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2화
남부 대밀림은 확실히 넓지만 그렇다 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중 가장 모자란 것은 바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철이었다.
“몇 개 없던 그 철을 캘 수 있는 곳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물의 뼈가 단단하여 그것을 이용한다 해도 숫자를 맞출 수가 없으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철…… 혹은 그것으로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으음, 철과 무기라…….”
파나르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주안은 조금 고민이 되는 제안이긴 하였다.
철은 매우 민감한 광물이었다.
차라리 보석이나 금, 은이라면 모를까 철은 조금 달랐다.
철은 많은 곳에서 사용이 되지만, 파나르나 메데아 대족장이 바람처럼 무기에 많은 물량이 쓰인다.
전쟁에 사용되는 물품인 만큼, 타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상당히 민감한 물품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뭐든 다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 주안도 그 부분에서 만큼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제가 여기서 확답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철은 아무래도 전쟁에 사용되는 주요 물품이라…….”
다만, 그래도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지라 주안은 메데아 대족장과 파나르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 거예요.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어서 확실한 답을 가져올게요.”
“그래. 우리도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생각해라.”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달란트 부족인지라, 철과 철로 만든 무기는 그만큼 귀하다 해도 그것을 대신할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다.
그저 주안이 그것을 가지고 거래를 해주면 좋을 뿐, 매달릴 일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 * *
이야기가 끝난 주안은 일단 대밀림을 침범한 이들은 다음에 올 때까지 고생을 좀 시켜주기로 하였고, 직접 배웅을 나와준 메데아 대족장과 파나르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정확한 날짜를 가지고 오도록 할게요. 메데아 대족장님도, 파나르 님도 그때 다시 봐요.”
“그래. 잘 가라, 마르티네스의 주안. 그리고 이건 선물이다.”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에게 인사를 해주며 무언가를 대충 휙 하고 던졌고, 주안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묵직한 그 물건은 상당히 컸지만 부드러웠고 돌돌 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고 갸웃하다, 이내 그게 무엇인지 깨닫고는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설마 메데아 대족장님이 직접 만드신 가죽 공예품이에요?”
“부족원이라면 누구든 하는 일이다.”
그녀의 말 그대로 달란트 부족에게 일상은 사냥과 생존이었지만 춤과 노래, 그리고 이러한 가죽공예를 하며 여과를 보내었다.
그것은 메데아 대족장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해온 일들이기도 하였다.
펼쳐 든 가죽 공예품은 확실히 눈을 사로잡는 예술품 중에서도 최상의 품목이라고 보였다.
게다가 이것을 만든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현 서방 대륙 최강자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메데아 대족장이었다.
그러한 이름을 달고 판다면 정말 엄청난 거금을 만질 수도 있겠지만, 주안은 그것을 품에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가문의 보물로 대대로 전해주도록 할게요, 메데아 대족장님.”
“크흠. 그런 것까지 바란 것은 아니다.”
주안의 말에 메데아 대족장이 헛기침을 하였지만, 주안은 이게 빈말이 아니라 정말 가문의 보물로서 남길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두고두고 자랑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메데아 대족장과 인사를 나눈 후 주안은 아미엘에게 걸어갔고, 아미엘 역시 메데아 대족장에게 작게 고개만 끄덕여준 후 인사를 한 뒤 주안의 손을 잡고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워프하였다.
* * *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네?”
아미엘의 방으로 돌아온 주안은 바깥으로 놀러 나간 것인지 세 요정 꼬맹이가 보이지 않는 것에 갸웃하다 아미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미엘은 이런 주안을 마주 보며 말하였다.
“어째서 귀찮게 너와 달란트의 아이 사이에 새로운 이들을 끌어들여 그 거래라는 것을 하려는 것이더냐.”
그녀의 말대로 꼭 아스란 왕국을 끼워 넣고 이러한 거래를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입장에선 그리 큰 이득은 아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르티네스 공작가라서 그러한 것이다.
남부의 과일은 매우 유명하고 나름 비싼 가격을 자랑했지만,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를 못하였기에 나오는 현상이기도 했다.
아스란 왕국은 자원이라고는 정말 얼마 없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에겐 남부의 풍부한 과일들이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왕가와 일반 백성들이 아닌 귀족파가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형태였다.
때문에 주안은 아스란 왕국에, 유우나 공주에게 어느 정도 이득을 안겨주면서 그녀가 바라던 함께 하는 사업을 이것으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나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니까. 이것은 순수한 원조가 아니라, 유우나 공주님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거야.’
남부까지 사람들을 보내고, 이것을 아스란 왕국 인근에 창고를 세워 또 그것을 관리하고 출하하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그 귀찮은 일을 아스란 왕국, 왕가에 떠넘긴 뒤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그들이 보내어 오는 것들을 받아서 되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스란 왕국, 왕가와 유우나 공주의 입장에선 새로운 수익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며 왕가에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합작 사업이라는 그럴 듯한 것이 생긴다.
그것을 통해 왕가는 더욱 튼튼해지고 귀족파에게 많은 실권을 내주었던 것을 다시 찾아올 수 있거나 더 이상 귀족파가 날뛰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의 아스란 왕가라면, 유우나 공주님이라면 이 사업을 잘 이끌어 나가시겠지.’
과거의 유우나 아스란이라는 여성은 작은 왕가가 아닌, 대륙 중남부의 대제국이자 서방 대륙 최강국을 무너뜨리고 신왕조를 세워 무탈하게 이끌어갔던 여성이었다.
