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8화
“왜?”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흠…….”
토미의 미묘한 눈빛에 워랜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참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워랜이 다른 의미로도 대단하였다.
“그러면 훈련은 곧장 시작하시는 것입니까.”
“오자마자 훈련을 시키라고요? 피터 경, 그건 좀……”
피터의 말에 워랜이 황당하다는 듯 답했지만, 피터는 매우 진지했고 이러한 피터와 마찬가지로 매우 진지한 풍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이곳은 피터 경의 장소이지 않습니까. 이 장소에서 제가 이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참으로 답답한 풍신의 말에 워랜이 한숨을 내쉬었지만, 만만치 않게 답답한 피터가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그곳이 어디든 잘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
물러섬이 없는 피터의 모습에 풍신도 조금 곤란해하였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에게 토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기, 그러면 피터 스승님이랑 풍신 스승님 두 분에게 같이 훈련을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천진난만한 토미의 그 말에 피터와 풍신이 말 없지 토미를 바라보았다.
매우 단순한 말이긴 하나,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두 스승도 작게 미소를 지어줄 수가 있었다.
다만, 워랜만은 이런 토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훈련을 못 받아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냐. 두 배로 힘든 게 아니라 네 배로 힘들 수가 있어.”
“괜찮아요. 그러면 네 배로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잖아요.”
담담하게,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을 하는 토미로 인해 워랜만이 아니라 피터와 풍신마저 할 말을 잊은 채 토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어른들이자 선배들이며 스승이자 형과도 같은 이 사람들을 보며 토미가 거짓 없는, 오히려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강해질 수만 있다면, 전 어떤 힘든 훈련이라도 견뎌낼 거예요.”
정말 그렇게 할 녀석인지라 워랜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식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황실근위대의 훈련은, 특히 체력훈련은 무식하다고 알려진 서방의 기사들도 질리게 만드는 것들이었고 그것을 매일 빠짐없이 훈련한 토미의 체력은 정말 웬만한 기사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리고 이런 토미를 보며 풍신이 조용히 말했다.
“예전부터 매우 궁금하였다만, 너는 어째서 그토록 필사적으로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더냐.”
“세라타를, 제 동생을 위해서라도 전 반드시 강해져야만 해요. 그리고…….”
그리고 토미가 풍신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일찍 워랜 경처럼 되어야 도련님 곁을 지킬 수가 있을 것이니까요. 도련님과 도련님이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들…… 그리고 피터 스승님까지. 저와 제 동생에게 베푼 은혜를 갚고 싶어요.”
언제나 그랬다.
토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세라타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소중한 사람들 속에 한 사람, 한 사람…… 이렇게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세라타뿐만이 아니다.
자신과 세라타를 그 힘든 곳에서 손을 잡아주고 꺼내준 주안이 있었고, 동생을 지킬 방법을 가르쳐 준 피터가 있었다.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집을, 따뜻하게 품어준 저택의 사람들, 힘들 때 보듬어준 모든 사람.
토미는 세라타뿐만이 아니라, 주안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사람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가지고 싶었다.
“그 도움이 될 방법이 있다면, 저는 어떤 힘든 일이라도 견뎌낼 거예요.”
올곧은 토미의 그 눈을 보며, 풍신은 순간 자신이 정말 엄청난 아이를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토미, 이 아이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훌륭하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훌륭하게 배움을 나타낸 이 아이를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은 감정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 너의 그 각오에 어긋나지 않도록, 많은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도록 하마.”
“예! 감사합니다!”
토미가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이런 토미의 모습에 인자한 미소를 짓던 풍신이 이내 자신의 곁에서 매우 닭살이 돋는 이 모습을 보던 워랜에게 말했다.
“너도 좀 보고 배우도록 하거라.”
“갑자기 저한테 왜 그러세요.”
“……마음가짐의 차이가 언젠가 검의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이야 네가 더 많은 것을 알고, 가지고 있다지만 언젠가 저 아이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너는 걱정이 되지 않더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네 녀석은…….”
하지만 이런 워랜에게 한 소리를 하려던 풍신도 이내 워랜의 자신만만한 그 미소에 멈칫하였다.
그리고 워랜은 풍신을 보며, 토미를 보며 말했다.
“적어도 저 역시 지켜야 할 것은 확실하니까요. 강해지고자 하는 그 마음은 지지 않습니다.”
“…….”
워랜 역시 토미와 비슷하다면 비슷하였다.
아니, 둘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매우 많았다.
남다른 그 재능과 자신의 재능에 맞는 검을 위해서 노력한 것.
그리고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점.
그렇기에 워랜도, 토미도 역시나 강함에 목말라 있었고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니까.
이런 워랜의 모습에 풍신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했지만,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이해하였다. 하나, 강함을 쫓기만 하여선 안 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강해진다 하나, 그것을 잊는 순간…….”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럴 일은 없어요.”
풍신의 말에 워랜과 토미가 동시에 말했다.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니까요.”
강함을 쫓다 모든 것을 잃어본 자신과는 달리, 강함을 쫓지만 지켜야 할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풍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한편으로는 이 두 사람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래, 그러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사람이 언제나 그러한 생각을 계속 간직해 나갈 수 있도록, 단지 몸만 강해지게 만든 것이 아닌 마음 역시 강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으니 말이다.
* * *
“크라아아아앗!”
“크윽?!”
