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6화
“아앙~ 우리 주안이! 왜 또 이렇게 늦은 거야!”
“푸업?!”
말에서 내리자마자 주안은 자신에게 달려와 냅다 껴안는 엄마로 인해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다행히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인지라, 엄마인 안젤라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볼을 비비고 볼에 뽀뽀도 하는 과격한 스킨십은 하지 않았다.
“저기, 부인…….”
“왜요.”
“흠흠. 홑몸도 아닌데 이렇게 나와서 맞이해 주는 것은 고맙긴 하나 일단 손님도 오셨으니, 적당히 하고 들어가는 게 어떻소?”
아들에게는 너무나 따뜻하지만, 남편에겐 쌀쌀맞기 그지없는 그 모습이 집안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긴 하였다.
다만, 오늘은 손님도 있다 보니 조금 곤란해하는 눈치들이었지만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다른 이들, 게다가 아빠를 위해서라도 주안이 나서서 이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일단 손님이 오셔서……. 먼저 인사를 드리면 어떨까요?”
“어머나. 나도 참…….”
그리고 중요한 일을 잊은 것에 대한 실수를 인지한 듯 안젤라가 주안을 품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메데아 대족장을 마주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분은 이번에 제가 초대한 남부 대밀림, 달란트 부족의 대족장님이신 메데아 대족장님이세요.”
주안은 이런 엄마에게, 아니, 이곳에 모인 집안의 사람들에게 알려주듯 메데아 대족장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런 메데아 대족장을 마주한 안젤라가 이내 황실에서 배운 예법 그대로 메데아 대족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안주인, 안젤라 마르티네스라고 합니다. 이렇게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메데아 대족장님.”
“호오…….”
안젤라의 기품 넘치는 그 인사에 집안사람들도 경악했다. 특히 소니아의 표정은 정말 볼 만할 정도였다.
‘……아빠도 저렇게 놀라는 모습은 좀…….’
그런 아빠의 모습을 엄마가 흘겨보는 것조차 모르는 듯, 나중에 크게 혼날 수도 있겠지만 주안은 모른 척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런 안젤라의 모습에 메데아 대족장도 상당히 의외라는 듯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위대한 선조, 달란트의 이름을 짊어진 달란트 부족의 대족장인 메데아라고 합니다. 마르티네스의 주안의 어머니에게 나 역시 환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황제 폐하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그녀였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도 반말을 하던 메데아 대족장이었지만 그녀는 안젤라를 보며 고개를 숙여 똑같이 인사를 해주며 말까지 높였다.
그리고 이런 두 여성의 모습에 솔직히 주안도 크게 놀라버렸다.
메데아 대족장의 그 태도가 아니라, 엄마의 그 행동과 모습에서 주안은 경악을 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야…….’
이런 엄한 생각을 해버렸을 정도였지만, 메데아 대족장이나 안젤라나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표정은 같았다.
서로가 그 외모는 전혀 달랐지만,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듯 묘한 분위기가 이어졌을 정도였다.
안젤라 마르티네스, 그녀는 분명 남부의 사람들을 매우 싫어한다.
특히 아스란 왕국과의 일은 당시 황녀의 신분이었던 그녀에게도 꽤 큰 충격을 주었던 일이었기에 남부라고 하면 치가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없는 여성도 아니었다.
황녀로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고, 시집을 와서도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많은 것을 알아갔다.
물론 주안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조금 어긋나긴 하였지만, 분명 처음 시집을 올 당시만 하여도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은 시아버님인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도 인정을 받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배려도 많은 여성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집안에 이익이 되는 일에서, 특히 사랑하는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임을 잘 알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메데아 대족장을 반겼다.
그 마음, 어머니로서의 마음을 메데아 대족장도 알기에 진심으로 안젤라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녀 역시 많은 사람을 이끄는, 어머니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식을 위한 마음은 그녀 역시 매우 잘 아는 것이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대족장님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쿠후후. 마르티네스의 주안의 집임을 잘 압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마르티네스의 주안이 누구를 보고 자라서 그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우리 부족을 방문한 것인지 잘 알겠군요.”
“어머나, 별말씀을요.”
다소곳이 웃는 안젤라의 모습에 주안만이 아니라 많은 이가 놀란 것을 넘어 뭔가, 목덜미가 간지러운 묘한 기분마저 느끼며 실제로 몸을 긁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소니아가 과격하게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러한 행동을 하였지만 말이다.
* * *
유우나 공주에 대한 것은 안젤라에게 크게 중요치 않은 일인지라 사실 좀 뒷전으로 밀렸지만, 주안마저 잠시 뒤로 밀리는 바람에 뭔가 서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왠지 안젤라와 메데아 대족장이 죽이 잘 맞는 것인지 안젤라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접 집안을 안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메데아 대족장 역시 임신한 안주인이 직접 이렇게 안내를 해주고 살갑게 대하니 그녀 역시 매우 놀라워하면서도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듯했다.
“엄마가 왜 저러는 걸까요.”
“흐음…….”
