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5화
황제 폐하와 메데아 대족장, 그리고 많은 신료와 만나는 자리에서 사실 주안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대부분 형식적인 대화만 오갔을 뿐이었고, 메데아 대족장이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든 뭐든 크게 중요치 않았기에 그녀를 깎아내리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니, 그 어떤 존재라도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고 봐야 하였다.
다른 이도 아닌, 실버론 하셀 자작이 직접 만났고 그 힘을 경험하였기에 그녀가 랭크 8의 절대자라는 것을 거짓이라 치부하는 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이유로 실버론 하셀 자작을 국경 요새로 보내 황명을 전하고 마중을 하게 만든 것이니 말이다.
그저 제국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
제국에 대한 행동 방침.
그리고 대륙에 대한 행동 방침.
단순히 랭크 8이라는 실력자라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미지의 힘인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이 있었고, 아스란 왕국에 방문하였던 그녀의 부족원들에 관한 사실은 이미 제국 정보부에 모두 전달 된 뒤였다.
하나하나가 강자였으며, 그들이 타고 다니는 다이어 울프를 이용한 힘과 기동력.
과거 남부 대밀림 정벌을 벌이며 축적된 전투 방식, 정보들을 종합하면 그들에 대한 경계심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여 한 가지만 묻고자 하오.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은, 메데아 대족장 당신이 이끄는 부족민들은 대밀림 바깥의 땅에 관심이 있으시오?”
직설적인 말이었지만, 딱히 돌려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그렇게 판단을 한 황제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잠시 생각을 하였지만 이내 황제를 마주 보며 말했다.
“킁. 관심 없다. 우리 땅 지키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남의 땅에 관심을 왜 가지나?”
황제의 말에도 딱히 존경이나 말을 높이는 법이 없었지만, 메데아 대족장의 위치라거나 능력, 그리고 그녀가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라는 것에서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말에 황제가 잠시 그녀를 지켜보다, 그녀의 곁에 있는 주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주안 마르티네스. 네 생각은 어떠하냐.”
평소라면 우리 주안이, 우리 손자~ 라면서 나잇값 못 하고 체통도 버려둔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공식 석상에서의 근엄함을 잔뜩 두른 황제 폐하의 모습으로 주안을 언급하자, 주안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주안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남부 대밀림의 깊숙한 곳에 있는 마물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들로,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원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마물이라……. 확실히 그렇긴 하나, 우리로서는 정말 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예. 머나먼 이야기이죠.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원들이 말하는 바깥 주민, 저희 대륙의 사람들에게 마물이란 수백 년 전 남부 대밀림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마주하였던 미지의 적이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주안은 주변의 귀족들을 살펴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점을 이용하여 남부 대밀림에 눈독을 들인다면,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대가라……. 그 대가라는 게 무엇인가.”
“그 마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 서방 대륙의 사람들이 될 것이니까요. 단적인 예로, 현재의 동방대륙의 상황을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동방대륙에 나타나는 요물들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이지만 한편으로는 큰 재앙이기도 하였다.
갑작스레 나타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물질적인 피해도 잔뜩 끼친다.
때문에 서방 대륙과는 달리 동방 대륙은 치안이 매우 불안하였고, 그것은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닌 이러한 요물들에 의한 것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물론 그 이전에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원들에게 쓴맛을 보겠지만, 만약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물들에 대한 것을 모두 멈춘 채 길을 열어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륙 전체가 짊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마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때 이러한 남부 대밀림 정벌에서 엄청난 피해를 끼친 마물들에 대한 자료는 상당히 많았다.
사실 남부 대밀림이라는 미지의 땅과 환경, 독충들과 남부 대밀림 원주민들이 모두 연관되어 나타난 엄청난 피해였지만, 그에 대한 공포는 고스란히 자료로 남겨져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 동방 대륙에 나타나고 있는 요물들을 생각해보면 이 방파제 역할을 하는 남부 대밀림 원주민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기에 모인 이들은 모르면 안 되었다.
“하면 일부러 그 길을 열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그 이후 남부 대밀림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없습니다.”
황제 폐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안은 당당하게 그 말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자신만만한 그 말에 황제 폐하도, 여러 신료도 주안을 주목하였다.
“네가 자신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까요.”
“필요가 없다?”
갸웃하는 황제 폐하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처음 말씀을 드린 대로,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조상들의 땅이자, 고향이며 안식처입니다.”
“하나 그런 것만으로 자신할 수 있는 것이더냐.”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이 정복의 목적으로, 혹은 분쟁의 이유로 그 땅을 단 한 번이라도 벗어난 일이 있었습니까?”
