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26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곳이긴 하나 바다가 보여서 경치가 참 좋은 카페의 2층에 앉아 케익과 과일, 그리고 주스와 차 등이 테이블 위에 가득 차려 놓은 채 주안은 책을 펼쳐 들고 느긋한 한때를 보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어쩐지 입에 대지도 않은 채 매우 불안한 모습의 솔이 손까지 들고 조심스레 주안에게 말을 꺼냈다.
“어, 음, 저기……. 한 가지 질문을 좀 해도 괜찮을까요?”
“응? 왜요, 솔?”
그리고 조용히 찻잔을 들고 차를 음미하며 최근에 나온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던 주안이 솔의 말에 갸웃하며 물었다.
이런 느긋한 주안의 모습에 솔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집에 안 가세요?”
벌써 오후가 다 되어 해까지 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닷가의 조합은 아름다웠고 매우 평화롭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런 풍경을 구경하기에는 현재의 이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솔이었다.
집에 간다고 그렇게 인사도 하고, 배웅도 받으며 나왔는데 어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서쪽이 아닌 북쪽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마를렌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작은 바닷가의 마을에 들어와 이렇게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 역시 솔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
“워랜 경이랑 토미가 오면 집에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곧 저녁인데, 그때 출발하시게요?”
올 때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 도리안이라면, 갈 때의 길잡이 역할은 바로 솔의 몫이었다.
통통한 체구와는 달리 말을 타는 솜씨가 남다른 솔은 의외로 지리에 꽤 밝았으며 충분히 일행들을 이끌고 갈 능력이 되었다.
다만, 주안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고 워랜이나 토미마저 주안이 이곳으로 오는 것에 동의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 마을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솔은 여전히 이들이 왜 이러는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런 솔이 갸웃하며 묻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시집을 덮고는 말했다.
“솔에게도 말씀드릴 게 있어요. 일단 워랜 경이랑 토미가 오면 제대로 말씀을 드릴게요. 그때까지만 조금 참아주시겠어요?”
“아, 네.”
주안이 이렇게 부탁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솔은 주안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지만, 주안은 이처럼 타인에 대해서 먼저 의견을 구할 때가 많았다.
일단 솔도 귀족이고 더군다나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을 모시는 말란체 남작가의 사람인 이상, 주안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워랜으로 인해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였던 자신에게 먼저 의견을 구하는 것에선 굉장히 낯설어하였기에 잠시 당황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이런 주안의 말이 있었기에 솔도 그제야 테이블 위에 잔뜩 준비한 케익과 과자 쪽으로 손이 갔다.
“돼지 오빠 건 저기, 저거. 이건 내 거거든요?”
“…….”
다만, 그 손도 자신을 째릿 노려보는 작은 요정 꼬맹이의 퉁명스러운 말에 움찔 놀라며 거둘 수밖에 없었지만.
“혼자 다 못 먹잖아. 그리고 이건 솔을 위해서 준비한 거기도 해, 세냐.”
“자고로 비만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세요? 살이 안 찌는 맛없는 차나 잔뜩 드세요.”
“……그러는 너도 살찌겠어.”
“흐흥~. 안 찌는 체질이라 상관없거든요.”
“그거참 부럽긴 한데, 신기한 능력이기도 하네.”
자랑스러워하는 세냐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소심한 솔은 우울한 모습으로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래도 다행히 주안은 그런 솔을 위해서 몇 개의 케이크를 더 시킨 후 솔의 앞에 놓아 주었고, 그제야 솔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한동안 주안은 시집을 읽고, 세냐와 솔은 간식을 잔뜩 먹는 사이 카페의 주안이 있는 자리로 워랜과 토미가 외출을 끝내고 짐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생각보다 늦은 거지. 주인장 기다린다고 시간만 빼앗아 먹었잖아.”
“그래도 가격은 많이 할인해 주셔서 다행이잖아요.”
“뭐, 그렇긴 하다만.”
워랜의 투덜거림에 토미가 애써 웃으며 가지고 온 짐들을 주안이 있는 자리 근처에 내려놓은 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토미에게 간단한 마실 것을 전해준 뒤 주안이 물었다.
“그래서 다 구해왔고?”
“네. 완벽하게 구해왔죠.”
“완벽은 무슨. 대충 보이는 거 집어 왔잖아.”
“그렇지만 솔 형의 것은 찾기가 어려웠잖아요.”
“그러게 살을 좀 빼라니까, 이 녀석아.”
“아우우……?!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토미의 말에 워랜이 잔뜩 찌푸리더니 가만히 있던 솔의 뱃살을 손으로 붙잡고 흔들며 괴롭힌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도 용케 구해왔네.”
“뭐, 거기 주인아주머니께서 솜씨 좋게 그 자리에서 만들어주시더라고요.”
“헤에, 그래? 다행이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주안과 토미의 모습에 솔은 워랜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도통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는 듯 갸웃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구해왔고, 뭘 만들고, 제 것은 또 뭐예요?”
“아, 그거? 간단해.”
주안이 싱긋 웃으며 잘 포장된 짐을 풀어 내용물을 솔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솔은 더더욱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웬 로브에요? 게다가 주안 공자님이 입기에는 좀…….”
