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40화
여름의 끝으로 다가갈수록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황도 저택은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를렌에서 전대 공작이자 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 황도로 출발을 하자 마르티네스 공작령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에 맞춰 황도 저택 역시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것은 황도의 마르티네스 공작가 저택뿐만이 아니라 황성도 분주해졌다.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 오는 이유에 대해 연락을 받은 이상, 그에 대한 대책과 함께 공작가로서의 예우를 다해 맞이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과 함께 그 가신들이 황도로 점차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황가보다 링베르가 공작가가 더욱 심하였다.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무엘 그리마의 물음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시가 담배를 거칠게 재떨이에 비벼 끄며 낮게 말했다.
“괴물 같은 늙은이가 결국…….”
“황가에서 온 연락이 사실이라면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거절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배상뿐만이 아니겠지. 그 늙은이가 나선 이상,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것이다. 사무엘.”
“예? 그 이상의 것이라니요?”
사무엘 그리마가 의아한 듯. 되묻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을 모두 거절한 이상,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모욕한 제이미에 대한 처벌……. 혹은 우리 링베르가 공작가에 대한 징벌이 있을 수 있겠지.”
“징벌이라니요……!”
그저 다시 재협상도 아닌 징벌이라는 그 말에 사무엘 그리마가 오히려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의 앞에 블라드 링베르가가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 역시 그의 심정을 알기에 별다른 주의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차분한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가능한 일이다, 사무엘. 그 늙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리고 조용히 새 시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인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이며 하얀 연기를 토해냈다.
“현 공작인 주레인 마르티네스를 그의 아비인 벡브란 마르티네스와 동일 선상에 놓지 마라. 그는 제국 동부를 손에 움켜쥔 인물이자 남부를 넘어 황가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니.”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우리 역시 제국 서부의 주인이자 링베르가 공작가입니다.”
동부에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있다면 서부에는 링베르가 공작가가 있다.
혈통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고귀하였고, 현 링베르가 공작이 가문의 주인이 된 후 그 결속력도 남달라졌다.
제국 최고의 부를 거머쥔 것이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면 제국 최대의 군사력을 가진 것은 링베르가 공작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대 공작가는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봐도 무방하였다.
하지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언제나 황가와 마르티네스에게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사무엘.”
“…….”
아무리 강한 군사들이 있다 해도, 풍족하게 먹일 식량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백성들이 본다면 두 공작가의 겉으로 보이는 장점들만 보고 서로 동일 선상에 놓고 있었지만 정작 그 핵심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고위 귀족들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님이 황도에 도착한다면, 분명 황가가 나서서 자리를 마련할 것입니다.”
단지 협상결렬 통보라면 이렇게 다급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만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령을 떠받드는 주요 가신들과 그 수행원들까지 한꺼번에 오는 것은 일대의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웬만해선 그 자리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링베르가 공작가가 왔을 때도 꽤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을 준 것이 바로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 공작의 황도로의 출발이었다.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 직접 움직이며 수많은 가신을 데리고 황도로 온다는 것은 황가에게도 충격이었고 황가와 황도를 넘어 제국을 뒤흔드는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서 북부는 물론, 남부의 맥도넬 후작가마저 예의주시를 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는 실정이었고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은 링베르가 공작가의 현 가주, 블라드 링베르가는 머릿속이 참으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해야 했을까…….”
“각하…….”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 해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겠나?”
블라드 링베르가 답지 않은 말에 사무엘은 크게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그가 픽 하고 작게 웃으며 시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재차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며 하얀 연기를 토해냈다.
“어디, 그 늙은이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어보도록 하지. 그 괴물 같은 늙은이가 더욱 노련해졌는지, 아니면 내가 더 노련해진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사나운 미소를 짓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모습에 사무엘 그리마가 순간 흠칫 놀랐지만, 이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곁을 지키겠습니다, 각하.”
“그래. 고맙네.”
링베르가 공작가의 중심이 되는 블라드 링베르가가 이대로 조용히 있을 인물이 아님을 깨달은 사무엘은 오히려 안심하고 다행스러워하였다.
그답지 않은 모습에 크게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던 듯,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사무엘 역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공주님, 풍신 경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풍신 경이요?”
시녀의 말에 유우나 공주가 잠시 갸웃하였다.
최근 왕가도 안정되어 가고 여유가 조금 생겨서 그런지 조금씩 자신의 시간을 가지게 된 풍신이었고, 오늘은 그렇게 잠시 외출을 나갔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금세 돌아온 것에 유우나 공주가 의아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시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풍신을 들이라는 명령을 내려준 후 읽고 있던 책을 덮자, 이내 풍신이 유우나 공주의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금방 돌아오셨네요, 풍신 경.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방 안으로 들어온 것도 평소의 풍신 답지 않게 빠른 걸음이었고, 그의 표정에서도 무언가 매우 당황한 듯한 것이 숨겨지지 않고 있었다.
나름 풍신과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래 지냈던 그녀였기에, 이렇게 당황한 풍신은 처음 보는지라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유우나 공주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풍신이 이내 유우나 공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님. 성문 쪽으로 나와 보셔야 할 듯합니다.”
“네? 성문이요? 거긴 왜…….”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요? 손님이라면 왕궁 안으로 모시지 않고 왜 성문 밖에……?”
