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0화
사실 황도의 집으로 돌아온 그 날은 딱히 피곤하지도 않았기에 엄마가 원하는 일은 뭐든 같이 다 해주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는 그래도 주안의 개인적인 시간을 내며 시간을 보내었다.
특히 주안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짐들을 잔뜩 가지고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세계수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 무엇이더냐?”
“선물이에요, 선물.”
“오오~!”
아직 아미엘의 곁에 함께 있던 마냐와 아냐는 주안과 세냐가 가지고 온 선물, 벌꿀과자에 눈을 반짝이며 그대로 달려들었고 아미엘은 반대로 여러 가지의 술을 보고는 큰 관심을 가졌다.
마냐와 아냐처럼 달려든 것은 아니지만 손을 뻗어 술병을 정성스레 쓰다듬는 모습에 주안이 순간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집에는 잘 도착하였나 보구나.”
“사실 어제 도착을 하긴 했는데, 엄마랑 같이 있어드리느라 곧바로 오지는 못 했어요. 죄송해요, 아미엘 님.”
“아니다. 너 역시 너의 할 일이 있을 터이니, 이곳을 먼저 생각을 하는 것보다 너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거라.”
“아미엘 님도 제 가족인걸요.”
“…….”
주안의 그 말에 술병을 쓰다듬던 아미엘이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주안을 올려다 보았다.
그 얼굴에는 한 점 부끄러움도, 거짓도 없었기에 아미엘의 볼이 발갛게 물들더니 애써 시선을 다시 술병으로 옮기며 말했다.
“그, 그러하다 하여도…….”
“그보다 아미엘 님도 할 일은 다 하셨죠?”
“……숙제를 검사하러 온 것이더냐.”
“뭐, 반쯤은?”
주안의 즐거운 그 얼굴과 농담에 아미엘이 작게 한숨을 내쉬다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몬스터에 관한 일은…… 얼른 해결해야 아미엘 님도 편하실 것 아니에요. 달란트 부족을 위해서라도, 인간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그래. 그렇지.”
그 말에 아미엘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세니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들의 봉인을 이룬 중심축이 어디인지는 나 역시 잘 아는구나. 하나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예. 그리고 저 부르는 거 아시죠?”
“……그래. 너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크세니아에게 들은 바로는 그 어그러진 결계를 바로잡는 것에 필요한 것이 바로 주안의 성흔, 신성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안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였고, 그 장소를 찾고 들어갈 수 있는 길과 그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아미엘의 힘 역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기에 주안은 어떻게 보면 다행이지 싶었다.
그러한 짐을 아미엘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고 자신이 조금은 거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이, 그녀의 어깨를 조금은 가볍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으니 말이다.
언제나 혼자 많은 것을 짊어지고 가는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주안으로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었다.
“일단 교단 쪽에는 이곳에 오기 전에 황도 대신관님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봤어요.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 이 일도 조금만 기다리면 어느 정도 유익한 소식을 듣지 않을까 싶어요.”
주안은 아미엘을 위한 술을 사러 나갔다가 대신전에 들러 대신관을 만난 뒤 그들 교단의 중추, 성도 다예프의 대신전에 대한 일을 부탁하고 오는 길이었다.
다예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주안에 대해 대신관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 주안은 성흔을 빌미로 그곳에 있다는 성녀에 대한 관심과 교단에 대한 호감을 표했기에 페트롤 대신관을 크게 기쁘게 했다.
마를렌을 무사히 다녀온 것을 이유로 기부금도 잔뜩 내었기에 페트롤 대신관 역시 주안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상황이라 역시나 조금만 기다려 보면 다예프의 대신전에 관한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자세히 주안에게 알려줄 것이 확실했다.
“너도 그쪽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구나.”
“그럼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 이게 이제 제 인생의 두 번째 목표인걸요.”
“……첫 번째는 엄마에게 잘하자?”
“윽……. 그, 그건 그러니까…….”
이제는 아미엘도 주안이 어떤 아이인지 대출 파악이 끝난 상황이라 이런 농담도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몬스터라는 것과 그 어그러진 결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의 어두웠던 표정도 한결 밝아지더니 아미엘이 조용히 주안을 보며 말했다.
“농담이니라. 그보다 오늘은 메데아, 그 아이를 만나러 온 것이기도 하겠구나.”
“예. 이전에 못 만났으니까요. 오늘은 만나서 황도로 오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싶어서요.”
정확한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안은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 게 있었다.
바로 유우나 공주와 풍신이 황도로 올 때 동행을 하였으면 한 것이다.
유우나 공주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고, 풍신에 대한 배려이기도 한 그것은 어찌 보면 주안과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대한 큰 이득이 되는 일이기도 하였기에 주안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의사를 먼저 물어보아야 하였고 그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행할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은 그 아이도 있으니, 나와 함께 가자꾸나.”
“아, 그러면 이 술도 한 병 정도는 선물로 가져가요. 아미엘 님.”
“흠…….”
“……방금 조금 아깝다고 생각하셨죠?”
“아, 아니다. 그런 일 없느니라. 그런 불경한 시선은 그만 거두거라.”
주안의 지적에 흠칫 놀란 아미엘이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주안뿐만이 아니라 세냐와 마냐, 아냐마저 그런 아미엘을 지그시 바라보자 그 시선들에 못 이겨 아미엘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만 꼬물거리며 부끄러워하였다.
