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3화
“실버론 하셀 자작님?”
제국 국경에 도착한 유우나 공주는 자신들을 맞이한 인물이 국경 요새의 인물들이 아니라 일전에 동행했던 황실근위대 부단장이라는 것에 놀란 듯했다.
이런 유우나 공주를 보며 실버론 하셀 자작이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유우나 공주님. 그리고 풍신 경 역시 오랜만입니다.”
“아, 예.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실버론 자작님.”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이렇게 나와서 인사를 해주는 그의 행동에 유우나 공주 역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풍신은 그와 동행하면서 몇 번이나 검을 나누었던 사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매우 반가워하였고 서로 악수까지 하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실버론 하셀 자작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야 공주님과 그 일행분을 호위하기 위해서이죠.”
“네? 자작님이요?”
“아, 물론 저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조용히 옆으로 비켜서자, 그의 뒤에 대기 중이던 기사 중 한 사람이 유우나 공주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유우나 공주가 잠시 갸웃하다 이내 낯이 익은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유우나 공주뿐만이 아니라 풍신 역시 낯이 익은 인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혹시 이리엄 경 아니세요?”
“맞습니다, 공주님.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님의 호위부단장인 이리엄 멜이 유우나 아스란 공주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황도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 짧게 스쳐 지나가며 보았지만 그런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고 이름마저 알고 있는 유우나 공주에게 이리엄 경도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자, 뒤이어 그와 함께 온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사와 병사들 역시 그녀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이런 행동들에 유우나 공주가 매우 당황스러워하였지만, 이리엄은 담담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주안 공자님께서 나오시지 못한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아, 아니에요. 이렇게 다른 분들이 나와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따름인걸요.”
사실 주안이 나온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고 예상도 하였기에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다른 이들이 잔뜩 나와서 환영을 해주니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리엄 경이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사분들이 오신 것은 이해가 되는데, 실버론 하셀 자작님은 왜…….”
아무리 인연이 있다 해도 실버론 하셀 자작은 황실근위대 부단장이다.
웬만해선 황실을 떠나지 않을 그가 단지 타국의 공주를 맞이하러 그냥 나왔을 리가 없음을 유우나 공주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들처럼 황실근위대 소속 기사들과 함께였기에 더더욱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유우나 공주의 질문에 실버론 하셀 자작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유우나 공주나 풍신과는 한 걸음 떨어져 이쪽을 팔짱을 낀 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거구의 여성.
메데아 대족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제 임무는 유우나 공주님과 동행하는 일행분을 안전하게 모시고 오는 역할입니다.”
“제 일행……. 아…….”
그리고 유우나 공주 역시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돌려 메데아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실버론 하셀 자작이나 이리엄 경, 그리고 여타 다른 기사들의 모습에 매우 흥미로워하는 듯했다.
그녀 역시 전사였고, 이곳에 모인 다수가 전사이다 보니, 바깥 주민 중 강자들이라 불리는 기사들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무엇보다 아스란 왕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실력자들이 넘치는 제노폴 제국에서도 황실과 공작가의 검증된 이들만 나왔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오신 이유를 알겠네요.”
“하하. 실은 저희 단장님이 직접 오시려는 것을 제가 말리느라 힘들었습니다.”
“우와, 바스티아노 백작님이요?”
실버론 하셀 자작의 말에 유우나 공주가 놀란 듯했다.
한 번도 만나 본 일은 없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야 한 나라의 공주로서 들어 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현 서방 대륙의 최강국이라고 하는 제노폴 제국의 제일 검호이며 몇몇 의견이 분분하긴 하나 서방 대륙 제일 검이라고도 불릴 정도의 인물이니 말이다.
물론 실버론 하셀 자작의 말이 반쯤은 농담이긴 하였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일찍 저분을 뵙고 싶어 하셔서 말입니다.”
“아…….”
강자가 강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 수도 있는 일인지라, 유우나 공주 역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작님. 일단 이야기는 가시면서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 이런.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나.”
아무래도 요새 입구에서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황실 소속 기사들과 공작가 소속 기사들로 인해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이들의 곤란해하는 모습들이 다수 보였다.
이러한 이리엄 경의 말에 실버론 하셀 자작 고개를 끄덕인 후 유우나 공주에게 말했다.
“일단 황도로 출발을 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조금 빠르게 가셔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아, 네. 괜찮아요.”
“예. 그러면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우나 공주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긴 하지만, 동행한 인물이 아무래도 그보다 높은 황실 소속에 황실근위대의 부단장이며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묵묵히 그의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이리엄 경 역시 딱히 불만 없이 따르는 것도 조금 이상하였지만, 그보다 유우나 공주는 자신을 안내하며 많은 이들을 통솔하고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실버론 하셀 자작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런데 따로 절차가 필요하진 않나요?”
“필요한 절차는 이쪽에서 이미 다 해두었습니다.”
“아, 설마 주안 공자님이?”