메데아 대족장의 큰 목소리와 함께 특별히 연습용으로 제작된 거대한 검이 내질러졌고 그 검을 막으려는 듯 에밀리 펜버의 방패가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웬만해선 방패나 방어구 따윈 필요도 없는 무식한 몸들을 자랑하는 서방의 기사 중에서도 정점으로 분류되는 랭크 7의 기사인 에밀리 펜버라도 메데아 대족장의 검이든 주먹이든 도저히 맨몸으로 받을 엄두가 안 나서 들게 된 방패였다.
하지만 이 방패를 뚫고 전해져 오는 묵직한 힘은 육체를 강타하고 내부에 그대로 전달되어왔다.
“쿠후후! 잘 버티는구나! 우리 애들보다 훨씬 튼튼해! 때리는 맛이 있어!”
“……그거 칭찬입니까?”
“칭찬이다!”
우그러진 방패를 황당하게 바라보며, 저린 팔을 휘휘 내젓는 에밀리 펜버였지만 그래도 그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분명 자신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제일 기사이며 동부에서는 가장 강한 기사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의 이 무지막지한 여성, 메데아 대족장의 앞에서는 마치 수련기사가 된 기분을 느껴야만 하였다.
다만, 그것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기에 자괴감이나 분노는 전혀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르티네스의 주안이 말해준 것처럼, 여긴 정말 강한 아이들이 많아. 여기 온 것이 정말 즐겁구나!”
“대체 공자님이 뭐라고 하셨기에……. 그보다 저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이로 분류되는 건 조금 그렇습니다.”
“쿠후후. 아이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조금 더 강해져야지. 약하면 모두 아이다.”
“……메데아 대족장님 앞에서는 죄다 아이겠군요. 아, 바스티아노 백작님은 아니시려나.”
우그러진 방패를 살펴보다, 기어이 금이 가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에밀리 펜버가 방패를 연무장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이미 몇 개의 방패를 버려둔 것인지 몇 개나 연무장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고, 더 이상 방패를 사용하기는 포기한 듯 자신의 검을 꽉 움켜잡았다.
“바스티아노? 아, 마르티네스의 주안이 말하였던 황소 같은 남자라 들었다. 맞나?”
“예, 맞습니다. 별명이 성난 황소이시거든요!”
에밀리 펜버가 방어에서 공격으로 돌아서자, 메데아 대족장은 공격 일변도에서 오히려 방어하는 쪽으로 바꾸며 에밀리 펜버의 검을 막아서거나 피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에밀리 펜버의 말에 즐거운 듯 웃어주며 말했다.
“쿠후후. 마르티네스의 주안의 말대로 여긴 정말 재미가 있어. 그대 역시 강하나, 더 강한 이가 있다니 말이야.”
“예. 그리고 또 여기로 오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강할 것이니, 충분히 만족하실 것입니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둥 중 하나인 로마니아 백작가의 미첼로티 로마니아 백작이 벡브란 전대 공작과 함께 오고 있는 이상, 메데아 대족장을 만나면 분명 검부터 들이댈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즐겁게 받아 줄 메데아 대족장의 성격을 파악한 듯, 에밀리 펜버 역시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하였다.
* * *
연무장 한쪽에서 에밀리 펜버와 메데아 대족장의 대련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 중, 주안은 특별히 마련된 가장 좋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대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예상은 했지만, 에밀리 경도 메데아 대족장님과 제대로 검을 나눌 수는 없으시네요.”
“의외로 제대로 보고 있네?”
“그래도 나름 실력 있는 분들이 검 쓰는 것을 그동안 몇 번이나 봤는데요. 그 정도는 이제 잘 알죠.”
워랜의 말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긴 했지만, 워랜의 말대로 주안의 눈썰미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야 대등하거나 에밀리 펜버가 조금 밀린다 생각하겠지만 워랜이나 실력이 있는 기사들이 보기에는 메데아 대족장이 에밀리 펜버에 맞춰서 검을 나누고 있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치 피터 경이나 풍신 경이 토미를 지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맞아. 정말 고맙게도 그렇게 해주고 있으시지.”
랭크 8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워랜은 메데아 대족장이 자신의 검기가 실린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을 때 정말 아득하게 높은 그것을 바라본 경험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상대를 할 수 있을까, 수없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때보다 훨씬 성장한 지금 역시 눈 앞에 펼쳐진 에밀리 펜버와 메데아 대족장의 대결을 보면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거 잘못하면 랭크 7의 기사 셋이서 메데아 대족장과 대련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예? 그게 가능하겠어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지금이야 메데아 대족장님도 나름 즐겁게 한다지만, 점차 더 큰 욕구를 느끼시겠지.”
“기사로서의 생각이신 거죠?”
“기사라면 다 그렇게 생각할 거야. 강자와 싸워보는 것은 본능이나 마찬가지니까.”
“……워랜 경은 그런 본능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요.”
“나도 가끔 그렇긴 하거든?”
“우리 토미를 괴롭힐 때요?”
“…….”
딱히 틀린 말이 아닌지라 워랜이 입을 꾸욱 다물고는 시선을 메데아 대족장에게 고정하였다.
그리고 이런 워랜의 모습을 보며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쨌거나 나중에 로마니아 백작님이 오시고, 또 대판 싸운 뒤에 에밀리 경을 끌어들이거나 날 끌어들이거나 해서 단체로 대련하자고 하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으음……. 그건 진짜 볼만은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으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