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유우나 공주에게 윙크하자, 유우나 공주 역시 싱긋 웃으며 세냐의 말에 동조를 해주었다.
서로 여성끼리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인지, 저택을 나올 때만 해도 뚱하던 세냐도 지금은 유우나 공주와 죽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 세냐가 벌써 케이크를 세 조각이나 먹고 있다는 것과 슬슬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고 귀여운 이상한 생명체가 너무나 여유롭게 자신의 몸보다 큰 케이크를 잔뜩 먹고 있는 것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게다가 주로 귀족들과 부유한 이들이 출입하는 카페인지라 주안의 얼굴을 아는 이들도 다수 있다 보니, 그 주목도는 더욱 컸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집으로 배달시킬까?”
이러한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운 듯 주안이 메뉴판의 케익과 과자 같은 디저트 부분의 첫 번째에서 마지막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마냐랑 아냐 것까지 세 개씩!”
“…….”
집에서도 이런 디저트와 간식은 세라타가 자주 해주거나 아니면 주안이 저택의 요리사들에게 부탁해서 잔뜩 해줬지만, 역시 집밥과 외식은 전혀 다르다는 듯했다.
평소에도 먹성은 좋았지만, 바깥에 나와서 그런지 그 먹성이 평소 그 이상인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런 세냐와 주안을 보며 유우나 공주가 입을 가리가 작게 키득거렸다.
“그런데 주안 공자님. 전부터 궁금하던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물어볼 것이라니요?”
크림이 잔뜩 묻은 세냐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던 주안이 유우나 공주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우나 공주는 이런 주안과 세냐를 보며 말했다.
“세냐는, 어떤 아이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요?”
갸웃하는 주안과 세냐의 모습에 유우나 공주가 잠시 당황했지만,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도 유우나 공주가 말했다.
“그게 저도 공자님이 남부 대밀림에 방문한 뒤에 함께 온 아이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아이들이 남부 대밀림 안에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거든요. 마치…….”
그리고 조심스레 세냐를 보며 유우나 공주가 말을 이었다.
“동화책에서 나오던 요정 같다고 할지…….”
“같은 게 아니라 맞…… 우읍!”
뭘 그런 걸 궁금해하냐는 듯 세냐가 유우나 공주의 말에 냉큼 답하려다 주안이 그 작은 입을 손가락으로 막아버리는 바람에 말을 삼켜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행동에 유우나 공주가 갸웃했고, 주안의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세냐는 찌릿 하고 주안을 노려보았다.
“그게, 그러니까…….”
하지만 주안은 이런 세냐의 날카로운 눈빛을 무시한 채 애써 태연한 척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인지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저택 내에서도 이 아이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안이 데리고 온 아이들이니. 그리고 주안과 잘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집안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에겐 굉장히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아이들이기도 했다.
다만, 그 호기심 강한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몸을 담는 만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주안으로 인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뿐이었다.
마법사들이 가지는 그 학구열과 호기심보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대한 충성이 더 컸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외부인인 유우나 공주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아, 저기……. 제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거라면 굳이 답을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그저 조금 궁금했을 뿐이지, 꼭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주안의 모습에 유우나 공주는 자신이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을 질문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런 유우나 공주의 말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말했다.
“아직은 알려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괜한 질문을 해서…….”
주안의 사과에 유우나 공주 역시 작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두 사람 사이에 굉장히 어색한 공기가 감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주안이나 유우나 공주 두 사람 모두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애써 태연한 척 차를 홀짝였지만, 이 묘한 분위기를 보며 오히려 세냐가 이상하다는 듯 주안에게 말했다.
“왜요? 알려줘도 딱히 상관없지 않아요?”
“너야 그렇겠지. 하지만 아미엘 님은…….”
유우나 공주를 살피다, 주안이 세냐에게 귓속말로 작게 말을 했지만, 오히려 이게 더 어색하고 이상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유우나 공주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듯 괜히 창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지만 말이다.
“이미 아미엘 님도 반쯤은 알려져도 상관없어 보이던데요.”
“반이나?”
“네. 뭐, 정체가 알려진다 해도 인간 사회에서 우리를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호기심 가득한 마법사들이 찾아온다 해도 달란트 부족도 있고 오빠네 잘나가는 집안도 있으니까요.”
