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3화
윌슨 마법사의 안내로 통신용 방 안으로 들어온 주안.
그는 이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인지라 매우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휴식 공간처럼 되어 있네.’
통신용으로 만들어진 방은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었고 주안의 말처럼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휴식 공간으로 느껴질 만큼 편안해 보였다.
‘뭐, 그렇다고 진짜 평범한 방으로 생각해서 좀도둑이 들어오면 큰일 나겠지만.’
문제는 이곳에 걸려있는 수많은 마법.
아마 직계 가족의 방 외에는 가장 많은 마법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통신이란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되는 것들도 다수 포함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보니, 그에 관련된 보안은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공자님.”
“예. 실례하겠습니다.”
윌슨 마법사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으며 감사의 인사를 해주자, 다른 이들이라면 부담스러워서 조금 곤란해하였겠지만, 윌슨 마법사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는 것으로 주안을 대했다.
‘정말 마법사 같은 분이긴 하네.’
집안의 많은 마법사를 만나 보았고, 외부에서 역시 많은 마법사와 연을 쌓은 주안이었다.
무엇보다 엄마 때문에 황립마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기에 수많은 마법사를 만나 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주안이 그동안 보았던 많은 마법사 중에서도 윌슨은 정말 마법사 같은 그런 인물이었다.
조용하며, 자신의 마법 연구와 학문공부 외에는 도통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를 인물.
쉴 때조차 책을 놓지 않는 그는 집안 내에서도 꽤 유명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소니아를 제외한 가장 젊은 마법사임에도 웬만한 마법사 그 이상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속성력만 제외하면 가문 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려나…….’
거의 반쯤 사기에 가까운 능력인 속성력은 마법사들의 능력을 몇 배로 높여주었기에 그것을 가지지 못한 마법사와 그것을 가진 마법사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을 극복한 마법사들은 여전히 나왔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윌슨 마법사이니 말이다.
“안젤라 님이 공자님을 위해 구해주신 것보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대방과 마주 보며 대화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주안의 앞에 통신용 수정구를 놓아주며 윌슨 마법사가 주안의 앞에 앉았다.
통신은 매우 심플하며, 이 수정구를 통해 상대방과 연락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수정구에 따라 글자만 오갈 수도 있거나 단편적인 말 혹은 끊김 없는 대화를 넘어 상대방을 흐릿하게나마 보고 직접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것으로 점점 발전해갔다.
다만, 주안은 이보다 더 엄청난 것을 써봐서 그런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조금 비싼 걸 사주긴 하셨죠. 그거 얼른 팔아버려야 할 텐데…….”
조금이 아니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스란 왕국으로 갈 때야 어쩔 수 없이 사용했지만, 집에 와서는 정말 쓸모가 없어진 초장거리 마법 통신 장치인지라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는 주안의 입장에서도 참 난감했다.
집에서 엄마와 그것을 가지고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고 그것과 비슷한 물건이 이 세상에 또 존재할 것인지도 의문이었으니 말이다.
같은 기종 외에는 통신도 되지 않는지라, 정말 쓸모가 없었다.
분명 황립마탑의 걸작인지라 다른 통신구들과는 달리 깨끗한 화면으로 상대방과 직접 마주한다는 느낌 그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획기적이나, 너무나 한정적이고 크기도 더럽게 커서 휴대용으로도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미리 말도 안 하고 연락을 해도 괜찮을까요? 거기다 아스란 왕국의 왕궁 쪽으로 연결을 해야 하는데…….”
“이미 사절단을 통해서 그들과의 연락 수단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라 아스란 왕국과의 연락은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아무리 아스란 왕국이 작은 나라이며 왕가의 힘이 약하다 해도 왕국은 왕국이고 왕가는 왕가다.
나라 안의 귀족들에게는 거의 보급되지 않았지만, 타국과의 연락이 필요한 왕가 내에서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마법 통신구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유우나 공주와 주안으로 인해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아스란 왕국의 왕가와의 연락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게 된 상황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내 윌슨 마법사가 통신용 수정구에 두 손을 올리고 집중을 하자, 수정구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 너머로 사람의 형상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연결되었습니다, 공자님.”
“……정말 대단하세요, 윌슨 마법사님.”
소니아도 이 정도로 빠르게 통신을 연결하지 못하였는데, 윌슨 마법사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손쉽게 연결을 하는 것에 주안은 솔직한 심정으로 놀라버렸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말에도 윌슨 마법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 너머의 남성이 말했다.
-이곳은 아스란 왕국의 왕궁입니다. 연락하신 분의 신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황도 저택의 마법사 윌슨이라고 합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께서 유우나 아스란 공주님과의 만남을 바라시고 계십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합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기타 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 연락을 받은 상대방 마법사가 당황하는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수정구 너머로 그대로 보였다.