이상하다는 듯 갸웃하는 유우나 공주에게 풍신이 말했다.
“남부 대밀림에서 온 손님이라고 합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하시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서…….”
“아, 혹시 남부 대밀림에서 오신다던 그 손님분들이신가 보네요.”
“예? 아시고 계시는 일입니까?”
“그럼요. 주안 공자님께서 얼마 전에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렇습니까?”
풍신 역시 주안과 유우나 공주가 몇 번인가 장거리 마법 통신을 한 것을 알고 있었고, 황도로 초대를 한 사실도 유우나 공주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업과 관련된 일로 인해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주와 전대 가주까지 함께 만나는 자리라 유우나 공주가 매우 부담스러워했지만, 왕가와 왕국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자리에 참석하기로 결정하였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풍신 역시 다시 한번 제노폴 제국으로 함께 가게 되었지만, 그 외의 일에는 그 역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일들인지라 달리 더 물어보지 않았었다.
때문에 갑작스레 찾아온 남부 대밀림의 존재, 특히 주안 마르티네스를 언급하며 유우나 공주를 찾는 일로 인해서 왕궁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큰 소란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미리 말씀을 해주셨다면, 다들 놀라지 않았을 것인데…….”
“네? 놀라다니요? 왜요?”
“……주안 공자님에게 다른 말씀은 못 들으신 것입니까?”
하지만 유우나 공주는 그저 갸웃할 뿐이었고, 그 모습에 풍신은 유우나 공주 역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못 들었다는 것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나가보시겠습니까? 확인할 수가 없어 일단 왕궁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안 공자님이 보내신 손님이신데, 실례가 되어버렸네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주안의 손님을 이렇게 박하게 대한 것을 주안이 알게 된다면, 혹시 실망하지 않을지 유우나 공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황급히 풍신과 함께 방을 빠져나갔지만, 풍신은 이런 유우나 공주의 곁에서 함께 빠른 걸음으로 나가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유우나 공주를 흘겨보았다.
* * *
“…….”
“음? 아가씨가 마르티네스의 주안이 말했던 그 공주님인가?”
“그, 저기, 네, 네…….”
유우나 공주는 왕궁의 성문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왔지만, 이내 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 들을 보며 걸음을 멈춘 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유우나 공주의 모습을 발견한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 아니, 메데아 대족장은 단번에 그녀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반갑게 맞이해주었지만, 유우나 공주의 당황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 대충 알겠다는 듯 그녀의 주변에 있는 달란트 부족원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거대한 다이어 울프들을 타고 몇몇은 보자기인지 뭔지에 쌓인 짐들을 싣고 있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이 두려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기에 메데아 대족장도 조금 짜증이 났고, 특히 무시무시한 문신으로 몸을 치장한 라쿰바를 보며 소리쳤다.
“네 녀석 때문에 바깥 주민들이 무서워하잖나! 왜 따라와서 놀라게 만든 게냐!”
“좋아서 따라온 것 아니다! 마르티네스의 주안이 준비한 선물 가져다주러 온 거다! 전해주고 우리도 갈 거다! 귀찮다!”
“끄응……. 그러니까, 그건 내가 가져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대족장을 어떻게 믿나?! 배고프다고 먹으면 큰일 난다!”
“내가 네 녀석인 줄 아느냐…….”
투탁거리며 서로 다투는 메데아 대족장과 무시무시한 문신을 한 라쿰바의 모습에 유우나 공주는 크게 당황한 채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였다.
이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왕궁 수비대의 병사와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 있는 백성들 역시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두려움에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유우나 공주라 그런지 평정심을 제대로 찾지 못하였고 이런 유우나 공주를 대신해 풍신이 조심스레 나서며 말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의 손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언가 증명을 해주실 것이 있으십니까? 혹 없으시면 지금 연락을 하여 확인을……”
“증거? 아, 이걸 주면 된다고 들었다.”
메데아 대족장은 얼마 전에 다시 찾아온 주안이 제대로 된 일정을 알려주며 전해주고 갔던 물건을 품에서 꺼내어 풍신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든 풍신은 유우나 공주가 가지고 있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을 증명하는 인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유우나 아스란 공주님을 모시고 있는 풍신이라고 합니다.”
“예의 바른 친구로고. 그 실력도 대단하고, 몸이 불편한 것만 뺀다면 이 멍청한 녀석 정도는 그 몸으로도 가지고 놀겠구나.”
“뭐?! 내가 바깥 주민에게 또 진다는 소리냐, 대족장!”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라쿰바가 발끈했지만, 라쿰바 역시 풍신을 보고는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는 듯 그저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검을 쥔 자로서, 보다 높은 곳에 오른 분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풍신 경?”
풍신이 고개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아니, 오히려 존경에 가까운 예를 표하자 유우나 공주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왕국수비대 소속 기사들마저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유우나 공주는 이런 풍신의 행동에 이상하다는 듯했지만, 풍신은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공주님. 아무래도 최근 제노폴 제국 황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설마…….”
그녀 역시 늦게나마 들은 것들이 있었고, 최근 제노폴 제국 황도뿐만이 아니라 제국을 넘어 이제는 아스란 왕국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존재.
서방 대륙에서는 제대로 확인된 일이 없었던 존재.
“랭크 8이라던 의문의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
그 인물이 눈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