“……잘나간다는 말이 맞기는 한데 좀 그렇다?”
표현의 차이일까.
딱히 틀린 말은 분명 아닌데, 뭔가 어감이 참 이상했다.
하지만 세냐의 말대로 이제 이 세상에 요정들에 관한 이야기가 퍼진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어 보이긴 하였다.
어차피 남부 대밀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고, 뭐가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러한 사실이 퍼진다 해도 그곳을 제멋대로 방문할 용감한 이들이 과연 있기나 할지…….
개인이나 작은 단체로는 엄두도 못 낼 것이며 가능하다면 제국 정도가 되겠지만…….
‘……세냐 말대로 우리 가문이 버티고 있는 이상 남부 대밀림에 엄한 생각을 하며 들어갈 곳이 없기는 하겠는데.’
이미 남부 대밀림의 달란트 부족과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과 그 부족의 왕과도 같은 대족장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초대로 제국의 심장인 황도까지 온 상황이다.
황제 폐하를 만나고, 또 그 실력도 이미 뽐낸 이상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한 제 발로 남부 대밀림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채우려는 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쉽게 당해줄 달란트 부족이나 요정들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메데아 대족장마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제 인간들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 보이잖아요.”
“아미엘 님이나 너라면 확실히…….”
아미엘의 능력도 엄청나지만 세냐와 같은 요정들의 능력 역시 대단했다.
이미 세냐의 마법 실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는 황립 마탑의 주인인 마이스터 모레노보다 더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나 잊혔다는 룬 마법에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비밀로 해. 아미엘 님이 허락하시면 그때 알려도 늦지 않잖아.”
“오빤 이상한 부분에서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니까요.”
“신중하다고 해주면 안 돼?”
“안 돼요.”
“…….”
냉큼 그렇게 답하고는 주안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세냐가 다시 케이크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유우나 공주님.”
“아, 아뇨. 그렇게 신경 안 써주셔도…….”
귓속말로 서로 속닥거리던 주안과 세냐였지만, 어째서인지 주안의 표정이 굉장히 험악해지고 이렇게 말을 하니 유우나 공주로서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대화가 오간 것인지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주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조금 어색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러한 어색함을 풀어내려는 주안이었고 유우나 공주 역시 더 이상 세냐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을 더 알아내려 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이었지만, 주안이나 유우나 공주는 저택의 거대한 정문을 앞두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나올 때까지만 하여도 저택을 든든하게 지키던 기사와 병사들과 간단한 인사도 주고받으며 나왔었고 그때 인사를 나누었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대로이나 뭔가,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하고 있는 게 주안의 눈에 그대로 보였다.
아니, 주안은 그들이 왜 그러한 것인지 대번에 파악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이유.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이유.
“……대체 저분은 저기서 뭐 하시는 거람.”
“저분, 마누엘 신관님 아니세요?”
“응? 괴물 할아버지네.”
저택의 정문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는 거구의 근육질 노인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고, 차마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라는 이유나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알고 보니 엄청난 인연이 있던 중요한 손님 중 하나라는 점도 큰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세 사람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기에 제각각 다른 표현을 썼지만, 공통된 것은 결국 보통 어르신이 아니라는 점뿐이었다.
그리고 그 불청객과도 같은 손님은 주안을 발견하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이, 마르티네스의 꼬마! 얼른 안 오고 거기 서서 뭘 빤히 보고 있는 것이냐?!”
“……그러는 마누엘 신관님은 저희 집에서 뭐하시는 건데요.”
“뭘 하긴, 이 녀석아. 네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지.”
아니, 기다리려면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지 왜 밖에 나와서 정문을 막고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주안은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신관님이 아니시라 야생의 건달 같으세요.”
“뭐야? 지금 시비 거는 것이더냐. 어쩜 네 아비나 어미보다 네 할아비를 더 닮아가는 것이냐.”
“칭찬, 아닌 것 같네요.”
“칭찬 아니다.”
예전 주안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을 가르쳤다는 검술 스승답게 할아버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보다 저희 집에는 어쩐 일이세요? 황도를 떠나셨던 것 아니셨어요?”
저택의 정문 앞으로 걸어온 주안은 저택을 지키는 수호신.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거구의 노인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