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4화
유우나 공주에게 역시 일정에 대한 일은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마를렌을 떠나는 날을 봐서 이야기해 주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마를렌을 떠나는 공작가 일행들의 대규모 인원과는 달리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풍신과 단둘이 함께 올 가능성도 컸고, 그렇지 않더라도 많은 인원이 함께 오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결국 그녀가 먼저 도착할 것이니 말이다.
“자, 그러면 난 이제 뭘 한다.”
아미엘에게도 다녀왔고, 메데아 대족장과도 만났다.
그리고 유우나 공주에게도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으니, 집으로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한테 갈까…….’
본능처럼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엄마의 방으로 향하던 주안이었지만, 이내 걸음을 멈춘 채 거칠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한 주안의 행동에 뒤따라오던 하인이 움찔하며 놀랐지만, 주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엄마의 방이 아닌, 바로 바깥이었다.
주안이 향한 곳은 피터와 토미가 함께 있는 연무장이 있는 장소였다.
* * *
“그래서 있죠, 제가 이렇게 해서 록산느 경의 검을 흘려낸 뒤에 스승님이 알려준 방법으로 반격을 했더니 록산느 경이 굉장히 당황하시더라고요.”
“록산느 경이라…….”
곁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검은 쉼 없이 휘두르고 있는 토미의 모습에 피터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 말들을 하나하나 다 귀에 담아내었다.
황도 저택으로 돌아온 뒤에도 토미는 언제나처럼 피터의 곁으로 다가와 훈련을 받았고, 그런 토미를 역시나 묵묵하게 곁에서 지켜봐 주며 많은 것을 알려주던 피터였지만 오늘은 오히려 토미가 알려주는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로마니아 가문의 검은 내가 알려주던 검과는 조금 다르단다. 그것은 깨달았느냐.”
“그럼요. 한 번에 알아봤다니까요.”
자랑처럼 히죽 웃는 토미의 말은 일견 과장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피터는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아니, 토미를 아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토미의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한 번 본 것에 대해서는 금세 자기의 것으로 만들 정도로 그 천재성은 뭐라 말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기도 하였다.
“아마, 이렇게…… 였을 거예요.”
토미가 피터에게 보여주려는 듯 휘두르던 검과 자세를 바꾸며 록산느의 검과 로마니아 백작 가문의 검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피터가 조심스레 토미의 목검을 붙잡고 내려주며 말했다.
“다른 이들의 검을 너무 함부로 보여주는 것은 그 검의 주인에 대해서 큰 실례가 될 수 있단다.”
“아…….”
비록 서방 대륙의 검이 단순하고 많은 것을 공유한다 해도 각 가문에 내려져 오는 자신들만의 훈련법과 그것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허락도 없이 쓰이는 것을 반길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토미야 워낙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이들로 인해서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피터의 주의에 토미도 그제야 깨달은 듯 황급히 피터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네 재능이 남달라 다른 이들의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은 물론 큰 장점이겠지.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남의 것. 너의 것은 아니란다.”
그리고 조용히 토미를 바라보며 피터가 말을 이었다.
“언젠가 너도 너만의 검을 찾고 너만의 길을 가면 되니, 너무 마음 쓰지는 말거라.”
“네, 네!”
스승이라는 이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 또한 비슷하다.
알려주는 것만 곧이곧대로 배우는 이는 확실히 좋은 제자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는 이는 어리석은 제자일 뿐이었다.
피터의 입장에서도 토미는 확실히 좋은 제자이고 너무나 훌륭하며 과분할 정도라 생각이 되었지만, 자신의 것을 찾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것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점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토미의 재능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분명 그 어떤 이도 뛰어넘을 엄청난 재능을 활짝 피울 수 있겠지만, 자신의 검을 가지지 못 한 채 방황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
“그래도 지금은 다양한 것을 보고 배우는 단계이니, 네 새로운 스승님의 곁에서 더욱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거라.”
“예!”
올곧은 그 눈에는 한 점 거짓도 없었기에 토미의 눈을 바라보는 피터는 정말이지 이 아이에게 검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그저 안젤라만 바라보고, 안젤라의 곁을 지키며, 안젤라를 따르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이자 모든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나이를 먹어 아들 같은 제자를 두고 하나하나 가르치니, 정말이지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러한 것을 토미에게 알려 줄 수가 없었기에 피터가 자신을 바라보는 토미의 눈을 애써 피한 채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그러면 잠시 쉬었다 하자꾸나.”
“헤헷.”
“……그렇게 웃지 말거라.”
피터가 걸음을 옮겨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오빠를 지켜보고 있는 세라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토미 역시 냉큼 피터의 곁으로 달려가 함께 나란히 걸어갔다.
* * *
“음…….”
연무장에 도착한 주안은 멀지 않은 곳에 오순도순 자리를 잡고 앉아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피터와 토미, 그리고 세라타의 모습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왠지 방해꾼이 될 것만 같아.”
그 모습이 조금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마음이 짠하기도 하였다.
토미나 세라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어렵게 살아왔다.
