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28화
한참을 걷고 걸었다.
지칠 법도 하지만 그래도 다들 나름 몸을 쓰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주안은 신성력으로 인해 쉽게 지치지 않게 할 수도 있었기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비밀통로의 끝까지 쉬지 않고 걸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위치한 계단을 이용해 위로 올라가 굳게 닫힌 문을 주안이 간단히 조작 후 워랜이 힘으로 밀어 올렸다.
“후우…….”
“하아…….”
워랜이나 토미와는 달리 두 사람은 지쳐 있었다.
아무리 신성력을 가진 주안이나 나름대로 체력이 있는 솔이라 하더라도 이 두 사람에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길고 긴 비밀통로를 걷고, 달리고 겨우 도착하였을 땐 주안이나 솔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 겨우 앉아 쉴 수 있었지만 워랜이나 토미는 말짱하였다.
잠시 땀을 훔치는 사이, 토미가 주변을 둘러보다 갸웃하며 물었다.
“도련님. 여기, 공작성 맞아요?
토미도 이 큰 공작성을 꽤 돌아다녔기에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하지만 지금 도착한 이곳은 그에게도 굉장히 낯선 곳이었다.
그런 토미의 물음에 세냐가 마법으로 땀을 식혀주는 것에 겨우 숨을 돌린 주안이 말했다.
“공작성의 숨겨진 지하실이야. 여기 위로 올라가면 내 방으로 금방이거든.”
“예?! 도, 도련님 방까지 바로요?”
“응.”
느긋한 주안의 말에 토미뿐만이 아니라 솔이나 워랜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보며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이 비밀통로는 순수하게 직계가족, 후계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우리 가문의 자손이 좀 많이 귀해서, 절대 대가 끊어지면 안 된다고들 하시거든요.”
아직 제대로 사용해본 일은 없지만, 그런데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선 늘 이런 일을 철저하게 대비해준다.
정말 저주처럼 내려오는 이 자손이 심각할 정도로 귀한 것에서 절대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지워지지 않게 하겠다는 그 의지가 강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내 대에서 명맥이 끊어져 버렸지만…….’
주안은 결국 결혼도 못 하고, 자손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적어도 이번 삶 속에서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참고로 제 방의 이전 주인은 제 아버지셨고, 그 전의 주인은 할아버지셨어요.”
“방을 대대로 물려받는 이유도, 결국 이 통로 때문이겠네.”
“네, 맞아요. 후계자의 방에 가장 가깝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도망칠 수 있도록 해놓은 안전장치이죠.”
주안의 방을 통해서 내려올 수 있었으며, 이 지하실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가주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의 엄마인 안젤라 역시 모르는 일이기도 하였다.
“자, 그만 쉬고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멀었던가.”
“멀어요. 황도 제 방으로 갔다가, 다시 집을 나와야 한단 말이에요.”
“정말 귀찮긴 하네.”
“어쩔 수 없죠. 아직 밝혀지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워랜의 말대로 정말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은 비밀로 남겨두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황도의 자신의 방으로 갔다가 다시 몰래 저택을 빠져나와서 황도의 숙소에 머문 뒤, 아침이 되어서 느긋하게 저택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게 바로 자신들의 역할이었다.
“황도 저택은 또 어떻게 나와야 하나…….”
몰래 숨어드는 역할에는 남다른 기감이 발달해 있는 실력자, 워랜의 힘이 절실했고 황도 저택의 방비는 이미 겪어 보았기에 매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냐의 힘을 빌려 마법적인 방비를 무력화시킨 뒤 경비들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였지만, 그게 잘 될지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워랜의 고민에 주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거 간단해요.”
“응? 어떻게?”
“저택 담벼락에 걸린 모든 마법 방비를 세냐가 무력화시켜 놓으면 그대로 담 넘어 나가면 되거든요.”
“……자기 집 담을 넘는 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비상상황이니까요. 그리고 우리 집 담을 제가 넘는 데 문제가 될 것은 없죠.”
“하하…….”
