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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47화 (24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47화

주안은 아버지를 똑바로 보며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과일들의 공급은 원산지인 메데아 대족장님의 달란트 부족이, 그것을 가장 가까운 아스란 왕국에서 상품을 가공, 그리고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그것을 받아 유통을 시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들어주고, 신중하게 생각하던 주레인 공작이 잠시 유우나 공주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이내 주안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유우나 공주에게는 미안하지만, 남부 대밀림과의 거래는 우리 가문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단다. 어찌하여 복잡하게 아스란 왕국을 넣은 것이더냐.”

“예. 그 말씀대로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면 단독으로 일을 해나가도 크게 상관은 없지요.”

얻을 수 있는 이득은 10인데, 들어가는 노력의 비용이 8이나 9가 되어 버리고, 이 사업을 하지 않아도 가문에 들어오는 수입이 그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상황이라면 사실 무시해도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하려면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얻는 이득이 크지 않으니까요.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입장에서는 말이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입장에서는 사실 해도 되고 안 해도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미 가문은 제국 제일의, 서방 대륙 제일의 부를 거머쥐고 있었고 정말 멍청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돈이 솟아나는 땅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것은 수익적인 일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의미였고 정치적인 의미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수익만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메데아 대족장님의 달란트 부족과 깊은 연이 있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로 알려주는 역할이 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 그렇기는 하겠지. 긴밀한 협업 관계는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니.”

메데아 대족장과 주안의 친밀함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부 대밀림의 달란트 부족과 마르티네스 공작가 연계된 하나의 사업으로, 두 거대 단체의 친밀함을 보여주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주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개인과 개인이 아닌 단체와 단체의 친밀함에 있었다.

아니, 꼭 친밀해질 필요도 없이 서로 계약상 묶인 관계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은 일을 아스란 왕국에 떠넘기는 일이 되는 것이지만, 아스란 왕국의 입장에서는 많은 일자리와 큰 금액이 오가는 사업이 될 것이에요.”

유우나 공주에게는 사실 미안한 일이긴 하나,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주레인 공작은 유우나 공주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주안을 돌아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편하고 쉬운 일은 결국 우리라는 말이로구나.”

“예. 어차피 제국의 일부 외에는 유통망이 전혀 없는 아스란 왕국보다는 이 역할이 우리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일이기도 해요.”

“생각보다 냉정한 판단이구나.”

“개인적인 생각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대한 가문의 이익에 맞춰서 생각해 본 것이죠. 그리고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두고 결정을 한 것이에요.”

“그래. 그렇지……. 가문을 위한 일……. 그리고 그에 맞는 역할.”

정이 많고 배려심이 많은 아들이 이런 판단을 내렸다는 것에 좋아해야 할지, 아니어야 할지 참으로 복잡하였다.

가문의 주인이라는 입장에서는 주안의 판단은 훌륭하였고,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벌써 이런 생각을 가지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에 조금 안타까웠으니 말이다.

벌써 깨달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역할.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위에 서서 명령을 내린다는, 그 입장을 주안은 너무나 잘 알고 또한 깨닫고 있었다.

아들이 조금은 어른이 된 것에 주레인 공작은 기쁘면서도 쓸쓸했지만, 그래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유우나 공주에게 시선을 주며 주레인 공작이 말했다.

“유우나 공주는 이 일에 이미 동의를 하고 있나 보군.”

“저희 입장에선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입장에서는 귀찮고 힘든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오히려 매우 감사한 일일 뿐입니다.”

아스란 왕국의 입장에서는 많은 일자리를 내고 그들에겐 큰 수익이 발생할 이 일이 그저 고마울 뿐이니, 크게 상관이 없는 듯했다.

저마다 각자의 입장과 사정이 있으니, 꼭 나쁜 쪽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주레인 공작은 잠시 이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조용히 메데아 대족장에게 물었다.

“메데아 대족장님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딱히 상관은 없다. 다만, 그 이전에 우리의 조건을 들어 준다는 전제하에 우리 역시 움직일 것이니.”

“조건이라니요?”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원들이 바라는 물건이 하나 있어요. 어차피 돈은 쓸모가 없으시니, 일종의 물물교환이 되겠지요.”

“확실히 그렇긴 하겠구나.”

바깥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대밀림의 주민들에게 대륙의 화폐는 쓸모가 없었다.

그렇기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그들이 원하는 물건과의 교환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을 쓴다는 것에 주레인 공작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면 그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메데아 대족장은 잠시 주안을 바라보았고, 주안은 그런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메데아 대족장을 대신해 아버지에게 말을 꺼냈다.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철이 필요하세요.”

“철……?”

그리고 그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유는 모르나, 철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그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주레인 공작의 표정이 변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주안이 잽싸게 말을 꺼냈다.

“아시다시피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들, 달란트 부족은 마물들과의 전투가 항시 벌어지고 있어요. 그 때문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광물, 무기를 만들 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필요한 실정이세요.”

