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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36화 (23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36화

아미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궁룡 하랑은 그녀의 뒷모습을 두 눈으로 좇았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그녀의 흔적을 쫓듯 그녀가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아미엘의 뒷모습을 쫓다, 조용히 다시 똬리를 틀며 호수의 물을 이불 삼아 수면 속으로 몸을 담갔다.

그렇게 한동안 늘 해왔던 것처럼 문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지킴이로서의 모습을 보이던 궁룡 하랑이었지만, 이내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뜨며 말하였다.

“조금 더 일찍 왔다면 그분을 만나 뵐 수 있었을 터인데…….”

“그분 같은 소리 하시네.”

허공에서 작은 인영 하나가 뚝 떨어지더니, 호수의 수면 위로 내려오며 하랑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회백색의 잿빛에 가까운 긴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휘날리며 꽤 거친 모습과 사나운 눈매가 날카로운 어린 소녀였다.

하랑을 노려보는 눈은 상당히 거칠고 야생의 것과도 같았지만, 이 거대한 생명체를 보고도 두려움도, 경외심도 없이 오히려 그를 비난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였다.

“다 보고 있었으면서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냐.”

“그러니까 우리가 왜 그 여자를 높이 보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거야?”

그런 어린 소녀의 행동과 모습에도 하랑이 말했다.

“그분은 우리들의 창조주, 그 이상의 분이시다.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사련화.”

“퍽이나 당연하시겠네.”

지룡 사련화는 수면을 마치 땅바닥이라도 되는 듯 털썩 주저앉더니 짜증 난다는 듯 작게 혀까지 찼다.

그 행동에 하랑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다른 용들과는 달리 지룡 사련화는 자신들의 창조주에 대한 반감이 대단하였기에 이해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룡 하랑은 시선을 옮겨 투덜거리는 사련화의 곁을 보며 말했다.

“사련화는 몰라도 너는 나올 줄 알았는데…….”

“부담스러운 건 좀 싫어서 말이야.”

사련화와는 달리 호수의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얼굴만 빼꼼 내민 남성이 싱긋 웃어주었다.

“인간 놈들에겐 아주 당당하게 나서서 놀라 자빠지게 만들더니, 웬 수줍음이야?!”

“나이를 먹으니 그렇게 되더라. 게다가 우리 아빠, 엄마의 벗 같은 분이시잖아.”

“아빠, 엄마 같은 소리 하네.”

사련화의 날카로운 그 말투에도 미소를 짓던 그는 이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사련화의 곁에 서서 하랑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그래도 그분 역시 우리가 온 걸 알고는 있었을걸.”

“아미엘 님이 지적을 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첫 만남이 좋지는 않았다 카르카노.”

“에헤이,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낯을 가리는 거라 이해해주시겠지.”

“…….”

팔짱을 낀 채 능글맞게 답하는 카르카노의 모습에 하랑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파란빛의 짧은 머리카락은 마치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에 가까웠고, 자유분방한 뱃사람 같은 그 옷차림은 그의 외모와는 그다지 어울리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굉장히 편한 복장과 자유로운 그 행동은 바닷사람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였다.

“그보다 우리 셋밖에 없는 거야? 파사는?”

카르카노가 주변을 둘러보다 갸웃하며 하랑에게 물었다.

사련화나 자신이 숨어 있었던 것이야 서로가 잘 알던 것이었지만, 파사는 그렇지 못하였기에 의아한 듯 물었지만, 하랑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지켜보며 말했다.

“파사 역시 도착은 하였다. 단지…… 좀 멀리 있을 뿐.”

“우와, 저 자식은 왜 저기에 있었던 거야?”

너무나 멀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까웠지만, 그 어떤 존재들보다 멀리 내다보고 많은 것을 아는 하랑에겐 별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르카노는 조심스레 허공 위로 뛰어올라 하랑의 시선을 쫓았다.

잔뜩 찌푸린 채 하랑의 시선을 따라 집중을 하니, 겨우 그 인영이 보였기에 작게 투덜거렸다.

“잘도 왔구만. 징글징글한 자식.”

사련화는 파사가 왔다는 것에 매우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그녀의 곁으로 다시 내려온 카르카노가 히죽 웃으며 그런 사련화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말했다.

“인상 좀 펴, 인마.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들 아니냐.”

“형제는 무슨 형제야?!”

“아, 그러면 남매인가.”

“시꺼! 남매도 아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련화의 모습에 뭐가 그리 좋은지 카르카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더욱더 사련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괴롭혔다.

사실 그들은 이렇게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서로가 체험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만들어진 존재들이었다.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다른 인격이 형성되고 스스로 그러한 감정을 차단하거나 혹은 간섭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희미하게 전해져 오는 그러한 하나였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집요하게 사련화를 괴롭히는 카르카노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제지하는 사련화나 좋고 싫고를 떠나서 반가움이 더욱 크다는 것을 지켜보는 궁룡, 하랑에게 전해져 왔다.