“다음에는 지금 가져온 것의 두 배로 가져올게요. 아, 그리고 저희 집에 오신 날에는 아빠가 정말 아끼시는 술을 대접해 드릴게요.”
“내, 내가 무슨 술에 죽고 못 사는 그런 존재인 줄…….”
“그 술이 아마 300년 정도 전에 만들어졌다나, 뭐라나…….”
“…….”
술을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레인 공작은 대신 희귀한 술을 모으는 마니아였다.
개인적으로 술을 보관하는 장소도 구비해 두고 있었기에 술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엄청난 보물들도 잔뜩 있다 봐도 무방하였다.
이전 삶에서 주안은 그 술을 몽땅 팔아서 엄마와 놀러 다닌 기억이 있었지만, 이번 삶 속에서는 아무래도 그 술을 이용해서 아미엘이나 여러 사람의 호감도를 사는 것에 사용해야 하지 싶었다.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어차피 드시지도 않는 걸 왜 그렇게 모으시는 건지…….’
게다가 할아버지가 오면 어차피 탈탈 털릴 것이 분명하였으니,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낫지 싶었다.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나름 애주가로 불렸던 인물이었고 그는 모으기보단 일단 마시는 쪽이었으니, 황도의 저택으로 오면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 뻔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말에는 슬쩍 고개를 들어 주안을 보는 아미엘의 눈빛이, 정말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이라 주안은 순간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이거 한 병이면 모자라겠지만…….”
“……두 병까지는 허락하겠다.”
“메데아 대족장님도 엄청 좋아하시겠네요.”
그래도 주안이 가져온 술이 많았기에 아미엘 역시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술 맛을 잘 모르는 주안으로서는 그저 웃음이 나오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 * *
“오! 작은 손님! 날개 달린 정원사 양반도 오셨구려.”
달란트 부족원의 안내에 따라 그녀의 집인 거대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주안이 온 것을 보고는 메데아 대족장이 크게 반겨주었다.
오늘은 카마르 족장이나 라쿰바 부족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늘 함께 있는 조언자인 파나르라는 노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주안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에요, 메데아 대족장님. 파나르 어르신도 오랜만이에요.”
“쿠후후. 정말 예의 바른 작은 손님이구나, 마르티네스의 주안.”
주안의 행동에 메데아 대족장이 크게 웃어주었고 대신 파나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험악한 그 외모들과는 달리 참으로 정겨운 행동들인지라 주안 역시 미소를 지으며 메데아 대족장의 근처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아미엘은 그런 주안의 곁에 앉아 주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일인고?”
“실은 메데아 대족장님에게 부탁을 한 가지 드리고 싶어서…….”
하지만 그런 주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를 마시던 파나르가 찻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주안을 보며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아, 예.”
웬만해선 이야기에 끼어들 인물도 아니었고 말수도 적었던 노인, 파나르가 그렇게 행동을 하자 주안이 조금 놀라버렸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은 파나르가 끼어든 것에 그다지 불만스럽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듯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파나르가 이런 주안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곳으로 인간들을 보낸 것이 그대입니까, 아니면 그대와 관련된 인물입니까.”
“예? 인간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갸웃하는 주안의 모습에 파나르가 메데아 대족장을 보았다.
“작은 손님은 역시 아닌가 봅니다, 대족장.”
“내가 말하지 않았나.
“예. 저 역시 그렇게 생각은 하였습니다. 하지만…….”
“쯧. 라쿰바 이놈은 또 멧돼지처럼 길길이 날뛸 때부터 알아봤지.”
“어쩔 수 없지요. 마누엘, 그분도 모자라 작은 손님의 일행들까지……. 외부인들이 자꾸 들어오는 것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주안이 갸웃했지만, 이내 외분이라는 그 말에 주안도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로 일전에 이곳을 찾았다가, 메데아 대족장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던 그 날.
아미엘을 통해서 전해 들은 다수의 외부인이 대밀림을 침범하는 바람에 메데아 대족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들었었으니 말이다.
“혹시 많은 외부인이 대밀림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음? 그것을 어떻게……. 설마, 마르티네스의 주안. 정말로 네가 보낸 것들이었나.”
“아니에요. 전에 이곳을 찾았는데, 아미엘 님이 그 외부인들 때문에 메데아 대족장님이 자리를 비우셨다고 하셨거든요.”
순간 날카롭게 변했던 메데아 대족장의 기세도 순식간에 다시 사라지자, 주안은 소름이 돋고 두근거리던 가슴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흠……. 미안하구나. 나도 조금 예민해져서 말이다.”
“아니에요. 집을 제멋대로 들어온 외부인들이 있다면, 저 역시 민감해졌을 거니까요.”
“이해해 주어서 고맙구나.”
하지만 주안은 한편으로는 메데아 대족장이나 파나르, 그 외의 많은 달란트 부족을 놀라게 한 외부인들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메데아 대족장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제 탓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음? 작은 손님, 네 탓이라니?”
“……제가 메데아 대족장님에 대해서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아마 그것 때문에 메데아 대족장님을 만나러 온 이들이 아닐까 싶어요.”
“호오, 네가 말하던 그 귀찮게 할 수 있다던 이들이란 말인가?”
“예.”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 듯, 메데아 대족장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