주안의 물음에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나란히 걸으며 소니아와 마리아, 다른 하녀들의 안내를 받으며 정원을 걷고 있는 안젤라와 메데아 대족장의 뒷모습을 보며 두 부자는 뭔가 다가갈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안젤라의 그 모습에 주레인 공작은 무언가를 알겠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메데아 대족장이 너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을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 힘이요?”
“그래. 네가 저분과 인연이 있다는 것은 잘 안다만……. 네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보다 가깝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겠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이미 메데아 대족장과는 나름 좋은 인연을 쌓았고 충분히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사이였다.
조금은 계산적인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렇게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다 자신 때문이라는 것에 주안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주레인 공작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주안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안 좋게 생각 말거라. 네 엄마는 그래도 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행동이니 말이다.”
“알아요. 알고 있어서 더 미안한 거예요.”
“미안해할 필요도 없단다. 네 엄마가 하지 않았다면 이 아비가 하였을 것이니까.”
“아빠…….”
“자식이 조금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다 같단다. 너와 저분의 사이가 어떤지 나나 네 엄마는 정확히 모르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너에게 이로운 일이 된다면 뭐든 다 해줄 생각이니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미안했고, 또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기는 조금 부끄럽기에 주안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보다 아빠한테 할 말이 있어요.”
“음? 할 말이라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말씀을 드리려 했던 것이긴 한데, 아버지도 미리 아시는 게 나을 것 같거든요.”
“네 할아버지와 나에게?”
갸웃하는 주레인 공작을 바라보다, 주안은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아버지가 엄마와 메데아 대족장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있는 것처럼, 이런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던 유우나 공주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이전에 유우나 공주님이 함께 하였으면 하던 합작 사업이라는 것, 제가 한 가지 추천을 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호오, 네가 말이더냐.”
“아마 아빠도, 할아버지도, 유우나 공주님이나 메데아 대족장님에게도 모두 이득이 되는 일이지 싶어요.”
“메데아 대족장님까지?”
“예.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아스란 왕가, 그리고 달란트 부족. 이 세 단체가 연계되는 사업이에요.”
주안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주레인 공작은 주안과 눈을 마주한 채 작게 웃어 주었다.
당당하고, 올곧은 그 눈은 자신의 엄마와 너무나 닮아 있었고 예전과 같은 그런 우유부단하고 유약함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냥 아이만 같았던 주안이, 올해가 지나면 성인이라는 것을 주레인 공작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 *
메데아 대족장에 대한 환영은 요란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주안의 조언에 따라 간단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주안은 아버지에게 한 말처럼, 자리를 마련하여 유우나 공주의 아스란 왕국과 남부 대밀림의 달란트 부족과 함께할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 남부 대밀림의 그 많은 과일을 아스란 왕국을 통해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로 가져와 대륙으로 유통한다…… 이 말이더냐?”
“단순한 유통은 아니에요. 아스란 왕국에서 과일들을 쓰임에 맞춰서 가공한 것은 저희 쪽에서 받아 대륙, 특히 동방 대륙의 무역에도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동방 대륙까지의 무역이라…….”
주레인 공작은 주안의 말에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주안의 한 말이 이해가 되나, 그렇다고 좋다고 허락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부 대밀림은 정말 다양한 과일들이 많이 나와요. 날씨도 좋아서 과일이 자라기에는 최적의 조건이기도 하죠. 그 때문에 인접한 아스란 왕국의 과일은 대륙에서도 매우 유명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 대부분이 우리 제국으로 수출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별다른 수출품이 없는 아스란 왕국에서는 과일은 정말 중요한 수출품 중 단연 첫 손에 꼽히는 것이다.
주안이 좋아하는 과일 대부분이 남부의 아스란 왕국산 과일들이었고, 그 독특한 풍미는 타 지역의 과일들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저희 왕국의 과일들만으론 사실 제국 내에서 소비되는 것조차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인기가 많긴 하나, 생산량은 생각보다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유우나 공주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아스란 왕국의 주요 수출품인 남부의 과일은 그 인기에 비해 확실히 수확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남부 대밀림을 걸치고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나기 때문에 수확량이 적었고 때문에 제국에 수출되는 것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쌌음에도 귀족들에겐 매우 인기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동의하는 유우나 공주가 주레인 공작에게 말했다.
“주안 공자님이 제안해주신, 그리고 메데아 대족장님의 배려가 있다면 남부 대밀림에 퍼져있는 수많은 과일을 들여와 제국으로, 마르티네스 공작가로 연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양이 퍼진다면 그만큼 가격은 내려갈 뿐이네. 그러면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제국에서 모두 소비가 된다면 그렇겠지만, 대륙 전체를 넘어 동방 대륙까지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가격은 좀 내려갈 수 있겠지만, 판로는 더 넓어져 오히려 많은 양을 팔아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단순히 과일 그 자체만 들여오는 게 아니에요.”
“음? 그러면 무엇을 들여올 생각이더냐.”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야겠죠. 술을 만들 수도 있고, 차를 만들 수도 있어요. 건조해 과자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것들로 만들어야겠죠.”
이미 메데아 대족장이나 유우나 공주에게는 언급한 이야기였고, 아버지에게는 처음으로 꺼내는 말인지라 조심스러웠다.
자칫 잘못하면 가문이 아닌, 다른 이에게 더욱 많은 것을 준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