그때보단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고 주변의 인물도 거의 없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능력은 여전히 그녀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황도로 찾아와 자신을 사줄 사람을 찾지도 못하였겠지만.’
이전 삶이 아닌, 이번 삶에서의 첫 만남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나아가는 그녀는 너무나 눈부신 여성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시기도 할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주안 역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설명하려면 조금 복잡하지만…… 제가 끌어들인 분에겐 좋은 선물을 받아서, 저…… 아니, 저희 가문 역시 좋은 선물을 안겨 드려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뭐라고 설명하기에는 이것저것 엮인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이것을 다 설명을 해주는 것도 주안의 입장에선 참 어려웠고 오래 걸리는 일인지라 간단하게 말을 하였고 이러한 주안의 말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부분을 느꼈기에 아미엘 역시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인간관계란 참으로 복잡하구나.”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바깥세상의 일이 많이 복잡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미엘에게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서로 협력을 하고, 때론 양보도 해주면서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인간들의 장점이겠지.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그 어떤 이들보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는 특이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긴, 그렇긴 하죠.”
때론 가족들보다 타인을 더 신뢰할 정도로 그들에겐 이득이 되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 확고한 관계가 유지된다.
어떻게 보면 가족 그 이상이었고, 이러한 유대관계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인지라 주안도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가문을 모시는 가신들의 가문들 역시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진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 * *
갈 때는 세냐와 함께였지만 올 때는 세냐 뿐만이 아니라 마냐와 아냐도 함께 집으로 돌아온 주안은 세 꼬맹이를 자유롭게 놀게 놔둔 뒤 자신은 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나갔다.
엄마에게 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생겼기에 주안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안에겐 사실 꽤 낯설고 그다지 찾지도 않은 장소였으며, 사실 다른 이들 역시 주안과 비슷한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저택 내에서 마법 통신이 가능한 장소 중 한 곳이었다.
그리고 가장 지루한 장소 중 하나라고 첫 손에 꼽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하루 종일 마법 통신이 오든 안 오든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여 지루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황도 저택에 머무는 마법사들은 의외로 많아서 그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켰다.
아니, 마르티네스 공작가이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며 여유롭지 못한 가문이라면 마법사들이 꽤 고생하거나 혹은 일반 병사나 하인들을 대기시켜 연락이 올 때마다 마법사에게 알려주어야만 하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마법사들을 그 지루한 일을 도맡아 시키기에는 너무나 고급 인력이고 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으니, 그보다 더욱 도움이 되는 일 쪽으로 보내어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욱 많은 일을 떠넘겼다.
‘우리 가문의 마법사들 입장이라면, 그래도 휴식시간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 다행이긴 해.’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 역시 마법사들이 할 일은 많았지만 그래도 타 가문들보단 여유로웠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하라는 압박을 가하진 않는다.
사실 마법사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수많은 마법적 장치들이 채워져 있는 황도 저택을 유지, 보수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봐도 무방하였다.
그리고 주안은 이러한 마법사, 통신을 위해서 대기 중인 그 마법사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윌슨 마법사님이 계실 때이던가.”
주안의 작은 중얼거림에 세라타 대신 뒤따라오던 하인이 조금 놀란 듯 주안을 바라보았다.
마법사들의 일정표는 매주 바뀌며, 사정에 따라서는 다른 마법사가 대신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바로 어제 돌아왔고, 얼마 전에 바뀐 일정표를 벌써 다 봤을 줄은 몰랐다.
사실 주안의 입장에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늦은 밤을 이용해서 그동안 저택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인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아본 뒤였으니 말이다.
주안이 저택의 통신용 장치가 설치된 방 앞에 도착하자, 뒤따라오던 하인이 조용히 방문 앞으로 걸어가 노크를 하며 말했다.
“윌슨 마법사님. 주안 공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금세 문이 열리더니 단정한 외모의 한 서른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나오더니 이내 주안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공자님.”
“예. 오랜만이에요, 윌슨 마법사님. 마를렌으로 가기 전에 뵙고는 처음이죠?”
주로 주안이 보는 이들은 대게 엄마와 관련된 호위들이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 외의 마법사나 기사, 병사들에서부터 하인들까지.
주안은 조금씩 많은 이들을 챙겨나가고 있었다.
이런 주안을 보며 안경을 조심스레 고쳐 쓴 뒤 주안에게 물었다.
“한데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그야 통신을 하고 싶어서 온 거죠.”
하지만 그가 의아한 듯 갸웃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방에 설치된 마법 통신은 말 그대로 초장거리용 마법 통신이자 타국과의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주레인 공작의 서재라거나 안젤라가 주안을 위해 샀던 더럽게 비싼 초장거리용 마법 통신 장치가 있는 상황에서 이곳을 찾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던 것이다.
“실은 아스란 왕국의 왕성에 통신을 넣고 싶어서요.”
“아스란 왕국……. 아.”
그제야 그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레인 공작의 서재에 설치된 마법 통신이 가능한 그것은 제국 내의 어디든 연락이 가능하지만 타국과의 연락은 힘들었다.
무엇보다 주안의 초장거리 마법 통신기는 역시나 같은 모델의 것에서만 연락이 가능한 정말 쓸데없는 것인지라 주안이 이곳에 타국과의 연락이라는 말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열린 문의 앞에서 비켜주며 주안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공자님.”
“실례 좀 할게요.”
주안이 안으로 들어가자 뒤이어 윌슨 마법사 역시 안으로 들어갔지만, 주안을 따라온 하인은 조용히 방문 앞에 서서 닫히는 문 너머의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준 뒤 주안이 통신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