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9화
서방 대륙의 기사란 정정당당한 대결에선 곧 죽어도 일대일을 고집하는 매우 답답한 집단이었다.
전쟁 속에서도 상대방의 등을 찌르는 행위를 주저할 정도로 매우 고지식한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한 사람을 두고 셋이서 덤빈다?
주안으로서는 조금 상상이 안 가는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워랜은 픽 하고 웃어주며 주안에게 말했다.
“주안 공자 말대로 그런 행동이 자존심은 상하게 하지만, 자신보다 월등하게 강한 존재를 상대로 그런 자존심을 세우지는 않아. 무엇보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대련이니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자존심을 건 대련도 아닌 서로의 즐거움과 배움을 내려주고 배움을 받는 일이라면 그렇게 고지식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특히 배움에 대해선 굉장히 개방적인 서방 대륙의 기사 집단이라 워랜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주안보다 기사 집단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있는 이였으니 말이다.
“로마니아 백작님이 오시면 또 한동안 시끄러워지겠네요.”
“그 영감님도 나잇값은 참 못 하시긴 하시지.”
검에 대한 열정이야 젊은이들에게도 모자라지 않게 불태우는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인지라, 주안도 워랜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거, 우리 집에 진짜 전설에나 나올 랭크 8의 분도 모자라 황궁에도 겨우 셋밖에 없는 랭크 7의 기사가 곧 4명이나 머물게 된다는 게 참 신기하긴 하네요.”
에밀리 펜버를 포함해서 워랜과 풍신, 그리고 곧 오게 될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까지.
네 명이나 되는 랭크 7의 기사도 모자라 랭크 8의 메데아 대족장까지 저택에 머물게 되니, 주안으로서도 뭔가 참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어디랑 전쟁을 하든 필승이겠는데.”
“……그러게요.”
절대 지지 않는 전쟁은 없다고 하지만, 이쯤 되면 어떤 이들을 상대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될 정도로 다수의 강자가 자신의 집에 모여 있다 보니 워랜의 말처럼 이것은 필승으로 향하는 길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런 강자들만 저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많은 가주와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와 병사들까지 오니…… 이건 예전 남부 아스란 왕국을 정벌할 때 보여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과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군사야 적지만, 하나하나가 가주들의 호위를 위해 뽑힌 제대로 된 실력자들인지라 그 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뛰어났다.
게다가 가장 높은 랭크의 기사들과 메데아 대족장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말 그대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장 강한 힘이 집중되어 있다 봐도 무방하였다.
“황실에서 놀라겠는데.”
“예. 그게 좀 걱정이긴 해요. 외할아버지, 아니, 황제 폐하가 밤에 악몽을 꾸실 정도라고 하셨거든요.”
“그 정도야?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안 거야?”
“……엄마가 알려주시던데요.”
“음…….”
황제 폐하의 그런 부분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일이긴 하나, 전 황녀이자 딸아이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 심하게 걱정하시는 것은 아니신 듯하네.”
“그야 당연하죠.”
그리고 주안이 싱긋 웃으며 워랜에게 말했다.
“가족이니까요.”
“가족이라……. 가만 보면 주안 공자는 정말 귀족답지 않아.”
“네? 왜요?”
“아무리 피가 이어져 있다 해도, 귀족에게 가족이란 주안 공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거든.”
“뭐, 그건 저도 잘 알지만…….”
귀족 중에서도 주안이 포함된 가장 높은 직위에 위치한 이들에게 가족이란 말 그대로 가문을 더욱 키워줄 도구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힘이 되어줄 다른 이들과 맺어주고, 가문을 제대로 이끌고 다음 세대로 이어줄 그런 아이.
그리고 서로 견제를 하고 눈치를 보는, 그러한 귀족 말이다.
이러한 것은 이미 링베르가 공작가를 통해 겪었기에 워랜이 하는 말을 금세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엄마랑 같이 외할아버지께 가서 안심을 시켜드려야겠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건강하게도 해드리고 말이에요.”
“그나마 주안 공자와 안젤라 님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정말 황실이랑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거든.”
“그렇죠? 감사하게 여기세요.”
“그래, 그래. 정말 고마워 죽겠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안젤라는 황실의 체면과 황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존재라고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안이 보기에는 이런 엄마이기에 더욱 황실과 가깝고 여전히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분명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황실을 위협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이나, 안젤라로 인하여 황실의 절대적인 지지자이자 가족과 같은 이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니까.
그것은 안젤라뿐만이 아니라 다음 대의 가주인 주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엄마와 함께 황실을, 황가를, 황제 폐하를 만나러 가고 안젤라에겐 여전히 아빠이고 주안에겐 친근한 외할아버지였으니 말이다.
* * *
메데아 대족장이 황도로 도착한 이후 며칠은 주안도 참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그녀를 초대한 것도 주안이었고, 다른 이들보다 돈독한 사이임이 알려진 뒤로는 메데아 대족장을 만나려는 이들, 특히 기사 집단과 메데아 대족장 사이에서의 조율을 해야만 했다.
특히나 황실의 실력파 기사들의 수많은 요청에 상당한 고생을 해야만 하였다.