큼지막한 크기가 몸을 제대로 가려줄 것 같았고 두께는 최근 날씨에 맞춰서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대신 통풍성은 기대할 수가 없어서 그런지 오래 입고 다니면 땀이 날 것만 같은 그러한 어두운 색감의 로브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솔은 장기간 이동을 할 때 입는 옷이라는 것을 떠올리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것을 입고 다닐 필요가 없는 일행들이기에 그것을 사온 워랜과 토미가 참 이상했다.
아니, 그것을 시킨 주안이 더욱 이상하였다.
“집에 돌아갈 때, 아무래도 들키면 안 되어서요. 말은 다 처분하셨죠?”
“급하게 처분해서 가격은 조금 손해를 보긴 했지만, 이런 마을에서 판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어.”
“역시 게으름 피우셔도 노밀 가문의 사람답게 말에 관해서는 완벽하시네요.”
“거기에 꼭 게으름이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워랜의 작은 투덜거림에도 주안이 미소를 짓자, 이내 워랜도 웃어주며 테이블 위에 작은 주머니 하나를 올려 두었다.
말은 값이 비싸서 많은 양의 은화보단 금화나 보석으로 거래할 때가 많았다.
거기다 네 마리나 되었으니, 이 작은 주머니에 어떤 보석이나 금화가 들어있을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되었다.
그리고 이런 주안과 워랜의 말에 여전히 워랜에게 뱃살이 붙잡힌 솔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말을 팔았다고요?! 대체 왜요?!”
이런 솔의 반응에 오히려 워랜과 토미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보다, 워랜이 주안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직 말 안 했어?”
“예. 워랜 경이랑 토미가 오면 말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사이 먹을 것으로 일단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고?”
“그렇게 했죠. 워랜 경이 오셔서 괴롭히기 전까지는 솔은 행복했거든요.”
“흐응…….”
여전히 두툼하고 말랑말랑한 솔의 뱃살을 붙잡고 있던 워랜이 슬쩍 솔을 바라보았다.
“뭐, 슬슬 알리긴 해야지.”
워랜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은 그제야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솔에게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요, 솔.”
“예, 네?”
진지한 표정의 주안과 눈이 마주치자, 솔이 작게 놀라며 큰 덩치의 몸을 움츠렸다.
자신보다 작고 연약하고 가녀려 보이는 주안이지만, 지금의 주안은 확실히 거대한 가문의 후계자다운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이 따라야 하는, 그러한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하였으니 이러한 모습의 주안은 낯설어도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주안은 조용히 솔을 마주 보며 말했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릴게요.”
“사, 사, 사과라니요. 절대로,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래,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 이 녀석에겐 그냥 통보만 해도 된다니까.”
“그건 좀 너무한 거죠, 워랜 경.”
당황하는 솔을 대신에 워랜이 빙글빙글 웃으며 한마디를 했지만, 주안은 오히려 그런 워랜을 탓하였다.
“사실을 이 일에 대해서 솔에게도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워랜 경이 믿고, 소니아 누나가 믿는 솔은 저 역시 믿으니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고, 공자님…….”
워랜이 믿고 형제처럼 지낸, 아니,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형제나 다름이 없는 솔.
소니아가 믿고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친동생처럼 생각을 해주는 솔.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믿고 신뢰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형제를 쫓고 소니아를 생각해주었던 솔.
그렇기에 주안은 솔을 믿었고, 믿을 수 있는 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 만큼 솔 역시 이러한 주안의 말에 깊은 감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은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시면 안 돼요. 이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저, 주안 마르티네스가 봉신 가문인 말란체 남작가의 셋째 공자인 베누아미솔 말란체에게 내리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부탁이 아닌 명령이라는 그 말이 주안의 입에서 나오자, 솔은 그 낯선 단어에 움찔 놀랐음에도 굳은 결의가 담긴 눈으로 주안을 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입 밖으로,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예. 믿을게요, 솔. 그리고 워랜 경과 토미도 믿으니까 말을 해주는 거니…….”
“알아. 나 역시, 나의 부모님과 스승님에게도 절대 발설하지 않을게.”
“네, 공자님. 저 역시 세라타에게도…… 피터 스승님과 새 스승님에게도 절대 말씀을 드리지 않을게요.”
주안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는 워랜과 토미임에도 이러한 주안의 말에 자신들의 중요한 사람들을 걸고 약속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세 사람을 보며 주안은 미소를 지은 뒤 입을 열었다.
“저희는 지금부터 마를렌으로 되돌아갑니다. 마를렌 인근에 위치한 저희 가문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 공작성 내부, 제 방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 말에 솔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태연한 워랜과 토미의 모습에 그 역시 입을 다물고 주안이 하는 말에 끝까지 집중하였다.
“그리고 마를렌의 공작성, 제 방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서 곧바로 황도 저택의 제 방으로 이동을 할 생각이에요.”
주안은 그렇게 자신이 신뢰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에게 워프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던 워랜은 평소처럼 침착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비밀 통로라는 말에 토미는 적잖이 놀랐고 솔은…….
“저 오빠 죽은 거 아니에요?”
“……숨 쉬고 있으니까 아직은 살아 있어.”
“곧 죽겠네요.”
“……아냐.”
세냐의 퉁명스러운 말에 주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답해주었다.
신성력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건강상태에 대해선 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녀버린 주안은 하얗게 질려 놀라고 있는 솔의 겉모습에 그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속은 건강했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이런 상태의 솔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줄지가 고민스러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