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50화
“어머? 주안 공자님.”
“응?”
세냐와 함께 방을 나선 주안은 그대로 밖으로 외출을 할지, 아니면 소니아를 만날지 살짝 고민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유우나 공주님?”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에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에 주안이 갸웃했다.
그리고 금세 주안의 앞으로 달려온 유우나 공주가 주안에게 말했다.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네? 시간이요? 그건 왜…….”
그런 유우나 공주의 질문에 주안이 갸웃하자, 유우나 공주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 그게 실은……. 동생들한테 좋은 선물을 몇 개 사주고 싶은데, 제가 이곳 지리는 잘 몰라서…….”
“아…….”
유우나 공주에겐 여동생 한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녀는 현재 혼자의 몸이나 다름이 없었고, 자신의 시중을 들 시녀든 뭐든 한 명 없이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풍신이 곁을 지켜준다지만, 그는 사실 아랫사람이라 보기도 어려웠으며 풍신 역시 이 황도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니 별수가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 슬쩍 고개를 돌린 주안은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세냐를 보며 물었다.
“어쩔래, 세냐.”
“여기 아랫사람들 많잖아요? 적당히 붙여 주시면 되죠.”
“음…….”
확실히 그게 정답에 가까워 보이긴 했다.
다만, 이런 세냐의 말을 곁에서 함께 듣고 있던 유우나 공주는 주안과 세냐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주안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정답에 가깝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정답은 아닌 듯했다.
“어차피 저도 외출을 할 생각이었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네? 정말요?”
“예.”
주안의 말에 유우나 공주의 초조하던 표정이 금세 사라지며 확 밝아졌다.
그런 유우나 공주의 모습에 주안은 쓴웃음을 지었고, 세냐는 왠지 입술을 샐쭉 내민 채 불만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 * *
저택 밖으로 나와 번화가 쪽으로 유우나 공주와 함께 걸음을 옮긴 주안은 따로 다른 사람들을 더 데리고 나오진 않았다.
호위에 대한 필요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세냐가 있는 이상 정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한 번 호위를 붙이면 정말 복잡하고 과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주안을 따라붙었기에 그러한 것을 바라지 않는 주안으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언가 많은 것을 사 올 것도 아니며, 많은 것을 산다 해도 집으로 보내면 되니 그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 외출은 말 그대로 바람도 좀 쐬며 세냐와 함께 바깥을 둘러보는 그런 정도이니까.
다만, 이런 외출 속에 의도치 않은 유우나 공주가 함께하는 것에 세냐의 표정이 새초롬해졌고 그 언짢은 기분까지 다 느껴졌기에 주안으로서도 참 신경 쓰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주안 공자님도 뭔가 사러 나오신 건가요.”
“뭐,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세냐의 언짢은 기분도 세냐가 주안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바람에 유우나 공주로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이렇게 둘이서 함께 바깥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유우나 공주는 잔뜩 들뜬 듯했다.
“혹시 안젤라 님의?”
“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친하신 분에게 오랜만에 찾아가야 할 일이 좀 생겨서…….”
그 친한 분이 누구인지는 말을 할 수가 없었지만, 주안의 미소에 유우나 공주는 꽤 친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에, 친하신 분이라…….”
“유우나 공주님도 동생분들 외에 따로 선물을 사드릴 것은 없으십니까?”
“글쎄요. 저에겐 그런 사람은 풍신 경 외에는 딱히…….”
그러면서 슬쩍 주안을 흘겨보던 유우나 공주고 주안과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고개를 돌리며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유우나 공주의 모습을 보다, 주안이 넌지시 한 마디를 해주었다.
“가시는 길에 슬렌더 백작님에게 선물을 하나 안겨 드리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슬렌더 백작님이요?”
“오시는 길에도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작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을 드린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공자님의 말씀대로 나쁘진 않겠네요.”
제국으로 오는 길에 들렸던 아스란 왕국 북부에 위치한 슬렌더 백작가는 왕가의 편도, 귀족파의 편도, 그렇다고 반군의 편도 아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아스란 왕국의 파벌 중 한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다만, 그는 제국에 매우 호의적이었고 때문에 제국의 상인들이나 귀족들은 아스란 왕국의 왕가보다 사실 슬렌더 백작가와 연줄이 더 많다고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주안이 만나 보았던 슬렌더 백작은 확실히 제국에 호의적이었으며 나름 자신들의 영지의 백성들이나 북부 귀족들에게 인망이 꽤 두터운 인물이었다.
“슬렌더 백작님에게 보내는 선물도 좋겠지만, 사미르 공자나 시아 양을 생각해서 선물을 준비하면 더욱 괜찮지 않겠습니까.”
슬렌더 백작가의 첫째이자 후계자인 사미르 공자는 정말 건강미 넘치고 미소가 밝았던 인물로 기억이 되었고, 그의 동생인 시아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로서 주안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딱히 큰 접점은 없었지만, 많은 편의도 봐줬고 여러 가지 일들이 얽혀있었기에 아스란 왕국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이라면 단연 슬렌더 백작 가문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주안의 입장에선 아스란 왕가보다 그들이 더 기억에 남았지만 말이다.
“이번 사업에서 슬렌더 백작가도 한 발 정도는 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서로 관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져야겠지요.”