그것도 모자라 몸이 좋지 않은 세라타로 인해서 토미는 정말 많은 고생을 하여야만 하였다.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란 자신과는 달리, 사회에 그대로 내던져졌던 토미와 세라타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준 것도 주안의 입장에선 토미라는 인재를 얻기 위함과 동시에 한때 토미를 불행하게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가. 토미도 세라타도 피터 아저씨를 잘 따르고, 피터 아저씨도 두 사람을 잘 대해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토미의 실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피터에게 억지로 부탁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피터가 나서서 토미뿐만이 아니라 세라타마저 잘 챙겨 주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엄마인 안젤라의 곁만 지키다 생을 마감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뭔가, 가정을 가진 부모처럼 행복해 보였기에 주안 역시 이런 피터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내가 해주지 못 하는 걸 대신해 주시고…….’
주안은 절대 토미와 세라타의 부모 역할을 해줄 수는 없었다.
물질적으로는 절대 모자람 없이, 그리고 친구이자 오빠의 역할은 해줄 수 있을지언정 부모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부분을 피터가 대신해 주니, 주안으로서는 그가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앗, 도련님!”
“윽……!”
그리고 조용히 걸음을 돌려 세 사람의 즐거운 한때를 방해하지 않으려던 주안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 대해선 엄마 다음으로 잘 알게 된 세라타가 금세 주안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주안에게 손까지 흔들며 반겨 주었다.
그 모습에 주안 역시 어색하게나마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세라타가 도도도 달려오더니 주안의 손을 잡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 보러 오신 거예요? 아니면 피터 기사님 보러 오셨어요?”
“아, 그게…….”
초롱초롱 빛나는 세라타의 눈과 그 행동에 주안이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픽 하고 웃어주며 세라타의 하얗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나 버리고 놀러 다니는 세라타 너 잡으러 온 건데?”
“예?!”
사실 말이 나와서 그렇지만, 세라타는 주안의 전속 하녀이기도 하였다.
한때 주안의 하인을 자청하던 토미가 피터의 정식 제자가 되고 가르침을 받자 그 역할을 자진해서 대신 하기로 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세라타를 보며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그보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실은 오빠가 마를렌에서 대련하셨던 록산느 경이라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어요.”
“오호, 록산느 경이라…….”
“도련님도 잘 아시는 분이세요?”
“잘 안다고 해야 하나…….”
잠시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었지만, 이내 조용히 말을 꺼내었다.
“뭐, 정말 기사다운 기사인 여성이었다고 할까. 노력파이기도 하고, 지고는 못 사는 그런 자신의 검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아, 무엇보다 토미랑 몇 번이나 끈덕지게 대련을 해서 그런지 묘한 분위기도 조금…….”
“…….”
단편적이긴 하였지만, 주안이 느낀 록산느에 대한 것은 남녀를 떠나서 정말 기사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 주안의 앞선 말보다 뒤이은 말에 세라타가 움찔 놀라더니 차분한 눈으로 주안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조용히 돌려 여전히 행복해 보이는 토미와 피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런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이 왠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걸음 떨어졌다.
“……무서워, 세라타.”
이런 세라타의 모습은 처음이기에 주안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몰랐다.
세라타의 시선은 자신의 오빠인 토미에게 향해 있다는 점이 주안으로선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뭐, 자신이 실언한 듯했지만 그 대가는 토미가 받을 것이니…….
* * *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든 날씨는 가만히 서 있어도 뜨거운 햇볕으로 인하여 온몸이 땀으로 젖을 것만 같은 그러한 날이었다.
하지만 울창한 나무와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잎사귀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산을 느긋하게 오르고 있는 아미엘에겐 그런 것은 남의 일이라는 듯했다.
평소와는 달리 자신의 두 발로 한 걸음씩 바닥을 밟으며 나아가는 것은 생소하였지만, 그러한 것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그녀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걷던 아미엘은 어느덧 거대한 산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야 걸음을 멈추었다.
“…….”
뒤로는 웅장한 산맥과 그것을 모두 가려주지 못한 채 어우러져 있는 구름의 조화는 장관이었고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이 거대한 산의 꼭대기에는 움푹 들어간 분지와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 호수였다.
그리고 그 맑고 깨끗한 호수의 중앙.
이 세상의 존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생명체가 똬리를 튼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미엘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조용히 날개를 움직여 그 거대 생명체의 앞으로 날아갔다.
마치 호수 위를 걷듯 날아가는 그녀 역시 비정상적인 모습을 연출하였지만, 그녀나 그녀가 향하고 있는 거대 생명체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이것이 정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아미엘이 그 거대 생명체의 앞에 도착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거대 생명체가 조용히 눈을 뜨며 노란 뱀의 눈으로 아미엘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 뱀의 눈을 한 생명체는 아미엘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이내 조용히 숙이며 말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요정의 여왕이시여.”
비정상적으로 큰 그 모습과는 달리 말투는 너무나 차분하였고 맑았지만 아미엘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채 그에게 답했다.
“너는 누구이더냐.”
“이곳 천산의 봉인지를 지키는 자.”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켜 아미엘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궁룡, 하랑이라고 합니다.”
동방 대륙의 절대자.
동방 대륙의 천산, 신령산의 주인이자 하늘의 용이라 불리는 궁룡 하랑이 아미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