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235화 (23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35화

동방 대륙의 정점에 있는 것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매 세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나, 그런데도 그들 스스로가 동방 대륙의 주인이자 먹이사슬의 정점이라 인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서방 대륙의 사람들에겐 너무나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지만, 동방 대륙의 그들에겐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그리고 동방 대륙인들은 누구나 이 세상의 정점에 있는 존재를 이들이라 칭하였다.

용.

천산이라 불리는 신령산의 궁룡 하랑.

천밀 사막의 주인인 지룡 사련화.

바다의 자유로운 방랑자라 불리는 해룡 카르카노.

그리고 슌 제국의 확인되지 않은 수호자 수호룡 파사.

알려진 용은 네 마리였으며, 그중 인간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 용은 해룡 카르카노라 알려져 있다.

천산이라 불리는 신령산은 그 높이가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을 통틀어 가장 높았고 지세도 험하여 인간의 접근이 힘들었지만 궁룡 하랑은 언제나 가장 높은 봉우리의 용호담에 자리를 잡고 있어 한 번씩 나타나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이들에 의해 그 목격담이 전해져 왔다.

천밀 사막에 있다 알려진 지룡 사련화는 카르카노와 마찬가지로 사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용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천밀 사막은 그 크기가 웬만한 왕국 그 이상을 자랑하였고 오아시스조차 찾기 어려운 장소인지라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조차 없었고 그곳을 지나가려는 이들도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괜히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장소가 아니었으며 가끔 사막 외곽에 그 모습을 드러냈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단지 카르카노와 같은 인간에 대한 호의적인 부분은 없었으며 하랑처럼 인간을 무심하게 대하는 것도 아닌지라,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에겐 가차 없는 용으로도 유명하였다.

이런 하랑과 사련화와는 달리 인간들에게 많은 호기심과 친밀감을 보이며, 동방대륙에선 가장 유명하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해룡 카르카노이다.

카르카노는 동방 대륙과 서방 대륙을 오가는 무역로에 자주 나타나며 태풍을 알려주거나 재난에 인간들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그는 인간들과 매우 가까운 존재였다.

때문에 이런 카르카노로 인해 그나마 용들은 위협이라기보단 인간과는 무언가 다른 존재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게 퍼져 있었다.

이런 세 용과는 달리 그 존재 자체가 의문인 수호룡 파사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으나, 슌 제국의 황실은 그를 자신들의 수호자라 칭하며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미엘은 이곳, 천산이라 불리는 신령산의 정상에 위치한 용호담에서 마치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 예의를 갖추고 있는 용, 궁룡 하랑을 보며 갸웃하였다.

“나는 너를 모르나 너는 나를 아는구나.”

“예. 요정의 여왕이시여. 당신은 저를 알 수 없으나, 저는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미엘은 용을 처음 접하였고, 용이라는 생명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주안을 통해 처음 들었었다.

그 외모는 뱀과 같았지만, 물을 머금고 햇빛에 반짝이는 매끄러운 은색의 비늘은 아름다운 보석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얼굴은 자신이 알고 있는 드래곤과 비슷하였지만, 뿔의 모양이라거나 수염의 형태, 등을 가로지르는 갈기의 모습 등등 전체적으로 무언가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존재하던 그 시절에는 이러한 생명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주안에게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이 생명체가 어떠한 존재인지 그녀는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너는 드래곤의 피를 가졌구나.”

“그분들에 의해 태어났고, 그분들과 같은 소임을 가지고, 그분들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이라 그렇습니다.”

“같은 존재라……. 하나 너는 그들과 다른 존재이니라. 아니더냐.”

“맞습니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을 뿐, 같은 존재는 아니지요.”

예의 바른 그의 말투는 아미엘로서도 매우 흥미로웠다.

“드래곤들이 너를 이곳 봉인지의 수호자로 앉혀 놓은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아미엘은 자신이 서 있는 호수의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너무나 맑은 호수의 물은 언뜻 보기에는 아미엘의 키를 넘기지 못할 정도의 깊이로 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거대한 용의 거체를 모두 담아낼 정도로 호수의 물은 매우 깊었고, 그 수면의 아래에 그녀가 찾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크세니아는 나에게 너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드래곤도 너희들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저희는 이곳을 지키는 역할인 그림자일 뿐입니다.”

“하나 그렇다 해서 나에게 숨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더냐.”

“제가 아는 것은 그저 이곳을 지키는 것일 뿐입니다. 이 장소의 문을 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 이 문을 빠져나가려는 이, 그 모든 것을 막아서는 것.”

그리고 궁룡 하랑은 아미엘과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그것이 저의 역할일 뿐입니다.”

“……도구로써 만들어졌다는 의미로구나.”

“그러하였지요.”

“그러하였다?”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이내 아미엘은 하랑의 말에 잠시 갸웃하였다.

“도구에 불과하나 이 역할을 완수하면, 저희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게 된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오랜 시간을 이곳에 자리를 잡고 그저 지키고만 있었다는 것이더냐.”