“하긴, 그렇긴 하죠. 제국까지의 물품 운송에 북부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아스란 왕국 북부의 중심은 슬렌더 백작가이니, 그들과의 친분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제국의 상품을, 그것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업을 방해할 그런 이들로는 생각이 되지 않았지만 불편한 관계인 아스란 왕가와는 그래도 조금은 친밀해질 필요는 있었다.
“하아……. 그러면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사미르 공자야 공주님과 비슷한 또래이기도 하시고 나름 검도 잘 쓴다고 알려졌으니 제국의 좋은 검이면 어떻겠습니까?”
“아, 확실히 사미르 공자는 슬렌더 백작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사이기는 하시죠.”
슬렌더 백작가도 무가이며 기사의 가문으로 유명했다.
그것은 아스란 왕국 내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무가일 정도로,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을 남부 야만인들이라고 폄하를 하는 제국의 귀족들도 슬렌더 백작가에게는 딱히 그렇게 비하하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시아 양이야 뭐, 둘째 공주님과 나잇대가 비슷하시니 비슷한 선물을 준비하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부끄러움이 많았던 슬렌더 백작가의 막내딸인 시아를 떠올리니, 주안도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주안의 묘한 미소에 유우나 공주가 갸웃했지만, 주안이 말한 대로 선물을 준비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최근 슬렌더 백작가와는 이전과 같은 그런 냉랭한 관계도 아니었고 이런 소소한 것으로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다면 왕가의 입장에서도 좋으니 말이다.
“그런데 주안 공자님은 어떤 선물을 사러 나오신 건가요?”
“저요? 그게…….”
유우나 공주, 자신이 준비할 것은 대충 생각을 해놨지만, 주안은 무엇을 살 것인지 조금 궁금하였기에 이렇게 물어보았지만, 주안은 그 말에 움찔 놀라며 슬쩍 유우나 공주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답을 주지 않는 주안을 그저 빤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압박을 주는 유우나 공주로 인해서 주안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술이요.”
“…….”
“그리고 안주도, 아니, 과자도 좀 사야 해서…….”
술도 술이지만 벌꿀 과자도 잔뜩 준비할 생각인지라, 그렇게 말을 해주었지만 유우나 공주는 그 괴상한 선물 조합에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리고 주안은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할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아 그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어차피 뭐라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 * *
유우나 공주는 주안의 말대로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황도 내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대장간을 주안에게 추천을 받은 뒤 사미르 공자를 위한 검을 제작 주문을 하였고, 주안도 자주 찾았던 고급 옷 가게로 향하여 맞춤옷을 주문하였다.
대신 재질은 아스란 왕국의 기후에 맞게 얇고 통풍이 잘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둘 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지만 당분간 황도에 머물 유우나 공주였기에 크게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주안이 정말 술집, 그것도 귀족들과 같은 최상위 계층만 입장이 가능한 술집에 들러 술을 주문하고, 게다가 가게 주인과도 매우 친밀해 보였으며 주문하는 것도 굉장히 익숙해 보였기에 유우나 공주를 놀라게 만들었다.
“저기, 왠지 엄청 익숙하시네요. 주안 공자님.”
“아하하……”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라, 술집을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유우나 공주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주안에 대한 소문은 확실히 작년까진 매우 좋지 않은 편이었고 그렇기에 사실과 거짓이 잔뜩 뒤섞인 채 진실인 것처럼 퍼져있는 것이 상당히 많았다.
단순히 마마보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소문이 소문을 낳고 살이 붙어 퍼진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년의 일이며 주안을 제대로 알게 된 뒤로는 그 모든 게 헛소문이 아닐까, 악의적으로 누군가가 퍼뜨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문과의 주안은 많이 달랐다.
“의외로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네? 정말요?”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술을 모으시는 것을 저희 아버지도 상당히 좋아하시고, 소니아 누나도 그렇고 의외로 피터 경도 애주가세요. 물론 단 것을 더 좋아하시지만.”
이렇게 고급 술집까지 찾아와 술을 찾는 것이야 얼마 된 일은 아니나, 적당히 둘러 말을 하기 위해 꺼낸 이것은 사실 거짓도 아니었다.
주안의 말처럼 가까운 이들 중에 많은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였다.
그렇다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술이라……. 그러고 보니 저희 아버지도 술은 참 좋아하셨죠.”
“유우나 공주님은 어떠세요?”
“저요? 저도 조금은…….”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가 있다 보니, 원치 않아도 술맛을 알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유우나 공주, 자신이었다.
“혹시 주안 공자님도 술을 잘 마시는 거예요.”
“아하하…….”
유우나 공주의 물음에 주안이 작게 웃어주며 말했다.
“……안 마십니다.”
“왜 정색을 하세요.”
진지함을 그대로 담아내며 말하는 주안의 모습에 유우나 공주가 움찔 놀랐지만,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주정이 심하기에 최대한 자제를 한다는 말까지 할 수가 없었다.
아직 그 소문까진 듣지 못한 것인지, 유우나 공주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지만, 언급 자체가 싫은 듯 주안이 앞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주안을 보며 무언가 참 이상하다는 듯 유우나 공주가 갸웃하며 황급히 뒤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