그리고 사련화를 괴롭히는 것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한 것인지 카르카노가 하랑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그분을 돕는다. 그분이 뭘 원하시든, 봉인지를 고치고 문을 닫는 것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다.”

“으음……. 조금 아쉽네. 슬슬 인간들이랑 이별의 때인가.”

인간들에게 친밀한 카르카노는 그들의 열정적인 삶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바다로 나오는 요물, 마물, 아니, 몬스터들을 제어하면서도 그는 항상 인간의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보고 그들을 도우며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그들과의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다른 용들과는 달리 꽤 적극적인 그의 인간에 대한 호의는 인간 사회, 특히 동방 대륙과 서방 대륙의 뱃사람들에겐 매우 유명했으며 그들의 위기를 돕는다거나 하는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낸 인간 친화적인 용이며 가장 유명한 용이기도 하였다.

“더러운 인간 놈들이랑 이제 마주칠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

하지만 사련화는 오히려 반대로 이를갈며 그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내비쳤다.

사련화의 입장에선 인간은 정말 쓸모없는 동물들이었고, 자신들 외의 다른 동식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베어내는 해충과도 같았다.

때문에 그녀는 다른 그 어떤 용보다 인간들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내비쳤으며 그로 인해서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천밀 사막에는 인간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접근금지가 된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곳을 들어오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인간들에겐 가차 없는 벌을 내리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벗어나 인간 사회를 무너뜨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동방 대륙의 사람들 역시 지룡 사련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녀가 천밀 사막을 벗어나지 않고 오직 그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삶을 살아가는 것을 다행이라고도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극명하게 갈린 인간에 대한 감정들을 가졌지만, 그래도 하나의 목표로 인간들을 지켜주었고 또 하나의 바람을 간직한 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인간의 세상을 일단 지켜준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며 떠난다.

하랑은 그들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미엘을 돕는 것에 동의를 해주는 두 형제가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거절한다.”

하랑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려온 냉정한 그 목소리가 이곳, 호수에 울려 퍼지자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파사…….”

어둡고도 차가운 검은 눈으로 자신을, 아니,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성, 파사의 모습에 하랑 보다 카르카노와 사련화가 오히려 더 불만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슌 제국 황실 예복을 입은 채 마치 그 대제국의 인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단지 젊다는 것만 뺀다면, 노련한 관리로도 보였으며 다르게 본다면 높디높은 황실의 인물로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파사의 말에 사련화가 버럭 소리쳤다.

“헹! 그게 그렇게 싫으면 넌 빠져!”

“그거 고마운 말이군.”

“으극……!”

무심한 파사의 말에 사련화가 이를 갈며 노려보았지만, 파사는 사련화를 무시한 채 조용히 수면 위로 내려왔다.

그는 동방대륙에도 알려지지 않은 용이자 소문만 무성한 슌 제국의 수호룡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인간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용이자, 카르카노 이상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용이기도 하였다.

이런 파사를 내려다보던 하랑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의 존재 이유인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나의 존재 이유는 그딴 것에 있지 않다.”

“그딴 것이라고?!”

그 말에 사련화가 발끈하고 카르카노마저 살짝 찌푸릴 정도였지만, 하랑은 이런 파사를 이해하는 한편 안타까워하였다.

“네가 사랑하던 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 않느냐.”

“아니. 여전히 남아 있다. 나의 존재 의미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하랑.”

그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사랑하던 이의 자식들을 지키는 것.

수호룡이 되어 자신의 원래 의무를 모두 벗어 던지고 인간을, 아니, 사랑하는 이의 아이들을 위하게 된 용.

그것이 바로 슌 제국의 수호룡 파사였다.

“빌어먹을, 변태 자식.”

그가 한 인간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 거대 제국 하나를 무너뜨리고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도와준 일은 가장 가까웠던 사련화나 카르카노, 하랑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절대 인간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고, 그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자신들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역사에 거대한 변화를 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충격이자 다른 용들에게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가져온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련화는 그 이후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에 대해 가차 없이 대하였고, 반대로 지켜주어야 할 인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대하며 다가갔던 카르카노였으니 말이다.

단지 하랑만이 조용히 의무를 지켜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파사는 그렇기에 다른 두 형제를 무시한 채 하랑만을 보며 말했다.

“하고자 한다면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나는 이 일에서 빠질 것이니. 그리고…….”

그의 검은 눈은 너무나 어두웠지만, 새로운 선택을 한 자의 자유로움이 하랑은 못내 부러웠다.

그리고 파사는 이런 하랑을 보며, 주변의 형제들에게 똑똑히 들으라는 듯 말했다.

“나의 아이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이 발생한다면 나 역시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지를 만큼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인간이 남긴 후손을 끔찍하게 아꼈고, 그 어떤 위태로움에도 슌 제국의 황실만큼은 단단하며 독재에 가깝게 나라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황실의 방해되는 것은, 피해를 끼치는 것은 모조리 처단한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사련화는 이런 파사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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