실로 태평한 주안의 말에 워랜도, 토미와 솔도 작게 웃어 줄 수가 있었다.
“자, 그러면 그만 갑시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에는 주안이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 뒤를 지켜보던 일행들도 주안의 뒤를 따라갔다.
* * *
바로 며칠 전에 이미 한 번 왔었던 주안이었지만, 매우 오랜만에 황도 저택으로 돌아온 다른 일행들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걸 실제로 겪으니 생각하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
“설마 놀라신 거예요?”
“조금.”
“우와, 워랜 경이 그렇게 놀랄 정도면……. 음…….”
워프 게이트를 몇 번이나 이용했던 주안이었기에 조금 어지러운 것을 제외하면 별달리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워랜에게서 시선을 돌려 토미와 솔을 바라본 주안은 작게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우, 우와, 아, 우…….”
“……솔은 유아 퇴행기를 겪나 보네요.”
몸을 오들오들 떨며 주저앉아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솔의 모습은 매우 안타까웠지만, 왠지 다가가서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곁에서 마찬가지로 하얗게 질려 있는 토미의 모습에 이번에는 주안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갸웃하며 말했다.
“넌 한 번 이용해 봤잖아? 왜 그래?”
“그, 그, 그땐 그냥 파팟~ 하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짜잔 하고 이동했는데 이건 좀…….”
“어째 말투가 마냐랑 비슷하다?”
어버버 거리며 허공에 손짓까지 하고 뭐라 설명을 하는 토미였지만 영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 토미를 지나쳐 주안은 테라스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를 정지시킨 된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었다.
“후읍~. 하아……. 공기 좋다~.”
“주안 공자는 꽤 느긋하네?”
“집에 돌아와서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엄마 때문은 아니고?”
“…….”
잠시 말을 멈춘 채 창밖을 응시하다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생각하는 시간이 무지 기네.”
“으…….”
애써 워랜의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무시한 채 주안은 주머니에서 세냐를 꺼내 말했다.
“그보다 세냐, 가능하지?”
“어쩜 오빤 저를 마법 장치를 멈추는 것에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가 무슨 도구에요?”
“그치만 세냐 외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 다들 무식하게 몸만 좋은 사람들뿐인데.”
“……무식?”
주안의 말에 곁으로 다가온 워랜이 살짝 찌푸렸지만, 그런 워랜을 애써 무시한 채 재차 세냐에게 말했다.
“어차피 네가 다 만든 거기도 하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수준이 낮은 마법들이라 평가를 한 만큼, 그 수준이 높은 마법 실력을 가진 세냐를 잘 구슬려서 집 안의 마법 방비에 대해서 한층 더 좋게 만든 주안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것을 멈추는 것도 세냐에겐 매우 간단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부탁에 입술을 샐쭉 내밀며 투덜거리다가 믿는다는 작은 칭찬에 금세 해맑은 표정을 지은 세냐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올랐다.
“자, 그러면 워랜 경도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 뭐를?”
테라스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려던 워랜이 주안의 말에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런 워랜에게 두 팔을 벌리자 워랜은 이러한 주안의 행동이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워랜에게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 여기서 못 뛰어내려요. 저 안고 뛰어 내려주세요.”
“공자님. 혹시 미치셨습니까?”
“……왜 갑자기 욕을 하면서 존댓말까지 하시는 건데요.”
험악한 워랜의 표정이 주안이 움찔 놀라긴 했지만, 주안 역시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워랜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세냐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집중하는데 건드리면 화내서 안 돼요.”
“거 참……”
이해를 하기도 싫지만, 이런 소심한 주안의 모습에 대체 어떻게 이 거대한 가문을 이끌고 갈 것인지 진심으로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듯 워랜이 난간에서 내려와 주안에게 다가가 주안을 그대로 어깨에 짐짝처럼 올렸다.
“이런 취급은 좀…….”
“그러면 내가 먼저 내려가서 받아 줄 테니 뛰어내리겠어?”
“……잘 부탁드립니다.”
“하아…….”
