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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25화 (22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25화

“그러면 그만 가볼게요, 할아버지.”

“그래. 조심히 가거라.”

배웅은 간소하게, 정말 최소한의 인원만 나와서 주안과 다른 이들이 황도로 가는 모습을 보았고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이런 주안의 바람대로 요란하지 않게 보내어 주었다.

더 이상 주안은 마를렌을 싫어하지 않았고, 할아버지인 자신을 껄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주안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에 착잡하던 것도, 가문에 대한 불안함도 더 이상 남지 않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주안을 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주안은 할아버지의 곁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가론 노밀 자작을 보며 미소를 짓자 가론 노밀 자작도 작게 웃어주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들놈의 스승이라는 분을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아하하……. 가론 자작님이 마를렌에 없으면 정말 큰일이 나잖아요.”

“끄응……. 얼른 대신할 녀석을 구해서 느긋한 노후를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가론 노밀 자작이 없으면 마를렌뿐만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령 전체의 움직임에 문제가 생기기에 그마저 마를렌을 떠날 수는 없었다.

이게 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가론 노밀 자작을 보니 주안도 괜히 미안해졌다.

‘가론 자작님에겐 알려 드려도 괜찮으려나…….’

그는 확실한 충신이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그의 아들인 워랜 노밀에게 워프게이트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기로 한 이상, 그 역시 알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그는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의 최측근이자 마르티네스 공작령 전체를 돌보는 인물이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히 알아야 할 인물 중 첫 손에 꼽혀야 하였다.

‘일단, 황도로 가서 할아버지가 오시면 그때 좀 물어보도록 해야겠지. 아미엘 님에게도…….’

그래도 조심스러운 이유는 역시나 한 사람, 두 사람, 이렇게 늘어나다 보면 나중에는 결국 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있었다.

어쨌든 이것은 최대한 숨겨야 하는 일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론 노밀 자작과 인사를 해준 후, 주안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아르베리아가 나서서 주안에게 인사를 하였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공자님.”

“예, 아르베리아 경. 그리고 위체니아 양과 록산느 경도 조만간 다시 뵙도록 해요.”

“예, 공자님.”

“많은 도움을 주셔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자님. 로마니아 백작 가문은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간단히 답하며 미소를 지어주는 위체니아 소벡과는 달리 록산느 로마니아는 정말 과할 정도로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기에 그 인사를 받는 주안이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이분이 이런 성격이셨나.’

이전 삶 속에서나 이번 삶 속에서나 그녀는 정말 기사도에 잘 어울렸다.

또한, 많은 남녀 기사들이 인정하던 이였다.

조용하며 냉철하던 그녀가 이렇게 많은 감정을 드러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할 줄은 주안도 예상 못 하였기에 조금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내 이런 록산느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제가 한 것이 뭐 있나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지만, 소개를 해드리는 것과 그분이 인정을 해주시는 것은 정말 달라요.”

“그래도 주안 공자님이라면 소개가 아니라 정말 제대로 제자로 들이실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아닌가요?”

“으음……. 설마요.”

곁에 있던 위체니아 소벡의 한 마디에 주안이 애써 태연한 척 웃어주었다.

하지만 사실 주안도 풍신에게 록산느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미 가문의 두 기사도 동행을 시킬 상황이었고 할아버지가 마음을 먹은 이상, 풍신에게 록산느를 제자로 들이게 만들어야만 하였다.

물론 그것이 동방 대륙에서 인정하는 정식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 제자라 하여도 록산느와 로마니아 백작가,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도 충분한 힘이 되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황도로 오시기 전까진 최대한 실력을 키워주세요, 록산느 경.”

“예, 공자님. 반드시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있는 한 사람의 기사로서 더욱 성장시켜 놓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짐하는 록산느의 모습을 보며 주안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주안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귀족들과는 조금 어울리지 못하고 떨어져 있던 이들에게 걸어갔다.

바로 쥬도와 도리안, 그리고 그의 아내인 몰리와 아들인 하마르까지 함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주안이 밝게 웃어주다, 먼저 쥬도에게 먼저 한마디를 던져주었다.

“이거, 휴가비라도 넉넉하게 줬어야 쥬도 씨의 표정이 조금 풀렸을까요.”

“으윽……. 제, 제 표정이 어때서요?”

주안의 말에 쥬도가 놀라서 움찔하며 주안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자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간 주안이 그에게 말했다.

“꼭 열 밤 자고 온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표정 같잖아요.”

“큭…….”