“철은 꽤 까다로운 광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어요.”

주안도 철의 쓰임새가 어떤지 잘 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철을 수출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철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나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 제노폴 제국 역시 많은 철을 케세니아에서 수입을 하고 있으니까요.”

“네 말대로 철을 수입과 수출을 하는 나라가 없는 것은 아니지. 우리 제국도 그러하니. 하지만 생각을 해야 할 것은, 그것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나라가 어디냐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쓰이냐는 것이지.”

산지가 많고 채광이 가능한 광산들이 많은 제국 북부의 케세니아 정도가 수출할 뿐, 대부분 국가는 자국 내에서 나는 것을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형식이다.

때문에 각 국가의 지도자들은 웬만해선 남는 것이라 할지라도 만약을 대비해서 모아둘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주레인 공작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남부 대밀림은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미지의 땅이고, 그 부족의 힘은 메데아 대족장님으로 인해 크게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이 철을 제공한다는 것은…….”

“우리야 아니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 좋지 않게 보이겠죠.”

외부의 세력에 무장을 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잘못하면 역모로 몰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 말이다.

“예. 그래서 이 부분은 우리 가문뿐만이 아니라 외할아버지, 황제 폐하와도 의견을 나누어야 할 듯해요.”

“……그리고 그 일은 나와 네 할아버지에게 떠넘길 생각이구나.”

“아무리 저라도 무려 황제 폐하에게 이러한 일들이 있으니 허락을 해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인걸요.”

“……네 엄마를 앞세우면 가능할 듯하다만?”

“그건 확실히…….”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인지라 주안이 혹할 뻔했다.

하지만 이내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했다.

“정치적인 일에는 엄마를 끌어들일 수 없어요.”

“후우……. 정치라, 정치……. 네 할아버지가 오면 또 한 번 바람이 크게 불 듯한데, 거기에 이 일까지……. 링베르가 공작가에게 좋은 먹잇감 하나를 던져주는 것과 같은 일이로구나.”

“죄송해요. 멋대로 또 이런 일을 벌이고, 또 아버지랑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고…….”

“네 할아버지가 오면 혼날 각오는 해야 할 거다.”

“이미 많이 혼나서 상관없어요. 그래도 엄마만 잘 말려주시면 괜찮을 거예요.”

“…….”

주안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꾸욱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주안 역시 이런 아버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다만, 서로의 눈빛이 오갔지만 누가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주안이 혼난다면, 분명 엄마이자 아내가 나설 게 분명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엄마이자 아내를 말릴 힘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호, 혼나지 않도록 일단 이 아버지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마.”

“……잘 부탁드릴게요.”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 보다, 지금의 이 일이 더 큰 문제라는 듯 주레인 공작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주안 역시 진심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안젤라 님의 호위기사인 피터 몰디나라고 합니다.”

“유우나 공주님의 호위인 풍신이라고 합니다.”

이미 한 번 만나 본 일은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일은 없다 보니 서로 거의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던 피터와 풍신이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런 피터의 곁에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토미가 있었고, 풍신의 곁에는 심드렁한 표정의 워랜이 함께였다.

비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정식으로 만나는 자리이며 또한 같은 제자를 두게 된 사이인지라 무언가 복잡 미묘할 것만 같았던 주안의 우려와는 달리 피터나 풍신이나 매우 담담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든 피터가 풍신에게 말했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아이입니다. 그 가르침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피터의 무뚝뚝한 말 속에서도 토미를 매우 아낀다는 것을 그대로 느낀 풍신은 오히려 피터에게 죄송스러워할 지경이었다.

눈앞의 이 곰 같은 사내를 보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잘 이끌어 줄 것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토미에 대한 그 태도는 동방 대륙에서 자신이 겪었던…… 스승이 곧 아버지라는 그러한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미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재능 넘치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하여도 모자라지 않을 아이로 키워주고 싶었다.

“후우……. 거 인사 다 하셨으면 밥이나 좀 먹으러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렇게 예절 교육을 했는데도, 너는 여전하구나.”

“천성이라서요. 대신, 이건 여전하지 않을 겁니다.”

풍신의 한숨에도 워랜이 빙글빙글 웃으며 자신의 검을 보여주었다.

검신이 얇고 긴 것이 마치 동방대륙의 명검을 연상시켜주었고, 그것은 주안이 특별히 워랜을 위해서 선물한 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지 검이 명검이라는 것만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풍신은 실제로 워랜의 실력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을 대번에 파악하였다.

“예절 교육은 등한시하여도 검까지 뒤로 미룬 것은 아닌가 보구나.”

“뭐, 그렇죠.”

풍신의 미소에 워랜이 슬쩍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토미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물론 워랜이 마냥 게으름을 피운 것은 아니나, 아스란 왕국에서 풍신에게 받던 훈련과는 달리 쉬엄쉬엄하였음에도 확실히 워랜의 검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그게 토미로서도 부러운 워랜의 재능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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