워랜의 한숨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 있었고, 주안도 그것을 느꼈기에 뭐라 말을 하지도 못한 채 워랜의 행동에 따라 주었다.
그리고 워랜의 어깨에 짐이 되어 올려진 채 주안은 토미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는 솔을 보며 말했다.
“솔은 정신 차리면 문 닫고 오라고 말해줘, 토미.”
“예, 예. 도련님.”
마치 잠시 놀러 나가는 것처럼 문단속까지 시키는 주안의 느긋함에 토미는 처음으로 주안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 * *
“핫?!”
“음? 안젤라?”
식사를 하다말고 안젤라가 흠칫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그 행동에 주레인 공작이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러시오? 어디 안 좋은 거요?”
“아뇨, 그게 아니라…….”
임신을 한 뒤로 딱히 몸이 어디 아프거나 한 것은 없었던 아내인 안젤라였다.
주안의 빈자리로 인해서 마음고생이 조금 심했다는 것 외에는 무척 건강했다.
입덧도 하지 않았으며 주안이 온 뒤로는 그러한 마음고생도 사라진 채 이전의 나잇값 못 하던 밝음을 되찾은 아내가 잠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부산스럽게 둘러보자 주레인 공작이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대신관을 부르는 게 낫겠소?”
“아뇨. 아니에요. 단지…….”
“단지?”
남편이 건넨 물컵을 들고 잠시 그것을 매만지다가 한 모금 들이킨 안젤라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주안이의 냄새가 나서…….”
“…….”
그리고 그 말에 주레인 공작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그런 냄새를 어떻게 맡는다는 것이오.”
“우웅……. 우리 주안이는 대체 언제 오는 거예요. 당신이 연락 좀 해보세요.”
“내가 말이오?”
안젤라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건, 당신이 하면 되지 않소?”
“설마 지금 아버님이 무서워서 연락하기 싫다는 말씀이세요?”
“크흠……. 그야, 뭐……. 아니, 그러는 당신도 마찬가지이지 않소?”
“지금 임신한 저보고 혼나라는 말씀이세요?”
“……대체 뭘 했기에 혼날 게 또 생긴 거요?”
“연락만 해도 혼내신단 말이에요.”
“하아…….”
그야, 연락을 해도 시아버님 안부를 먼저 묻는 게 아니라 주안이를 먼저 찾으니 화를 낼 수밖에.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혼나는 입장이야 비슷하다 보니 이해가 되는 한편, 자신 역시 아들이 언제 올지 궁금하였으니 말이다.
“우우……. 우리 주안이 보고 싶어요. 얼른 와서 엄마랑 같이 쇼핑도 하고, 또 놀러도 가고, 연극도 보고, 아빠 집에도 가고…….”
“……황성을 너무 자주 찾아가는 것 아니오?”
“아빠 집에 딸인 제가 간다는 건데 뭐 문제라도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아빠도 자주 놀러 오라고 했거든요?”
그 아빠 집이라는 게 황성이라는 게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주레인 공작이 뭐라 설명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쨌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얼마 전에 연락을 해본바, 마를렌의 일도 슬슬 마무리되어가는 듯하였으니 말이오.”
“정말이죠?”
주레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젤라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그런 아내의 금세 변하는 저 변화가 이제는 좀 적응이 되었기에 주레인 공작 역시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운을 차린 듯 안젤라가 다시 식사를 시작하자, 주레인 공작 역시 식사를 하려 하였다.
“공작님.”
“음? 무슨 일인가?”
집사장이 조용히 식당 안으로 들어와 주레인 공작과 안젤라 공작 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방금 주안 공자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
“어머나! 우리 주안이가?!”
주안이 온 것에 분명 기쁘긴 했다.
다만, 이를 크게 반기는 안젤라에게 시선을 주며 주레인 공작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냄새, 진짜 맡을 수 있었던 거요.”
“아앙~ 우리 주안이~!”
하지만 주레인 공작의 말을 무시한 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안젤라와 황급히 그녀를 따라가 부축하는 그녀의 전속 하녀인 마리아.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레인 공작은 역시 자신은 아내를 이해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