메데아 대족장도 딱히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존재도 아니었고, 강한 자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은 이 단순한 기사들과도 매우 잘 맞다 보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메데아 대족장이나 유우나 공주를 데리고 황도 구경을 시켜준다거나, 유우나 공주와 몇몇 유력한 귀족들을 연결해 주며 그 자리에 참석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유우나 공주 역시 주안, 아니,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퍼지게 되면서 이러한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는 귀족들이 유우나 공주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아마 그녀로서도 꽤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후아, 힘들다…….”
오늘도 메데아 대족장과 함께 황궁에 잠시 들렀다가 대련을 참관하고 집으로 돌아온 주안은 완전 녹초가 되어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향한 뒤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응? 왜 다 죽어가는 오징어처럼 되셨나, 모르겠네요.”
“……비슷해서 뭐라 할 말도 없구나…….”
그리고 이런 주안을 보며 유유히 날아온 세냐의 말에 주안은 뭐라 따질 수도 없었다.
실제로 자신은 검에 빠진 기사도 아니고, 견습 기사도 아니며, 기사 지망생도 아니다 보니, 메데아 대족장과 여러 기사의 대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지치는 일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같이 구경을 하던 기사들이야 보고 배울 것도 있고 고수들의 대결에 잔뜩 흥분했지만, 주안은 귀가 따갑게 울리는 소리나 가끔 터져 나오는 힘의 파편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이러다 보니 귀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칠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 안 써요?”
“썼지. 썼는데도 보통 일이 아니네.”
육체의 피로야 그래도 좀 낫게 만들긴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까지 완전히 치료해주는 것은 아닌지라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그보다 세냐 넌 오늘 소니아 누나랑 같이 안 있었어?”
“흐흥~ 누구랑 달라서 옆에 붙어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할 만큼 그 언니는 멍청하지 않거든요.”
“……그 누가 누군데.”
왠지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지만, 세냐는 그저 히죽 웃으며 주안이 내민 손바닥 위로 날아와 앉았다.
“그보다 아미엘 님은 언제쯤 부르실 생각이세요?”
“응. 할아버지 오면. 곧 오실 거니까…….”
“헤에, 그래요?”
“응? 왜? 아미엘 님 보고 싶어?”
“뭐, 그렇긴 하죠. 아미엘 님이야 매일매일 보고 싶은걸요.”
“……그런 것치고 지나치게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거 아니야?”
“익?! 아니거든요! 그러면서도 항상 아미엘 님 생각했거든요!”
“흐응……. 그래?”
“……그 의심 가득한 표정은 뭔데요.”
“아무것도.”
주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자, 세냐가 금세 부루퉁해져서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리고 이런 세냐의 귀여운 모습에 주안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통통하게 부푼 세냐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거려 주었다.
“음, 그러면 아미엘 님 만나러 갈래? 요 며칠 바빠서 전혀 못 만났잖아.”
“우음…….”
잠시 고민하던 세냐가 슬쩍 주안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래도 오빠 피곤하잖아요. 오늘은 좀 쉬다가 내일이라도…….”
“괜찮아, 괜찮아. 나 말짱하거든?”
그리고 주안은 이런 세냐를 보며 싱긋 웃어준 뒤 자신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잔뜩 끌어 올려 자신의 몸을 감싼 것도 모자라 세냐도 신성력의 빛으로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오빤 진짜 이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쓰시는 것 같아요.”
“뭐 어때. 어차피 사용하라고 나한테 주어진 힘인걸. 나쁜 일에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긴 하지만…….”
확실히 나쁜 곳에 사용은 안 해도 정말 쓸데없는 곳에 많이 쓴다는 것에 세냐도 가끔 황당해했었다.
세탁하기 귀찮다고 신성력으로 빨래까지는 하지 말았으면 했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편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빨래, 세냐도 받아 봤기에 얼마나 편한지 이미 다 겪어 봤으니 말이다.
참고로 옷을 입은 채로 빨래 겸 목욕까지 다 해버린 일도 있었으니까.
“빈손으로 가긴 조금 그러니까, 또 술이라도 사갈까.”
“……우리 아미엘 님을 주정꾼으로 취급하시는 것 같은데요?”
“이왕이면 벌꿀 과자도 또 잔뜩 사 가고 말이야.”
“웃?!”
그리고 벌꿀 과자라는 말에 세냐도 움찔거렸다.
마를렌에서 잔뜩 가져왔던 벌꿀 과자는 이미 세 요정 꼬맹이들이 다 먹은 뒤였기에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그래도 몸에 좋지도 않기에 그 뒤로는 주안이 사주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쩔래? 갈래, 말래? 난 뭐, 싫다면 굳이 안 가도…….”
“가요!”
“응. 그러면 이번에는 소니아 누나랑 마냐랑 아냐도 같이 갈까?”
“네? 그 언니랑 같이요?”
세냐가 갸웃하자, 주안이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차피 소니아 누나도 워프 게이트에 대해선 잘 아시니까.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마법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세냐 너한테 잘 배웠는지 아미엘 님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잖아.”
“호오……. 확실히.”
“세냐가 열심히 가르친 만큼, 아미엘 님도 세냐를 칭찬해주지 않으실까 싶은데.”
“굿! 오빠치고는 좋은 생각인데요.”
“하하, 그렇지?”
사실 그냥 소니아를 데리고 그곳을 구경시켜 주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냐를 은근슬쩍 띄워주는 것만으로도 금세 넘어오는 것을 보니, 정말 칭찬에 약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굉장히 좋아져 잇는 세냐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