비유가 어째 좀 이상하긴 한데 뭔가 그럴듯하며 찔리는 부분도 없지는 않아서 그런지 쥬도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쥬도를 한 번 흘겨봐주다 금세 시선을 돌려 곁에 있던 듬직한 기사, 도리안에게 말했다.

“그보다 이렇게 나오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도리안 경.”

“이렇게 배웅을 해드리는 것밖에 해드릴 게 없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공자님.”

“배웅뿐이라니요. 앞으로 저희 가문의 훈련 교관으로서 열심히 해주셔야죠.”

기사로서도 젊은 나이로 나름 실력 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기사로서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모국에서부터 터득한 생존술이 더 뛰어난 인물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를 적극적으로 가문의 훈련 교관으로서 그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기도 하였으니까.

다만, 그런데도 도리안은 주안에게 고마움과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제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공자님과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안이 조용히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머리를 조아리자, 곁에 있던 아내인 몰리 부인 역시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 아들에게 큰 은혜를 내려주신 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도, 도리안 경. 몰리 부인……. 이건 좀, 과한 인사인데…….”

게다가 부모님이 그러니, 아들인 하마르 역시 말똥말똥한 눈으로 주안을 보다 그대로 주저앉아 주안에게 인사를 하려는 것을 주안은 겨우 붙잡고 말려주었다.

제노폴을 중심으로 한 중남부의 국가들과는 달리 도리안이나 몰리의 고향인 케세니아나 그에 인접한 북부의 나라 중 다수가 이렇게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높은 신분의 귀족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인사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물며, 만약 이러한 인사를 받는 이가 있다면 자랑거리로 삼아도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안은 이러한 풍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였고, 그것은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가론 노밀 자작 역시 매우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 얼른 일어나세요. 얼른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주안이 황급히 하마르를 똑바로 일으켜 세운 뒤 도리안과 몰리 부인 역시 붙잡고 일으켰다.

“이런 인사를 하지 않으셔도, 도리안 경은 대우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신 것이고, 하마르야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 해드린 것뿐이에요.”

그저 주안의 입장에선 손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을 뿐임에도 이토록 자신을 높게 봐주니, 주안으로선 심하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부부에게 하마르가 어떤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기에 오히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마음고생이 정말 심하긴 하셨구나…….’

하마르가 걸린 병은 쉽게 나을 수도 없으며 그저 병의 통증을 낮추는 것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그 병세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신성력이라는 나름 큰 비용이 필요한 것이니, 일반적인 이들은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나마 도리안은 기사로서 자신의 실력을 팔아 많은 돈을 벌었기에 하마르의 생을 계속해서 지켜 나갔다.

하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그 통증에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니.

그러한 통증을, 괴로움을 덜어준 주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쥬도나 로닐 상단주 이상의 은인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이 보이는 과한 예는 절대로 과한 것이 아닐 수가 있었다.

이런 것을 알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것은 조금 싫었기에 주안은 애써 태연한 척 웃어주며 하마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때 후로 어디 아픈 곳은 없지?”

“…….”

주안의 말에 하마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는 다시 주안에게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어주며 고개를 든 하마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재차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큰 통증도 통증이지만, 하루에 몇 번씩 작은 통증도 찾아오곤 했던 것이 이제는 완벽히 사라진 듯, 하마르의 표정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아니, 안색이라거나 빨갛게 부었던 눈이라거나 그러한 부분도 사라진 채 또래의 아이들보다 작던 키는 여전해도 빼빼 말랐던 모습은 어느 정도 나아진 모습이었다.

‘이거 확실히 효과가 좋긴 한데.’

주안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는 달리 신성력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걸어준 신성력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하마르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신성력은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입과 코로 신성력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단지 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몸속을 치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앞으로 자주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언제든지 반지를 새로 만들어 보내드릴 것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만들어준 반지들은 비밀인 거 아시죠? 도리안 경.”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택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곳에도 신성력을 부여해 봤다.

붕대용 천에도 신성력을 잔뜩 불어 넣어 봤다.

하지만 반지와 같은 부피가 작은 것에는 처음인지라 그게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는 주안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여분으로 몇 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주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주안에게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었다.

이러한 주안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운 도리안과 몰리 부부였기에, 그들이 진심으로 주안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도리안 가족과도 마지막 인사를 끝낸 주안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할아버지, 황도에서 봐요.”

“쯧, 녀석…….”

마치 집 앞으로 놀러 나가는 손자처럼 해맑게 웃으며 손까지 흔드는 주안의 모습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더 이상 손자를 마냥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아니었고 손자인 주안 역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마를렌이 아님을 알기에 가타부타 다른 인사는 필요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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