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7화
“빌어먹을 자식……!”
이미 자리를 떠난 파사에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사련화가 수면을 발로 걷어차서 물방울을 흩뿌렸다.
하지만 그 행동을 이해하기에 카르카노는 그저 팔짱을 낀 채 그 역시 불만을 조금 드러냈다.
“파사 저 녀석, 정말 저대로 둘 생각이야?”
“우리는 서로와 의견을 나누어도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진짜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답답하네.”
오래전, 그들이 하나와도 같았을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의 마음으로 비슷한 행동거지를 하였지만, 지금은 서로의 개별 인격체가 생겨나 하나가 아닌 개인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사련화나 카르카노, 파사는 서로의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랑, 그 혼자밖에 없었다.
활동하기 편한 모습으로 변하지도 않은 채, 태어났을 때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는 카르카노가 보기엔 정말 답답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그의 변하지 않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고 의지도 되었기에 은근히 그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르는 것도 부정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일이 끝나면 파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
그것을 완수한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는 더 이상 남아 있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것을 얻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 한 점 가지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하랑은 파사의 그러한 태도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금을 살아가는 파사를 바라봐줄 뿐이었다.
“그런데 저거, 고칠 수 있다면서 왜 되돌아간 거야?”
“그러게. 이전에 왔던 그 엘프 여자가 또 오는 건 아니겠지?”
사련화나 카르카노는 아미엘이 돌아간 이유에 대해서 의문이 참 많은 듯했다.
이곳을 찾고, 저 봉인지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열렸던 문을 완벽하게 닫을 수 있다는 의미.
그렇다면 저 문을 열고 한 번 닫았던 존재인 열쇠를 지녔던 이, 엘프 마를렌에 대해서는 한 번 만나 보았기에 그녀를 떠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썩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는 듯, 마를렌을 언급하면서도 표정을 잔뜩 구기며 카르카노가 투덜거렸다.
“그때 그 여자도 그래.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짓이 저걸 열어 버리지 않나, 그러다 다시 닫아 버리지 않나. 완전 제멋대로였잖아.”
“그때 그냥 확……!”
“에헤이, 말은 곱게 해야지. 그러다 위에 계신 분들 만나서 혼나면 어쩌려고.”
사련화가 엄한 말을 내뱉으려 하자, 카르카노가 황급히 이런 사련화를 제지하였다.
하지만 사련화는 여전히 뿔이라도 난 듯 송곳니마저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렇잖아! 우리가 개고생하는 이유가 대체 뭔데! 다 그 여자 때문이잖아!”
“뭐, 엄밀히 따지면 그 여자 잘못은 맞지만 그래도 마음을 바꿔 먹어서 잘 마무리는 지어 줬잖아.”
“애초에 그딴 짓을 안 했어야지!”
“뭐, 그건 그렇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왜 그 중요한 걸 그딴 엘프한테 맡기고, 또 모든 권한을 다 떠넘겨야 했던 거야.”
사련화는 인간도 싫고, 의무도 싫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은 통제가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자유롭지 못하고, 원하는 일도 제대로 못 하며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도 없다는 것과 그것에 엮여 벌어진 일들.
그것으로 인해 고생한 것은 결국 자신들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다 이상해질 뻔했는데.”
잔뜩 찌푸린 채 말을 이은 사련화였고, 그런 사련화의 말에 동조하듯 카르카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하랑. 다음에 오신다고는 하셨지만, 언제 온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잖아? 괜찮겠어?”
“약속을 어기실 분은 아니시다.”
“그것도 그렇지만, 저 봉인지는 정말 괜찮겠냐는 거야.”
바깥일들은 자신들이 맡지만, 이곳의 관리는 전적으로 하랑이 도맡아 한다.
이 모든 일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은 결국 하랑, 단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괜찮다. 쉽게 깨어질 것은 아니다. 단지…….”
그리고 하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한 번 열린 문은 다시 닫는다 해도, 봉인지가 망가진 이상 언젠가 부서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그때 알아차리지 못한 우리의 실수도 컸다.”
“쳇.”
세월의 무게도 무게이지만, 강제로 열어버린 봉인과 다시 닫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로 인해 뒤틀린 봉인지를 그때 알아차렸다면 동방대륙은 훨씬 더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그때 닫았기에 양 대륙이 완전히 망가지고 부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런 일을 벌인 엘프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떠밀려 와서 어쩔 수 없이 행한 행동이었겠지.”
“……뭐, 그렇게 보였지만.”
“마음을 바꾼 것도 어떻게 보면 큰 결단이고 결심이었겠지.”
“흥. 세상이 이 꼴이 되었는데 양심의 가책을 못 느꼈다면 그게 더 문제지.”
한 번,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수많은 것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마물이라고도 불리고 요물이라고도 불리며, 질병이라고도 불리며 해충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리지 않고 대륙으로 나온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시 세상이 번성한 것은 다행이지 않나.”
“다행은 개뿔. 그냥 그때 싹 다 쓸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욱하는 마음에 내뱉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련화의 말에 카르카노가 작게 혀를 찼다.
“그랬으면 우리 일도 완전 꽝이 되어버렸을 텐데?”