“주안 공자님도 공자님이셨지만, 더 높으신 분의 명이었습니다.”
“네? 그러면 주레인 공작님이……?”
이전과는 달리 유우나 공주는 이미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을 증명하는 인장이 있어서 국경 요새 통과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절차와 확인은 거쳐야 하였지만, 어째서인지 실버론 하셀 자작은 당연하다는 듯 요새 안으로 유우나 공주와 풍신, 메데아 대족장을 안내하였다.
이러한 실버론 하셀 자작과 이리엄 경이 이끄는 기사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들을 호위하며 동행하였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이 강대하다 해도, 이건 예상을 뛰어넘는 일인지라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듯 유우나 공주가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유우나 공주는 이리엄 경이 아니라 실버론 하셀 자작이 이곳에 나타나 자신들을 호위하는 것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서, 설마, 화, 황제 폐…….”
“예. 황명입니다.”
그리고 실버론 하셀 자작이 요새 안으로 유우나 공주 일행들을 안내하고 들어온 뒤 이내 멈추어 서더니 돌아서서 유우나 공주를 보며 말했다.
“유우나 공주님과 함께 오시는 일행을 안전하게 모시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실버론 하셀 자작이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늦은 인사를 드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국을 방문해 주시는 것에 대해 제국의 기사로서, 황실의 검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황실근위대 소속 부단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실버론 하셀이 남부 대밀림의 주인이신 메데아 대족장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메데아 대족장에게 예를 표하자, 황실근위대 소속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사들.
그리고 요새에 배치되어 있던 기사들마저 모두 메데아 대족장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며 인사를 하였다.
요새의 바깥인 아스란 왕국이 아닌, 요새의 안인 제노폴 제국의 내에서.
정식으로 랭크 8의 절대자이자 남부 대밀림을 하나의 땅으로 인정하며 그 주인이라는 메데아 대족장에 대한 정식으로 환영을 하는, 제노폴 제국의 인정이자 그녀에 대한 예우였다.
* * *
벡브란 전대 공작이 황도로 오는 것만으로도 제국이 떠들썩해졌는데, 남부 대밀림의 의문의 랭크 8의 실력자가 아스란 왕국을 넘어 제국에 입성한 것으로 인해 더욱 소란스러워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엇보다 이 실력자 역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초대와 함께 황명까지 떨어진 사안인지라 손을 뻗으려던 이들은 시도조차 못 하고 접어야만 하였으니 말이다.
이런 황실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호위를 받으며 황도로 입성한 유우나 공주는 수많은 사람이 나와서 자신들을 지켜보니,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런 유우나 공주의 모습에 풍신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아요. 그냥 조금 부담스럽네요.”
“그렇습니까…….”
풍신도 이런 유우나 공주와 비슷한 심정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우나 공주가 이런 환대를 받는 것에 매우 기뻤다.
이 환대가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멸시나 무시 같은 것이 아닌 환영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듯합니다.”
“네? 어째서요?”
“지금이야 메데아 대족장님으로 인한 일이긴 하나, 이로 인해서 많은 것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우음…….”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유우나 공주가 이내 생긋 웃으며 풍신에게 말했다.
“그렇긴 하겠죠. 많은 것이 바뀌고,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니까요.”
“예. 그럴 것입니다. 공주님이라면 그렇게 해 나가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유우나 공주가 있겠지만, 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와줄 많은 것들이 유우나 공주에게 불고 있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주안. 메데아 대족장과 남부 대밀림.
그리고 이와 연계된 제노폴 제국의 황가까지.
모든 것이 유우나 공주와 아스란 왕국에게 이롭게 부는 봄바람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바람을 잘 이용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유우나 공주의 몫이었고, 유우나 공주라면 잘 해낼 것이라고 풍신은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봐온 그녀라면, 분명 잘 이겨내고 해낼 것을 믿으니 말이다.
“그보다 공주님. 기다리시던 분이 오신 듯합니다.”
“네? 기다리는 분이라니요?”
풍신의 말에 유우나 공주가 갸웃하였지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풍신이 앞서나가는 기사들의 틈으로 보이는 멀지 않은 곳에서 점차 다가오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주안 공자님과 그 일행분들이 오시고 계십니다.”
유우나 공주와는 달리 단련된 육체는 그의 시야 역시 매우 뛰어나게 발달시켰고,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판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먼 곳의 것까지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눈을 가졌다.
그리고 이런 풍신의 시선에 잡힌 것은,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점점 다가오고 있는 주안과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풍신의 말에 유우나 공주의 표정이 확 밝아졌지만, 이내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제, 제, 제가 어, 언제 기다렸다고……!”
“하하. 그렇습니까. 황도에 입성해도 주안 공자님이 보이시지 않아 실망하셨던 듯한데…….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풍신 경!”
느긋한 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그 농담에 유우나 공주가 당황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주안이 오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유우나 공주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