하랑이 큰 머리를 끄덕이자, 아미엘은 작게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인지 그녀조차 감을 잡지 못 하였다.

하지만 그런 세월을 이겨내며, 언제 그 약속이 지켜질지 모른 채 그저 이 장소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용, 하랑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존재들을 만들어 낸 드래곤들이, 크세니아가 자신에게 일언반구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주안과 함께 갔던 그 무덤에 자리를 잡고 있던 그림자와는 다르다.

그녀는 크세니아와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던 친우이자, 그의 부탁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남아 이종족들을 보호하였던 이였다.

이런 자신에게도 숨겼던 이 일은 일종의 배신일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을 하여도 괜찮겠습니까.”

“허락한다.”

거대한 거체를 지닌, 동방대륙의 절대자라고 불리는 궁룡 하랑은 아미엘에게 너무나 저자세였다.

하지만 그에게 각인된 아미엘에 대한 것은 그렇게 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대우를 받아도 될 존재였고, 아미엘 역시 이러한 대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린 궁룡 하랑이 말했다.

“열었던 것을 드디어 닫아 주시러 오신 것입니까.”

“열었던 것이라…….”

그리고 아미엘의 시선은 재차 호수의 수면 아래로 향하였다.

이 깊은 수면 아래에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하랑의 말을 되새기며, 아미엘이 조용히 말했다.

“봉인은 스스로 깨어져, 비틀렸던 것이 아니로구나.”

“……알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몰랐느니라.”

몬스터가 나타난 이유, 그리고 이곳 동방대륙에 나타나고 있는 요물…… 아니, 또 다른 몬스터들에 대한 것.

그녀는 이 모든 일이 바로 드래곤들이 만들어 놓은, 타 차원으로 추방시킨 몬스터를 봉인된 봉인지와 문에 문제가 생겨 일어난 일이라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수면 아래의 봉인지는 그녀가 생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것은 봉인이 깨어져 억지로 비틀려 열린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봉인의 역할이 무너져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미엘은 이 점에 대해서 하랑에게 물었다.

“나 역시 한 가지만 묻고자 한다. 너는 이곳을 줄곧 지키고 있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 문을 연 존재란 대체 누구이더냐.”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누군가 이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고 다시 닫았지만 제대로 닫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질문에 하랑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존재. 이곳의 봉인지에 들어설 수 있는 존재. 이곳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존재…….”

그리고 하랑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 마를렌…….”

“열쇠를 가졌던 존재는 한 명뿐입니다.”

그리고 아미엘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랑의 얼굴이 아닌 그 너머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이더냐.”

아미엘은 이미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게 된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하였지만, 그것을 듣는 이는 눈앞의 궁룡, 하랑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하랑 역시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잠시 아미엘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아미엘이 마음을 안정되었다 싶어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요정들의 여왕이시여. 부탁드립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

자신의 바람을 담아 그녀에게 애원하듯, 궁룡 하랑이 고개를 숙이며 아미엘에게 부탁하였다.

“부디 이 문을 닫고 모든 것을 끝내어 주십시오.”

“모든 것이라…….”

“여왕께서는 이 문을, 깨어지고 있는 이 봉인지를 닫고 고칠 방법이 있기에 이곳으로 온 것임을 압니다. 아닙니까?”

“……그러하다.”

“하여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저의, 저희의 이 역할을 이만 끝내어 주시옵소서.”

간절한 용의 바람은 모르는 이들이 보았다면 경악을 하여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아미엘은 담담한 눈으로 궁룡 하랑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을 견뎌왔지만, 그의 역할이 이제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직감한 듯, 하랑은 아미엘에게 아이처럼 매달려서 그녀가 이만 자신들의 일을 끝내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니, 끝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미엘은 그런 하랑을 조용히 바라보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곧 다시 오도록 하마. 이 모든 것을 끝낼 열쇠의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하도록 하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왕이시여.”

이곳을 방문하였던 때처럼, 조용히 다시 몸을 돌려 이곳을 벗어나는 아미엘의 작은 뒷모습을 궁룡 하랑은 자신의 두 눈으로 끝까지 쫓았다.

“모든 것의 끝이라…….”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며 아미엘은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였다.

주안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수의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그 문을 드러나게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수많은 마법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미로를 돌파해야 하겠지만 정말 그녀에게는, 아니, 그녀와 함께 올 주안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허락받지 못한, 열쇠를 가지지 못한 이를 위한 장치일 뿐이다.

애초에 그것에 다다를 수 없게끔, 그 이상의 엄청난 수호자를 배치한 드래곤들의 안배가 놀랐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수호자는 이미 아미엘이 이 봉인지를 고치고, 문을 제대로 닫아 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손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일이로고…….”

마를렌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제는 드래곤들의…… 크세니아의 의도는 대충 파악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의 그림자의 바람대로, 한 번 더 그를 만나야 할지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