“…….”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남부 대밀림의,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는 이들에 대한 징벌. 그뿐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땅을 침범하고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는 이상 우리 역시 칼을 들이대지 않는다. 손님으로 오면 손님으로 대하고 적으로 오면 적으로 대한다. 그뿐이다.”
“그리고 저는 손님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제가 손님으로 초대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에 대한 오해도 풀며, 그분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메데아 대족장과 주안의 모습에 황제나 다른 이들 역시 머릿속이 꽤 복잡해진 듯했다.
외할아버지야 엄마와 딱 판박이인지라 그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안은 다 알 수가 있었고, 다른 이들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폐하. 하여 한 가지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말하거라.”
황제의 허락에 주안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남부 대밀림은 이미 대륙 내에서도 메데아 대족장님의 부족, 원주민들의 땅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만한 힘과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이미 메데아 대족장으로 인해서 그것은 증명이 되었고, 숨겨진 그 무력에 대한 정보 역시 제국 정보부의 손에 쥐어졌으니 말이다.
“이러한 분들에게 경계하고 미지의 힘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아닌 인정을 통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 어떨까 합니다.”
“인정이라…….”
그 인정이라는 것은 사실 크게 어렵지 않다.
남부 대밀림과 가장 근접한 것은 아스란 왕국이나 제노폴 제국도 크게 먼 곳도 아니었다.
게다가 제국은 그만한 힘도 있었으며 설득할 수 있는 외교적 수완도 있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네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우리가 인정하였다 하여도 타국에서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도 생각을 하여야 한다. 또한, 그 이익이라는 것도 서로가 만족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미 메데아 대족장에겐 그 인정이라는 것이 필요치는 않아 보이는구나.”
“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지켜보는 외할아버지, 황제 폐하의 모습에 주안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조심스레 옆을 돌아보다, 당당하게 서서 황제 폐하와 수많은 귀족. 그리고 수많은 기사을 홀로 마주하고 있는 메데아 대족장이 서 있었다.
황제 폐하의 말대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메데아 대족장의 모습에서 주안도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다는 것에서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괜한 말을 하였나 봅니다.”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메데아 대족장의 부족, 달란트 부족에 대한 생각을 나 역시 알 수 있었으니 괘념치 말거라.”
“예…….”
그리고 이런 주안의 모습을 보며, 황제는 자신의 외손자가 예전과는 달리 정말 잘 커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에 매우 만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
“예, 폐하.”
“자네 아들이 초대한 손님이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니 잘 모시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폐하.”
황제의 입으로 주안의 손님이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라고 못을 박아버리니, 메데아 대족장에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눈독을 들이던 귀족들도 이내 허탈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서 확실하게 메데아 대족장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자 주안의 손님이 되어버렸다.
* * *
황궁으로 갈 때도 함께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집으로 올 때 역시 비슷하였다.
대신 그 구성원은 많이 달라져 있었으며, 그중 오늘은 일찍 퇴근이 결정된 주안의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과 그 호위 기사들이 다수 포함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집도 황궁의 바로 옆이나 마찬가지인지라 가는 길은 서두르지 않아도 금세 도착할 것이기에 느긋하게 향하였고 주안은 메데아 대족장과 도란도란 이야기까지 나눌 정도였다.
“바스티아노 백작님이 정말 많이 아쉬워하시던데……. 내일이라도 바스티아노 백작님을 초대해야겠어요.”
“킁. 만나자마자 싸우는 게 이곳의 예의인가?”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저희가 달란트 부족에 방문했을 땐 만나자마자 싸웠잖아요. 그리고 은근히 싸우길 기대하셨으면서.”
“크흠.”
“뭐, 전부 이해는 하지만 말이에요.”
“크흐흠.”
히죽 웃는 주안의 모습에 메데아 대족장이 콧바람을 뿜어내었다.
바스티아노 백작과의 대련도 첫날부터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부담스러웠고, 또한 달란트 부족 내에서의 대결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일은 오히려 워랜이나 토미. 그리고 아르베리아에게는 큰 경험이 되기에 나름 도움이 되었으면 일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주안과 메데아 대족장이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에 금세 당도할 수 있었고 미리 연락을 받은 것인지 집안사람들이 나와서 이런 일행들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나…….
“음? 저 여자는 왜 마르티네스의 주안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는 건가?”
“아하하…….”
엄마가 주안을 발견하고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 두 팔을 열심히 흔들며 주안을 반기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이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메데아 대족장이 갸웃했지만, 딱히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