그 모습에 주안이 어색하게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가주의 연락도 아닌, 단지 그 후계자의 연락에 왕궁마법사가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래도 한 나라의 왕궁이었고, 많고 많은 복잡한 절차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도 다 무시할 정도로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하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크게만 보이는 것인지 주안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조금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금세 수정구 너머로 한 사람이 나타났고, 그 모습에 주안은 애써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주, 주안 공자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유우나 공주님.”
-정말 주안 공자님이셨군요.
“놀라게 해드린 것 같네요.”
-아, 아니에요. 조금 뜻밖이긴 하였지만…….
오랜만에 보긴 하였지만, 그래도 낯설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아스란 왕국을 떠날 때 보았던 유우나 공주의 모습을 기억하던 주안은 지금 본 유우나 공주의 모습, 아니,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을 느끼며 말했다.
“그런데 조금 밝아지신 듯한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예요?”
-아, 아뇨, 그게…….
잠시 머뭇거리며 주안의 시선을 피하던 유우나 공주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짓자, 주안이 갸웃하였다.
그러다 아스란 왕국의 소식 역시 알아보던 주안은 그녀의 표정이 밝은 이유에 대해서 나름의 이유를 떠올리며 말했다.
“요즘 귀족파나 반란군이 잠잠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스란 왕국도 많이 안정되어 간다고 하니, 공주님도 한 시름 놓으신 듯하군요.”
-공자님이 주신 이게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주안의 말에 유우나 공주가 무언가를 꺼내 주안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아스란 왕국을 떠나기 전, 배웅하는 유우나 공주에게 선물로 주었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라는 증표인 인장이었다.
그것을 본 주안은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도움이 많이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평소의 주안의 말투와는 달리 사무적인 말투기는 하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인지 유우나 공주 역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공자님. 갑자기 연락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실은 부탁을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겨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부탁이라니요?
갸웃하는 유우나 공주에게 주안이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괜찮으시다면 황도에 한 번 방문을 해주셨으면 해서요.”
-네? 황도라면……. 서, 설마 제노폴 제국의 황도, 주안 공자님이 계시는 그곳 말씀이세요?!
“예.”
당황하는 유우나 공주와는 달리 주안은 매우 침착했다.
하지만 유우나 공주 역시 놀라긴 했지만 금세 침착함을 되찾은 후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또렷한 모습으로, 주안이 기억하던 그 유우나 아스란의 모습으로 돌아와 말했다.
-저를 초대하신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듯한데요.
그 모습에 주안이 역시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우나 공주님과 상의 드릴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유우나 공주님뿐만이 아니라 풍신 경에게도 말씀을 드릴 일도 있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풍신 경에게까지라니요?
잠시 갸웃하던 유우나 공주가 이내 풍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주안의 말뜻을 조금은 알아차린 듯 재차 말했다.
-혹시 워랜 경과 토미의 일 때문인가요?
“비슷합니다만, 금방 알아차리시는군요.”
-그야 주안 공자님이 풍신 경에게 할 말이라는 것은 결국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이 되었으니까요.
싱긋 웃는 그녀의 얼굴을 주안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픽 하고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아스란 왕국에서, 아니, 그전에 오는 길에서 역시 주안은 풍신과 워랜의 일 외에는 딱히 다른 사적인 일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알아차린 유우나 공주의 눈썰미나 기억력도 대단했지만 말이다.
“일단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유우나 공주님과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 할 듯해서요.”
-사업이라……. 혹시 주레인 공작님이 저희 왕국, 왕가와의 사업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주신 것인가요.
그녀가 먼저 제안했지만 주레인 공작의 허락이 없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입장이 바로 유우나 공주였다.
지금이야 주안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왕가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지만, 확실한 안전과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선 어쨌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였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이 이야기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아실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설마…….
유우나 공주가 주안의 말에 흠칫 놀라며 주안을 보았고, 주안 역시 싱긋 웃어주며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제 할아버지이신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님과 제 아버지이신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님, 두 분을 모시고 나누어야만 하는 이야기라서 말이죠.”
-…….
그리고 주안은 처음으로 그녀가 심할 정도로 당황하여 얼굴까지 새하얗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껴버렸다.
옆에 윌슨 마법사만 없었다면 작게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로 말이다.
‘이거, 메데아 대족장님과 동행해 달라고 하면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
웬만해선 정말 놀라지 않는, 과거의 기억 속의 유우나 공주는 얼음 마녀란 말에 어울릴 정도로 차가운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랭크 8의 절대자와 동행을 해달라는 주안의 부탁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기대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