“흥! 그냥 너도나도 싹 다 망해버리라지.”
“……나이가 몇인데 하는 행동이 왜 그러냐.”
현재의 세상에서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아미엘을 중심으로 한 요정들 정도뿐이겠지만, 적어도 그들 나이 역시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는 행동이 완전 어린아이 같은 사련화의 모습에 카르카노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거야? 마냥 기다려?”
“기다린다. 그리고 고치고, 우리는 떠난다.”
“……간단하네.”
하랑의 매우 간단한 말에 카르카노도 쓴웃음을 지었다.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동요나 감정의 변화 따위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을 하는 그가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하였다.
“뭐, 알았어. 당분간은 나도 조용히 지내볼게.”
“흐응~ 네가?”
“너도 조용히 좀 지내. 요즘 더 히스테리 부린다고 뱃사람들도 혀를 차고 나한테 부탁까지 하더라.”
“으그극……! 그딴 인간들의 말을 왜 듣는 건데!”
카르카노는 인간들과 친밀하고 가끔은 동과 서의 대륙을 오가는 해상 교역로에 나타나 뱃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뱃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진 않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였다.
반면 그런 뱃사람들도 사련화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인간멸시, 경멸과 그에 따르는 사건 사고에 매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런 사련화의 일을 같은 용인 카르카노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였다.
그 어떤 인간도, 용을 상대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궁금하긴 하네.”
“뭐가?”
카르카노의 말에 사련화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갸웃하였다.
“그 엘프 여자가 올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열쇠를 가지고 올지…….”
“엘프는 쉽게 안 죽어. 그 여자겠지. 요정 여왕이랑 같이 온다면, 그 여자밖에 없잖아?”
“글쎄. 우리가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진짜 마지막으로 보였잖아.”
“그야 뭐…….”
사련화나 카르카노가 기억하는 엘프 마를렌의 마지막 모습은, 정말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존재였다.
자신이 한 짓에 대한 후회가 가득하였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인형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카르카노의 그 말에는 하랑 역시 관심이 가는 듯 조용히 말했다.
“확실히 그 엘프 여성은 우리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떠났지. 그렇다면 다른 이가 열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아미엘 님 역시 다시 나타난 시기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역시 그렇지?”
“흐응……. 다른 존재라……. 설마 또 엘프는 아니겠지?”
“넌 왜 그렇게 엘프를 싫어하는 건데.”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잖아!”
사련화가 카르카노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호수 수면을 차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자식들 때문에 일이 다 이렇게 돼버린 건데. 우리가 왜 그 고생을 했던 건데! 이게 전부……!”
그리고 사련화가 작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엘프 자식들이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문을 열고 봉인지를 망가뜨린 것 때문이잖아!”
그런 그녀의 말에 카르카노도 하랑도 뭐라 말을 꺼내지는 못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일을 일으킨 것은 단순히 엘프 하나가 아닌, 엘프 모두에게 있다 보니 엘프들을 달갑게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자식들이 인간들보다 더 이기적이라니까. 겉으로는 고고한 척, 아름다운 척은 다 하면서 뒤로는 음흉한 짓이나 저지르고…….”
“하긴, 그렇긴 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인간도 더 번성했을 거고, 더 발전하긴 했을 거니까.”
사련화는 인간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도 생명체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인간들을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인간을 사랑하는 카르카노 입장에선 한때 문명을 백지화시켜버릴 뻔한 일을 일으킨 엘프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 엘프 여자가 안 나타났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끌고 왔겠지. 아니, 나뿐만이 아니겠지. 안 그래?”
“흥~ 이다. 베~ 다!”
콧방귀도 모자라 혀까지 내밀고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는 사련화의 행동에 카르카노도 피식 웃어 주었다.
“그리고 하랑, 너도 마찬가지잖아? 아니, 아니지. 넌 그때 다른 일로 바빴지.”
“…….”
봉인지를 건드리고 문을 여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하랑이었지만, 그에게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결국 열쇠를 가진 이를 건드리지 못하는, 아니, 이들 모두가 같은 명령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었기에 그것은 어떻게 보면 속박이자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파사, 그 자식을 네가 안 말렸다면 인간이고 엘프고 죄다 쓸려 나갔겠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엄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
“시꺼! 난 집에 갈 거니까 부르지 마!”
아이 취급을 하는 카르카노의 행동에 사련화가 버럭 소리를 지른 뒤 그대로 허공으로 뛰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사련화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카르카노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다.
마찬가지로 사련화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하랑이 말했다.
“카르카노.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응? 무슨 부탁?”
“열쇠의 주인을 알아봐 줘.”
“열쇠의 주인을? 왜?”
“어떤 존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만약 또다시 이 봉인지를, 문을 열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이라면 위험하다.”
“에이, 설마. 그래도 아미엘 님이 직접 같이 온다고 했잖아.”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카르카노와 하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안 그런가?”
“그야 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만약,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이라면…….”
그리고 하랑은 조용히 낯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곳을 지키는 존재로서, 문지기이자 지킴이로서 행한 그 실수의 결과물이 어땠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